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도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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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5 11:18 조회3,325회 댓글0건본문
우리의 기도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우리의 기도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2009년 03월 27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일서 5:14~15
마태복음 7장 7~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때는 생각만 해도 주시고, 말만 해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더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가 수영로터리에 있을 때, 로터리 전체를 달라고 새벽마다 로터리를 돌면서 몇 년 동안 기도했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게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저 하늘이 넓고 큰 것처럼 준비해놓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응답을 받은 다음부터는 수영로터리를 돌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수영로터리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저는 수영로터리 하나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위해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셔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도 더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기도해도 응답 받지 못한 경험이 많아서 기도 응답 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예 기도할 용기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기도하다가 낙심하기를 잘합니다. 한두 번 기도해보고 응답되지 않으면 낙심해버립니다. 자포자기하고 ‘기도해보았자 안될 것이 뻔하다’라고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끈기 있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응답의 체험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대로 주시던지 더 좋은 것으로 주시던지 반드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욕심을 따라 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범죄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을 채우려고 하다 보니 죄를 범하게 됩니다. 욕심에 사로잡히는 순간, 탈선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를 죄짓게 만드는 것이 우리 안의 욕심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망하고, 죽고, 멸망의 길을 가게 됩니다. 죄가 반복되다가 더 큰 죄를 범합니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와가 왜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습니까? 하와가 선악과를 자꾸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 먹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자꾸 쳐다보는 가운데 욕심이 생겨 견딜 수 없었습니다. 욕심에 이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욕심을 이기지 못하니까 기어코 따먹고 말았습니다. 욕심 때문에 결국 선악과 따먹고, 저주받고, 고생하고 멸망합니다. 그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욕심을 따라 구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구하는 것에 대해서 야고보 사도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라고 말했습니다(약 4:3).
그러므로 욕심을 따라 구하는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이것은 마치 세 살짜리 아이가 칼을 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위험합니까? 그런데 이 어린아이가 위험한 칼을 달라고 떼를 쓰고 기도한다면, 그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믿음이 세 살짜리 아이와 같아서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무조건 이루어 달라고 날마다 작정기도하고, 금식까지 하면서 기도합니다. 그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아이에게 절대로 칼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욕심을 따라 구하는 자는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불량한 아이는 부모가 주지 않으면 훔쳐갑니다. 그 결과는 피투성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 것이 칼을 다룰 줄 모르다 보니 칼을 가지고 놀다가 베고 다칩니다. 큰 해를 당하게 됩니다.
불량한 아이 같은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법을 어기고 부정한 방법으로 많은 재산을 착복했다가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결국 사망을 낳게 됩니다. 욕심은 절제할수록 복이 됩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특별히 먹고 싶은 욕심을 따라서 자꾸 먹다보면, 수명도 짧아지지만, 문제가 많아집니다. 병 투성이가 됩니다. 먹고 싶은 욕심을 잘 절제할수록 그 사람은 몸 관리를 잘하게 되어 건강해집니다.
보고 싶은 것도 절제할수록 복이 됩니다. 보고 싶은 대로 보다 보면, 시간도 빼앗기고, 마음도 빼앗기고, 믿음도 잃어버리고, 여러 가지로 손해가 많습니다. 항상 욕심을 쳐서 복종을 시키고 절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죄를 버리지 않고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 몸에 독약이 있는 것과 같고, 화약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이 위험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죄를 버리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하나님과 담을 쌓게 만듭니다. 그래서 기도응답이 되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막히게 만듭니다.
그런데 죄를 버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자꾸만 축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보면,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속에 죄악을 품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속에 든 죄가 입을 통해 나옵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범하게 됩니다. 모든 죄의 시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라고 했습니다(잠 4:23).
마음속에 죄악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겠습니까?
이사야 1장 15절에 보면,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 5장 24~25절에 보면,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추수 기한을 정하셔서 아주 많은 수확을 얻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말도 하지 않고 마음으로도 잘못된 마음을 가집니다. 그 허물이 이러한 일들 곧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복된 일들을 물리친다고 합니다. 또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를 위해서 가장 좋은 길을 예비해주시고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고 잘되게 하시려는 계획이 있는데, 우리의 죄와 허물이 그것을 막아버립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버리지 않은 죄와 허물을 그냥 가지고 살면서 기도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예레미야 32장 24절에 보면, “보옵소서 이 성을 빼앗으려고 만든 참호가 이 성에 이르렀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으니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실 때 사용한 것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칼은 적들이 쳐들어와서 죽이는 것, 즉 전쟁과 환난입니다. 둘째, 기근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는, 물질적 고통입니다. 셋째, 전염병은 병으로 죽어가는 것입니다.
에스겔 5장 12절에 보면, “너희 가운데에서 삼분의 일은 전염병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삼분의 일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삼분의 일은 내가 사방에 흩어 버리고 또 그 뒤를 따라 가며 칼을 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스겔 6장 11절에 보면,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마침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망하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스겔 7장 15절에 보면, “밖에는 칼이 있고 안에는 전염병과 기근이 있어서 밭에 있는 자는 칼에 죽을 것이요 성읍에 있는 자는 기근과 전염병에 망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실 때 이 칼과 전염병와 기근으로 너희들을 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를 버리지 않는 백성들에게 주시는 진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기도는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삶 가운데 아직도 끊어버리지 못한 죄가 무엇인지,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물질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청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봉사도 잘하고 나와서 특송도 하니까 신앙이 굉장히 좋은 것 같지만,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들이나 하는 짓을 하면서 사는 이중적인 삶을 삽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얼마나 미워하시는 줄 압니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특별히 물질 문제에 대해서 정직해야합니다. 부정한 돈 단 몇 푼이라도 적당히 넘어가지 마십시오.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다면, 몇 배로 남에게 베풀어서 물질에 대한 고민에서 해방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직도 버리지 못한 죄가 무엇인지, 내가 아직도 깨끗하게 해결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서 먼저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철저히 회개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실 뿐 아니라 큰 은혜를 주시고, 축복의 문도 열어주십니다.
역대하 7장 14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철저히 낮아져서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기근과 환난으로 엉망이 됐던 땅을 고쳐주십니다. 우리의 가정, 사업이 엉망이 되어 있다 해도 하나님이 고쳐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요엘 2장 12~1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엘 2장 18~19절에 보면,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엘 2장 23~27절에 보면,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특히 순종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보십시오. 응답이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다 끊어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며 살면,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는다고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지 않습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받을 뿐만 아니라 넘치는 복을 받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 3:5).
그때 솔로몬이 장수나 부함이나 원수의 생명을 멸하는 것들을 구하지 않고, 오직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나라를 똑바로 다스릴 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기도했기 때문에 그 기도가 주님의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13절에 보면,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한 지혜로운 마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부귀와 영광도 더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응답받는 것은 물론,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주십니다.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에 대해서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을 아니까 벌써 얻은 줄로 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그 십자가의 고난이 얼마나 큰지, 전지전능하신 분이므로 다 아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그 아픔을 다 알고 계시므로 얼마나 힘든가를 아시니까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해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가장 모범적인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가 바로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의 소원은 하나님 아버지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요한 문제가 앞에 놓이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주세요.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말씀해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서울의 청계산기도원에 올라가서도 며칠씩 금식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더니 평생 수지맞았습니다.
군목을 마치고, 앞으로 섬길 교회를 결정할 때에도 제 뜻대로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영로교회를 개척하라고 하셔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을 부어주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주님이 그렇게 모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일마다 몇 만 명씩 계속 나오는 것도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려는 자세로 나아갈 때 얼마나 수지맞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욕심대로 구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을 물으세요. “하나님의 뜻만 말씀해주시면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축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넷째, 구하는 대로 응답을 빨리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응답을 빨리 받으면 좋겠다. 응답을 즉각 받고 싶다’라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대로 바로 응답받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응답을 얼마나 빨리 받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감당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얼마나 빨리 들어가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그 땅에 어떤 나라를 세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이나 광야 길로 인도하시면서 교육시키시고, 훈련시키시고 얼마나 많이 준비시키셨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기에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십계명을 주시고 훈련시키셨는데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나라의 사람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우상숭배하다가 고생하고, 고생하니까 하나님을 찾고 울부짖으면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서 살려주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일을 되풀이했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를 보세요.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을 보십시오. 다윗과 같은 왕은 몇 명 안 됩니다. 거의 다 형편없는 짓들을 했습니다.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빨리 가나안을 허락하시느냐, 얼마나 우리의 기도에 빨리 응답해주시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물질 문제를 놓고 기도했지만 응답하지 않으시고 계속 광야로 인도하시듯이 하나님께서 저를 연단하셨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어려웠지만, 중학교 때는 더 어렵게 하시고, 고등학교 때는 더 어렵게 하시고, 대학교 때는 완전히 아무것도 없게 하셨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많이 울면서 기도했는데, 얼마나 많이 금식하고 철야하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더 어렵게만 하시지, 물질 문제를 해결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극한 가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위로를 주셨습니다. 그 위로가 바로 그렇게 막막하고 어렵지만 장학금을 받게 하셔서 중학교에 갈 수 있게 하시고, 공부할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어떤 때는 동네 사람들의 소개로 택시회사 사장님을 알게 하시고, 양아버지로 삼게 하셔서 그분을 통해서 일시적이지만,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또 가정교사를 하는 가운데 아이들도 열심히 가르치긴 했지만, 얼마나 대접을 잘 받고 사랑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가르치던 아들과 한 방에서 지냈는데 좋은 집에서 자면서 천정을 보고, “아버지, 쓰는 사람이 주인이지요?”라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대학교 갔을 때도 합격하기 전에 장학금을 미리 받게 하셔서 기다렸다가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극한 가난 속에서 하나님이 위로해주시면서도 왜 일정 기간 동안 계속해서 그 가난 속에서 자라게 하셨느냐 하면, 목적은 하나님의 종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금식 기도하다가 죽으려고 할 때도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서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분명히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또 대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나서 교회 와서 엎드려 기도할 때에도 “아버지, 도대체 저는 왜 대학교 4년을 이렇게 보내야 됩니까? 밤낮 애들 가르치느라고 시달리고 교회 일하고 공부하는 일 외에는 전혀 시간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 왜 이렇게 대학생활을 하게 하십니까?”라고 불평하며 기도할 때 “내가 너를 이렇게 묶어 놓지 아니하면 네가 하나님의 종이 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눈팔지 못하도록 저를 묶어놓으신 것입니다.
신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또 신학교 들어간 지 1년 만에 개척교회를 하게 하셨는데, 개척교회가 얼마나 빨리 부흥되는지, 전도사인데도 목사 수준으로 사례비를 받았습니다.
신학교 졸업하고 간 교회에서는 전도사 생활 3개월 정도 하다가 강도사 고시에 합격된 다음에는 당회에서 전임교역자로 대우해주셔서 사택도 주시고 다른 전도사보다 5배 정도의 사례비를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장충교회로 갔는데, 사택으로 3층짜리 새 집을 썼습니다. 사례비도 얼마나 많이 주는지, 당회장과 비슷하게 주었습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들,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들, 응답이 느리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처럼 사모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왜 가난의 어려움을 벗어나지 않게 하시느냐 하면, 절대로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더 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연단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무 빨리 응답받기만을 원하지 마세요.
다섯째, 하나님 앞에 구하여 많은 것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사느냐입니다. 솔로몬은 참으로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처럼 많은 축복받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하나님을 위한 꿈과 비전이 없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세상 향락에 빠지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주신 복이 복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에 보면,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탄식합니다(전 1:2).
자기 눈으로 보고 원하는 것은 모두 다 해보았지만 결국은 살고 싶지 않고 빨리 죽고 싶은 것입니다. 결국에는 다 귀찮고 하나도 복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느냐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우리는 행복한 자가 됩니다. 얼마나 많이 받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 돌리며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꿈과 비전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은 것을 주셔도 복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이 주셔도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산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이 엄청난 축복을 받으면서도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살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을 위한 꿈과 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바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이 아무리 많은 금은보화를 주셔도 향락이나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성전을 짓기 위해 바치고 또 바쳤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적과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살다 보니까 타락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거룩하게 살다가 모든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존경받는 왕으로서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많은 것을 구하고, 많이 받으려고만 하지 마시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살까?’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꿈과 소원과 비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해주셔도 타락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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