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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4장

복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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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24 17:47 조회3,3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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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삶

 

복된 삶

2007년 08월 17일(금요철야)

본문 / 빌립보서 4:15~20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천국시민이 된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영생 복락을 누릴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저주를 속량 받은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복 받은 자로서 마땅히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 받은 백성이므로 마땅히 복된 삶을 살아야 하고, 복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라도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복된 삶을 살면, 믿는 사람들이 ‘야! 나도 예수 믿어야 되겠다. 나도 교회 가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복된 삶을 살 때 저절로 전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에 개척교회에서 사역했습니다. 제가 개척교회에서 사역하니 우선 우리 가족과 친척, 그리고 제가 아는 사람들을 모두 교회에 나오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친척들이 우리 때문에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친척들 중에 예수님을 잘 믿는 저와 제 동생이 복을 제일 많이 받았습니다. 1960년대에는 대학 공부를 한 사람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제 동생은 가난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대학 공부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예수님을 잘 믿어서 복을 받고 잘 살게 된 것을 친척들이 보며 아주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니까 전도하기가 아주 쉬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복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집, 즉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예배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복된 삶을 살아가려면,

첫째, 기도생활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기도생활은 생명 호흡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생활이 살아있으면, 신앙생활이 살아납니다. 반대로 기도생활이 죽으면, 신앙생활이 죽기 시작합니다. 기도생활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생활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기도생활이 죽으면, 신앙생활이 죽어버립니다. 기도생활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호흡을 잠시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계속 숨을 쉬어야 합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생활은 호흡과 같습니다. 영적 호흡과 같아요. 기도생활을 힘 있게 하는 사람은 힘 있게 호흡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기도생활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 평생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찾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기도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기도시간은 하나님을 붙잡는 시간입니다. 기도시간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사 왕은 하나님을 찾으므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역대하 14장 2~7절에 보면,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나라에 평안을 주셔서 평안히 잘 살게 된 것입니다.

 

역대하 15장 2절에 보면,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아사 왕은 하나님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역대하 15장 15절에 보면,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사 왕은 평소에도 하나님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역대하 14장 9~13절에 보면,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 하여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 아사가 마주 나가서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 전열을 갖추고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아사와 그와 함께 한 백성이 구스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살아 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의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노략한 물건이 매우 많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스 사람 세라가 백만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왔을 때에도 아사 왕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백만 군대가 쳐들어왔는데, 아사 왕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으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치셨습니다. 하나님이 치시니까 살아남은 자가 없었습니다.

백만 군대가 쳐들어왔으니 먹을 것과 물자, 무기와 군수 물자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들이 도망가고 죽어버렸으니 그것을 다 빼앗아 나라가 부유해졌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이렇게 축복을 받습니다. 환난이 축복으로 바뀝니다. 전쟁이 오히려 나라를 부요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역대하 16장에 보면, 아사 왕이 35년 동안은 잘 지냈는데, 36년 째 되는 해에 노망이 들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 왕이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찾으면 되는데, 왕궁 곳간, 여호와 전의 곳간과 왕궁의 곳간의 은, 금을 내어다가 다메섹에 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며 우리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이렇게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이방 나라의 왕을 의지한 것입니다.

역대하 16장 7~9절에 보면, 선견자 하나니가 “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아사 왕이 오히려 화를 내면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학대하고 못된 짓을 하다가 발에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병들어 위독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을 불러다가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2년 후인 41년 째 되는 해에 죽었습니다.

35년 동안 하나님을 찾으며 복을 받았으면, 끝까지 하나님을 찾아야 할 텐데, 아사 왕은 하나님을 찾는 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기도생활 하다가 중단하지 마세요.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기도생활은 죽으나 사나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중단하는 것은 손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 기도합니까.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이 공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생활하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생활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생활은 계속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기도하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 앞에 작정하고, 자신이 기도하는 방에서 기도하는 다니엘처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의 일생을 보면, 기도생활에 성공하니까 나라가 여러 번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다니엘은 계속 총리로서 등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고레스 왕 때에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70년 만에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끝까지 기도생활을 해서 이스라엘 백성도 복을 받고, 자신도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처럼 기도하셔서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 가족은 물론, 우리 교회가 복 받고, 민족이 복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생활의 기본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기도생활을 중단하면 안 됩니다.

 

둘째, 항상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사는 사람.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 가운데 사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을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 같은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이 살아납니다. 말씀을 멀리하면, 신앙생활이 죽습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묵상하는 자들은 복을 받습니다.

 

신명기 6장 4~9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냉장고에도 말씀을 붙이고, 화장실에도 말씀을 붙이고, 거울에도 말씀을 붙여두어서 항상 말씀을 보고 읽고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누웠을 때에나 일어났을 때, 길을 갈 때에도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울 왕이 왜 망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사모해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품에 안고, 하루라도 성경을 펼치지 않는 날이 있으면 안 됩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고, 밤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루에 한 번 이상 성경을 펼치게 됩니다.

그러나 1주일 내내 성경을 아무렇게나 뒀다가주일에 성경에 쌓인 먼지를 털고 교회에 오면 곤란합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호세아 4장 6~7절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타락하게 되는데, 번성할수록 더 타락합니다. 잘 살면 잘 살수록 더 타락합니다. 얼마나 속상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항상 말씀으로 무장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느 장로님은 성경을 평생 한 번도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신학생은 신학교에서 공부하는데도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문제가 아주 많습니다.

신앙생활은 내 의지와 내 열심으로 잘하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 가운데 살아야 말씀의 은혜로 말미암아 올바르게 믿고 올바르게 살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게 됩니다.

 

셋째, 예배 생활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예배 생활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려 영광을 돌리는 생활입니다. 특별히 예배 중의 설교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영의 영식이 되고,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고, 은혜 가운데 살게 됩니다.

 

열왕기하 12장 2절에 보면,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에게 항상 말씀을 잘 가르치며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요아스가 교훈을 받을 동안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어 버리니까 교훈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어져서 변절합니다.

 

역대하 24장 15~23절에 보면,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 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지 1년 만에 아람 군대가 쳐들어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 모든 방백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와서 하나님을 저버리게 만들고, 우상숭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다 죽었습니다.

 

역대하 24장 23~25절에 보면, “일 주년 말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1년이 되니까 전쟁이 일어나서 크게 부상을 당하고, 반란이 일어나서 결국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훈을 받고 은혜를 받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는데, 교훈 받는 것이 끊어지면, 믿음이 점점 식어지고, 신앙이 약해져서 타락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교회에 나와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타락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솔로몬은 기도생활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솔로몬은 성경 볼 시간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유지할 길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으면, 타락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을 목숨처럼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우선 믿음이 약해져서 점점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욕을 따라 살게 됩니다.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의 종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으면, 복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자라 할지라도 신앙생활의 기본을 목숨처럼 지키지 않으면, 복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마세요. 기도생활을 계속하세요. 성경을 열심히 읽으세요. 예배생활에 성공하세요. 예배생활에 성공하면, 신앙생활에 성공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된 삶을 살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장 8~12절에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온 백성과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므로 저주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면서 어떻게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우리가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하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믿음만 있으면 구원 받습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은 혼이 없으니까 죽은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나에게 믿음이 있다면, 믿음이 있는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나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믿음만큼 하나님께 헌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귀하게 보시고, 믿음을 축복하시고, 믿음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도 믿음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세요.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가 제일 중요합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그 사람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보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봉사할 때에도 사람들이 알아주느냐 알아주지 않느냐를 신경쓰지 마세요.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예배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몸을 받으시옵소서.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립니다.”라는 자세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내 몸 전체를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 있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자세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고백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도 드리지 못하면서 주를 위해 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던지, 재물을 섬기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섬겨야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한다면, 그때부터는 물질이 우상이 되어버립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고, 드려도 더 드리고 싶어서 자원해서 기쁨으로 드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아깝고, 그것 때문에 시험에 든다면,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으로 서지 못한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된 삶을 살지 못하는 세 번째 이유는 나눔의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눔의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잠언 11장 24~25절에 보면,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복된 삶을 살려면, 나눔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구제를 좋아하는 사람,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풍족해진다고 했습니다. 남을 윤택하게 하는 사람은 자기도 윤택해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잠언 14장 31절에 보면,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대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학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양과 염소의 비유와 같은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5:40).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사랑을 베풀고 잘 대접한 것은 주님을 잘 대접한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멸시하고 학대한다면, 주님 앞에서 못된 짓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잠언 19장 17절에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는 것은 하나님께 저축해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선행을 반드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잠언 28장 27절에 보면,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나눔의 생활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우면, 적게 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많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요한일서 3장 17~22절에 보면,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면,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됩니다. 우리가 궁핍한 자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고 나눔의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갈릴리 바다와 사해를 아실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빗물이 들어가고, 시냇물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거기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물이 강을 이루고, 시내를 이루어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가 있어서 물이 항상 살아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물고기들이 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아먹고, 호숫가에서 많은 집이 있고, 많은 사람이 복을 나누면서 삽니다.

그러나 사해는 갈릴리보다 더 크고 물이 엄청나지만, 그곳으로 물이 들어가기만 할 뿐,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이 썩어서 거기에는 생명체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바다를 왜 지구상에 두셔서 우리에게 교훈을 하시는가 하면, 우리에게 사해와 같은 인간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저 받는 것만 좋아하고, 들어오는 것을 챙기기만 하며 바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습니다. 망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선을 베풀면, 반드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됩니다. 좋은 일을 하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남에게 악을 행하면, 악이 돌아오게 됩니다.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빌립보교회는 참으로 복 받을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4장 15절에 보면,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해서 세운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주고 받는 일을 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는 달랐습니다. 주고받는 일에 참여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 밖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최고의 공부를 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교회가 생겼습니까. 그런데 교인들이 주고받을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는 달랐습니다. 빌립보서 4장 17~19절에 보면,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빌립보교회에서 사도 바울에게 얼마나 풍족하게 도와줬는지, 사도 바울이 “내가 풍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참으로 복 받을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나눔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을 돕고, 어려움 당하는 선교사들을 돕고, 대접해야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가 돕지 않아도 누가 돕겠지. 내가 대접하지 않아도 누가 대접하겠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누가 돕겠지’라고 생각하고 구경하기만 하면, 나눔의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기회가 없습니다.

언제나 나눔의 생활이 몸에 배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변에서 찾으세요. 내가 지금 이 시간에 도와야 될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실천해보세요. 이런 성도들은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눔의 생활을 하면, 여러분은 물론이고, 여러분들의 자손들이 복을 물려받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가난한 이웃과 친척에게 베풀면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 자손 대에 가서 하나님이 얼마나 부요하게 갚으시는지 모릅니다. 심어놓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나눔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겠습니까. 얼마나 행복한 세상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복된 삶을 살아오셨습니까?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어있어야 됩니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눔의 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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