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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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4 21:51 조회3,546회 댓글0건본문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함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함
2007년 10월 14일(주일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2:9~12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한 것은 3주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심한 핍박으로 인해 그들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후에 데살로니가교회가 믿음이 건강한 교회로 잘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과 실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을 것입니다.
사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복음을 3주간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 믿은 지 며칠 되지 않은 미성숙한 젖먹이 신자와 같았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7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치 젖먹이를 키우는 유모의 심정으로 그들을 칭찬하고 격려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 어린 아이들에게 무조건 잔소리하고 야단치면, 아이들의 성격이 나빠지고 비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조금만 잘해도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소년이 여덟 살 때 아버지로부터 그림책 한 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 책에는 트로이가 불타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아빠, 내가 자라서 트로이의 유물을 찾아내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것 참 대단한 비전인데…”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소년은 아버지의 격려에 힘입어 고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터키 북서쪽 언덕에서 찬란한 에게 문명의 실존인 트로이의 유물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바로 세계적인 고고학자 슐리만 박사입니다.
또 다른 한 소년이 작곡가인 아버지 곁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작곡하다가 상상력을 잃고 긴 한숨을 토해냈습니다.
그 때 소년이 “아빠, 내가 한 번해볼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빠는 아들에게 작곡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제멋대로 적어 놓은 악보를 보고 . “이것 참 대단한 작품인 걸.”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칭찬과 격려에 힘입어 소년은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한 요한 슈트라우스입니다. 아버지의 칭찬과 격려가 위대한 인물을 만든 것입니다.
자녀들을 키울 때, 아이들이 잘 못하는 일이나 실수한 일은 말하지 말고 “너는 어렸을 때 착한 일을 많이 했단다. 칭찬받을 일도 많이 했단다. 너는 훌륭한 일도 많이 했단다.”라고 착하고 예쁘게 자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면, 이런 말에 힘입어 아이가 훌륭하게 자랍니다.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2장 11절에 보면,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만들어야 사람 노릇을 합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일꾼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교회의 일꾼으로 만들어야 일꾼 노릇을 제대로 하게 됩니다. 마치 사랑 많은 인자한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오래 전에, 제가 저희 교회 자매의 결혼주례 한 적이 있습니다. 주례사에서 “시부모에게 사랑받는 효부가 되려면, 월급을 받으면 하나님께 십일조를 먼저 드리고, 그 다음에는 양가 부모님에게도 십일조를 드려라.”고 권면했습니다. 그 자매가 이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저희 집안에 일찍이 장로가 되신 분이 계십니다. 이때도 저는 최고로 존경받는 장로가 되는 법을 이렇게 권면해주었습니다.
1. 예배시간 30분 전에 가서 예배를 준비한다.
2. 기도생활에 본이 된다. 새벽예배에 꼭 간다.
3. 십일조와 감사헌금의 본을 보인다.
4. 솔선수범하여 봉사하되, 보았어도 못 본 척, 들었어도 못 들은 척 말없이 충성한다.
5. 진리 문제가 아니라면 내 주장이나 고집을 부리지 말고, 목사님의 의견에 동의하라. 그리하여 담임 목사와 교회의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충성하라.
6. 교회재정이 모자라면 무명으로 감사헌금을 해서 채우라.
7.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이나 장로님 같은 외부의 손님이 오셨을 때는 반드시 식사를 대접하고 교통비를 드려라.
8. 제직들과 청년들과 봉사자들을 항상 칭찬하고 격려하라.
9.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에 항상 앞장서라.
그 당시 교 인수가 2~3백 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제가 권면한 대로 실천하는 본을 보인 훌륭한 장로님 부부로 인해 그 교회가 부흥하여 1,500명이 넘는 큰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처럼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교인들은 ‘교회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성도들과의 교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교회 봉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교역자 대접은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 교회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은 성도들이 솔선수범하여 교회에 대해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교역자를 비난할 일이 생겼을 경우에는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때 오해가 풀리지 않으면, 교역자의 설교가 귀에도 들어오지 않고, 아무런 은혜도 받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는지 모릅니다.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 3주밖에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에,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은 바울과 실라에 대해 잘 몰랐을 것입니다. 아는 것이 있었다면 그들은 ‘주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한 사람들이며,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혀있다가 나온 사람들이고, 데살로니가에서는 핍박자들 때문에 3주 만에 떠난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입니다.
따라서 핍박자들은 바울과 실라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아마 바울과 실라를 비난하고 이간시키는 나쁜 말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대개 이런 경우 믿음이 약한 신자들은 낙심하기 쉽습니다. 또 이간질한 사람들의 말만 믿고, 그들과 합세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바울과 실라는 인격적으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또 그들이 전한 복음까지도 저버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의 인격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체로 교역자가 인격적으로 존경받으면, 성도들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잘 받아들여 은혜를 받고 믿음이 쑥쑥 자랍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교역자가 인격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면,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성도들이 은혜를 받기는커녕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어찌하든지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낙심시키기 위해 교역자들을 비난하고 이간시키는 사람들을 부추기고 동원하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성전을 여러 번 건축했습니다. 성전을 건축할 때마다 파출부를 해서라도 건축헌금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자로 살면서도 헌금은 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성도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교회 개척 초기에는 목회자의 심방을 기뻐하여 서로 대접하려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반면, 목회자가 대접받으려고 심방 다닌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했을 때, 터무니없이 저를 비난하고 다니는 집사가 있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그 집사가 얼마나 미운지, 그런 마음으로는 설교 준비도 잘 되지 않고, 설교를 하다가도 악담이 나오기도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이 박수치고 교회는 부흥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집사님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함께 동역했던 교역자들이 지금도 그때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때 흘린 저의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저의 기도대로 그 집사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고, 그 후 그 집사님이 새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은혜를 받아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돌이켜 보면 이제껏 우리 교회에 와서 변하지 않은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수영로교회가 부흥하는 비결입니다.
성경에 보면,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핍박자들로부터 바울과 실라에 대한 좋지 못한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과 실라가 전도한다고 성도들의 돈을 뜯어가려고 한다고 하며 아예 상대해서는 안 될 사람인 것처럼 비난하기도 하고, 심지어 과부 집에 찾아가서 음란한 짓을 하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만 들으면, 바울과 실라만 몹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울과 실라가 전한 복음까지 저버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결국 바울과 실라는 이런 비난에 대해 변호하는 편지를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9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바울과 실라는 어떤 집에 가서도 제대로 식사 대접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사도행전 16장 14~15절에 보면,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예수님을 믿게 된 루디아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해준 한 바울과 실라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루디아는 “나를 예수 믿는 자로 안다면 내 집에 들어와서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바른 신앙 아닙니까.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된 빌립보교회는 감옥에서 고생한 바울을 물질로 돕는 유일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5~20절에 보면,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처럼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물질을 지원해주었던 빌립보 교인들은 참으로 모범적인 교인들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9~14절에 보면,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1~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런 말을 감당할 수 없는, 밥을 먹지 못하고 젖만 먹는 어린 젖먹이 신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 교회의 성도들의 수준을 따라서 젖을 먹이기도 하고 밥을 먹이기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6절에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 보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회에서 충성하는 장로님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고, 말씀을 가르치는 교역자에게는 더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성도들의 믿음의 수준이 젖먹이와 같았고, 그들 중에는 이간질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2장 9~11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이간질한 사람과 비난한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가를 깨닫게 하려고 이렇게 변호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향한 애정 어린 사랑으로 권면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기에 합당한 자녀로 살기 원하는 마음으로 권면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모두 충성된 일꾼이 되어 장성한 성도로 성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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