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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2장

빛 가운데 있는가 어둠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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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25 17:05 조회3,4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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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가운데 있는가 어둠에 있는가

 

빛 가운데 있는가 어둠에 있는가

2008년 01월 25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일서 2:9~11

 

요한일서 1장 5절에 보면,“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의 근원이십니다. 모든 빛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창 1:3)”고 하시니까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하늘의 태양, 달, 별들도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시므로 하나님께서 계신 곳은 빛의 나라입니다. 그곳에는 밤, 어둠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3~25절에 보면,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피곤함도 없고 늙고 죽는 것, 슬픔도 없습니다. 밤이 필요 없기 때문에 쉴 필요도 없고 잠잘 필요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빛 되신 하나님을 모시며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죄 가운데 살면서 어두움의 영을 모시고 삽니다. 죄의 지배를 받고 종노릇하며 살면서 이 세상은 더 어두움의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어둠의 세상을 주관하는 악의 영들이 나옵니다. 이 세상의 어리석은 인간들이 어둠의 영이 복을 주는 것처럼 지배를 받으므로 이 세상이 더 어두운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모두 어두움에 속해 있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저의 어머니는 매일 무당에게 갔습니다.

단골무당이 있어서 무당이 매달 우리 집에 왔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교통사고로 죽을 것이라고 굿을 해야 한다고 하며 굿을 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옮겨졌습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빛의 자녀요, 우리도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입술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어둠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한일서 1장 6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입술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두움에 있습니까?

첫째,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에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 요한일서 2장 9절에 보면,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자신이 빛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실은 지금껏 어둠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수십억 사람들 중 단 한명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어둠에 있는 사람입니다.

부부지간에도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둠에 있는 것입니다. 교인 중에도 미움이 생기는 사람은 어둠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남을 미워할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는 미움이 있으면 안 됩니다.

 

둘째, 어둠의 일을 하는 사람은 어둠에 있는 사람입니다.

어둠의 일을 하는 사람은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로마서 13장 12절에 보면,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1절에 보면,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둠의 일을 책망하여 오히려 그것을 이겨야 합니다.

삶 가운데 마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이 끊어지게 해달라고 부르짖으며 회개하십시오.

 

셋째,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어둠에 있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3장 18~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둠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타락의 근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합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아 무당,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넷째, 어둠에 붙잡혀 어둠에 다니는 사람은 어둠에 있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2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둠에 다니는 자는 어둠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어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섯째, 믿지 않는 사람과 어울려 사는 사람은 어둠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 역시 어둠에 거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더 기도하고 본을 보여야지,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이 행동하며 전도할 수는 없습니다. 절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18절에 보면,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5~11절에 보면,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세가 될수록,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이 세상은 더 어두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어둠의 세력은 다 물러가고 빛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1~14절에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과 가까운 것은 새벽이 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이 타락하는 것을 보면, 이제 곧 끝날 때가 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실 때 승리하셨습니다. 어둠의 세력이 더 이상 머리를 들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는 어둠의 영이 활보하도록 놔두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을 다 구원하실 것입니다. 어둠의 영이 활보하도록 놔두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신자와 불신자의 구분을 위해서입니다.

신자와 불신자를 어떻게 구분합니까? 빛이나 어둠에 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빛 가운데 행하면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완전한 빛은 아니고 작은 빛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람에 꺼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빛입니다.

 

저는 중학교 때 삼각산에 기도하러 혼자 산에 올라갔는데, 깜깜해서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게에서 양초를 사서 그것을 들고 가니 바람에 꺼지려고 해서 초를 가리면서 빛을 비추며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내려왔습니다.

한밤중에 산에 올라가니까 뱀이 나와서 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뱀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소리치고 몸부림치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까지는 빛의 자녀가 되지 못하고 너무 약합니다. 빛의 열매가 나타나도, 처음부터 완전하지는 못합니다.

빛의 열매인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은 서서히 드러납니다. 분명히 변화됩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예전에 있던 악령이 하나님을 만나면서 하나님의 성령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은혜 받는 만큼 믿음이 자라는 만큼 열매가 확실해지고 성숙해집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둠 속에 행하는 사람에게는 어둠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 열매를 보면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자신의 믿음의 상태와 수준을 분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건강해질수록 강해질수록 어둠의 세력은 무력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믿음이 약할수록 어둠의 세력이 강해집니다.

깡패 두목의 세력이 강하면 도전하는 사람이 없고, 세력이 약하면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이왕 예수 믿을 것 세게 믿으십시오.

 

셋째, 강하게 만드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의 시련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만드시기 위해 어둠의 영이 활동하도록 놔두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원수가 약한 부분을 노려 쑤시고 넘어지게 하고 괴롭히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죽을 지경이어도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연단을 통해 인내심을 기르십니다. 웬만한 고통은 고통으로 여기지 않도록 강하게 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험이 오면 근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마치 불로 연단해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게 되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작은 빛은 귀하게 여겨지고 효과가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지고 어두워질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작아도 세상의 빛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악해질수록 불의해질수록 거짓으로 가득해질수록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착하고 의롭고 진실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노아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말할 수 없이 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창 6: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쓸어버리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노아는 마치 캄캄한 밤의 별빛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을 받으셨겠습니까.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을 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라고 하며 뿌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영광을 받으셨겠습니까.

다니엘 역시 포로로 붙잡혀서 살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뜻을 정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왕의 한 마디에 한 민족을 죽을 수도 있는데, 다니엘은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청년 여러분, 직장에서 처음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단호하게 이기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편해집니다. 다니엘처럼 결단하면 오히려 쉽습니다.

 

우리가 말세에 승리하는 비결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이 더 치열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첫째, 빛 되신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빛 되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께 항상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분은 실패하지 않으시고 강하십니다.

셋째, 빛은 어둠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짐승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이기시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들도 이긴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말세에 승리하려면, 항상 예수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주님을 붙잡고 떠나지 마십시오.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고 말씀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에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매를 맞는 것을 기쁨으로, 영광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도 매 맞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으로 산다면, 어둠의 세력을 능히 이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승리할 수 있던 비결은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가 항상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려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은혜를 받고 성령과 함께합니다.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말씀 듣는 시간을 놓치지 않는 분들은 승리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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