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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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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8 15:59 조회3,3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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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사람

 

믿음으로 사는 사람

2002년 12월 13일(금요철야)

본문 / 빌립보서 1:20~24

 

30년 전만 해도 부산 땅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수도 적었고 규모도 작아서 천 명이 되는 교회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할 당시, 주일에 성경을 들고 교회에 가는 사람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전도해보면 불교를 믿는다면서 아예 전도를 받지 않으려는 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은 전도하기에 힘든 곳임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기독교인들도 많아졌고, 교회 수도 많아졌고, 교회의 규모도 커졌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많이 좋아졌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옛날보다 교회도 많아졌고, 신자들도 많아졌지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믿음으로 살지 않으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다르게 사는지, 그들과 다를 바 없이 비슷하게 사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제법 큰 회사에 중역으로 일하시는 분이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분은 술도 잘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교회에 나오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일을 지내고, 월요일에 회사에 가서 수영로교회를 자랑하고,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사장님에게 얘기했습니다.

어느 날, 사장님이 자기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더랍니다. 알고 보니까 사장님은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었답니다.

자기가 그 회사에서 오랫동안 몸담고 열심히 일해서 중역이 되어 사장님과 늘 함께 있었지만, 사장님이 예수님을 믿는 분이시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에 이분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장님이 평소에 담배도 피우고, 술도 잘 마시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고, 전도의 문을 닫히는 일이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믿음의 사람은 성경 말씀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믿음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진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어떻게 아무렇게나 살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성경에 보면, 미래에 될 일을 미리 알 수 있습니다. 태초에 있었던 일부터 장차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일어날 일과 또 그 후에 될 일들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참 놀라운 사실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도 어긋난 것이 없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성경에서 잘못된 것을 찾아보려고 연구했지만,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성경의 오류를 찾아서 기독교가 틀렸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다가 오히려 성령 받고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독교인이 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영광 중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심판을 받게 되고 영원한 멸망을 당합니다.

이 사실은 아는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서 어떻게 아무렇게나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핍박이 있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어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칭찬을 듣게 되고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책망을 듣고 부끄러움을 당할 입니다. 그 마음에 믿음이 있어 구원 받을지는 모르지만, 이 땅 위에 살면서 믿음으로 살지 않고, 마치 믿지 않는 사람처럼 살았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구원을 받겠습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장차 주님을 만날 때에 칭찬을 듣고 상급 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믿음으로 삽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고난이 많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딤후 3:12)

 

예수 믿는 가정 안에서도 때로는 핍박을 받습니다. “예수 믿어도 적당히 믿지, 너같이 예수에 미쳐서 되느냐”라고 핍박합니다.

거룩하게 살고 싶고, 경건하게 살고 싶고, 깨끗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은혜 받지 아니하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새벽에도 교회에 나갑니다. 남들이 보면 예수에 미친 사람처럼 보입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핍박을 받습니다. 우리 교회의 권사님 한분은 집도 없고 재산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혼자 사시는데 얼마나 믿음이 좋으신지, 건축헌금을 천만 원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보다 잘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 권사님을 욕합니다. 자기 주제 파악도 못하고 아무것도 없으면서 헌금을 천만 원이나 했다고 욕합니다. 자기가 더 잘살면서도 헌금을 얼마 못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텐데, 오히려 예수를 잘 믿으려는 사람을 핍박합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려면 핍박이 있습니다. 핍박을 감당하려고 각오해야 합니다. 경건하게 살려면 생명을 걸어야 되고 욕먹는 것, 흉보는 것, 조롱하는 것, 비난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영광의 면류관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학생시절에 특별나게 학생들 앞에서 기도하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부끄럽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친구가 놀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노래할 시간이 있으면, 저는 언제나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중고등학교 전교생이 모여서 행사를 가질 때면 학년별로 대표가 나가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 학년 대표로 나가서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라고 당당하게 불렀습니다.

지난달에 총동창회 기독교신우회 총동원집회가 있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설교했지만, rm 날도 제가 설교하면서 옛날을 생각했습니다. 학생시절에 전교생 앞에서 찬송가를 불렀던 것을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동창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가 말씀을 전하는 목사로 서게 된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여러분, 우리가 경건하게 살려면, 핍박이 있다는 것을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누리게 될 영광을 알기 때문에 어떤 환난과 핍박이 있어도 잘 참고 견딥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서 예수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보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1~42절에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영광으로 알고 기뻐하며 쉬지 아니하고 더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둘째,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될 줄 알고, 천국이 이 세상보다 얼마나 좋은지 알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죽음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때에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소망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갈 곳이 어떠한 곳인지 알기 때문에, 그 날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천사와 같이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죽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어느 집사님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자녀들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집사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여기에 천사들이 와 있구나.”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천사들이 마중 나온 것을 집사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죽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소망이 너무나도 확실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절망이 없습니다. 죽음이 와도 기쁨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셋째,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비전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위대한 비전을 가지고 삽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비전이 이 민족을 복음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학생이었지만, 은혜 받고 나니까 ‘나는 천국에 간다. 예수님을 만날 것이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때 저는 학교에서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제가 미술을 잘 하고, 글씨를 잘 써서 우리 반 환경정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1~2학년 선생님들의 일도 도와드렸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얼마나 저를 좋아하시는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저를 안아주셨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저는 제가 천국에 갔을 때 주님께서 저를 안아주시는 것을 상상해봅니다. ‘어떻게 살다 가면 주님께서 기뻐하실까?’라고 생각해보니까 전도를 많이 해서 많은 영혼을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도하기 시작하니까 친구들이 저보고 “정목사” 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 이 백성을 몽땅 예수 믿게 해야 되겠다. 이 나라, 이 백성을 몽땅 구원하는 목사가 되어야겠다. 그런 목사가 되려면,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비전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다가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삶이고 가장 복된 삶인지 알기 때문에, 비전이 자기 눈앞에 확실하게 보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교회 청년회에서 만나 결혼하게 된 두 사람이 결혼식을 앞두고 목사님을 찾아와 결혼식 때에 부르는 찬송가를 바꿔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찬송가 552장 〈아침 해가 돋을 때〉를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찬송가 4절에 보면, “밤낮 주를 위하여 몸과 맘을 드리고 주의 사랑 나타내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라고 되어있습니다. 평생 이렇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변호사인 신랑은 자신도 고시에 합격해서 법관 될 준비 중이었고, 신부도 아버지가 대사로 평생 여기저기 다니셔서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외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완벽하게 준비 된 신랑 신부였습니다.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청년들인데, ‘밤낮 주를 위해서 몸과 마음을 드리고 이 세상에서 햇빛 되게 하소서’라는 소원을 가지고 결혼식 때에 이 찬송을 부르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청년들입니까.

 

여러분, 우리나라에 걱정스러운 것이 많지만, 이런 청년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때 소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전 세계를 다녀보면, 교회를 욕먹게 하고, 주님을 욕먹게 하는 사람도 많지만, 정말 감동적이고 헌신된 훌륭한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성도들이 있는 한 우리나라와 한국 교회는 소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돕고 있는 김해준 선교사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가 됐습니다. UCLA대학의 교수가 되어서 평생 영광과 명예를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혜 받고 난 후, 전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를 하고, 복음을 제시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학생들이 학교에 고발해서 교수를 그만두든지 전도를 그만두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수 노릇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전도는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교수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선교하고 있고, 북한에도 여러 가지 계획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힘들게 선교하시다가 고생을 많이 해서 건강이 나빠져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그분은 생명을 건 분이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추운 산길을 혼자 몇 시간 동안 걸어가면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병이 다 없어졌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비전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삽니까. 여러분의 평생의 비전이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넷째,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사랑의 수고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살기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다.

 

시편 8편 1절에 보면,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8편 3~5절에 보면,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8편 9절에 보면,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8편은 다윗이 은혜 충만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감격해서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깨닫게 되니까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시편과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남을 사랑할 줄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되고, 기쁨과 행복이 넘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게 되고,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바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짓지 못한다니까 아들이 성전 짓는 그 날을 바라보고 평생 엄청난 금은보화를 모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사울은 아무리 악하다 해도, 그를 죽일 수 있는데도 죽이지 않고 나중에는 자손들까지 잘 살게 해주고 돌봐주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고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저는 ‘모든 우주 만물, 그 모든 생명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오늘도 사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모든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사랑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언제나 사랑이 넘칩니다.

그런데 사랑이 크면 클수록 사랑의 수고를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 부모자식 사이, 친구 사이에도 얼마나 사랑의 수고를 하는지, 그 사랑의 수고만큼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사랑의 크기는 수고의 크기로 나타납니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십자가를 지고, 사랑하는 만큼 희생하고, 사랑하는 만큼 헌신하고, 사랑하는 만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많은 사람일수록 사랑의 수고를 즐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 수고하기를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헌신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본문 빌립보서 1장 20~21절에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위해 죽고자 했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죽는 것을 유익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빨리 이 세상을 떠나 주님께서 계신 곳에 가서 사는 것을 더욱 좋아했고,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1장 23절에 보면,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조금 더 오래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잘 돌봄으로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하늘나라에 가고 싶은 욕망을 절제하고 순교하는 그 날까지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목회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더 좋다는 것을 압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사랑하고 사모하며 삽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 나라를 바라보며 삽니다.

 

모세가 애굽 왕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영광을 누리고 잘 살 수 있었지만, 그는 그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모세는 장차 받을 상급을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 왕족이 되어서 누릴 부귀영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이 세상 나라는 잠깐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이 세상의 영광은 잠깐이지만, 하늘나라의 영광은 영원합니다. 그 나라에서 받는 상급과 영광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물을 쌓아도 하늘에 쌓으려고 합니다. 내가 길게 살든지 짧게 살든지 ‘장차 그 나라에서 주님을 어떤 모습으로 만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내가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내가 상급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항상 그것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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