목숨을 건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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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6 14:44 조회3,368회 댓글0건본문
목숨을 건 신앙
목숨을 건 신앙
2009년 09월 04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계시록 2:10
본문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목숨을 건 신앙을 가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지근한 신앙을 갖지 말고, 죽도록 충성하는 신앙, 목숨을 거는 신앙을 가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1천만 명의 성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면,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 기독교의 영향이 크게 나타날 법도 한데 그렇지 못한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기독교인이 이렇게 많고 우리나라 지도자들 가운데도 장로님과 집사님이 많고 국회의원 중에 목사님도 있는데 왜 기독교의 영향이 별로 없고 약할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목숨을 건 신앙의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어도 목숨을 건 신앙을 가지고 믿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목숨을 건 신앙의 사람이 몇 사람만 있어도 이 나라는 분명히 달라질 줄 믿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목숨을 건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들로 말미암아 무시무시한 바벨론 왕이 하나님을 믿었고, 그 왕이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을 말하니까 그 영향이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또 바사의 고레스 왕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동안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자,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게 할 정도로 신앙이 좋았습니다.
또 메대 사람 다리오 왕도 성전 짓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잘 마치게 되었다고 성경에 보면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포로로 잡혀갔지만, 왕이 하나님을 믿게 하고 전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의 총리가 되어 그 나라를 움직였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도대체 어떤 신앙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크게 쓰임 받을 수가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들은 목숨을 걸고 거룩을 지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걸고 거룩을 지킨 이들을 통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다니엘 1장에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 때에 예루살렘을 포위했는데, 결국 항복했습니다. 나라는 망했습니다. 바벨론 왕은 유다 왕 여호야김과 수많은 유다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다니엘 1장 4~7절에 보면,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입니다. 이것은 날마다 바벨론 왕이 자기가 섬기는 우상 앞에 먼저 제사를 지내고 나서 먹는 것입니다.
다니엘 1장 8절에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포로로 끌려온 녀석이 바벨론 왕이 먹으라고 주는 것을 안 먹는다고 하면, 왕의 분노를 살 것입니다.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물론이요 이들을 책임지는 환관장까지 죽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 1장 10절에 보면,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고 말했습니다.
잘못하면 환관장까지 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과 세 친구는 “죽어도 좋사오니”라는 믿음으로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거룩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신앙입니다.
그래서 열흘 동안 한번 테스트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다니엘 1장 12~13절에 보면,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채식만 할 테니 왕이 주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비교하자고 했습니다. 열흘 후에 우리 얼굴빛이 초췌하면 왕의 음식을 먹을 것이고, 더 좋아지면 그것을 먹지 않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열흘간 시험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해졌습니다. 채식만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된 줄 믿습니다.
우리가 잘 먹는다고 얼굴이 아름다워지고 윤택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비록 잘 먹지 못해도 얼굴빛이 다릅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사시는 분은 얼굴빛도 다르고 눈빛도 다릅니다.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천사의 눈과 같습니다.
얼굴이 못생겨서 고민하시는 분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은혜만 받으십시오. 은혜 받으면 얼굴에서 빛이 날 것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얼굴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니까 천사 같은 얼굴입니다.
스데반 집사도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는 입장이었지만,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보좌에 앉아계시다가 벌떡 일어나셔서 스데반을 내려다보고 계시는 것을 보는 순간 그 얼굴은 천사와 같았습니다.
돌에 맞아서 죽어갈 때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보니까 기쁨이 얼마나 넘치는지,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게 사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거룩하게 사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게 사는 자를 귀하게 여기시고 귀하게 써주십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다니엘처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뜻을 정하고 ‘아무것이나 함부로 먹지 않고 깨끗하게 살리라’고 결심하고 살아간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귀하게 쓰실 줄 믿습니다.
우리 성도의 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5~20절에 보면,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값을 치러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몸은 값을 치르고 산 몸입니다.
그런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니엘 1장 17절 이하에 보면, 목숨을 걸고 거룩하게 사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에게 하나님이 주신 복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 1장 17~20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왕이 말한 대로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가니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일에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다니엘처럼 목숨을 걸고 거룩을 지키는 신앙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목숨을 걸고 전도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2장에 보면, 느부갓네살이 꿈을 꿨는데, 꿈을 잊어버렸습니다. 희한한 꿈을 꾸었는데, 꿈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박수들과 점쟁이들, 술객들을 불러들여 내 꿈을 생각나게 하고 그 꿈을 해석해달라고 했습니다.
왕은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의 집을 거름더미로 만들 것이요(단 2:5)”라고 말했습니다.
잘못하면 다니엘과 그의 친구까지도 다 죽게 되었습니다. 아주 큰 위기가 왔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위기가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위기가 왔기 때문에 다니엘이 더 높아졌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왕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줄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서 2장 27~30절에 보면, 다니엘은 왕에게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 왕이여 왕이 침상에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모든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에게 알려 주려 하심이니이다”라고 말하며 꿈을 이야기하고 해몽해주었습니다.
다니엘서 2장 46~49절에 보면,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왕이 또 다니엘의 요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것이 전화위복되었습니다. 위기를 통해 하나님을 전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더 높아지고 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떤 어려움이 와도 걱정하지 말고, 목숨 걸고 거룩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하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전할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높이 높이 들어 써주시고 기적을 주실 줄 믿습니다.
다니엘 3장에 보면, 이번에는 왕이 금 신상을 만들어서 모두 절하라고 했습니다. 다니엘 3장 16~18절에 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나 담대합니까. 죽을 각오를 한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담대할 수 없습니다. 목숨을 거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숨을 건 신앙을 우리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풀무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해서 세 사람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네 사람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다니엘 3장 24~26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하는 말을 보세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은혜 받은 사람의 말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왜 다니엘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까?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왕인데도 다니엘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아니까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또 느부갓네살의 태도가 얼마나 다릅니까? 담대하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이들을 통해 느부갓네살 같은 사람이 믿음이 생겼습니다.
다니엘 4장 1~2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리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백성들에게 전도하는 모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왕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놓으니까 왕이 자기가 체험한 하나님을 백성들에게 알게 하노라며 전했습니다.
다니엘 4장 3절에 보면,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승만 대통령도 이명박 대통령도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느부갓네살 왕처럼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큼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의 영향을 받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 6장 19절에 보면,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다니엘 6장 26절에 보면,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왕이 백성들 앞에 조서를 내려서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전도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통해 이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숨을 걸고 전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다니엘 한 사람 때문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다니엘과 같은 사람이 나오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목숨을 걸고 기도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6장에 보면, 다리오 왕 때 120명의 고관을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 총리를 세 사람을 세웠는데 다니엘이 가장 뛰어나니까 수석 총리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시기 질투하여 다니엘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 달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절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을 만들어 발표하여 다니엘을 없애려고 합니다.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은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갈 줄 알면서도 절대로 기도생활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다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교하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아는 신앙입니다.
다니엘은 적당히 기도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 것은죽을 각오를 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다 응답됩니다.
다니엘 9장에 보면, 다니엘이 금식기도한 내용이 나옵니다. 다니엘 10장에 보면. 세이레 동안 금식하며 기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 10장 12절에 보면,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면서 기도하기로 결심한 첫 날, 하나님께서 이미 응답하셨습니다.
금식기도가 얼마나 응답이 빠른지 모릅니다. 3주 만에 천사가 와서 전달하지만, 사실은 결심하던 첫날에 이미 응답되었습니다.
목숨을 건 금식기도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큰 은혜를 받습니다. 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저도 기도하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기적을 체험하기도 하고, 불을 받기도 했는데, 아주 확실한 응답을 받았을 때는 평범할 때가 아닙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금식하면서 아예 죽을 각오를 하고 목숨을 걸고 기도하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없고, 아주 정확하게음성을 들은 적이 없고,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체험하지 못하신 분들은 목숨 걸고 기도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시고 응답을 주십니다. 큰 은혜를 받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너무 안타까운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분들, 목숨을 걸고 기도해보세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보세요. 오래도록 고생하며 고통 중에 살지 말고, 빨리 끝내버리는 방법은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죽을 각오를 하고 금식기도 하다가 사흘째 되던 날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 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전도사였을 때, 너무 답답해서 불광동 뒷산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사흘째 되던 날 낭떠러지 끝에 앉아서 몸부림치며 기도하다가 죽으련다하고 빗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부르짖다가 불이 임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렇게 확실하게 불이 임하는 것을 그때 처음 경험했습니다. 그때 불을 받고 평생 하나님의 종으로서 수지맞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응답받기 원하고 기적을 체험하기 원한다면, 목숨을 건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상 7장 5~6절에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미스바에 모여서 하루 종일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하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지만, 하나님께서 천둥 번개를 치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혼비백산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다 무찌르고, 빼앗겼던 땅도 다시 찾고, 나라가 평안해졌습니다.
요엘 2장 12~1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며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응답이 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재앙이 변하여 축복으로 바뀝니다. 우리는 이런 체험을 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목숨을 걸고 거룩을 지키고 목숨을 걸고 전도하고 목숨을 걸고 기도하는 신앙을 가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크게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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