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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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1 18:22 조회3,392회 댓글0건본문
믿음과 행함
믿음과 행함
2003년 05월 23일(금요철야)
본문 / 야고보서 2:14~26
모든 인류에게 가장 큰 복음은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으면 모든 죄에서 구속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들은 타락했기 때문에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10~20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됩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의롭다 함이 무엇입니까? 죄는 지었는데 죄가 없는 것처럼 되고, 과거에 불법을 행하였는데 불법을 행하지 않은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의롭다.”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로마서 4장 18~25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범죄한 적도 있고 실수한 적도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죄인이라 말하지 않고 의롭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위해서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허물이 많고 죄가 많을지라도 아무도 우리를 심판 받을 자라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고, 예수님을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죄가 없는 사람처럼 의롭다 함을 받게 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의 주장과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의 주장이 전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로마서에서는 행함으로 구원받을 자는 하나도 없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믿음으로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서 믿음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 야고보서에서는 믿음은 있어도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이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하면서 행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강조한 바울의 말씀과 행위를 강조한 야고보의 말씀은 어떤 것이 맞을까요? 둘 다 맞습니다.
첫째,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은 100% 의롭게만 살아서 그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행함으로 구원 얻지 못한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자가 없다’는 말은 율법을 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철저히 율법대로 살아서 조금도 불의한 짓을 하지 않고 율법대로 살아서 구원 얻을 자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죄는 한번만 범했어도 죄인이므로 죄를 적게 범했든지 많이 범했든지 똑같이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고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다 죄인이고 다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위로 구원 받을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구원 받을 수 있게 해주셨는데, 그것은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8~30절에 보면,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4장 1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심판주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고 하시면 나는 구원 받고 천국에 가지만, 나를 의롭다 하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심판 받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불법을 행한 적도 있고 죄를 범한 적도 있는데 하나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해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놀라운 축복을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셨습니다.
둘째,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100% 의를 행함으로 구원 받을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지, 행함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3장 31절에 보면,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행함으로 구원 받지 못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해서 율법을 행하지 않아도 되고 율법은 없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하게 세우고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야고보서에서 행함을 강조한 이유는 구원 받는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믿음이 있다면, 믿음이 있다는 것이 삶 가운데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 나무가 포도나무인지 가시나무인지 열매를 보고 알듯이 그 사람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믿음의 사람인지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도 그의 열매로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 7장 16,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0%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8~22절에 보면,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행함이 부족하고 죄가 있어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행위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믿음만큼 행함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굉장히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 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행함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순종하고 행한다면, 믿음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행함이 없으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행함이 그의 믿음을 인정해주고, 그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 만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나는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만큼 내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반드시 의를 행하고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불의한 길로 가지 않고 바르게 살려고 합니다.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는 형제를 사랑하고 의를 행하는 자인지를 보면 알게 됩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완전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살려고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려고 하고, 바르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마귀에 속한 사람은 불의하게 살려고 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교회는 나오지만 믿음이 없습니다.
요한일서 3장 13~15절에 보면,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의를 행하려고 하고 형제를 사랑하려고 하게 될까요?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 안에는 성령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내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 속에서 생깁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는 착해지고 바르게 살려고 하고 진실해지고 무엇보다 사랑이 있어서 남을 도와주려고 합니다.
요한일서 4장 7~8, 11~13, 16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징은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기 안에 성령이 계신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나님을 사랑하고 원수도 용서하고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미워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 사랑한다고 하지만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5장 1~3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를 위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즐겁고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계명 지키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나타납니다.
요한일서 2장 3~6절에 보면,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계명을 지키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힘쓰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5~9절, 12~14절에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해서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오직 영을 따라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부족하기 때문에 육신을 따라 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믿음이 있어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육신은 정욕, 혈기, 탐심,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릅니다. 그러나 육신의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게 살지 못합니까?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온전해지는 길은 오직 하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믿음도 충만해집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일곱 집사를 뽑을 때의 조건은 첫째가 성령 충만, 둘째가 지혜 충만, 셋째가 칭찬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믿음이 충만해져서 육신의 생각을 끊어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도 능히 살리실 것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면, 능히 세상을 이기고, 정욕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해지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어려움이 닥치자 도망가는 연약함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니까 담대해졌습니다. 성령 충만하니까 믿음이 충만해져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되고, 헌신하게 되고, 모두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수시로 떠오를 수 있지만,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려면,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성령이 도와주셔야만 가능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정신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부족하니까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또 육신의 생각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연단하십니다. 연단을 많이 받은 사람은 연단을 자꾸 받다보면 강해져서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이유는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서 성령께서 끌고 가시는 대로 기쁨을 따라 가는 성도를 만들기 위해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단을 넘어서서 늠름한 모습으로 승리의 삶을 살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면 그 다음부터는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됩니다. 얼마나 좋은지 그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사야 58장 6~9절에 보면,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면, 응답이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우리가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실 때, 하나님께서 미리 알아서 준비해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것입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려고 합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살려고 할 것입니다.
믿음은 공상이 아닙니다. 머릿속에 넣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내 삶 가운데 열매로 나타납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나타나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해지면 우리의 삶이 온전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여호와의 축복이 임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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