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함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징계도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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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4-12 13:47 조회4,837회 댓글0건본문
택함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징계도 축복이다
택함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징계도 축복이다
2020년 05월 24일(주일예배)
본문 / 히브리서 12:4~13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후 저주를 받았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에는 고생하지 않아도 풍성하게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후,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더하셨습니다. 여자는 수고하여 자식을 낳게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저주는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저주는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멸망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죗값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복 받은 사람이 멸망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도록 예정된 사람들에게 죄가 있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많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멸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믿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을 믿습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택한 사람들을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여 믿음으로 구원 받는 사람이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들었을 때, 복음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주셔서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 보면, 탕자가 집에 어떻게 돌아왔습니까? 모든 것이 잘 되고 평안했다면, 탕자는 계속 죄를 짓다가 멸망했을 것입니다.
탕자는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재산을 다 낭비했습니다. 나라에 흉년이 들어 궁핍해졌습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했지만, 그것조차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탕자는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탕자는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눅 15:17~19)’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범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를 범합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도 범죄할 때가 있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죄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하는 것이 모두 잘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첫째,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잘 나서 이런 복을 누린다고 착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둘째, 방종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풍성하니 주변 사람들이 칭찬합니다. 부러워합니다. 그러다 보면 방종할 수 있습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자신을 축복하신 거라고 착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바르게 산다고 착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예배를 소홀히 여깁니다. 주일 낮예배만 드릴 뿐입니다. 새벽예배를 드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을 귀찮게 여깁니다. 평소 많은 사람을 부리며 자신은 편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십일조 헌금을 하지 못합니다. 재산이 너무 많아 큰 돈을 헌금하려고 하니 아깝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전도와 선교, 구제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되니 기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도,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하나님께 아낌없이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안심하고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사는 사람은 몸부림치며 기도하지 않아도 응답 받습니다.
죄짓는 것이 습관이 되어 반복해서 죄를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도서 8장 11절에 보면,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잘못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징벌하신다면, 두려워서라도 죄를 범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속히 징벌하지 않으십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기다리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징벌하셔야 정신 차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징벌하시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복 있는 사람입니다.
큰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을 모른 채 계속 죄를 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죄를 범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심으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십니다.
본문 히브리서 12장 10절에 보면,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의 유익을 위해 징계하십니다. 징계는 손해가 아니요, 많은 유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자녀를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갑니다.
징계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징계 받기를 싫어합니다. 징계 받을 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낙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본문 히브리서 12장 5절에 보면,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징계 받을 때에 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셔서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징계하십니다. 본문 히브리서 12장 6절에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기 때문에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할 하나님의 자녀를 징계하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죄를 그치게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남편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여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집사님의 남편은 아주 미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술을 좋아해서 술집에 자주 드나들며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간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제가 심방을 갔더니 누워있는데도 배가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죄짓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술을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죄를 그치게 만드십니다.
결국 혼수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토해내듯 회개하더니 기절했습니다. 그리고 호흡이 멎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그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하시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징계하십니다.
어느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도 권사님은 변함없이 교회에 나오시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셨습니다.
사나웠던 남편이 병들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던 중 이분이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재산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건물을 선교단체에 빌려주어 선교단체에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가 천국에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징계하심으로 회개하게 하십니다. 변화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십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유익합니다.
셋째, 징계를 통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살 때에는 평강을 잃었습니다. 바르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징계를 통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유익합니다.
징계와 고난이 오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주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죄를 깨달으면 죄를 회개합니다. 그래서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징계가 오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회개합니다. 회개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마음 아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실 뿐 아니라,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죄 가운데 있을 때에 잃어버린 복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요엘 2장 25절에 보면,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회개함으로 이런 복을 받습니다.
다윗은 우리아 장군을 죽게 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책망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삼하 12:1~4)”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나단에게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삼하 12:5~6)”고 말했습니다.
이에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 12:7~10)”고 말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다윗은 겸손했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바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이에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삼하 12:13~14)”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많은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사해주시고 왜 다윗에게 많은 고난을 겪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타락한 죄악의 근성이 우리 안에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문제입니다. 타락한 죄악의 근성이 없어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죄를 범하게 됩니다.
다윗이 회개했지만, 타락한 죄악의 근성이 다윗 안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용서하신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다윗을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셔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윗을 징계하셨습니다.
다윗은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난이 굉장히 크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징계를 통해 다윗은 더 겸손해졌습니다. 더 거룩해졌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다윗은 신하들과 함께 도망갔습니다. 사무엘하 16장 5~12절에 보면,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다윗은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인정 받았습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23절에 보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에게 죄악의 근성이 남아있었다면, 다윗은 또 죄를 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징계와 고난을 통해 다윗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을 통해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을 아주 사랑하여 요셉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고자질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요셉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요셉은 교만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형들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우리도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잘못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만한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미워하십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보면,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그런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도 모른 채 죄를 범했습니다. 저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을 자꾸 판단했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판단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고자질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창세기 37장 5~11절에 보면,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이런 태도 때문에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이러한 모습은 요셉의 허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크게 쓰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징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에 요셉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다가 형들은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당시에 노예는 가축처럼 재산 목록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이지만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물건처럼 여겼습니다. 주인은 노예를 자기 마음대로 부려먹었습니다. 싫으면 팔아버리거나 죽였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 받았던 요셉이 아주 낮아졌습니다.
시편 105편 17~19절에 보면,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단련하셨습니다.
창세기 42장 21~22절에 보면,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갈 때에 울며 몸부림쳤을 것입니다. 그래도 형들은 매정하게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입었던 채색옷을 숫염소의 피에 적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버지께 보여드렸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생각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인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자신들이 죗값을 치르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셉은 고난을 통해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요셉은 범사에 형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복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받은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언제나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요셉은 범사에 형통했습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요셉이 이런 복을 받았을까요?
요셉은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고 철저히 회개했을 것입니다. 요셉처럼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께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해주실 뿐 아니라,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행 2:38).
요셉은 자신만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하셔서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창 39:23).
요셉은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요셉은 형들과 보디발의 아내를 무조건 용서했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보복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었습니다. 창세기 45장 5~8절에 보면,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었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애굽에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굽으로 보내셨다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50장 20~21절에 보면,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축복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에게 큰 고난과 시련을 겪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은 큰 징계를 겪습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시험이 많아도 낙심하지 마세요.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큰 시험이 왔다면, 그만큼 강한 것입니다. 믿음의 수준이 높은 것입니다.
절망적인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마세요.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징계를 통해 거룩해지고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사람은 징계를 받으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사람을 원망합니다. 완악해집니다. 그래서 멸망합니다.
똑같이 환난을 겪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환난을 통해 은혜를 받고 좋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사람은 완악해집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과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다릅니다.
징계가 축복이 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어떤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와도, 그것으로 인해 더욱 거룩해지고 귀한 일꾼이 되셔서 큰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환난 많은 세상에서 사는 우리에게 큰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를 징계하신다는 것을 믿고 감사하여 징계가 축복이 되게 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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