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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1장

내 영혼이 잘됨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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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5 07:20 조회3,1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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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2009년 01월 23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삼서 1:2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편지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가이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했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네 영혼이 잘 됨같이”라고 말씀합니다. 축복의 우선순위가 영혼이 잘 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잘 되는 복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축복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은 이 세상뿐 아니라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잘 되는 복이므로 얼마나 귀한 복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혼이 잘 되는 복 이외에 물질의 축복을 받거나 건강의 축복을 받는 것 같은 복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만 잘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백성이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우리의 영혼이 잘못되면, 다른 것들이 다 잘 되어도 영원히 지옥의 멸망을 당하게 되어 이미 망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러분, 솔로몬을 보십시오. 솔로몬은 모든 것이 다 잘되고,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얼마나 부유하고 강건했습니까. 그러나 그는 세상 향락을 누리다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집니다. 나중에는 우상숭배까지 하게 되어 영혼이 병들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왕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사람들의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풍조를 보면 윤리도덕이 타락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남편이 따로 있고, 애인이 따로 있고, 친구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드라마에서 그것을 재미있다고 보여줍니다.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들은 이런 영향을 받습니다. 이 나라의 윤리도덕을 타락시켜서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망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작전입니다. 문화를 통해서 사탄이 얼마나 역사하는지 모릅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성령 충만한 작가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한 PD와 방송국장이 많이 나와서 윤리도덕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개인과 가정, 사회가 잘 되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요즘 잘못된 사상과 주장이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잘 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라는 사상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서운 사상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거짓말이며, 사탄의 소리입니다. 도둑질을 해서라도 잘 살면 되고, 뇌물을 받아서라도 잘 살면 됩니까.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잘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바르게 사는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정의 사회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올바른 사회, 올바른 윤리도덕, 올바른 시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바르게 사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선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선하게 사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국민들이 얼마나 선한 백성으로 사느냐, 얼마나 사랑을 베풀면서 사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이것은 믿음 없이는 안 됩니다. 타락된 인격을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안 됩니다.

자기 명예를 위해서 이웃돕기헌금을 바치는 것은 형식적인 것이며,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면서,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선한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 성령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요즘 제일 걱정되는 것은 청소년들을 타락시키는 문화가 너무 발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게임 중에 ‘살인 게임’이 있다고 합니다. 상대편을 죽이면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속 반복하면 세뇌되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게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게임은 당장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에 갔다 온 사람들이 정신병에 걸리고 생활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이유는,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긴장 속에서 계속 전쟁을 하고 어려움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을 살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잘못된 청소년 문화를 이 사회에서 뿌리째 뽑을 수 있을까요?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할수록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마귀의 형상을 닮게 됩니다. 그래서 타락한 사람들은 마귀 짓을 합니다. 마음과 생각, 말하는 것과 행동까지 꼭 마귀를 닮았습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빛이시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은 빛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에베소서 5장 9절에 보면,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성품입니다. 아름다운 성품입니다. 이것이 빛의 성품입니다.

빛 되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열매가 우리 성품 가운데서 나타날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고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다윗의 성품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왜 그렇게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축복하셨을까요? 그의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 하나님의 생각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닮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품이 착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형제를 사랑하고, 형제에게 불의를 행하지 않고, 마귀의 자녀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불의한 짓을 합니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 마귀에게 속한 자인지 알 수 있다고 사도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다윗은 성품이 진실했습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다윗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도 인간인지라 실수할 때도 있었지만, 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평생 정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살았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처럼 방탕하다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기도도 열심히 하는 거룩한 왕인데, 어느 날 낮잠 자고 일어나 지붕에 올라가 목욕하는 여자를 보고 음욕이 생겼습니다. 한 순간의 잘못으로 엄청난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을 막아주시지 않고 내버려두셨을까요?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한 가지 사건이 없었다면 다윗은 신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평생 한 번도 하나님 앞에 죄 지은 일이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신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와서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었을 때, 가나안 땅이 눈 앞에 보이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너는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물이 없을 때 생수를 가리키라고만 했는데, 두 번이나 화를 내면서 내리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화내며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교훈은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모두 허물이 있습니다. 다윗에게 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더 거룩한 왕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서 말년이 더 아름답고 좋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한 번도 죄를 범한 적이 없고, 잘못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생활과 십일조, 주일성수도 철저히 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 분이 계시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인지라 범죄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죄 가운데 가장 큰 죄가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교만해지면 하나님 위에 올라서려고 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과는 원수가 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이 떠나시고 은혜도 주시지 않습니다. 교만이 그렇게 큰 죄입니다.

 

다윗이 평생 정직하고 의롭게 산 것도 좋지만, 교만해지는 것이 더 큰 일입니다. 다윗은 단 한 번이지만,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하나님이 방치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약점과 부족한 부분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것 때문에 겸손해진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전화위복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약함이 축복이 되고, 부족한 점으로 인해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시편 51편 10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시편 51편은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해 달라고 회개할 때 쓴 시입니다.

 

잠언 2장 7절에 보면,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구의 지혜가 완전한지는 시간이 가면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가진 지혜와 다윗이 가진 지혜 중에 누구의 것이 더 완전한 지혜입니까? 마지막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타락하고 어리석은 인간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다윗은 더 거룩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았습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언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세상 떠날 때쯤입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처음에는 믿음도 없고 신앙이 부족했지만, 그 사람의 마지막이 거룩하고 은혜로웠다면 그 사람은 성공자입니다.

여러분, 앞길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성품을 가지고 산다면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들이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 영혼이 잘 됨같이 우리의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면서 살려고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은혜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어떤 일이 생겨도 날마다 하루에 세 번씩 정한 자리, 정한 시간에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끝까지 책임지셨습니다. 나라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도 하나님은 다니엘을 끝까지 높이고,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항상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같은 축복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말했습니다(살전 5:17). 사무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이라고 말했습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은혜 받을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할 때, 영혼이 잘되고,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2.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사는 것일까요?

⑴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왜 기뻐하실까요? 그 이유는 믿음이 좋아질수록 믿음이 커질수록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죄는 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예가 되고 환경이 어렵게 되었다 하더라도 요셉은 아무렇게나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죄 되는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로로 잡혀 갔어도 우상 앞에 제사지낸 음식은 먹지 않았습니다.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이지만, 우상 앞에 제사지내고 먹는 음식임을 알고 먹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제사지낸 음식까지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구하는 것보다 더 넘치는 축복을 받습니다.

역대하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했을 때, 그는 세상의 영광이나 부나 건강이나 장수처럼 자기의 욕심을 따라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왕으로 세워주셨는데, 그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생각해보니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합니다. 올바르게 재판하고 올바르게 나라를 다스리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기도를 하니 지혜를 주실 뿐 아니라 부와 영광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지혜로운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잠언 30장 7~9절에 보면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입니까. 이것은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이런 사람의 기도는 그 기도대로 응답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축복해주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받는 핍박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⑵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욕심을 가지고 자기를 위한 소원과 꿈을 가지고 삽니다. 욕심이 클수록 타락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꿈을 가지고 삽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하나님이 함께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꿈이 이루어지게 되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그런 소원과 꿈은 가지기만 해도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해주십니다.

여러분, 어려울 때일수록 어려움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생각났을 때에는 바로 행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고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특별히 좋은 생각을 넣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을 우리가 행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함께해주시고 축복해주셔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⑶ 좋으신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인가를 자세히 언급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렸습니다.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살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영혼이 잘 되게 하시는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영혼이 잘 될 뿐 아니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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