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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기장 귀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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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2-03 12:01 조회3,6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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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

2020년 01월 12일(주일예배)

본문 / 에베소서 2:1~10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구원의 도리를 말했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구원의 필요성에 대해 말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왜 구원이 필요합니까? 우리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물에 빠졌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물에서 구해야 합니다. 물이 빠진 사람이 수영을 할 줄 알고, 정신이 말짱하고 힘이 있다면, 그냥 둬도 됩니다. 그러나 물이 빠져 물을 많이 먹어 혼수상태가 되었다면, 빨리 건져내야 합니다.

 

구원은 살리는 것입니다. 죽을 사람을 살리는 것, 멸망할 사람을 살려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왜 구원이 필요합니까? 죽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죽음을 가리켜 분리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육체적 죽음은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건강하고 예쁘다 해도 육체에서 영혼이 떠나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적 죽음은 영혼에서 하나님이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받아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떠난 것이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은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져있으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 나무는 죽은 것과 같습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가지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지는 바싹 마릅니다. 가지를 다시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무에 다시 접붙여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떠난 영혼이 하나님께서 돌아오면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인간은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면 영이 죽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은 살아있으나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났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이 사람을 가리켜 ‘거듭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은 죄악의 결과입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아내 하와가 뱀에게 속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주어서 먹게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모두 죄를 범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영적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순간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죽었습니다. 육신이 서서히 늙었습니다. 병들었습니다.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죽어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죄는 분리시킵니다. 하나 되게 하지 않고 나뉘게 합니다.

 

자식을 많이 낳은 후에 젊은 여자를 만나 가정을 버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집에 생활비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습니다.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죄는 아버지와 자녀를 원수 되게 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분리시킵니다. 죄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분리시킵니다. 죄는 부부를 원수 되게 합니다. 형제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그리고 죄는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킵니다. 죄 때문에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죽게 되었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2~3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첫째, 세상의 풍조를 따릅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세상의 풍조를 따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풍조를 똑같이 따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 세상 사람들의 문화를 따라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 쉽게 알 수 없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을 함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요한일서 2장 15~17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이 세상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풍속을 따라갑니다.

 

아무리 작아도 살아있는 물고기는 저항력이 있습니다. 물결을 따라 가지 않습니다. 물결을 거슬러 갑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커도 죽은 물고기는 물결을 따라 떠내려갑니다. 사람의 눈에는 굉장해보여도,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세상을 따라갑니다. 좋아 보이는 대로 갑니다.

 

다니엘 1장 8절에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소년들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먹지 않았습니다. 우상을 섬길 때에 사용한 음식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왕의 명령을 어기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 있습니다. 죽을 것을 각오하지 않은 사람은 다니엘처럼 행동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죽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죽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리하여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고 채식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풍속을 따라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가지 않으면, 세상에서 왕따 당할 수 있습니다.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8~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서 왕따 당하거나 미움을 받더라도 세상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릅니다.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를 범하며 살아갑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 사탄 마귀가 그 속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은 마귀의 종 노릇을 합니다.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은 다 마귀의 종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죄 짓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은 사탄 마귀가 우리를 끌고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마귀는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살인하게 되고, 거짓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셋째, 육체의 욕심을 따릅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합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3절에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 풍속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상 풍속은 우리를 멸망하게 하는 원수요 적입니다. 그리고 사탄 마귀, 육체의 욕심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4절에 보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죄에 대한 책임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죗값으로 말미암아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죗값으로 인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4~7절에 보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우리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은 자에게는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은 자는 스스로 살아날 수 없습니다.

 

둘째, 우리는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4장 6절에 보면,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더럽습니다. 우리 안에 더러운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는 불합격입니다.

야고보서 2장 10~11절에 보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 받지 못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구원 받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은

첫째,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압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압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지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보면,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여 지식을 많고, 실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해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압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압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되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언약을 100% 신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 무오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믿습니다.

 

야곱은 20년 만에 형을 만나러 가기 전에 얍복 강가에서 목숨 걸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면, 죽을 것을 각오하고 천사와 씨름했습니다.

야곱이 왜 그렇게 기도했을까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매달리면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목숨 걸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의 믿음은 참으로 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으니 대단한 믿음입니다.

야곱은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목숨 걸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을 찾아가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눅 18:3)”라고 말했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은 과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과부는 포기하지 않고 재판장에게 계속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재판장은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눅 18:5)’고 생각하고 과부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 18: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부는 절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앗수르에 의해 포위되어 망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앗수르에게 빼앗겼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있는 성만 남았습니다. 18만 5천 명이 성을 둘러쌌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밤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성을 둘러싼 18만 5천 명이 시체가 되어있었습니다.

유다에서는 활 한 번 쏘지 않았습니다. 칼도 한 번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끝내버리셨습니다.

히스기야가 완전히 망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모든 방법을 포기하고 성전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히스기야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야곱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가장 강한 무기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실수합니다. 실수했을 때,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잘못을 깨닫고 뉘우쳐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려고 합니다.

다섯째,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고난 당하는 것, 예수님으로 인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삽니다. 이런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이런 믿음을 가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에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도서 2장 14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원 받기 위해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 받았기 때문에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까? 구원 받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학교의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그 학교의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의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섬깁니다. 아내가 되기 위해 남편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한 남자의 아내이기 때문에 남편을 섬깁니다.

 

저와 여러분은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분명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자세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33절에 보면,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구원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로 인해 많은 사람이 구원 받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에 잘 새겨지게 하시고, 평생 이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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