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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2장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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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0 09:01 조회3,3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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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기회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기회

2011년 02월 18일(금요철야)

본문 / 베드로전서 2:19~21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받는 모든 고난이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죄가 있어서 받게 되는 고난입니다.

죄를 범하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죗값을 치르게 되는 경우입니다. 도둑질하거나 강도질을 하거나 간음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들어가는 것처럼,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일을 하다가도 받게 되는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은 죄가 있으셔서 고난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받지 않아도 될 고난을 많이 받으시고,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죄를 지어서 죄 때문에 고난 받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셋째, 애매한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고난입니다. 어떻게 보면 부당합니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고난이 오므로 답답한 고난입니다.

옆집이 불이 나서 우리 집까지 타 버리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신호를 지키고, 정지해있는데 음주운전한 차가 정지해있는 차를 받아버리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런 부당한 고난, 애매한 고난을 당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고난을 겪을 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고난 받는 것만 생각하고 괴로워합니다. 자신의 죄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사람의 특징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난이 있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받는 고난보다도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해 더 고민합니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회개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가 여기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믿음이 더 좋은 사람들은 자기의 죄 때문에 고난 받고 고생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 것을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매우 괴로워합니다. 바르게 살지 못해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 것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평소에도 “아버지 하나님, 저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면, 차라리 저를 미리 불러가 주세요. 제가 죄짓기 전에 자다가 죽게 해주세요. 제가 죄를 범하면서 살지 않기 원합니다. 제가 바르게 살지 못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면, 저는 그렇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를 미리 불러가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거룩하게 살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 다 이런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도 고난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때 믿음이 작은 사람들은 낙심하고 원망합니다.

예를 들어 전도하려 나갔다가 교통사고 나든지 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데 사업이 망하게 되면, 낙심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큰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고난 받게 되면 오히려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다가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주님의 일을 하다가 고난 받게 되어서 황송해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고난이 있어도 더 열심히 주를 위해서 삽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았을 때, 주님을 위해서 받는 능욕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든지 길을 가든지 성전에 있든지 언제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고 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받을 때 더 기뻐하고 더 열심히 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빌립보에 가서 전도할 때에도 사람들에게 맞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이럴 때 참으로 낙심하기 쉽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 사도 바울과 실라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프고 피투성이인 아픈 몸을 가지고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어떻게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주님을 위해서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지진이 일어나고, 이 일로 인하여 간수장과 그 가족을 다 예수 믿게 되고, 세례를 받게 되어서 빌립보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 애매한 고난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이때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믿음이 나타납니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이 편안하고 시원하고 좋은 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는 견디기 아주 힘든 고난의 땅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실까? 가나안 땅을 주시려면 빨리 주시지 왜 이렇게 고난을 받게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날마다 걸어도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시고,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하시는 기적을 일으키셨음에도 그들에게는 기쁨이 없었고, 감사가 없었고, 찬양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 속에서 살아도 기쁨이 없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기적 가운데 있으면서도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원망 불평만 했습니다.

 

그러나 욥과 같은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하루 동안에 재산이 다 없어지고, 10남매가 다 죽는 일을 당해도 겉옷을 찢고 머리를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했습니다.

욥기 1장 21~22절에 보면,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멋진 믿음입니까. 이렇게 자기의 죄 때문이 아닌, 억울하고 부당한 고난이 왔어도 욥과 같은 사람은 아름다운 믿음, 좋은 믿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형님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서 고생했지만, 원망 불평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노예생활 하면서도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키면서 경건하게 살아서 날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범사에 형통하는 기적 속에서 살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에도 당당하게 뿌리치고,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아무리 부당하고 애매한 고난을 받고, 답답하고 알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지낸다 할지라도 요셉처럼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모든 것이 전화위복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나고 보면 다 축복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쓰고 감옥에 가도 그것이 망하는 길이 아닙니다. 요셉처럼 원망 불평하지 않고, 자포자기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고, 거룩하게 살고, 죄를 뿌리치고 살면,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모든 것이 축복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어도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하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으로 주는 음식을 거절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것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보다 더 한 사람의 명령이라도 우상 앞에 제사 지낸 음식은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사람, 말씀대로 살고 목숨 거는 사람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정적들의 모함으로 이제 죽을 일만 남았는데도 다니엘은 감사했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이렇게 신앙을 지키다가 고난을 겪을 때 감사하는 사람은 참으로 멋진 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에게 갑자기 흉년이 찾아와서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기도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26:2).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 그랄 지방에 머물렀습니다. 그랬더니 그 해에 농사를 지었는데 백배의 축복을 받아서 이삭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유 없이 흉년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흉년이 와도 흉년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흉년이 들어 곡식이 없어 아우성칠 때, 오히려 더 부자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흉년 때에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흉년이 들어 다들 야단법석인 때에 이삭이 농사짓는 땅에서는 백배의 소득을 얻어서 이삭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남이 다 망할 때 더 잘되면 그것이 더 큰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너무나 오묘합니다.

사업에 어려움이 오고, 기근이 오고, 흉년이 올 때, 이삭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흉년에 백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흉년이 들어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축복받습니다. 세상 경제가 난리를 쳐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잘됩니다.

 

첫째, 고난의 때는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처럼,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는 믿음을 보여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때가 더 큰 축복의 때로 바뀔 것입니다.

 

둘째, 기도 응답이 되지 않을 때는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에는 기도응답을 너무 빨리하셔서 새벽예배 시간에 기도했는데, 오전 10시쯤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의 어느 권사님은 땅을 빨리 팔아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새벽예배에 나와서 “땅이 빨리 팔려야 되는데, 계약만 되면 계약금은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10시쯤 땅이 팔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기도응답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침묵을 지키실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응답하지 않으시는 때가 바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감동하게 할 만한 믿음을 가졌는지를 보여줄 기회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 응답이 되지 않으면, 별별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나? 하나님이 나를 싫어하시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침묵하고 계실 때는 내 안에 전쟁이 일어나는 때입니다. 자기 자신과 싸우는 시간입니다. 믿음의 생각과 믿음 없는 생각,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이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래서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따라가느냐, 긍정적인 생각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믿음이 판명 납니다.

그래서 응답을 늦게 받아도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참아내면 그 사람의 믿음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응답을 받지 못할 때 참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엘리 제사장의 때에는 죄악이 가득했습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배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매우 악한 짓을 행했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사무엘상 3장 1절에 보면,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응답이 전혀 없습니다.

사무엘상 3장 2절에 보면,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영육이 다 어두워져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어둡고, 육신의 눈도 어두웠습니다. 그야말로 어둠에 빠져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의 생활을 보십시오. 엘리 제사장에게는 기도생활이 없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에게는 회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를 지적하고 망하게 될 것을 말씀하셔지만, 엘리 제사장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태도는 망할 사람의 태도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을 보여줍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가 없고 회개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소망이 없습니다.

사무엘상 3장 18절에 보면,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엘리 집안이 어떻게 멸망할 것을 사무엘을 통해 자세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엘리는 이렇게 말 한마디 한 것이 전부입니다. 엘리가 자기와 자손들이 저주받고 멸망할 것을 생각하면서 가슴을 치고 울며 금식하고 기도하고 회개하는 모습이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 없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면서 말씀하실 때는 하나님 앞에 무조건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면, 계속해서 기다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는데, 사울 왕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28장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하니까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사울 왕의 마음이 떨렸습니다.

사무엘상 28장 6~7절에 보면,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 받지 못하니까 무당을 찾아가는 꼴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이것이 망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로마서 4장 17~22절에 보면,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기도했지만, 이상하게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그마치 25년 동안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라는 엄청난 축복과 약속을 받았지만, 자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 정도면 누구나 의심할 만합니다. 더구나 자신의 나이가 100세이고, 사라의 나이가 90세이면, 이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아브라함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나이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고, 분명히 이루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고 책임지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입니다.

끝까지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면, 응답이 늦게 이루어질수록 그 사람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좋은 기회입니다.

 

시편 10편 1~2절에 보면, 다윗도 기도 응답이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으로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숨어계시는 것 같은 답답한 마음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또 시편 13편 1~6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도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부르짖은 때가 있었는데, 다윗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끝까지 낙심하지 않고 승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끝까지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욥기를 보면, 욥의 믿음이 대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와 모든 재산을 다 거두어 가시고 자신의 몸까지도 병들어서 참으로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하지 않으신다면, 얼마나 낙심하기 쉽습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욥이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언제나 믿음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응답이 되지 않아도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축복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더 잘되게 하신다.”라고 믿음의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욥기 13장 23~24절에 보면, 욥은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욥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고난 때문에 몸부림치기보다 자기 죄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욥기 19장 25~26절에 보면, 욥은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라고 믿음의 말을 합니다. 욥의 대속자이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고백합니다.

또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욥은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고백합니다. 욥은 자기는 자기의 앞길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계획하신 고난을 통과하면, 자신이 순금같이 되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믿음의 말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망하는 것 같지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로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지금은 고생하고 있지만, 이 고난을 통하여 더 큰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더 크게 쓸 것이다.”라고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잘되게 하십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무슨 믿음의 말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욥기 23장 13~14절에 보면,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정해져 있습니다. 뜻이 있어서 이렇게 하신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아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생각과 계획대로 하시고자 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작정하신 그것을 이루실 것이라는 욥의 고백입니다. 욥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가장 좋은 것이고, 가장 잘되는 것이고, 가장 완전한 것이고, 가장 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욥은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욥기 38장에 보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면서 욥의 모든 고민이 사라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해서 고생했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 순간부터 욥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다 기록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는 가운데 놀라운 응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여러분, 고난이 있거나 답답할 때,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면서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에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성경 속에서 나와 같은 경우를 당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찾게 되면, 그것이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괴롭고 답답할 때 성경을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32세에 공군 군목 훈련받으러 갔는데, 20대 장교들과 같이 훈련받았습니다. 부대장들이 저보다 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와 상관없이 힘들게 훈련받았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시편을 많이 읽었습니다. 힘들 때 시편을 읽으니까 다윗의 심정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이 얼마나 꿀 송이처럼 단지, 기상나팔 불 때까지 말씀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고난의 때,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구별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책망을 들을 때도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책망하실 때는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순간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깨닫게도 하시지만, 우리 스스로 깨닫게도 하시는데, 사실은 이것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깨달을 때에도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열왕기상 11장 6절 이하에 보면, 솔로몬이 우상숭배를 많이 합니다. 9~10절에 보면,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을 책망하셨지만, 솔로몬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적해주시고 책망하실 때에는 무조건 엎드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용서받아야 하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죄를 깨달아도 회개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나라가 두 개로 나뉘고, 나중에는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39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교만해져서 책망 받게 됩니다. 자기가 죽을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15년 연장 받았을 때,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바벨론 왕이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그때 어리석은 히스기야 왕은 궁전에 있는 모든 창고에 있는 보물을 다 보여주며 자랑했습니다.

5~8절에 보면,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라고 책망합니다.

이사야에게 책망을 받은 히스기야 왕은 그 책망의 말이 좋다는 말과 함께 그냥 넘겨버립니다. 이게 올바른 태도입니까? 나라가 망할 것과 모든 보물을 빼길 것과 자손들이 환관이 될 것을 말씀하셨으면 통곡하고, 죽을병에 걸렸을 때처럼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매달려야 하는데, 히스기야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태연한 태도를 보입니다.

믿음이 작아지면 이런 태도를 보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므낫세라는 자식을 신앙으로 키우지 못해서 12세 때 왕위에 오른 므낫세는 우상이라고 하는 우상은 다 성전에 들여놓는, 못할 짓을 하게 됩니다. 히스기야의 미지근한 태도가 비극을 초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책망하실 때, 하나님이 죄를 깨닫게 하실 때가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히스기야나 솔로몬 같은 태도를 보이면 절대 안 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때, 바로 회개했습니다. 욥기 42장 6절에 보면, 욥은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욥은 자기를 괴롭힌 친구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합니다. 10절에 보면,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회개하고, 자기를 괴롭힌 친구들을 축복하는 욥에게 갑절의 축복이 찾아왔습니다.

 

다윗은 책망 들을 때에 바로 그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습니다. 무조건 엎드리는 것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말씀하시면 겸손하게 엎드려서 회개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잉태된 아이가 죽을 것이라는 말씀에도 다윗은 그 아이를 위해서 금식하며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땅바닥에 엎드려져서 기도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믿음의 태도입니다. 다윗은 금식하고 회개하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다윗의 태도를 보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죄를 깨닫게 하실 때, 겸손히 회개하고, 죄 때문에 고난이 왔을 때에는 겸손하게 금식하고 부르짖고 회개하고 기도하는 자세를 가지면, 자비하신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랑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때, 죄를 깨닫게 하실 때는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좋은 기회입니다.

 

시편 32편 5~6절에 보면,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여기서 ‘주를 만날 기회’를 주석에서 찾아보면, ‘죄를 깨달을 때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깨달을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가까이 계셔서 빛을 비추어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야말로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주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이런 때는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이때 기도하면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미치지 않습니다.

 

이사야 55장 6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라는 말은 죄를 깨닫게 되는 때를 의미합니다.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그때가 바로 회개할 때이고, 하나님을 만날 기회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책망하실 때, 죄가 깨달아질 때는 저주가 아니고, 축복받을 기회입니다. 그때 바로 엎드려서 회개만 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축복 받게 됩니다.

이사야 55장 6~7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은 고난이 왔을 때, 기도응답이 도무지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책망을 들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때는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아시고, 좋은 믿음의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더 큰 복을 받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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