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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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04 12:50 조회3,501회 댓글0건본문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2005년 04월 29일(금요철야)
본문 / 빌립보서 1:12~21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눕니다. 과거는 지난 시간이요, 다가오는 시간을 미래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를 삽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과거에 바르게 살았다 해도, 현재에 바르게 살지 않으면 과거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반대로 과거에 불의하게 살았다 해도, 현재 그렇지 않다면, 과거는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입니다. 미래에 더 좋아지느냐 나빠지느냐는 현재에 달려있습니다.
사람은 만들어집니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변할 수 있습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집니다.
좋게 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쁘게 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만난 선배 중 한 명은 나쁜 짓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었을 때에는 정말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매일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합니다.
성공의 길과 실패의 길 중에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집니다. 축복 받는 길을 택하면 축복을 받지만, 저주 받는 길을 택하면 저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만드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계적으로 만드시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지혜와 인격을 주셔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즉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택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느 처녀가 결혼할 때가 되어서 선을 봤는데, 한 남자는 돈이 없지만 인물과 학벌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남자는 부자였지만 학벌도 별로 좋지 않고 인물도 없었습니다.
처녀는 고민하다가 가난하지만 인물과 학벌이 있는 사람을 택했습니다. 처녀의 집에서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나중에 남자가 직장에 취직했는데, 처가가 부자니까 남편은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도 성실히 하지 않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를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헤어졌습니다.
이 여자가 결혼에 실패한 이유는 신앙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바르지 않은 사람은 양심이 화인 맞아서 잘못되어 있습니다. 양심이 잘못되어 있으면, 어떤 신앙을 가져도 찌그러집니다. 양심의 그릇 안에 신앙을 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선택을 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행전 22장 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훌륭한 가문에서 신앙으로 자랐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 그는 주님을 위해 살다가 순교하는 것을 목표로 살았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순교할지도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기쁨을 잃기 쉽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의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에 처한대 해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제일 좋지 않고 잘못된 선택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꾼이 하는 말을 더욱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매일 체험했지만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꾸 원망하면 믿음이 있던 사람도 믿음이 없어지고 은혜 받은 것도 다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사람을 보며 원망하지 마십시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바울을 미워하여 괴롭히는 사람들이 못된 짓 한 것을 생각하면, 그는 원망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 원망하지 않고 오직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3~4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8절에 보면,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5절에 보면,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4절에 보면,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7~18절에 보면,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감옥 생활은 사도 바울의 기쁨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절에 보면,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 보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0절에 보면,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는 교역자나 선교사를 볼 때, 건강한가를 가장 먼저 봅니다. 주님의 일을 잘 하려면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기쁨이 있는 사람인가를 봅니다. 힘든 목회를 하면서도 기쁨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힘들어하는 얼굴을 누가 보러 오겠습니까!
부흥되는 교회의 특징은 기쁨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도 선교사가 신나게 일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 사람들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미워하지 마십시오. 자녀가 아무리 미워도, 남편이 아무리 미워도 미워하지 마십시오. 증오심을 가지면, 악령이 역사해서 믿음과 인격, 기쁨이 다 죽습니다.
다윗은 선택을 잘 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이 자신을 미워했지만, 다윗은 사울 왕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왔지만, 다윗은 그에게 끝까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사울이 죽었을 때에는 슬퍼하고 장례식을 잘 치러주고, 사울의 재산을 사울의 자녀들에게 다 물려줬습니다.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장애인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를 친아들처럼 여기고 그와 함께 식사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끝까지 잘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참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런가하면 선택을 잘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울 왕은 사랑해야 할 다윗을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미워했습니다. 결국 그는 멸망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성도들도 선택을 잘못했습니다. 교회에는 진리와 사랑의 두 기둥이 잘 서야 합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는 진리를 사수했지만 사랑은 버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에베소교회와 같은 교회가 많습니다.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하는 것은 맞지만 사랑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느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북한에는 원래 교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하나의 기둥을 없앴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남한으로 촛대를 옮기셨습니다.
교회가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도가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를 내버려두면 사람이 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곳의 성도를 빼셔서 사랑이 있는 교회로 넣으십니다.
요한계시록 1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즉 교회를 옮긴다는 의미입니다. 금 촛대는 금과 같은 촛대, 즉 교회라는 것입니다.
영국 교회는 다원주의로 인하여 자유주의에 빠져 진리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것도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이 들어온 후, 영국 교회는 삽시간에 망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10~12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을 감사하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에베소교회와 같은 교회가 많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울고 중보기도하고 사랑하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4장 8~9절에 보면,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는 사랑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4~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4-28)
자기 목숨을 먼저 챙기는 사람은 믿음이 죽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걸면 믿음이 생기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어야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목숨을 걸고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이유는 목숨을 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보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21장 13절에 보면,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0~21절에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를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7~18절에 보면,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7~8절에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 3:7-8)
사도 바울이 위대한 일생을 살 수 있던 이유는 선택을 잘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도 버리겠다고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제가 주님을 위해 살지 않으면 저를 빨리 데리고 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생각하는 것도 다 이루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주님만 위해 살았습니다. 사람은 목숨을 걸 때 제일 강해집니다.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오직 자기의 쾌락을 위해 살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방여인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습니다.
열왕기상 11장 1~9절에 보면,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이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잘 되고 평안합니까, 아니면 사도 바울처럼 힘든 가운데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을 통해 상황이 바뀔 것입니다. 자신의 선택이 자신의 운명을 새롭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이라도 사랑하기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주님만을 위해 살기로 선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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