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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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3-24 11:34 조회1,892회 댓글0건본문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2021년 08월 22일(주일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1~6
데살로니가전서 1장 7~8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습니다. 이를 통해 데살로니가교회가 좋은 교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9절에 보면,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랑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매우 흡족했습니다.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에 보면,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오실 날을 사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날을 기다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칭찬했습니다.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5~6절에 보면,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밤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낮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깨어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절벽에서 떨어졌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절벽에 튀어나온 나무에 걸렸습니다. 이 남자는 구조대가 올 때까지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 남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나무에서 떨어지면, 그 사람은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남자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어떠한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잠들어서는 안 됩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마음을 놓고 살 때가 있습니다.
첫째, 모든 일이 형통하고 잘 될 때, 마음을 놓기 쉽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길 때에는 하루도 마음 편히 쉴 수 없었습니다. 사울 왕이 언제 잡으러 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불안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다윗이 은혜 받고 기도한 내용을 보면, 아주 은혜롭습니다. 다윗이 은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때에 다윗은 신앙이 매우 강했습니다.
사울 왕이 죽은 후,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셨습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항상 이기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잘 나서 전쟁에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다윗에게 힘이 있어서 전쟁에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많은 나라를 정복했습니다. 다윗이 왕이었을 때, 이스라엘과 싸워 이긴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요압 장군이 전쟁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쟁터에 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지 않아도, 전쟁에서 이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전쟁터에 가지 않고 낮잠을 잤습니다. 다윗은 저녁 때에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었습니다.
다윗은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심히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다윗은 그 여인이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령을 보내 그 여자를 자기에게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임신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숨기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전쟁터에 있는 우리아를 오게 해서 집에 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삼하 11:11)”라고 말하고 집으로 가지 않고, 자신의 부하들과 더불어 잤습니다.
우리아가 다윗의 명령대로 하지 않자, 다윗은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주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삼하 11:15)”고 쓴 편지를 요압 장군에게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아는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장례가 끝난 후, 다윗은 사람을 보내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왔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다윗의 신앙은 완전히 바닥났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죄책감도 전혀 없었습니다. 다윗은 본래 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잔인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죄책감도 없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비유를 들어 다윗에게 자신의 죄를 깨닫게 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7~12절에 보면,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나단에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이에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삼하 12:13~14)”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다윗이 왕궁에서 하루에 세 번 기도했다면, 이런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그곳에서 날마다 기도했다면, 다윗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중ㆍ고등학교 6년 동안 하루에 세 번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학교에 갈 때,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저녁 먹은 후,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해야 할 것이 있으면,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해도 항상 은혜 받은 것은 아닙니다. 늘 응답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이 저를 넘어뜨리려고 해도, 저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습니다. 사탄이 저를 짓밟을 수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처럼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해도, 우리에게 어려움이 와도,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이길 것입니다.
둘째, 교만해질 때, 마음을 놓기 쉽습니다.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때, 아주 위험한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7일 동안 여리고 성 주위를 돌아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후, 이스라엘 백성은 기고만장했습니다. 그래서 아이 성을 정복할 때에는 자신의 힘으로 정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적은 수의 사람이 아이 성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패했습니다.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할 때,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할 때, 자신이 잘 났다고 생각할 때, 마음을 놓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미워하십니다(잠 16:5).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십니다(약 4:6).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대적하십니다(벧전 5:5).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망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능력 있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왕은 교만해지기 쉬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느부갓네살 왕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했습니다. 다니엘의 해몽을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다니엘 4장 29~33절에 보면,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경고를 잊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교만해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잘 나서, 제가 설교를 잘 해서. 제가 목회를 잘 해서 우리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우셨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주셔서 우리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라고 제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을 우리 교회의 당회장이시고, 저는 교육전도사처럼 충성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목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부름을 한다고 생각하며 목회했습니다.
사사기 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추수한 것을 미디안 사람들이 나귀를 끌고 와서 빼앗아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미디안과 싸울 군사를 모집했습니다. 3만 2천 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삿 7:2~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2만 2천 명이 돌아가고, 1만 명이 남았습니다.
사사기 7장 4~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드온은 3백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나아가 미디안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힘으로 싸워 이긴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려고 이렇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교만을 미워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10절에 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교만해질까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육체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자신이 연약하다는 것을 알 때,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약한 때가 가장 강한 때입니다.
셋째, 세상의 재미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할 때, 마음을 놓기 쉽습니다.
세상의 재미에 빠지면,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예배에 소홀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망합니다. 죽습니다. 저주 받습니다.
우리는 예배에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집에서 가족끼리 모여서라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앞으로 교회의 문이 닫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집에서 가족끼지 예배드리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어려움이 와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마음을 놓고 있으나, 마음 놓은 것을 깨닫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사인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인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라는 하나님의 사인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왜 훌륭합니까?
첫째,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둘째, 어디를 가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이런 삶이 평생 계속되어야 합니다.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12장 9절에 보면,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남방’은 애굽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옮겨갈 때에는 신앙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기근이라는 사인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0절에 보면,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절대 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마 10:29).
애굽에 기근이 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기근이라는 사인을 주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질문해야 합니다. 왜 기근을 주셨는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하나님께 질문해야 합니다.
오늘날 이 땅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인입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목숨 걸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갔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믿음이 병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두려웠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거짓말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인해 바로와 그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사라를 되찾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실수하지 않으려면, 아브라함이 처음 가졌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영적으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되니 한국에 영적 기근이 왔습니다. 그리고 영적 기근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첫째, 말씀의 기근을 겪고 있습니다.
아모스 8장 11~13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둘째, 말씀을 들어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썩은 나무로 지은 집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바람이 불면 한순간에 무너져버립니다. 우리나라는 썩은 나무와 같습니다. 타락했습니다. 부정부패가 심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22장 13~14절에 보면,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부르짖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지금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평생의 복이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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