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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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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1 18:12 조회3,4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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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

 

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

2008년 10월 05일(주일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1:1~9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수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에 가셨을 때에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베드로는 예루살렘교회의 기둥과 같은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본문은 베드로 사도가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와 함께 있는 성도들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고 권면하기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흩어진 나그네’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고향에 살 수 없어서 편안하게 살지 못하고 나그네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에게 베드로가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붙잡혀서 순교한다면 순교하지만, 그렇지 않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할 때, 바울의 제자들은 바울을 한밤중에 성벽에서 광주리에 달아내려 바울을 도망가게 하여 죽음을 피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성도들이 많이 흩어졌습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고 재산을 잃어버렸고 이산가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흩어진 성도들이 그냥 도망가느라고 정신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숨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은 어디를 가든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붙잡혀서 죽으면 죽는 것이라 생각하고, 당당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박해를 당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에 흩어지게 하신 이유를 몇 가지 깨닫습니다.

첫째, 이 땅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에만 소망을 두고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너무 고생하면, ‘예수님께서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차라리 천국에 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고생할수록 주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기다립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많이 당하면, 주님의 재림을 더욱 간절히 기다리며 더욱 거룩하게 신앙생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성도들에게 많은 환난과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이 세상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살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여러 나라에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여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루살렘에만 머물러있으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핍박을 통해 그들을 전 세계에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1장 2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 아신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예정과 예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예정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예정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1장 2절에 보면,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택해서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예수님을 믿도록 우리를 인도해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려 합니다. 딴 길로 가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으로 붙잡으시고 인도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은 다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1장 2절에 보면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거룩하게 해주신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표적을 보고 행적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제자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갈릴리로 갔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직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난 후 달라졌습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어떤 핍박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복음을 전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1장 2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뿌림을 받음으로 깨끗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뿌림으로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피만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1장 3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했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산 소망이 있게 해주신 것을 찬양했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셔야 우리가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거듭난 성도는 산 소망을 가집니다. 거듭난 사람인가 아닌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소망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썩어질 이 세상에 두고 사는가, 하늘에 산 소망을 두고 사는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소망은 세상의 소망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오직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생명있는 소망입니다. 영원한 소망입니다. 장차 부활하여 천국에 가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소망입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1장 4절에 보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땅의 소망은 모두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늘에 예비된 소망은 영원한 소망입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1장 5절에 보면,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항상 이 세상을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 누릴 영광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메시아의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는 순간에도 베드로는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마지막 순간에도 베드로는 이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세속적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23절에 보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의 생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세상의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성령 충만 받은 후에는 세속적인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산 소망을 가졌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졌습니다.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산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시험을 많이 당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당하는 시험과 고난은 잠시뿐입니다. 장차 누릴 영광은 크고 영원합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고난이 올 때 장차 받을 영광을 생각하며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 보면,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는 환난과 시험은 잠시요, 아주 가벼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잠시 당하는 것입니다. 아주 가벼운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받을 영광은 크고 영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을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장차 받을 영광을 생각하면, 우리는 어떤 고난과 시험도 잘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해도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의 사람에게는 시험이 시험이 되지 않고, 시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오는 시험은 죄에 대한 심판도, 저주도 아닙니다. 오히려 장차 영광을 받게 해주는 고난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시험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면 은혜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믿음이 더 강해집니다. 나중에는 금보다 귀한 믿음으로 무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시련이 됩니다.

 

우리가 시험을 통해 물질을 잃고 친구를 잃고 건강을 잃었다 해도, 시련을 통해 믿음이 강해졌다면,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믿음만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잃었다 해도,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면 이것은 축복입니다.

환난과 시험이 와도 크게 기뻐하며 사는 사람은 장차 주님께서 오시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여러 가지 시험이 와도 크게 기뻐합니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1장 8절에 보면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말씀대로만 살려고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하기에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살고 싶어 합니다. 주님을 위한 꿈을 가집니다. 주님을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주님만을 위해 살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과 시험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기뻐합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1장 9절에 보면,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시험이 와도 어떤 고난이 와도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결과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구원을 받을 사람입니다. 우리 믿음의 결국이 무엇입니까? 영혼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산 결과는 영혼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오고 고난이 와도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산 소망을 가진 성도로서 어떤 환난과 시험이 와도 잘 참고 견딜 뿐만 아니라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장차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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