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인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8 16:29 조회3,467회 댓글0건본문
믿음과 인내
믿음과 인내
2008년 05월 02일(금요철야)
본문 / 야고보서 1:2~4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으로 천국 백성이 됩니다. 누구나 자신의 자녀는 다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만큼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을 닮고, 우리의 믿음만큼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믿음 좋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든 것이 예수님을 닮습니다. 믿음이 좋을수록 예수님을 닮습니다.
믿음만큼 거룩한 성품과 사랑하는 성품을 가지고, 믿음만큼 빛의 열매를 맺습니다. 착하고 의로우며 진실한 성품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마귀의 성품은 어떠할까요? 악하고 불의합니다. 거짓됩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마귀의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는 착한 성품이 생기고 의로운 성품이 생기며 진실한 성품이 생겨 하나님의 성품을 점점 닮아갑니다.
그리고 믿음만큼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열매도 하나님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성령 충만할수록 사랑이 많아집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믿음의 크기는 사랑의 크기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있다는 증거가 무엇으로 나타날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다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십일조를 철저히 바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눅 11:4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종교적 행위만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즉 믿음은 없었습니다. 알맹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알맹이가 없고 껍데기만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무효입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그림자처럼 헛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7절에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20절에 보면,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해나님의 말씀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행위가 없는 믿음은 헛것입니다. 다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믿음이 없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고난이 와도 목숨 걸고 순종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왜 순종하지 못할까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하나님과 세상 중 어느 것이 커 보입니까? 인간과 권력이 커 보이십니까? 돈이 더 커 보입니까?
주일학교 교사가 모자라 어느 청년에게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은 사업이 바쁜 사람이라고 하며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부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에게 애인이 생겼습니다. 예쁜 아가씨를 만난 후, 그의 눈이 뒤집혔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밤늦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만났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걸리는 곳까지 찾아갔습니다. 그 청년에게 하나님은 작게 보이고, 애인은 아주 커보였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울 왕은 왜 순종하지 못했을까요? 살진 소와 양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까요?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이기심, 자기 생각, 자기 야망이 앞서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원수들이 멸망하는 것이 자기에게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왜 복음을 전하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도망가다가 물고기의 밥이 돼서 죽을 뻔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권능을 행하는 사람이 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불법을 행했을까요?
첫째, 욕심 때문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니까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헌금도 엄청나게 들어왔습니다. 많은 헌금이 들어오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에 욕심이 생기면, 악한 짓을 얼마나 많이 저지르겠습니까.
돈에 욕심이 생긴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돈의 욕심을 가지면, 불법을 행합니다. 욕심이 악을 행하게 합니다.
큰 권능을 행하는 사람이 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불법을 행했을까요? 돈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한 대로 하고, 자신의 야망을 채우려 하다 보니 불법을 행한 것입니다.
둘째, 교만 때문입니다.
마음에 교만이 생기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교만한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립니다.
사울은 왕이 된 후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셋째, 혈기 때문입니다.
혈기를 가진 사람은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혈기를 부리면, 하나님께서 치십니다. 혈기를 부리면, 악신이 역사합니다. 악신이 들어가 마귀의 종이 되고 거짓 선지자가 됩니다.
또 이단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아주 교만하고 완악합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지식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단의 공통점입니다.
그렇다면 욕심의 뿌리, 교만의 뿌리, 혈기의 뿌리가 무엇일까요? 바로 악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교만의 뿌리, 혈기는 모두 악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자는 악한 짓을 행하면서도 담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레위기 11장 45절에 보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절에 보면,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들은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기 위해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죽을 각오를 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소원은 둘로 나뉩니다. 자기의 욕심에서 나온 소원과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이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에서 나온 소원은 이루어져도 만족도 없습니다. 오히려 욕심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더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 주시는 소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소원을 주시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주셨습니다. 성전을 짓고 싶어 하는 소원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을 짓기 위해 평생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어 바치려는 소원을 이루지 못했고, 아들 대에 가서 이루었지만,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려는 소원을 가지는 사람은 마음속에 소원을 가지고 있기만 해도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구체적으로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루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소원을 가지고 사는 동안 복을 받습니다. 또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고난이 얼마나 고통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이라면,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잘 참습니다. 그래서 순교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0-42)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함으로 고난 받는 것을 그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고난을 잘 참아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21절에 보면,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한 일로 인해 고난을 받을 때, 그것을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답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7절에 보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고난 받는 사람들이 장차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클까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선을 행함으로 복 받고 잘된다는 생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고난이 와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하다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뻐하며 잘 참으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아름답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시험을 잘 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시험을 잘 참습니다. 그래서 복을 받고, 생명의 면류관을 씁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은 믿음과 정비례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사람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믿음이 좋은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누가 받습니까? 시험을 참는 자가 받습니다.
시험이 왔을 때에 끝까지 참는 사람, 즉 낙심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시험을 끝까지 참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 보면,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어떤 복이 있을까요?
첫째,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둘째, 성공의 복을 받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을 참지 못하고 쓰러지고 포기하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이것은 등산과 같습니다. 산이 높으니까 올라가다 지쳐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참고 참으며 올라가다 보면, 인내심이 강해집니다. 잘 참는 사람은 산을 정복합니다.
셋째, 행복해집니다.
잘 참는 사람은 행복하게 삽니다. 부부가 살다보면 헤어지고 싶을 때가 많지 않습니까? 화가 나도 참고, 속상해도 참고, 속았다고 생각 되어도 참고 삽니다.
살다보면, 예수님을 믿고 은혜 받아 사람이 변화되고 행복해집니다. 참는 자에게만 이런 행복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속상해도 참고, 할 말이 있어도 참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해집니다.
넷째, 온전한 인격자가 됩니다.
온전한 인내의 사람이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고, 온전한 인격자가 됩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 보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것은 온전한 인내의 사람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격자가 됩니다. 그런 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시고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보면,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주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믿음이 견고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야고보서 3장 2절에 보면,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실수하기 쉬운 것이 말입니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말의 실수가 많습니다. 말의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요, 인격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의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잘 들어야 합니다. 말하기는 더디게 해야 합니다. 조급하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말하지 말고, 거듭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의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성내기를 더디 해야 합니다. 화를 내면, 실수를 많이 합니다. 화를 내면, 못할 말을 하고, 평생 후회할 짓을 합니다.
웃시야 왕이 그랬습니다. 분향하는 일은 제사장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웃시야 왕이 교만해져서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80명이 웃시야에게 가서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라(대하 26:18)”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웃시야는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냈습니다. 그 순간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9~11절에 보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좋은 날을 보기 원하십니까? 좋은 날을 보기 원한다면, 혀를 잘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악한 말을 절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거짓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한 말과 거짓말의 뿌리가 마귀입니다. 마귀는 악한 자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면 사람이 악해집니다. 악신, 마귀를 닮아 악해집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악한 말을 하면, 싸우게 되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됩니다.
악한 말과 거짓말의 뿌리는 마귀의 악입니다. 그래서 악에서 떠나고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인내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믿음만큼 인내합니다. 믿음은 인내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키우시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도록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고난이 와도 잘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만 믿고 잘 참고 견디는 사람은 승리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고난을 잘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도와 순교자들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힘을 얻어 어떤 고난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고, 어떠한 고난도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룹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항상 깨어 기도합니다. 다니엘은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변함없이 기도했습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잘 참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큰 축복을 받습니다.
욥은 고난과 시험이 얼마나 컸습니까! 하지만 끝까지 참고 견뎌서 나중에는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면,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인내하는 사람이 복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떠한 고난과 시험이 와도 잘 참으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한 가지 시험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시험입니다. 사업과 가정에 시험이 많을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3절에 보면,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시험은 믿음을 키우기 위한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에게 왜 시험을 허락하실까요? 미워서가 아닙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많은 시련의 고난들이 인내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 보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인내하면 고난을 통해 온전해지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이 비밀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한 인내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우리에게 많은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병들게 하시고, 우리에게 사업의 어려움을 주시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실수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통해 다른 어려움을 쉽게 극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려움을 통해 어려운 일도 인내하며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온전한 인내의 사람이 되고, 온전하고 구비하여 하나님의 백성, 믿음의 사람, 훌륭한 인격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 아무리 축복하시더라도 타락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우리에게 믿음의 시련과 여러 가지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시련을 통해 우리에게 인내를 만들어내십니다. 인내가 늘어나게 하셔서 온전하게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안심하시고 쓰십니다.
시험이 많고 시련이 많으며 어려움을 많이 당하는 분들은 믿음의 사람, 온전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진 시련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어떤 큰일과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고 영광 받으시기 위해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 중에는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하고 쓰시기 전에 13년 동안 고생했습니다. 17세의 소년이 노예로 팔려가 죽을 고생을 하고, 억울하게 누명쓰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요셉은 13년 동안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고, 범사에 형통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고난을 잘 참고 이겼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총리로 세우셨고, 그를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다윗은 얼마나 시련이 컸습니까. 사울 왕은 그를 죽이려고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시련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악한 마음을 먹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무례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진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훌륭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시련을 잘 참고 견뎠습니다.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하나님이 되어 나라가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성전을 짓도록 모든 준비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오셔서 만민이 구원받았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있어도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참을 수 있도록, 인내할 수 있도록,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