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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3장

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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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4-10 16:14 조회3,0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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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

 

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

2020년 03월 08일(주일예배)

본문 / 에베소서 3:14~21

 

본문 에베소서 3장 15절에 보면,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5~16절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을 가리켜 ‘양자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께서 임하시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말하기 시작하면, 먼저 “엄마”, “아빠”라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성령에 의해 하나님을 아버지로 깨닫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만 하고 ‘아버지’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거듭난 사람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진정으로 교통하게 됩니다.

 

저는 중학생이었을 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아버지이신가를 깨닫고 하루 종일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를 많이 불러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아버지이신가를 깨닫고 하루 종일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부잣집의 자녀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든든하게 계시니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며 그 친구들을 부러워한 적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좋으신 아버지이신 것을 깨닫고 나니 친구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친구들의 아버지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좋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신실하십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아버지가 있는 친구들을 조금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사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가까이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의논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까이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늘 기도합니다.

 

기도할 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에 기도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에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기도했습니다. 당시 저는 나이가 어렸지만, 담대하게 기도했습니다. 평소에 기도하는 사람은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7장 7~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가리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기도했지만 한 번도 응답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말하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지, 모든 사람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믿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믿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 받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거듭난 사람의 특징입니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거듭난 증거가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고난 받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거듭난 증거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입니다.

이런 사람은 간구하는 대로 응답 받는 것은 물론이요,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려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제사 드리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우리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습니다(신 28:6).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십니다(신 28:8).

우리로 하여금 복을 누리며 살게 하십니다(신 6:24). 우리를 행복하게 살게 하십니다(신 10:13).

 

잠언 8장 17절에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예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는 것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대로 순종할 때, 예수님께서 기뻐하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내가 너를 통해 영광 받을 것이다. 내가 너를 귀하게 쓸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할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당신’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대방을 높이는 대명사로 ‘당신’을 사용합니다. 당사자가 없는 경우, ‘그분’이라는 말을 대신하여 존칭어로 ‘당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주 앉아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당신’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영광을 거두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 원합니다.”, “모든 영광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에베소서 3장 15절에 보면,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60절에 보면,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스데반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 40절에 보면,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6절에 보면,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21장 5절에 보면,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자기 수단과 방법,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겸손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응답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오래 기도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전쟁할 때,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때 아론과 훌은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고 모세를 돌 위에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론과 훌은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제가 전도사였을 때의 일입니다. 불광동 뒷산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밤에 낭떠러지 끝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새벽 1~2시 되었을 때였습니다.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속옷까지 다 젖었습니다. 화가 나서 주먹을 쥐고, 있는 힘을 다해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순간, 불이 임했습니다. 그 후로 정신없이 기도했습니다. 한참 기도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해가 떠있었습니다. 그때 무릎을 꿇고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경우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에

첫째, 성도들의 마음에 성령께서 계셔서 성도들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3장 16절에 보면,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복을 받았다 해도 건강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불행합니다. 제가 집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 교회의 장로님이 식사를 대접하셨습니다.

진수성찬이 차려져있었는데, 장로님은 몸이 아파서 죽 조금 밖에 드시지 못하셨습니다. 돈이 많아도 몸이 병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병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건강해야 마음껏 목회할 수 있습니다.

건강해야 힘 있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육신이 약해지면, 영력이 약해집니다. 힘 있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이 건강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속사람도 강건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속사람이 강건해집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증언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11절에 보면,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믿음이 충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세상과 싸워 이깁니다. 마귀와 싸워 이깁니다. 죄악과 싸워 이깁니다. 환난과 시험을 넉넉히 이깁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 믿음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 집사를 세울 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을 집사로 세웠습니다.

 

교회에서 장로를 세울 때, 성령 충만한 사람, 지혜가 충만한 사람, 존경 받는 사람을 장로로 세워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장로다운 장로가 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깨닫습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자신의 사명을 깨달아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충성하는 일꾼이 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깨닫고 변화됩니다. 깨닫는 만큼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변화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권능을 주셔서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변화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두려워하고 벌벌 떨었지만, 성령 충만해진 후에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행 5:42). 성령으로 충만할 때, 권능을 받고 승리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큰 일꾼이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믿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믿음이 커지고 믿음이 강해집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면,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믿음이 충만해지면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사람,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어려운 일도 쉽게 합니다. 큰 일도 넉넉히 해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은 만큼 믿음이 자라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둘째, 성도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3장 17~18절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점점 자라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을 닮기까지 자라야 합니다. 믿음이 자랄수록 변화됩니다.

말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행동이 달라집니다. 성품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습니다.

 

로마서 13장 14절에 보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옷을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보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9절에 보면,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자손이지만, 예수님의 형상을 닮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19절에 보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게 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목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목표를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은혜를 받고 믿음이 자라면,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예수님을 닮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계셔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면, 예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우리도 미워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우리도 싫어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우리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우리도 좋아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도 원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이 좋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모든 것이 예수님을 닮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3장 17~19절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요한일서 4장 9~11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αγάπη)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제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구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불변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숭고합니다. 사람의 사랑은 야비하고 신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순전합니다. 신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를 예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혀 세상의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 3:8). 그리고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고백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3장 20~21절에 보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만 이루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게 능히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까지도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크게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은혜를 받고 나니 구원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장차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이 제 평생의 축복이 되었습니다.

지옥에 갈 영혼에게 복음을 전해서 천국에 가게 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전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우리 반 친구들에게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저를 ‘정 목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훌륭한 목사가 되어 우리나라를 복음화 해야겠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생각하기만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제게 가르쳐주세요.”라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기도하여 제가 복을 받았고, 교회가 복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3장 21절에 보면,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기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중요한 일을 놓고 기도할 때마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데 필요하다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되게 해주세요. 그러나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면 막아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중ㆍ고등학교, 대학교 때 입시를 앞두고 저는 “제가 이 학교에 합격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제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데 필요하다면, 학비까지 해결해주세요. 그러나 제가 이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교만해지고 죄 가운데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면, 제 길을 막아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합격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학비를 걱정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를 개척한 지 7년 되었을 때, 장로님들이 제게 미국에 가서 공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데 필요하다면 여권과 비자 등 모든 것이 순탄하게 해주세요. 그러나 제가 미국에 가서 공부함으로 제가 교만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준비 과정에 어려움이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비자를 발급 받기 위해 미국 대사관에 가서 줄을 서있었습니다. 줄을 서있는 사람들 중에 목회자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비자를 발급 받지 못했는데, 저만 비자를 발급 받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가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할 때에는 욕심을 따라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까’라고 생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 받습니다.

 

사회적 재난으로 인해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 절대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었던 고센 땅에는 재앙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에 환난이 있어도, 믿음의 사람들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사명이 끝났다면, 하나님께서 불러 가실 것입니다. 사명이 남아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제가 여생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산다면, 강건하게 주세요. 모든 병이 떠나게 해주세요. 그러나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저를 불러가 주세요.”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고 속사람이 날로 날로 강건하여지게 하셔서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환난과 시험을 이기고 항상 승리하도록 도와주시기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해주시기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었을 때, 도무지 살아갈 수 없었지만, 날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며 축복 속에 살았던 것처럼,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할 때인 줄 믿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강해지게 하시고,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열심히 증거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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