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받는 자와 잃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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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7 19:53 조회3,343회 댓글0건본문
은혜를 받는 자와 잃는 자
은혜를 받는 자와 잃는 자
2011년 10월 07일(금요철야)
본문 / 야고보서 4:5~6
오늘날 이 세상에는 교회가 많이 있지만, 교회다운 교회가 있고 교회답지 못한 교회도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면 좋겠지만, 이 세상에는 교회답지 못한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교회가 되는 이유는
첫째,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교회에 열심히 나와 집사, 장로, 권사, 전도사, 목사가 되었어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육에 속한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역사하는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 방언하고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어리석게 봅니다.
유다서 1장 19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거듭난 사람 속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우리가 믿음이 약해서 쓰러지고 넘어져도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여러 가지 복잡하고 답답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찾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심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을 이 자리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그 속에 성령이 없습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 속에는 악령, 마귀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그 사람을 끌고 다닙니다.
또 거듭나기는 했어도 아직 믿음이 어린 젖먹이와 같은 성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교회가 됩니다. 고린도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였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성도가 젖먹이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별의별 문제가 많았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말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는 젖먹이 신자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려면, 은혜 받은 성도들이 많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건강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물질의 은혜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물질을 주셔서 물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형통의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악하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항상 길을 예비해주시고 인도해주셔서 우리의 가는 길을 언제나 형통하게 해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 은혜보다 더 큰 은혜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성령이 함께해주시고, 성령의 사람이 되어 성령과 함께 사는 은혜가 최고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른 은혜도 다 받으셔야 하지만 특별히 성령의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은혜만 받으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일생을 멋지게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여러분의 남은 생을 완전히 들어 쓰셔서 성령과 함께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병든 신자가 됩니다. 시체 같은 신자가 됩니다. 시체는 힘이 없고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냄새만 납니다. 은혜 받지 못한 신자는 집사든 권사든 장로든 직분에 상관없이 시체처럼 전혀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저는 은혜 받지 못한 분들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성전을 몇 번씩 짓고, 선교 사업도 많이 하지만, 돈 많은 분이 많고, 훌륭한 분도 많지만, 그 중에 은혜 받지 못한 분들에 대해서는 저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마치 시체와 같아서 신앙생활을 해도 병들어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다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아주 건강한 성도가 되어 멋지게 신앙생활을 하지만,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병든 신자가 되고, 심한 경우에는 시체처럼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변화가 없습니다. 수십 년 교회에 다녔지만,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성장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자마자 신앙이 쑥쑥 자라지만, 어떤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에 실패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 짐이 되어 신앙생활 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마지못해 억지로 합니다.
주일이 되면 교회 가기 싫은데, 집사 체면에 안 갈 수도 없어 억지로 나오니 주일이 짐이 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신앙생활이 즐겁지 않고, 짐이 되고 힘들고 부담스럽습니다. 하기 싫은 것을 마지못해서 하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먹고 사느라 괴롭고 신앙생활 하느라 괴로운데, 고생을 두 배로 하다가 죽어서 개털 모자 쓰게 되니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어도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한 상태로 믿는 사람들은 참 불쌍합니다.
역사가 오래된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는데, 20여 년 전에도 그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설교를 들은 분들은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고 노인들만 보였습니다.
뿌리 깊고 기도 많이 하는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새신자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20여 년 전에 성도가 2천 명 정도 되던 교회였는데, 지금은 성도가 천 명도 되지 않고, 노인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손해를 많이 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변화되고 성장합니다. 신앙생활이 행복해집니다.
저는 여러분의 얼굴만 봐도 은혜 받은 분인지 은혜 받지 못한 분인지,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부담스러운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어느 교회에서 집회하든지 성도들의 얼굴만 봐도 압니다. 은혜로운 교회인지 메마른 교회인지 성도들의 얼굴만 봐도 압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은혜를 받아 건강한 성도가 되면, 얼굴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 건강한 성도가 되면, 예수 믿는 것이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고, 예배시간이 즐겁고, 말씀 듣는 것과 기도하는 것, 그리고 교회 일이 좋고 행복합니다.
제가 집회에 가서 설교를 한 번에 4시간 동안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2시간 동안 설교하는 것은 보통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오히려 설교가 왜 이렇게 짧으냐고 말합니다. 이분들은 말씀의 은혜를 받고. 은혜를 사모하다 보니 더 듣고 싶어서 2시간도 짧게 느껴집니다.
은혜를 받으면, 말씀이 꿀송이와 같고 예배시간이 좋아 온종일 예배드리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첫째, 겸손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는 자신의 죄를 생각하며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자기 허물을 생각하며 “아버지, 저는 허물투성이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마음 상태가 겸손한 사람에게는 회개하는 마음이 따라옵니다. 바리새인들과 세리들의 기도는 다릅니다. 바리새인은 교만하여 마치 자기들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1주일에 두 번씩 금식 기도하고, 십일조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세리는 부끄러워하며 엎드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겸손하게 기도합니다. 그런 사람이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둘째, 사모해야 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합니다. 굶주린 사람은 배가 고파 빵 한 조각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야고보서 4장 5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불같이 뜨거워져서 전심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07편 9절에 보면,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모하는 자가 은혜를 받게 되어있습니다. 굶주린 사람이이 먹을 것을 사모하듯이,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셋째, 전심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것은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20명의 성도가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기 위해 전심으로 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심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은혜 가운데 폭발적으로 성장한 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에 오로지 힘쓰는 교회였기 때문에 그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평범하고 점잖고 담담하게 기도할 때에는 불이 임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확실하게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특히 가장 피곤한 새벽 1시나 2시가 되면, 사탄이 얼마나 졸리고 피곤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잘 극복하면, 그때 결정적으로 불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이 하나님의 불이 임할 시간이니 마귀가 결사적으로 방해합니다. 그러나 전심으로 기도함으로 이길 때,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게 되면, 예전에는 그냥 넘어간 작은 죄까지도 용납하지 못하고, 마음에 걸리고 괴로워서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그만큼 거룩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죄가 작은 것까지 잘 보여서 “나는 죄인 중의 괴수로소이다.”라고 사도 바울처럼 고백합니다. 자신의 죄가 커서 다른 사람의 죄를 보고 판단하고 비판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겸손합니다.
남의 흉이나 보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은 맹탕신자, 전혀 은혜 받지 못한 빈 깡통과 같은 사람입니다. 빈 깡통은 원래 소리가 큽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죄인인 줄 모르고, 남이 이야기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는데, 은혜 받은 만큼 감사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감사할 것이 많아서 원망 불평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은 만큼 기쁨이 충만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일수록 마음이 천국과 같이 됩니다. 은혜 받은 만큼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져서 매우 행복합니다.
30여 년 전, 목사님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했는데, 제가 “하나님께서 목사님들을 사랑하시는 줄 아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님들보다 10배 이상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제게 있습니다.”라고 간증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목사님이 “너만 사랑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주님이 저를 다른 사람보다 적어도 10배 이상 사랑한다는 것을 느껴지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처럼 은혜를 받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이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사람은 행복하고 기쁨이 충만하고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모두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사명을 깨닫고 충성하게 됩니다. 주님 나라에 갈 때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깨달아집니다. 이런 사람은 예배드리고 헌금하는 자세가 다릅니다. 자기의 사명을 깨닫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충성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은 절대 허송세월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목회자들 중에도 사명을 깨닫고 목회하는 분들은 목회하는 자세가 다릅니다.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고, 틈만 나면 놀러 가고, 딴짓이나 하는 사람은 사명을 모르고,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자신이 사명을 알아 충성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큰 일꾼이 되고, 교회의 부흥을 가져옵니다.
수영로교회가 36년 동안 계속 부흥하고, 새가족이 1년에 1만 명 이상 등록하고, 교회에서 땅을 사고 성전을 지어도 헌금 작정할 필요 없이 오직 기도만 해도 헌금이 넘치는 이유는 성령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 보석 같은 성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확실하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화 중 가장 힘든 변화는 성품의 변화입니다. 그 사람의 성품대로 예수를 믿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면, 성품 자체가 주님의 성품으로 점점 닮아가서 예전에 칼 같고 가시 같은 성품이 다 없어집니다.
성령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불가능이 없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은혜 받은 만큼 변화됩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가치관, 삶의 목적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특별히 변화하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열매 중 첫째가 사랑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사랑이 많아집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뜨거워집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싶고,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주님만 위해 살고 싶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예전에는 욕하고 저주하고 악담했던 원수를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고 축복하게 됩니다.
제가 그런 체험을 실제로 했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짐이 되고,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히 여기고 축복기도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기도해보십시오. 미운 사람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사랑의 하나님이 감동하십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아름다워집니다. 마음도 말도 눈도 얼굴도 삶도 아름다워집니다. 수영로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변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성도들이 더 아름다워져서 저의 눈에는 모두 예쁘게 보입니다. 설교하다가 내려가서 다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습니다. 이처럼 은혜를 받으면 아름다워집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큰 능력을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권능,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권능, 세상을 이기는 권능, 환난과 시험을 이기는 권능을 받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담대합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담대히 전도합니다. 수영로교회의 전도특공대를 보면 얼마나 담대한지 모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큰 일꾼이 됩니다.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수영로교회에는 이런 성도들이 많기 때문에 교회가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이유는
첫째, 교만해지는 순간, 받은 은혜가 다 소멸됩니다.
예전에는 은혜 충만하던 사람이 교만해져서 받은 은혜를 다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은혜 주시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24시간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은혜롭던 사람이 교만해지는 순간, 달라져서 예전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좋을 대로 믿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여러분 중에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감사헌금하지 않는 사람은 회개하십시오. 날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데, 날마다 감사헌금하지 못하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은 감사헌금하지 않으면 교만한 것입니다. 은혜 가운데 사는 만큼 감사하는 마음이 있고, 감사생활을 하게 됩니다.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다가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았음에도 교만해지니까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역대하 32장 24~25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애걸복걸 기도할 때는 언제고, 다 이루어진 다음에는 감사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원망, 불평하는 것은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교만해지는 순간 감사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당연히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건강한 것도 은혜이고, 이 자리에 나온 것도 은혜입니다. 그런데 교만해지니 감사가 없고 자기 자랑만 합니다.
이사야 39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병문안 온 바벨론 사절단들에게 궁전과 창고 안에 있는 보물을 보여주며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고, 왕의 아들은 환관이 되고 노예가 되어 끌려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면 통곡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 39장 8절에 보면,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교만해져서 심령이 메마르고 마비됐습니다. 감사할 줄도 모르고 회개할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의 남은 생이 좋지 않았습니다. 므낫세라는 자식을 3년 만에 낳았는데 히스기야가 죽을 때 므낫세는 12살이었습니다. 히스기야에게 다른 아들도 있었지만, 그 아들을 왕으로 세웠는데, 므낫세는 사신우상을 섬기고, 나라가 망할 짓만 했습니다. 히스기야가 평소처럼 기도 많이 하고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살았더라면, 그 자식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욕심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죄의 시작은 욕심입니다. 욕심이 생기면 죄를 짓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사울 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말렉과 모든 가축을 죽이라고 했는데, 살진 소나 양에 욕심이 생겨서 죽이지 않고 가져와서 거짓말하고 핑계를 댑니다. 욕심 때문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게 됩니다. 이처럼 욕심이 생기면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솔로몬도 육신의 정욕을 따라서 쾌락을 추구하다가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하고, 나중에는 타락해서 결국 우상숭배까지 했습니다.
기드온은 300명으로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사람이 연합군을 다 물리치고 승리했지만, 사사기 8장 24~27절에 보면,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에봇을 음란하게 위했다는 것은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입니다. 욕심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사사기 8장 30~31절에 보면,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드온은 욕심이 얼마나 많은지, 아내를 많이 두고 아들만 70명이었습니다. 아마 딸도 그만큼 됐을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세겜에도 첩을 두었습니다.
사사기 9장 4~5절에 보면,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다만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룹바알은 ‘바알이 그와 더불어 다툴 것이라’라는 의미의 기드온의 멋진 별명입니다. 아비멜렉이 깡패에게 은 칠십 개를 주고 동원해서 기드온의 아들을 한 명 빼고 다 죽어버렸습니다. 자식을 많이 낳아도 다 죽었습니다. 욕심의 결과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욕심으로 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욕심을 가지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모릅니다.
제가 30년 전에 국제시장에 갔는데 녹음기가 값이 싸서 ‘이것을 사서 설교할 때마다 녹음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사고 싶은 욕심이 생겼는데, 돈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저를 믿고 그냥 가져가라고 했지만, 금방 돈을 가져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 마음속에 계속 녹음기가 생각나고 녹음기를 사야겠다는 욕심이 계속 생겼습니다. 돈을 마련해서 전화해보니 팔렸다고 했고, 또 전화하면 녹음기가 아직 안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제 욕심을 보시고 막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포기한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녹음기가 들어왔으니 가져가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무엇이든지 욕심이 앞서면 죄를 짓게 되어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받은 은혜를 다 잊어버리게 되고 망하게 됩니다.
셋째, 세상일에 분주하므로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솔로몬은 전 세계에서 방문객이 찾아오는데, 왕들이 오고 귀족들이 와서 그들과 날마다 파티하고 술을 먹고 세상일에 너무나 분주하다 보니 기도시간이 없었습니다. 세상일로 분주해서 말씀과 기도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큰일을 한다 해도 삶의 우선순위를 하시기 바랍니다. 마틴 루터는 너무나 바빠서 기도를 더 많이 했다고 합니다.
바쁠수록 일을 많이 하니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자기 생각대로 일했다가는 실수도 많이 하고, 잘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일에 골몰하고 마음을 쏟으면, 심령이 메마르고, 받은 은혜를 다 쏟게 됩니다.
분주할 때 조심하십시오. 분주할 때는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관심을 두고 일하면서라도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세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첫째, 예배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둘째, 하루에 세 번 교회에 가서 기도한다.
셋째, 성경은 하루에 한 장 이상 본다.
이렇게 결심하고 아무리 바쁘고 시험을 치거나 입시를 치는 날에도 변함없이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시험 치러 가는 날에도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하굣길에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저녁 먹고 난 후 또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중ㆍ고등학교 6년 동안 시험이 많고 풍파가 많았지만, 이 세 가지를 결심하고, 그대로 살다 보니 마귀가 아무리 방해하고 넘어뜨리려 해도 저는 일어나고 또 일어났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도 목숨을 걸고 하루에 3번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 승리하고 쓰임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하는 습관을 따라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좋은 습관은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기도하는 습관, 예배하는 습관, 찬양하는 습관, 전도하는 습관은 매우 좋은 습관입니다. 좋은 습관을 지니면,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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