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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2장

우리의화평이신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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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2-05 15:31 조회3,0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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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화평이신 그리스도


우리의 화평이신 그리스도
2020년 02월 02일(주일예배)
본문 / 에베소서 2:11~22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원수 된 것은 관계가 가장 나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원수를 미워하고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원수는 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수에게 직접 보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11~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이보다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 없이 살다가 하나님 없이 죽어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사람과도 단절되었습니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이후, 하나님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라고 말했습니다. 아담은 자신에게는 죄가 없고, 하와에게만 죄가 있어 하와만 죽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가인과 아벨도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쳐죽였습니다. 이 외에도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와 불신자,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 재산이 있는 사람과 재산이 없는 사람, 지위가 있는 사람과 지위가 없는 사람, 백인과 유색인은 단절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멸시 천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가리켜 무할례당, 할례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처럼 천시했습니다. 지옥의 땔감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다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과 결혼한 사람이 있는 유대인의 집에서는 이방인과 결혼한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유대인과 이방인은 단절되어있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12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밖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없이 살았고, 하나님의 선민(選民)인 이스라엘과 상관없는 사람이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많이 받았습니다. 구원의 약속, 성령의 약속, 축복의 약속, 영생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희망은 아무런 보장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입니다.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소망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물질이 없고 권세가 없어도, 소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절망적이라 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우리에게 힘이 되고, 기쁨이 되고,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절망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에 소망 없이 살았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지옥의 자식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에는 무질서와 파괴가 있을 뿐입니다. 혼란과 부조리, 허무가 가득합니다.
과거에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일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아에 중보자가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5절에 보면,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두 가지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신성과 인성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려면, 인성(人性)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과 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는 통하는데 사람과 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표현했을까요? 헬라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헬라인들은 말씀을 영원한 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부터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헬라 철학자들은 영은 거룩하고 육신은 더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헬라 철학자들은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영이신 예수님께서 더러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33년 동안 계셨다는 것은 실제가 아니고 환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육신이 있어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수 있습니다. 만약 헬라 철학자들의 주장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도 실제가 아니고 허상이라면, 우리는 죄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헬라 철학자들의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요한일서 4장 1~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려면, 신성과 인성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려면, 사람과도 통해야 하고, 하나님과도 통해야 하기 때문에 인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신성(神性)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과는 통하는데, 하나님과 통하지 못한다면,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천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있습니까? 천사는 육신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석가, 맹자 등 4대 성인(聖人)은 사람과는 통하지만 하나님과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신성과 인성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태어나셨습니다.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도 통하고 사람과도 통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십니다.

둘째,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죄가 없어야 합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고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석가모니, 공자, 맹자, 마호메트는 4대 성인이지만 그들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모든 인간에게는 타락의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만히 내버려둬도 죄를 범합니다.
시편 51편 5절에 보면,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도서 7장 20절에 보면,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셉과 마리아의 사이에서 태어났다면, 예수님도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마귀를 모두 멸하실 것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사탄 마귀는 모두 멸망할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홍해가 갈라진 것도 믿지 않습니다. 홍해는 굉장히 깊습니다. 그런데 홍해 바닥에 애굽의 마차가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혁명가, 사회개혁자 또는 훌륭한 성인(聖人)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기신 이야기,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으신 이야기를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않고, 천국과 지옥도 믿지 않습니다.
이들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들 속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져야 하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으니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믿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의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보면,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십계명 중 두 번째 계명을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상숭배를 마음대로 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 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십계명에서 제2계명을 없애버리고 우상숭배를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천국과 지옥 외에 연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천주교는 이단입니다. 이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셨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13~16절에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로 통일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만 죄 사함을 받습니다. 구원 받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살고 교회가 하나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보면,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8절에 보면,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에 보면,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교회가 세워졌고 전 세계에 복음이 퍼졌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9절에 보면,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 교회의 기둥과 같은 사람입니까?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며 신앙을 사수한 사람이 교회의 기둥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성도가 많은 교회는 힘 있는 교회요, 환난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힘 있는 교회입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 보면,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간극이 있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있던 장벽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없어졌습니다. 모두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레코드를 통해 전도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그들은 3,109개의 방언으로 레코드를 만들어 세계 각처에 보냈습니다.
종족이 다르고, 말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고, 음식과 의복이 다르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몸이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속해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한 가지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입니다(엡 4:5).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전 세계에 흩어져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족은 한 아버지의 자녀요 한 권속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교회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도 교회를 사랑하여 교회에 살다시피했습니다.
저는 집보다 교회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세 번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예배에 절대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싸움이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하나 되었던 분들이 서로 인사하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마치 남남처럼 지냈습니다.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의 자녀요, 한 하나님을 섬기고, 한 성령을 받아 천국에 가서 같이 살 가족인데, 마치 남남처럼 지내는 모습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허물이 있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한 지체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지만,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 옵니다. 요한계시록 7장 9~12절에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 올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흰 옷을 입고 모일 것입니다.
성도들이 모여 함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찬양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권속이 되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20~21절에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성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요, 만민이 기도하는 처소입니다. 성도들은 성전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22절에 보면,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의 집,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건물입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지금은 지어져 가는 중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하나님께서 부르신 백성은 100%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집은 완성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중보자이신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았습니다. 죄 사함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한 집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매우 중요한 말씀의 비밀을 공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중보자시요, 예수님만이 메시아시요,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확실히 믿고 주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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