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에 경건하게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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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8 10:50 조회3,441회 댓글0건본문
말세에 경건하게 사는 길
말세에 경건하게 사는 길
2011년 10월 02일(주일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4:7~11
베드로전서는 스데반이 순교한 이후에 전 세계로 흩어지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이 타국에서 객지생활을 하면서 환난과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사도 베드로가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쓴 서신입니다. 타국에서 객지 생활을 하면서 먹고 살기도 힘이 드는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에 이들에게 격려와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들에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다.”라고 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은 말세,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을 말합니다.
이 날 세상 사람들은 심판받고 멸망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광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그날을 그토록 기다리는 것은 모든 고생이 끝나고, 주님을 모시고 영원히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당부하면서 위로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영광을 얻게 됩니다.
지금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이 분명합니다. 세상을 보아도 그렇고, 우리의 죄악이 극에 달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매년 환난과 재난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라는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0~12절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라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심판이 가까웠으니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을 바라보고 사모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는 그날이 영광의 날, 축복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말세에 우리가 경건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말세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원수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와 싸워 이기는 길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8~29절에 보면,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예수님께 묻자,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기도하는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싸워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못 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16절에 보면,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 거룩함이 이루어집니다. 내 멋대로 살면 죄 가운데 살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 보면,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갈 줄 알면서도 죽을 각오를 하고,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렵고 고난이 있어도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면서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경건하게 사는 거룩한 자가 되려면, 타락한 이 세상이나 이 세상의 풍습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진리를 행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경건한 삶이란 이 세상과 구별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경건한 삶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죄 많은 세상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려면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 많은 세상에서 경건을 지키기는 어렵지만, 경건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경건을 잃어버리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다윗도 경건한 왕이지만,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지붕에 올라갔다가 여자가 목욕하는 것을 보는 순간에 음욕이 들어가서 경건을 잃어버리고, 죄를 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경건하게 살다가도 한순간에 넘어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경건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경건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됩니다.
사사 삼손도 하나님이 크게 들어서 사용하시는 사람인데, 기생을 가까이하면서 머리가 깎이고 당나귀처럼 맷돌을 돌리다가 죽고 맙니다. 경건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사도 바울은 젊은 교역자인 디모데에게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딤전 4:7~8).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경건한 삶은 노력하고, 연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애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기도훈련이 필요합니다. 새벽마다 기도하는 훈련,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경건해질 때까지 계속 기도훈련을 해야 합니다.
목사님들도 경건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저는 1982년도에 미국에 유학 갔을 때, 공부하느라고 하루에 한 시간 밖에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마음이 메말라서 사막 같고, 설교하고 목회한 것이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답답한지, 이러다가는 목회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못하더라도 기도는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아침에 기도를 최우선으로 삼고, 마당에 있는 장난감집에 들어가서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잃어버린 영력이 회복되고, 은혜가 풍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사막에 생수가 솟고, 사막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지는 것과 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영적인 풍성함을 채울 수 없습니다.
둘째, 우리가 말세에 경건하게 살려면 사랑하고 봉사하는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8~10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뜨겁게 사랑하고, 서로 대접하기를 힘쓰고, 봉사하면서 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참 경건을 이루려면, 내 형편이 어렵더라도 환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면서 살라고 했습니다.
고아와 과부는 지금도 도움이 필요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그들은 일할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환난 중에는 살 길이 막막하니 더욱 도움이 필요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면 안 될 줄 믿습니다.
시편 68편 5절에 보면,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모 없는 불쌍한 고아를 깔보거나 함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과부의 재판장이시니 과부를 속이고 빼앗으면 하나님께서 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인 아들러 박사에게 심한 우울증 환자가 진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박사는 상담도 해주고 약도 처방해보았지만, 도저히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가족과 주변 사람이 문제인가 걱정이 되어서 조사해보았지만, 가족과 친구들 역시 환자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도우려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치료법을 고민하던 아들러 박사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라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고는 그 환자가 사랑과 관심을 받기만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주변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 환자는 아들러 박사가 시키는 대로 하고, 다시는 진료를 받으러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을 돕는 과정에서 우울증이 사라지고, 기쁨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우울증이 있는 분들은 말씀 그대로 사랑을 베풀고 봉사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그 병이 나을 것입니다.
셋째, 말세에 우리가 경건하게 살려면 입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6절에 보면,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1~12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혀는 큰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와 같습니다. 키 조절을 잘 못하면 암초에 부딪히거나 큰 배가 파선합니다. 또한 작은 혀는 불씨와 같아서 불씨 하나가 큰 산을 불태워버립니다. 그러니까 혀를 잘 쓰면 좋은데, 잘 못쓰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혀를 절제하고 통제하지 못하면 그 경건은 헛것이며, 어떻게 경건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경건하게 살려면 우리의 입도 경건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 보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함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한마디 말을 신중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은 좋은 말을 하면 복이 되지만, 좋지 못한 말을 하면 화가 임하고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어느 파티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남을 흉보고 공격하면서 낄낄댔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여기에 가담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자, 사람들이 왜 같이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화폭에 흰 물감을 칠한 후에 가운데에 까만 점 하나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까만 점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자기 눈에는 하얀 것만 보인다고 하면서 너희는 남의 허물만 보고 들춰내느냐고 했습니다.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항상 부정적인 것만 봅니다. 허물이 큰 사람일수록 남의 약점을 들춰내는 데에 앞장섭니다. 함부로 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입을 다스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말해야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덕이나 산 위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흐르면서 모든 것을 쓸어내려서 언덕 아래에 있는 논밭이나 집이 허물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산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항상 보고 삽니다. 저 집에서 찬송소리가 나는지, 다투는 소리가 나는지 항상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경건하게 살면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세상을 복음화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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