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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5 13:37 조회3,2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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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와 교사

 

교회학교와 교사

2010년 05월 16일(주일예배)

본문 / 에베소서 4:11~12

 

본문 에베소서 4장 11절에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직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라고 교회의 직분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교사라는 직분이 나오는데, 교사라고 하면 누구나 교회학교의 교사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교사의 직분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첫째, 교사가 되는 것은 모든 믿는 사람의 사명입니다.

가르치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부활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들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씀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9장 35절을 보면,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가르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시나 마을마다 다니시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셔서 늘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물론이고, 장로님들이나 집사님들이나 평신도들까지도 잘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디모데전서 3장 2절에 보면,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감독을 세울 때, 반드시 보아야 할 자격 중의 하나는 가르치기를 잘하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지 않는 사람이나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은 장로가 될 자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가르치는 것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가 된 사람들은 집에서 자녀들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잠언 22장 6절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머니들은 어린 아기들에게도 가르쳐야 합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세 살 아이에게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여든 살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를 낳으면 세 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의 손에서 양육된다고 합니다. 이때 어머니는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이들에게 유일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하나님을 믿게 만듭니다.

그리고 네 살이 되면, 아버지가 맡아서 아이들이 12살 성인식을 치를 때까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직업교육까지 시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직업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결국 자녀들이 도둑질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육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았어도 없어지지 않고 도리어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길러낸 것입니다.

 

훌륭한 인물의 배후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 링컨의 어머니 낸시는 모두 높은 학벌의 여인들이 아니었고, 그들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환경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어머니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쳤기 때문에, 그 자녀들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렇게 가르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가르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가르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고 복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만드는 일입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깨달은 것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건물 짓는 것도 중요하고, 물질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조건은 아무것도 없어도, 사람만 준비되면 일이 진행되고,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찾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일은 가장 크고 복된 일인 줄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영혼을 구원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었는데, “내가 너희를 복음으로 낳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 아버지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사도 바울처럼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영적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 보면,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고 주님께서 교회에 여러 가지 직분을 세우신 목적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 즉 온전한 성도가 되게 한다는 것은 거듭난 성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 온전한 성도는 진심으로 예수를 믿고 영접한 사람,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 모시고 오지만, 교회에 한 번 온다고 해서 갑자기 온전한 신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온전한 성도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갈라디아서 4장 19절에 보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 없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교회에 말썽꾸러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아였고, 성격이 난폭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학교 교사가 그를 불쌍하게 여겨 옷 한 벌을 선물했습니다. 며칠 후 이 소년은 이 옷을 갈기갈기 찢어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교사는 그 후에도 두세 번이나 옷을 다시 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옷도 역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저 아이는 구제불능입니다. 더 이상 사랑을 쏟을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부장 교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 해보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사는 소년에게 찾아가서 “네가 옷을 버리는 것은 용서한다. 그러나 교회 출석은 계속한다고 약속해다오.”라며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을 표시했습니다.

그렇게 끈기 있게 그 아이를 붙잡아 주었더니 결국 이 말썽꾸러기 소년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누구인 줄 압니까? 로버트 모리슨 목사입니다.

그는 중국 선교사로 헌신하여 영중(英中)사전을 집필하고, 성경을 중국말로 번역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렇게 해산의 수고를 하면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교사의 사명은 온전한 성도를 만드는 것이고, 일꾼 신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꾼 신자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 백 명과 맞먹습니다.

일꾼 신자는 은혜 받은 사람이고, 자기의 사명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 한 사람은 백 명이 못하는 일도 해냅니다.

그리고 교사의 사명은 일꾼 신자를 키워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건강한 교회가 되어서 교회가 부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는 일꾼 신자가 많은 만큼 부흥합니다. 교회의 실력은 일꾼 신자가 얼마나 되느냐에 좌우됩니다. 일꾼 신자가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교회가 힘이 있습니다.

 

수영로교회에 1년에 7~8천 명의 새가족이 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이렇게 계속해서 부흥됩니까? 그것은 일꾼 신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학교의 교사들이 믿음이 약한 학생들을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사랑의 수고가 많이 있어야 합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주일학교 2학년 때 성경암송대회가 있었는데, 1학년은 주기도문을 외우고, 2학년은 사도신경을 외우고, 3학년은 십계명을 외워 각 반에 한 명씩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2학년 반대표가 나오지 않아 담임이신 홍 선생님이 부랴부랴 김동호 목사님을 기도실로 데려가 사도신경을 외우게 하셨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은 부리나케 외워서 대회에 나갔는데, 그 날 특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평소 내성적이었는데, 그 날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외우는 데 실력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홍 선생님이 기쁘고 좋아서 특상을 받고 나오는 김동호 목사님을 끌어안고 무릎에 앉혀놓고 좋아하셨는데, 선생님의 품에 안겨있을 때 아주 좋아서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트와 상품을 한 아름 안고 교회를 나오는데 얼마나 좋은지, 그 날로 목사님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목사님의 특기는 교회 다니는 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주일저녁예배에도 나오고, 수요예배에도 나오고, 새벽예배에도 나오고, 그리고 목사님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홍 선생님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며 믿음으로 자라 훌륭한 목사님이 된 것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은 사랑해주시는 홍 선생님이 그렇다고 하시니까 그냥 의심없이 믿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 정성이 있는 사랑이 아이들을 이렇게 변화시키는 줄 믿습니다.

 

둘째, 가장 훌륭한 교사는 모본을 보이는 교사입니다.

마태복음 5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교사들이 먼저 삶으로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범적인 교사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주님을 항상 본받으며 사는 것처럼, 너희는 항상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말했습니다.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학생들은 스승을 닮습니다. 학생들이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사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멕시코 과달라자라에 있는 선교본부에서 죠세 곤잘레스라는 13세의 소년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습니다. 그 소년과 상담한 오빌 라이드 선교사는 그가 아버지를 잃고 갈 곳이 없어 빵 공장의 화덕을 온돌 삼아 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선교사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두 살 난 아들은 미국으로 보냈으므로 그 소년을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같이 살면서 학교에 보냈습니다. 선교사님은 그 소년을 의과대학에 보냈고, 소년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라이드 선교사는 많은 소년들을 키우며 말씀을 가르치고 학교에 보냈고, 그 아이들은 의사, 변호사, 목사, 기술자, 교사 등이 되어 모두 각자의 일터에서 일하며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산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라이드 목사는 그의 시에서 “한 소년이 얼마나 귀한가? 누구의 손에 붙잡혔는가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되거나 파멸의 폭탄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교사들의 사명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미국의 오하이오 주의 어느 교회에 평생을 주일학교 교사로 수고한 니틱스라는 노(老) 교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한 교회에 나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직업이 목수였는데, 담임목사님은 그가 학벌이 별로 없음 때문인지, 스스로 전도해서 반을 만들어보라고 했습니다. 니틱스는 포기하지 않고, 길에서 놀고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을 발견하고 다가가서 주일학교에 출석해서 우리 반이 되어달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흔쾌히 허락하여 함께 교회로 향했고, 이를 시작으로 그는 평생 주일학교 교사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 세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교사의 생일이 되면 생일축하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중 한 아이는 인도 선교사 찰스 콘웨이이고, 한 아이는 미국의 29대 대통령인 하딩이고, 또 한 아이는 대통령의 비서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이런 인물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셋째, 성도들은 교사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 보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회에서 장로님들이 얼마나 수고가 많고, 교회에 어려운 일을 잘 처리하시는 것이 얼마나 존경받을 일입니까. 그런데 그 장로님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은 더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교사들을 더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일본의 어느 초등학교 교사 모임에서 한 교사가 이런 경험을 소개했습니다. 자신이 생물 수업을 마치고 질문이 있는지 물었을 때, 한 학생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박테리아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했습니다. 일단 내일 설명해 주겠다고 하고 수업을 마쳤는데, 퇴근 후 아무리 관련된 책을 뒤져보아도 알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도쿄대학 생물학과 교수로, 어느 날 집에서 동료 교수와 새로 발견한 박테리아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을 그 학생이 듣고 친구들과 선생님께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질문하게 된 것입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온 학생은 아버지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그 박테리아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그 박테리아의 이름만 알 뿐 잘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선생님께 전해 드리라고 봉해진 편지를 아들에게 들려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는 새로 발견된 박테리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쓰여 있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같이 훌륭한 박사도 잘 모르는 박테리아에 대해 그 편지를 본 선생님이 자세히 설명해주자 이 아이는 담임선생님을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위해 교사의 권위를 높이고,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도록 한 이 아버지의 지혜가 얼마나 훌륭합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교회학교에서 선생님을 깔보고 업신여기면,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잘 자라기를 바란다면,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를 존경하게 하고, 그 교사를 높이시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6장 6절에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사들을 잘 대접하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교사들이 얼마나 수고가 많습니까. 1년에 한 번쯤이라도 ‘우리 아이를 말씀으로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조그만 선물이라도, 감사카드라도 드리시기 바랍니다.

 

넷째, 교회학교는 정말 중요합니다.

영국의 톰 리즈라는 사람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영국의 전체 크리스천들은 75%가 14세가 되기 전에 그리스도를 믿었고, 20%는 14~21세 사이에 주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학교를 다닐 때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1세 이후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은 겨우 전체 신자의 5% 미만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미국 크리스천의 86%가 15세 이전에, 10%는 15~30세 사이, 30세가 넘은 후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4%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주일학교에 나왔을 때 예수를 믿고 영접한 사람이 교인이 되고, 그 이후에는 매우 적은 수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통계는 우리 교회학교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교회학교는 이렇게 중요합니다. 어렸을 때 말씀을 가지고 양육할 때, 그 말씀이 그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을 교회학교에 다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공부가 중요해도 말씀으로 양육 받아서, 어렸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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