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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11장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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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8 13:06 조회6,5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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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2010년 10월 29일(금요철야)

본문 / 히브리서 11:29~31

 

믿음의 힘은 대단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도 능력이 대단합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손이므로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실수가 없고 빈틈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믿음은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만큼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한 백부장을 만나셨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지만 믿음이 대단했습니다.

백부장이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마 8:6)”라고 예수님께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마 8: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고 할 텐데,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마 8:8)”라고 말했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안수기도하실 필요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집에까지 오실 필요도 없이 말씀만 하시라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니이다(마 8:9)”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같은 인간도 말하면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 순종하니까 예수님께서는 집에까지 오실 필요도 없고 자기도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저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되지 않겠냐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놀랍게 여기시고 백부장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 8:1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부장의 믿음이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제일 큰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마 8:13)”라고 말씀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았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만큼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 맹인을 만나셨습니다.

맹인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마 9:27)”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두 맹인에게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마 9:28)”라고 물으셨습니다. 맹인들이 “주여 그러하오이다(마 9:28)”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믿음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귀신들린 아들을 가진 아버지에게 예수님께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막 9:21)”라고 물으시자 그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 9:21~22)”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아이의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면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막 9:24)”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시며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막 9:25)”고 말씀하시자, 귀신은 소리를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믿음만 있다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큰 손을 움직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역사적인 인물들이 소개되어있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기생 라합 등 믿음의 사람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9절에 보면,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서 가나안 땅을 향해서 갈 때, 홍해가 그들 앞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이 모든 것을 믿음으로 했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한 것도, 홍해를 건너간 것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었던 것 하나하나가 믿음으로 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가나안으로 향하게 한 이 일을 믿음으로 한 일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 31절에 보면,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완전히 멸망시킬 때, 기생 라합과 그의 가족들은 모두 구원받았습니다.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숨겨주었습니다. 탄로 나면 죽는데도 라합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라합은 홍해를 갈라 육지 같이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두 정탐꾼을 숨겨주었습니다. 그래서 기생 라합이 한 일을 가리켜 믿음으로 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시대마다 위대한 역사를 이룬 사람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믿음으로 위대한 일을 해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큰 일을 행하실까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 11:39)”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큰일을 행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믿음만 가지고 나아가면,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잠언 1장 7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9장 10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의 지식을 다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니 결국 지옥의 멸망을 당할 사랍니다.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러나 다른 지식은 별로 없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아십니까? 목회자들을 통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경을 똑바로 알 뿐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 얻은 경험을 통해 체험적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고, 이런 일을 행하셨다고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지식적으로만 아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가, 얼마나 축복하시고 얼마나 사랑하시고 어떻게 함께하셨는가,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가를 체험해야 합니다.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확실히 아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고 체험하여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박신실이라는 여인을 알긴 아는데, 여러분이 박신실이라는 여인에 대해 대강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여인과 40년 이상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 여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제가 알고 있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그 동안 별별 일을 다 겪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나 되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믿음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산 믿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막연히 지식적으로 아는 믿음이 아니라, 삶 가운데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는 살아있는 산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말씀대로 얼마나 순종하고 행하느냐와 정비례 합니다. 믿음과 말씀에 대한 순종은 언제나 정비례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형편없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믿음이 커집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행위가 완전해서 구원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순종하고 사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큰 믿음이라야, 완전한 믿음이라야 구원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면 저도 구원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믿음만큼 자원해서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복된 삶을 삽니다.

그런데 도무지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전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영생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의 믿음은 힘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믿음은 쉽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와도, 말씀대로 사는 사람의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이므로 어려움을 이깁니다. 아무리 큰 시험이 와도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믿음의 힘이 대단하기 때문에 어떤 시험도 이깁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그들의 믿음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 걸고 지켰습니다. 풀무불에 들어가 죽었으면 죽었지, 그 말씀에 불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위해 목숨을 거는 믿음의 사람은 믿음이 얼마나 큰지 기적을 일으킵니다. 풀무불에 들어갔지만,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죽어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믿음은 힘이 없습니다. 쉽게 무너지고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완전히 무너집니다.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는 사람은 믿음이 힘이 없어서 작은 시험이 와도 감당하지 못하고 시험에 넘어져서 세상으로 나가 버리고 교회를 떠나고 맙니다.

 

신학박사 학위가 있다고 해서 믿음이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신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죽은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체험적인 믿음은 없습니다. 신학적 지식도 단지 머리로 아는 것이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본 체험이 없고, 누가 주님의 음성을 들은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지금까지 기도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신 분이 많을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체험적이 믿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을 가지고 있지 않으시기 때문에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만드셨기 때문에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입을 지으셨으므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귀를 지으셨기 때문에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육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뿐, 하나님께서는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떤 때에는 우리를 보시고 기뻐하시지만, 어떤 때에는 슬퍼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을 분명하게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습니까?

 

믿음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성경을 보십시오. 왜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없습니까. 그들의 하나님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다릅니까.

구약의 하나님은 지금의 하나님이시고, 예수님 때의 하나님은 지금의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히 변함없으신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신학학위가 있는가, 교회에 다닌 지 오래 되었는가가 아닙니다. 말씀대로 살았는가 살지 않았는가가 중요합니다.

 

유럽의 신학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주장하고,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합니다. 자유주의 신학 때문에 교회들이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예수만 믿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어느 종교에나 각각의 그리스도가 있으니까 어떤 종교를 믿어도 같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전도나 선교가 필요 없습니다.

유럽의 신학자들이 그렇게 가르치니까 거기서 배워온 사람들도 그렇게 주장합니다.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성경과 전혀 맞지도 않는 것을 가르치는데 그것을 따라가다 보니 교회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거나 믿어도 되니 교회에 갈 필요도 없습니다. 선교사도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사상입니다.

 

다른 종교인들과도 회합하고 같이 일하고 좋게 좋게 하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좋겠지만, 진리의 말씀을 놓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빼버리고 아무거나 믿어도 된다고 하니까 문제입니다. 한국에도 신학박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문을 닫고 그리스도인이 없어집니다. 성전은 어마어마하게 지었지만, 교인이 없어 교회를 판다고 내어 놓으니 얼마나 기막힌 노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똑바로 깊이 알 수도 없습니다.

 

사무엘상 2장 12절에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엘리는 대제사장입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제사 지내는 사역이 거룩한 일인데도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물을 자기 마음대로 잘라먹고 제사에 수종 드는 여인들의 몸까지 다 버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짓을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었고, 종교행위는 했지만 하나님을 알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말씀대로 사는 믿음을 가지셔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시고, 하나님을 알되 체험적으로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우리의 믿음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아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하나님을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강도와 사랑하는 마음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골리앗 앞에 나가 싸우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들 두려워서 떨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당당하게 나아가서 골리앗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다윗에게는 큰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고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며 기도생활도 많이 했지만, 밤새도록 양을 지키다보면 한밤중에 양을 잡아먹으려고 짐승들이 나타납니다. 때로는 사자, 곰이 나타납니다.

그때 다윗이 믿음으로 많은 체험을 했습니다. 곰과 사자를 때려잡아 양을 구하는 체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다윗은 체험했습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키가 크고 힘이 세어도, 다윗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아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능히 이긴다는 것을 알고 신뢰하니까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 왕 중에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다윗만 하나님 앞에 성전 지어 바치기를 소원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정성껏 모았습니다. 다윗에게는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준비해놓은 것으로 성전을 지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에 나아가 기도하고 말씀을 상고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믿음은 아버지 다윗의 믿음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살다 보니 믿음이 다 죽어버렸습니다.

자기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의 쾌락만 추구하면서 살다가 결국 이방 여자들을 수백 명씩 후처로 삼아서 데리고 살다보니 결국 우상숭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책망하셔도 솔로몬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들 대에는 나라가 두 조각이 나고 비참해졌습니다. 그 후손들이 믿음을 다 잃어버리니까 사신우상을 섬기고, 결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아름다운 성전이 다 불타고 말았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헤롯 왕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유대인의 마음을 사려고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 성전을 ‘헤롯 성전’이라고 합니다.

믿음 없이 지은 성전을 하나님께서 열납하셨을까요. 믿음 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지은 성전에서 온전한 제사가 이루어졌을 리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당시에 타락한 제사장들이 장사꾼과 짜고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양들을 비싸게 팔아 돈을 많이 벌어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 21:13)”라고 말씀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지을 때에 어떤 믿음으로 짓느냐도 중요하고, 성전을 지은 후에도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성전을 사용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성전을 지어놓고 어떤 믿음으로 예배드리느냐도 중요합니다.

 

교육관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물이 세워지는 것만 생각하지 마세요. 어떤 믿음으로 지어 바치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이 하나님 앞에 열납되어야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지어 바쳐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적고 몇몇만 믿음을 가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서운해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돈이 없어서 걱정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는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저는 교육관을 그냥 짓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교육관을 짓기 원합니다. 그뿐 아니라 교육관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이루어지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이 나오고, 그곳을 통해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육관이 되기 원합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대로의 그런 믿음으로 우리가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믿음으로 드릴 때 우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봉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헌금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린 여인을 칭찬하시면서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인이 행한 것이 전해지리라고 하시며 귀하게 여기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가 결혼하기 위해서 힘을 다해 모은 것을 모두 주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을 예수님이 칭찬하시면서 그 여인이 드린 것은 부자들이 더 큰 금액의 헌금을 드린 것보다 더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자기가 가진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보시고 공개적으로 칭찬하신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참 제자가 되고 순교자도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이 모든 사람들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느냐?” 똑같이 물으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베드로의 고백이 진심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행할 힘은 그에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후에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달라졌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나아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니까 그렇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 믿습니다. 하지만 왜 그대로 살지 못할까요? 마음은 원이로되 내 힘으로는 약해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목숨까지 내놓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령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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