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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200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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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3 10:11 조회3,467회 댓글0건

본문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2009년 04월 26일(주일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5:5~6

 

본문은 젊은이들에게 베드로가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첫째, 베드로는 “젊은 자들아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겸손하라”라고 권면했습니다.

여기서 순종과 겸손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순종을 잘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말씀도 잘 듣고, 열심히 배우려고 하고, 순종도 잘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모든 복을 받는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신 28:1~4),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축복을 받는 열쇠가 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밤새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가 그물을 끌어내어 깨끗이 씻어 놓았을 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5:4).

예수님은 목수였습니다.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는 어부로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밤을 뜬 눈으로 보내면서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 보았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물을 끌어올려 씻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제야 나타나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며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하며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지난밤에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도 단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지 못했는데,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매우 많은 물고기가 잡혀서 두 배에 가득했습니다.

이 장면을 본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가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자기에게 교만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를 잡는 것만은 자신이 예수님보다 지식과 경험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마지못해 억지로 순종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허탕 칠 각오를 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자신이 부끄러워 예수님께 자기를 떠나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물고기를 잡는 일에 지식과 경험이 많다고 해도, 어떻게 예수님과 비교되겠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 베드로가 똑바로 알았다면,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믿음으로, 기쁨으로 순종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많은 물고기가 잡히는 것을 상상하면서 기쁨으로 순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만했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순종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순종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순종하기 어렵습니다. 자존심이 상한다, 기분이 나빠진다는 등 별별 이유를 다 내세워 순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통해 순종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젊은 자들아,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둘째, 베드로는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엎드려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2~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엎드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안동에 있는 안동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안동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두 양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동교회에 처음으로 부임하신 한석진 목사님은 자기 자신이 양반이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고정관념을 어떻게 깨뜨릴 것인지 생각을 많이 하셨습니다.

어느 날 그 교회에 출석하는 가난한 성도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행해야 했습니다. 남의 집 행랑채를 빌려 사는 형편이라 장례식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웠습니다.

목사님은 그 교회를 섬기는 고위층에 있는 박승봉 장로님과 함께 그 가난한 성도의 집으로 갔습니다. 두 분은 손수 시신을 씻기고, 입관을 하고, 장례식을 잘 치러 주었습니다.

그 집주인은 박승봉 장로님이 지체가 높으신 어른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체가 높으신 분이 천하고 가난한 사람의 집에 와서 장례식을 하는 모습을 보고, 기독교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집주인이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안동 지방의 양반들에게 점차 퍼졌습니다. 이 일로 많은 양반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여 교회가 부흥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지식이 많은 것도, 경험이 많은 것도, 돈이 많은 것도, 높은 지위에 있어 능력이 많은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겸손으로 묶을 때에만 빛나고 유익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겸손이 빠지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이 모든 것이 없는 것만 못합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경험이 많아도 사람이 겸손하지 않으면,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고집만 부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겸손하지 않으면, 독재자가 되고, 위선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겸손으로 묶여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겸손이 빛나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에게 어느 날 제자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덕목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첫째 되는 덕목은 겸손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제자가 “두 번째의 덕목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둘째도 겸손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어거스틴의 제자는 “세 번째 덕목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것도 역시 겸손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덕목은 시작도 끝도 겸손입니다. 미가 6장 6~8절에 보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은 겸손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4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구원 문제의 절대적 조건입니다. 어린 아이들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3장 15~17절에 보면,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시험은 ‘교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어떤 시험보다도 항상 조심해야 할 시험은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성도라고 할지라도 교만해지면 넘어지게 되고, 실패자가 됩니다.

 

베드로가 넘어진 것도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과신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1~35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는 교만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깨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넘어질 수밖에 없었고,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교만한 마음을 가졌다가 넘어진 경험이 있기에 자기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젊은이들에게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교훈한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 교만했던 사람들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만하면 망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 왕으로 천하를 호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정신병이 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짐승처럼 행동했습니다.

웃시야 왕은 나라가 강대해지자 교만이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제사장만 할 수 있는 향단에 분향하는 일을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말렸습니다. 그러나 왕은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고 분노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나병환자가 되어, 죽는 날까지 별궁에 갇혀서 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만하면 망합니다. 사울 왕이 겸손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교만해지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결국 멸망하고 만 것입니다.

 

시편 10편 17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22편 26절에 보면,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9편 1절에 보면,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들에서 떠나는 자들을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1장 2절에 보면,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4장 3절에 보면,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5장 33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8장 12절에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2장 4절에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바댜 1장 3절에 보면,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겸손하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와 함께하십니다. 이삭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흉년이 들었을 때,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 지방에 머물렀습니다. 이삭은 그 해에 농사를 지어 백배의 수익을 얻었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삭이 복을 받아 거부가 되자, 이를 시기한 그랄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삭이 먹던 우물을 흙으로 메워버렸습니다. 그러자 이삭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또 우물을 파고 살았습니다. 그랄 사람들은 그곳까지 따라와서 또 우물을 흙으로 메웠습니다. 그래도 이삭은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로 그곳을 떠나 또 우물을 파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찾아와서 또 우물을 메워버렸습니다. 이삭은 조금의 원망,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몇 번씩이나 찾아와 우물을 흙으로 메워버려도 이삭은 참았습니다. 이처럼 이삭은 겸손한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삭이 브엘세바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이삭을 축복하셨습니다. 창세기 26장 24절에 보면,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삭은 겸손함으로 이렇게 복을 받았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바치려고 할 때에도 겸손히 순종했습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믿고 아버지의 사랑을 믿었기에 순종했습니다. 이런 이삭을 하나님께서는 크게 축복하셨고, 언제나 함께해주셨습니다.

 

본문 6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데,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면 됩니다.

 

셋째,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시니 겸손하게 순종하라”라고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겸손한 사람보다 힘이 강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떠나서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 보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하면 힘이 있고, 믿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약해집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고,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교회에 나오지만,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가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그러나 이런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판단하기만 합니다. 설교 시간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은혜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에게 절대로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그래서 젖먹이 신자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의 새신자들 중에 예배당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눈물이 나오고, 찬양을 들어도 눈물이 나오고,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도 눈물이 나와 예배시간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예배를 드린다는 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령님께서 겸손한 자의 마음을 만져주시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해야 인격도 성장합니다. 은혜를 받아 성품이 변화되기 때문에 인격이 더욱 훌륭해집니다. 겸손한 만큼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교만해지면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겸손해야 행복해집니다. 겸손한 사람은 항상 감사하면서 살기 때문에 겸손한 만큼 행복해 집니다.

 

부부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한 남편은 아내를 볼 때마다 감사합니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이렇게 훌륭한 아내를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라고 생각하며 사니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한 아내들은 자신의 남편을 과분하게 생각합니다. ‘나에게 이렇게 훌륭한 남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 감사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밤낮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가는데 어떻게 행복을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겸손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젊은이에게 “겸손하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넷째, 베드로는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는 것을 믿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때만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실 것입니다. 지금은 순종하는 위치에 있지만, 머지않아 남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남의 지시를 받고 있지만, 그 지시에 온유한 마음으로 순종하면 얼마 후에는 남을 지시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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