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 베드로후서3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베드로후서3장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7 22:47 조회3,218회 댓글0건

본문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2007년 01월 19일(금요철야)

본문 / 베드로후서 3:8~14

 

우리는 주님 앞에서 늘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는 전도사 시절에 언제나 설교 한 편을 준비해놓고 살았습니다.

금요일 아침에 담임목사님께서 전화하셔서 언제 설교하라고 시키시며 바로 설교 본문을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곤란했습니다.

그리고 새벽예배 시간에[ 목사님께서 나오시지 않으실 때가 있었습니다. 5분 정도 기다린 후 제가 목사님 대신 설교했습니다. 설교가 항상 준비되어있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목사님께서 안심하시고 새벽예배에 나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수요일 저녁예배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제게 설교하라고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든지 설교할 수 있도록 훈련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장차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만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본문 베드로후서 3장 14절에 보면,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젊었다고 죽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돈 많은 재벌도 죽고, 영웅호걸도 죽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지혜로워도 60년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다윗도 70년 살다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누구나 다 가야 합니다. 그런데 서서히 가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불의의 사고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앞에서 점도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기록한 편지들을 보면, 자신이 이 세상을 곧 떠날 것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6~8절에 보면,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곧 순교할 것을 느꼈습니다. 신실한 종은 그것을 느끼고 미리 준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 여전도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검사 남편과 결혼하셨다가 여순반란 사건 때 남편이 돌아가시고 아들 한명을 홀로 기르시며 전도사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훌륭하고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장년 7백 명을 다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1주일간의 심방계획을 다 세우셨습니다. 그렇게 일을 잘 하시는 분을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전도사님은 어느 날 목욕하고 머리를 빗고 구석구석 청소하고 깨끗이 정리하고 방안에서 방석 하나 깔고 성경 놓고 기도하다가 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성도들이 참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도 역시 자신의 순교의 때가 가까운 것을 성령의 놀라운 은혜로 알게 되었습니다. 참 위대한 사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도 예측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재림 역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믿음으로 살다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성도들이 먼저 부활해서 주님을 만나고, 그 후에는 살아있는 성도들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해서 재림의 주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납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께서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사람이 있고 올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명이 맷돌을 갈다가 한 명이 없어지는데 그 사람은 올라갑니다. 두 사람이 밭을 갈다가 한 명이 없어져서 보면 그 사람은 올라갑니다. 두 명이 누워 자다가 한 명이 없어지는데 한 명은 올라갑니다.

마태복음 24장 38~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언제 오셔도 칭찬들을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사는 사람들은 하루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세의 징조가 있으면서도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주님의 약속이 너무 더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본문 베드로후서 3장 9절에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딘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다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받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베드로후서 3장 10~14절에 보면,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의 약속이 더딘 것 같아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항상 그 날을 바라보며 사모하며 주 앞에 점도 없이 흠도 없이 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즘은 세상이 살기 좋아서인지 위험한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빨리 오시는 것을 원하지 않는지 20년, 심지어 50년 후를 이야기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자꾸 들으면 금년에는 예수님께서 절대 오시지 않으실 것 같고, 오늘은 절대 오시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모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오래 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측하지 못한 때에 주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며 걱정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믿고 늘 준비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한 꿈과 계획, 비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것을 이룰까를 생각하며 날마다 기도합니다.

금년이 아주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산을 전국에서 가장 은혜 충만한 도시가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부산에서 네 번 이상의 큰 모임이 열리는데, 제일 큰 것이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 집회의 책임자가 벌써 귀국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부산에서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가 시작되어 대구, 광주, 대전, 서울을 거쳐 북한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가마의 불이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밑에서 불을 붙여 위로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어떻게 사용하실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영광 받으시고 우리를 도구로 쓰실 줄 믿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9절에 보면,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혼인잔치에 비유했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에 청함 입은 신부들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세마포를 입었다는 것은 빛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가 왔느냐에 따라 성도의 행실만큼 성도의 옷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입은 옷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보면,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이 세상에서 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짓고 실수합니다. 그러므로 하루도 그냥 죄를 두고 잠들면 안 됩니다. 두루마기를 빨듯이 철저히 회개하고 자야 합니다.

자는 중에 주님께서 오실 수도 있고, 자다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러워진 옷은 빨아야 합니다.

 

아무리 돈과 명예, 권세가 많아도 초라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 없이 죽은 사람입니다. 돈과 명예 권세가 많아도, 믿음 없이 죽은 사람의 영혼은 얼마나 불쌍하고 초라한지 모릅니다.

세상에서는 영광을 얻고 유명하고 잘 살고 권세가 대단해도, 믿음 없이 죽는 모습을 보면, 참 초라하고 추하고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유언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언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렇게 준비 없이 가는 사람들을 볼 때 얼마나 초라해 보이는지 모릅니다.

 

믿음의 본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직분자라고 해도, 목회자라고 해도 믿음의 본을 보이지 못한 사람은 그 인생이 초라합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성질을 가지고 죽는 사람은 초라해 보입니다. 어느 여자 집사님은 곗돈을 받지 못하자 너무 화가 나서 주일 오전에 돈을 떼먹은 사람과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꿈이 없이 살다가 죽은 사람, 특히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다가 죽는다면, 그 사람은 초라해 보입니다.

아무리 돈과 명예, 권세가 많아도, 믿음의 자손이 없이 죽는 사람은 초라해 보입니다. 자식들이 공부를 많이 하고, 세상적으로 잘 산다 해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없다면, 그런 성도들은 초라해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이 죽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고 초라한 사람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그런 분들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믿음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큰 보배는 믿음입니다. 이유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축복받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의 그릇은 그 사람이 축복받는 그릇입니다.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어떤 분은 기도 부탁을 열심히 하지만, 본인은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기도 부탁해서 도움을 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등장하는 과부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그 과부는 재판장에게 졸라댔습니다. 우리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열성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면 세상을 이깁니다. 믿음으로 죄악을 이기고, 마귀와 환난을 이기고, 시험을 이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정비례합니다. 내 믿음이 커질수록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결국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사람의 믿음의 크기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커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100세에 낳은 아들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달라고 하면 무엇이든 드릴 수 있는 마음 자세로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다윗 역시 믿음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는 다른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성전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더 잘 살거나 더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믿음만큼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헌신할 수 있고,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만큼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 권세도 명예도 없지만 믿음으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모릅니다.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깨끗한 흰 세마포를 입고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걷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찬양하며 기쁨으로 살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면류관을 쓰고 사도 바울같이 주님과 걷는 사람들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세상에서 오래 잘 살게 해달라고 구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위한 꿈과 소망으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둘째, 기도생활에 실패했습니다.

기도생활과 신앙생활은 정비례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생활을 성공하면, 신앙생활에도 성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데교회를 가리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데교회를 가리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기도생활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기도생활이 중단되면 호흡이 끊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죽는 사람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으며 냄새가 납니다.

그러므로 기도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서나 냄새를 피우며 사는 것입니다. 기도 생활에 실패한 사람은 믿음이 약해서 믿음 없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반면 기도생활에 성공하는 사람은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간증이 많고 기적을 체험합니다. 기도생활에 성공하는 사람은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옛사람이 새사람으로, 육의 사람이 신령한 사람으로 마귀의 형상이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영광 돌리며 살게 됩니다.

 

셋째,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어도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은 다릅니다. 교회에 나오면 눈물 흘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큰 은혜를 받을 사람입니다.

또 교회에 나왔을 때,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있는 사람도 큰 은혜 받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큰 은혜의 자리에 이르려면 고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환난이나 시험으로 옵니다. 교회 에나오면서 마음의 평강과 기쁨이 있었데, 이상하게 환난, 시험도 옵니다.

이럴 때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낙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가 물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때 기도하는 사람은 큰 은혜를 받습니다. 큰 믿음이 생겨 환난, 시험을 이깁니다.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큰 은혜를 받아 열매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1. 잘 깨닫습니다.

영적으로 밝습니다. 작은 허물, 실수도 다 깨닫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을수록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사명을 깨달아 그것을 따라 삽니다.

 

2. 변화됩니다.

열매가 나타납니다. 주님을 닮아갑니다. 그 모습을 남편, 부모, 친구들이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3. 능력이 나타납니다.

기도의 능력, 전도의 능력, 믿음의 능력, 경건의 능력 찬양의 능력을 받습니다. 마귀와 죄와 싸워 이기는 능력, 거룩하게 사는 능력, 환난 중에 이기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큰 인물이 됩니다.

믿음의 본을 보이며 성령의 열매를 보이며 삽니다. 그래서 희락이 넘치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 큰 부흥을 가져오며 크게 쓰임 받습니다.

 

넷째, 목숨을 거는 신앙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성공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5~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보다 자신의 몸을 더 사랑해서 주일에도 가끔씩 나오고 주중에는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합니다.

이 사람은 이미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내가 목숨을 걸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살리시고, 나에게 영생을 주시며,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축복을 나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믿음으로 살았느냐,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하며 살았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는가가 중요합니다.

점도 흠도 없는, 책망 받을 것이 없는 모습으로 칭찬과 상급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2장

3장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