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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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1 18:41 조회3,557회 댓글0건본문
성도들의 소망
성도들의 소망
2003년 06월 27일(금요철야)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4:13~14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성도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세 가지는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그 중에서 첫째가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깁니다.
둘째, 소망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으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사랑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고 받는 사랑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특별히 성도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랑이 있어야 이 세상의 빛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돈이 없는 사람입니까? 건강을 잃은 사람입니까? 소망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죽어도 소망 없는 사람들처럼 통곡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소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상황이 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 중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 소망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부귀영화를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소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안개처럼, 허무한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의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것에 대한 소망은 다 헛된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특별히 가져야 할 소망은
첫째, 하나님께 대한 소망입니다.
시편 146편 3~5절에 보면,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신실하십니다. 자비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인생을 의지하고, 물질이나 명예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호흡이 끊어지면, 도모하던 모든 일이 다 끊어집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아말렉의 후예인 하만은 왕이 자신을 신임하고 특별히 대우하니 기고만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자 자신이 세운 높은 장대에 자기가 매달려죽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하만에게 끈을 대고 소망을 두었던 모든 사람들 역시 모든 소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현재 힘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거나 그곳에 소망을 두면, 그때부터 그 사람이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버리실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말고,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며,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의지합니다. 그러나 재물이 있다고 해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이 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환난의 날에 재물은 아무 쓸모없습니다.
시편 62편 5~10절에 보면,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힘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주먹을 믿거나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큰소리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이 복이 있는 이유는
첫째, 구원의 소망이 오직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외에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없습니다. 구원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둘째, 천국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죽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소망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죽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1장 3~5절에 보면,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하여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만날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려고 애썼습니다.
이와 같이 천국의 소망이 확실한 사람들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만말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려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아주 인색합니다. 마치 백 년 천 년 살 것처럼 보물을 세상에 쌓아두고 삽니다. 그러나 천국에 대한 소망이 확실한 사람은 재물을 하늘에 쌓고 삽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는 농사를 지어서 풍년이 드니 많은 재물을 쌓아두기 위해 창고를 짓고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라고 물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천국에 대한 마음이 없고 소망도 없었습니다. 오직 이 세상에 살 동안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색하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열심히 재물을 쌓아두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대한 소망이 확실한 사람은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항상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장차 주님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 영광 중에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삶의 자세부터 다릅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며 삽니다.
골로새서 3장 5~10절에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항상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이 땅의 지체를 죽입니다. 타락한 모든 습관, 버릇,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고 새롭게 살아갑니다.
천국 소망이 확실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언제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천국 소망이 확실하다면, 언제나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생활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큰 부자로 얼마든지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 수 있었지만, 늘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 이유가 히브리서 11장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인생은 나그네로 잠시 세상에 있다가 가는 것이요,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거기에 소망을 두고 살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대궐을 짓고 살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습니다. 이는 경건한 삶을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주님, 오늘도 함께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제 소원은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며, 항상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경건하게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천국 소망이 확실한 사람은 열심히 천국 복음을 전하고 삽니다. 한 사람이라도 천국에 가서 구원의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 열심히 전도합니다. 천국에 가서 면류관 상급 받을 것을 생각하며 천국 복음을 전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분토처럼 버리고, 어떻게든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려고 평생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1~3)”고 고백했습니다.
넷째, 복음의 소망 때문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한 마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자기 행위로 구원받을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은 다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자는 구원 받습니다.
누가복음 5장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죄 가운데서 얼마나 고생하며 피곤한 삶을 살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 나오기만 하면 구원 받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고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 1:23)”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죄인들에게 소망을 주고, 믿는 자들에게 항상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로마서 15장 13절에 보면,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말씀을 성경에 기록해두셨습니다. 우리가 말세에 복음의 소망을 가지고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섯째, 부르심의 소망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1장 6~7절에 보면,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에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정하셨고, 불러주셨고, 부르신 자를 의롭게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를 다시 영화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저는 이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저와 여러분이 잘나서 훌륭해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십니다. 한 번 택하셨으면 끝까지 택하십니다. 한 번 부르셨으면 끝까지 부르십니다. 한 번 구원하셨으면 영원히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시려는 뜻이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29절에 보면,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행실이 거룩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도리어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벧전 3:9).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을 때에 잘 참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우리의 소원이 축복이 되리라는 소망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는 좋은 마음이 생기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 마음을 주시는 이가 성령님이십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에 보면,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못하지만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살고자 하는 착한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 계획, 삶의 목표는 반드시 축복이 된다는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성령께서 주신 감동에 따라 성전을 지어 바쳐 싶은 소원이 생겨 성전을 짓기 위해 금은보화를 모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마나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까! 결국 그의 아들 대에 가서 이루어지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소원은 축복이 됩니다. 그런 소원을 갖고 살면 축복을 받는다는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에 보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살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우리를 존중히 여기시고 높여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 반드시 축복이 된다는 믿음과 소망을 굳게 붙잡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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