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고난을 받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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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2 10:35 조회3,391회 댓글0건본문
성도의 고난 받는 자세
성도의 고난 받는 자세
2009년 03월 22일(주일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4:1~6
우리의 시간은 크게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거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시간입니다. 과거는 지나가버린 시간이기 때문에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미래는 앞으로 살아갈 시간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가 언젠가는 죽게 되고, 죽은 후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고, 어떤 사람은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는 살아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이 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미래에 천국에 갈 수도 있고,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 있는 현재가 중요합니다.
본문에 보면, 베드로는 고난 많은 세상에서 성도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육체의 남은 때’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영이 육체를 입고 살다가, 때가 되면 우리의 영이 육체를 떠납니다. 우리의 영이 육체를 떠나는 그 시간까지를 가리켜 ‘육체의 남은 때’라고 합니다.
우리의 영이 육체를 떠나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행한 그대로 심판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기회도, 죄를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죄를 회개할 기회도 없습니다. 심판대 앞에 오기 전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육체의 남은 때에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육체가 살아있는, 현재 이 시간에 예수님을 똑바로 잘 믿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칭찬과 상급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날이 가까워질수록 그 고난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들이 점점 더 악해지고, 음란해지고, 타락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큰 고난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첫째,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갑옷을 삼으라’라는 말은 무장하라, 고난당할 각오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고난당할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살아가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고난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우리의 삶에 모범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셨을 때, 어떻게 사셨는가’를 생각하며 항상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육체를 가지고 사신 것은 불과 33년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짧은 33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셨는지 모릅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자신의 죄 때문에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실수해서 당한 고난도 아닙니다. 정욕으로 인한 고난도, 명예를 얻기 위한 고난도, 재물을 얻고 출세를 하려고 당한 고난도,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다가 당하신 고난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순수하게 의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앞으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고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성격은 그들과 확실하게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잘못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할 말도 없고, 억울해할 필요도 없고, 분하게 여길 것도 없습니다. 그저 당연히 받아야 할 고난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은 그 성격이 달라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죄 때문에, 자신의 욕심 때문에 고난을 당했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예수님처럼 의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무엇을 하든지 자신을 위해 했지만, 이제부터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시기 바랍니다.
사업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사업을 해도 욕심에 눈이 어두워 내가 잘 살기 위해 사업을 했다고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적을 정하고 목표를 정하여 사업을 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예전에는 욕심의 노예가 되어 자신만의 생각을 위해서 돈을 벌었다 할지라도 지금부터는 하나님에 대한 소원과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돈을 벌기 바랍니다.
성도는 고난을 당해도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고난을 당하는 목적이 달라야 하고, 고난의 성격이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의를 위하여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것과 같은 고난을 우리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고난은 같은 아픔일지라도 영광스런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기쁨이 있습니다.
스데반을 보십시오.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 자들의 돌에 맞아 순교를 당했지만, 스데반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던지,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행 6:15). 이런 고난은 아픔이 있지만, 영광이 있기에 기쁜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당하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도들은 모두 순교했습니다. 장차 받을 영광이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순교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고난은 잠시입니다. 육체의 고난은 짧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영원합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고난이 왔을 때, 기뻐해야 합니다. 의를 위해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다가 고난이 왔을 때에는 더욱 기뻐해야 합니다.
둘째,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해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도 육체의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고난을 받게 하는 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육체의 남은 때’를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사느냐, 고생하지 않고 고난 없이 얼마나 더 평안하게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느냐’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여생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데에 있습니다.
성도들은 고난이 왔을 때, 그 고난만을 해결하기 위하여 기도할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습니다(마 10:29).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집사나 전도사나 목사가 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거듭난 신자인가입니다.
거듭난 신자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집사, 권사, 장로라 할지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직분이 문제가 아닙니다. 직분이 있어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지 않고, 아직도 자기의 방법과 수단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듭난 사람은 절대 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셔야 살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복을 받습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할 줄 알지만,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절대 주권을 믿는 사람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임을 압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십일조도 구별해서 드리고 기쁨으로 섬깁니다.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사업이 잘 되어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십일조의 액수가 너무 많아, 아까워서 십일조를 바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업이 부도났습니다. 많은 고통을 당했고, 재산이 한순간에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우연한 일일까요?
여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이런 고통을 허락하실 때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은 쉽게 사라집니다.
예레미야 17장 11절에 보면,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려움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게 된다면, 이런 사람에게 찾아오는 고난은 축복입니다.
우리가 기도 생활을 게을리 하거나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영안이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고난을 따르게 된다면 그 고난이야말로 축복입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얼마나 방탕하며 살았습니까. 얼마나 많은 죄를 범했습니까.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많은 죄를 짓고 살았다 하더라도, 고난을 통해 이런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었다면, 그 고난은 큰 축복입니다.
셋째, 세상 사람들의 비방을 각오해야 합니다.
본문 4~5절에 보면,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너희’와 ‘그들’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여기서 ‘너희’는 성도들을 가리키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그들’과 어울려서 살았습니다. 세상 풍습을 따라 살았고, 정욕을 따라 살았고, 죄 가운데 살았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들’과 함께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변화가 온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그들’의 눈에는 이상히 보이기 때문에 비방하거나 경멸하거나 심지어 핍박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죄 가운데 살지 않기 때문에 비방을 듣거나 핍박 받는다면, 이것은 축복입니다. 장차 영광이 되고,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성도를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본문 5절에 보면,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은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비방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자신이 세상에서 한 짓이 다 드러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세상에서는 성도들을 비방하고 핍박하고 큰소리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그들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되고,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후회하면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방탕하게 살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살다가 죽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이들 중에는 순교자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다가 죽은 자도 있습니다. 이들은 살았을 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비록 육체는 심판받은 사람처럼 비참하게 죽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영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제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신입생환영회를 할 때 선배들이 술을 마시라고 했지만, 끝까지 거절하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학교에서 “교만하다, 고집이 세다, 융통성이 없다, 속이 좁다” 등 별별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직장이나 학교에서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관할 필요 없습니다. 그들의 말에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지킬 뿐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고난 많은 세상에서 ‘육체의 남은 때’를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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