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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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7 16:55 조회3,368회 댓글0건본문
사도 바울의 행복
사도 바울의 행복
2007년 12월 16일(주일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2:17~20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보기에는 행복해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 자신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힘들어서, ‘빨리 죽었으면’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우리가 볼 때는 불행해보이고,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행복하게 삽니다.
여러분은 이 두 사람 가운데 어디에 속합니까?
행복한 사람들도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행복한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가치관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행복합니까?
그러나 누구에게나 행복할 때의 공통점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 받을 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예외는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사랑을 받을 때에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사랑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 받을 때 고마워할 줄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받을 때보다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입니다. 얼굴만 봐도 좋은 사람, 생각만 해도 좋은 사람,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 사람, 꿈속에서 만나도 좋은 사람,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좋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사도 바울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2장 17~18절에 보면,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과 떨어져 있습니다. 몸은 함께 있지 않지만 마음은 항상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 곁에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이 얼마나 보고 싶고, 얼마나 만나고 싶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서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 때문에 행복했던 이유는
첫째,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전도해서 구원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5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한 영혼이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하늘에서는 기뻐서 천사와 함께 천국 잔치가 열립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그곳에 3주간 머물며 전도하는 동안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전도해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장성한 신자는 자신만 신앙생활을 잘하여 예수 잘 믿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장성하면 결혼해서 자녀들을 낳고, 그 자손들이 번창해야 하는 것처럼, 장성한 신자는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수많은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고 구원 받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해서 구원 받은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되고, 어떤 사람은 수십 명이 됩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이라도 복음을 전한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은 그 한 사람 때문에 천국에서 천사들과 함께 기뻐하시며 잔치를 베푸셨을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반 친구에게 전도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그 친구는 저를 볼 때마다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전도해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기쁘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둘째, 그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구원 받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그러나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6~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기록했습니다.
첫째,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둘째, 사도 바울과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셋째,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넷째,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습니다.
다섯째, 우상을 버렸습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은 참으로 모범적인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계속 부흥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을 통해서 구원 받은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부흥되는 교회의 특징은 예배 시간마다 등록하는 새가족이 많습니다. 이런 교회는 계속 부흥됩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하는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을 볼 때, 사도 바울은 아주 행복했습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할 경우, 우리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9세 때 친구들과 함께 모다카이 헴 목사님이 천막을 치고 전도집회하는 곳에 참석했습니다. 설교 후 목사님은 “예수 믿을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친구들과 함께 일어나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며 안수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이 때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날 이후,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주의 종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내 인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지난 50년 동안 수천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를 통해 구원 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모다카이 목사님이 19세 청소년인 빌리 그래함에게 안수할 때, 빌리 그래함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빌리 그레이엄 모다카이 목사님보다 백 배, 천 배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한 사람 가운데에도 빌리 그래함 같은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무디는 어렸을 때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은혜 받고 헌신해서 세계적인 부흥사가 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킴벌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구둣방에서 일하는 소년 무디를 찾아와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킴벌은 무디가 위대한 부흥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디를 통해 구원 받은 사람이 백 만 명이 넘습니다.
여러분이 가르치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장차 자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어떻게 쓰임 받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전도한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볼 때, 너무나 행복한 것입니다.
셋째, 장차 그리스도의 날에 그들이 사도 바울의 영광이 되고, 면류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참 힘들고, 전도하다보면 고난이 많습니다. 그러나 전도를 통해서 예수 믿고 구원 받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큰 축복이요, 영광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가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하신 사람들은 누구를 통해서든지 반드시 예수 믿고 구원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를 통해서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것은 큰 축복이요 영광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환난이 닥쳐올지 모릅니다. 시험도 많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에 나오니, 갑자기 어려움이 닥칩니다. 그래서 교회 나오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환난은 시험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남편이 핍박하여 낙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낙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전도해서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전도한 사람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분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끝까지 수고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 생활에서 성공했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면류관은 왕이 쓰는 왕관이 아닙니다. 승리자에게 씌워주는 면류관입니다. 마라톤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씌워주는 월계관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만왕의 왕으로, 만유의 주로, 심판주로 오십니다.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은 심판을 받아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한 대로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편안하게 예수 믿으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24, 막 8:34).
우리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면류관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4장 29~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천사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내려와 죽은 자는 부활하고,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산 사람들은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4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0~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자기만 은혜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영의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방 모임을 할 때마다 사랑원들에게 은혜 받은 말씀을 나누어서 믿음을 튼튼히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알곡 신자가 되어 예수님이 오시는 날, 모두 들리어 하늘로 올라갑니다.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2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이 신앙생활 잘하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사도 바울은 언제나 행복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날, 그 앞에 섰을 때,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이 사도 바울에게 영광이 되고, 면류관이 된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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