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예식에 참여하는 성도가 알야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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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8 14:38 조회3,307회 댓글0건본문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성도가 알아야 할 것들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성도가 알아야 할 것들
2007년 04월 06일(금요철야)
본문 / 베드로전서 4:1~3
여자들은 남자들이 겪지 않는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그 고통은 너무 커서 정말 감당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기를 낳을 때에 남편을 욕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해산할 때에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며 묵묵히 해산의 고통을 참는 가운데 아이를 낳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런 분은 순교의 고통, 십자가의 고통을 미리 맛보는 위대한 성도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성금요일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며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오늘을 보내신 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박히시기 전 날, 제자들과 떡을 나누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6~29절에 보면,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도 성찬 예식을 거행하려고 합니다. 성찬 예식을 행하기에 앞서 성찬 예식에 참예하는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성찬 예식에 참예하는 성도들은
첫째,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은 다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10~11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도서 7장 20절에 보면,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한 일만 하고 죄를 범하지 않는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세례 요한이 요단 강가에서 세례를 베풀 때, 많은 사람이 와서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때 세례요한은 이들의 죄가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오는 사람들에게 다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왔을 때에는 책망했습니다. 마태복음 3장 7~8절에 보면,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무섭게 책망한 이유는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거나 회개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신이 죄인이 아닌 것처럼 행세했기 때문입니다.
회개가 없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죄 사함의 기쁨과 감사, 평안, 겸손이 생깁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는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거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은 자신의 분수를 모릅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모릅니다.
자신은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잘났고 똑똑하고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허물을 볼 줄 모르고, 남의 허물만 봅니다. 그래서 비판하고 비난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은 지옥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이 세상은 지옥과 같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했습니다.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고백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자신이 악하고 더러운 죄인인 것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십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만 회개할 수 있고, 회개한 자만 떡과 잔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죗값이 얼마나 큰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범하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서 죗값을 치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죄인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 받습니다.
창세기 2장 15~1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음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육신의 죽음입니다. 호흡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2. 영적 죽음입니다. 육신은 살아있어도 영이 죽은 것입니다.
3. 영원한 죽음입니다. 이것은 지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4~15절에 보면,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가 먹음으로 육신의 죽음이 왔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후, 점점 늙고 병들고 쇠약해졌습니다. 이것이 죽음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병에 걸리는 것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인입니다. 이런 사인들이 있다가 우리는 죽습니다.
가인처럼 아우를 죽이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귀의 종노릇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저주가 따라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저주 중에 가장 큰 것은 하나님 없이 살다가 나중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나중에 지옥에 가면 그것은 저주받은 삶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지 않는 사람들 외에는 모두 불못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영원히 하나님이 없는 지옥에서 고통을 겪는 저주입니다.
그런데 요즘 죗값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도서 8장 11절에 보면,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한 일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치신다면, 두려워서 죄를 짓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인정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알고도 모르고도 약해서 죄를 짓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급하게 때리시지 않으시고, 스스로 돌이키고 회개하기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악한 일을 해도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용하여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면, 마지막에 큰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악을 행해도 당장 징벌이 없다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담대하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살지 않으면, 반드시 징계가 있습니다. 목숨 걸고 피를 흘리면서까지 죄와 싸우면 이길 줄 믿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13절에 보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회개하면 된다고 착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징벌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징벌이 없어도 나중에 지옥에 갑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많이 사랑하시는 사람은 징벌이 빠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 가운데 두지 않으시고 쳐버리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20절에 보면,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 세 가지 고난이 나옵니다. 부당하게 받는 억울한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죄가 있어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은 다 같지만, 죄로 인한 고난은 부끄러운 고난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면 좋겠지만, 어리석은 성도 중에는 마치 염소와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삼서 9~11절에 보면,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염소와 같은 자들은 교회에서 자신이 왕 노릇하려고 합니다. 매우 악합니다. 염소와 같은 자들은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해도, 모른 체합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도 동일하게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고생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빛의 열매를 맺습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 의로움, 진실함입니다(엡 5:9). 어떤 사람은 교회에 다녀도 자신의 유익만 생각하고 보복하려고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그러므로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둡니다. 사랑은 사랑을, 미움은 미움을 거둔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사랑을 베풀며 살면 어디를 가든지 사랑을 습니다.
우리는 죗값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알아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9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수백 년 전에 이사야가 예언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5~11절에 보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어 마땅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넷째, 자신의 사명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5~18절에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므로 우리는 형제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형제를 진실히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9~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 주셨고, 목숨까지도 주셨습니다. 사랑은 희생하는 만큼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주님을 사랑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면 주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최고의 사랑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고,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는 줄 압니다. 이것을 위해 시간과 목숨, 물질을 바쳐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이므로 원수를 미워할 자격이 없습니다. 원수를 미워한다면 그 사람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해야 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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