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필도목사_스스로 속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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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6 20:56 조회3,606회 댓글0건본문
스스로 속이지 말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2002년02월 01일(금요철야)
본문 / 갈라디아서 6:7-8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속성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속성과 기뻐하지 않으시는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함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정직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허물이 많고, 때로는 실수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할 때,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신다고 말씀하시면, 반드시 하십니다.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 반드시 주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시고 신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정직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역대상 29장 17절에 보면, 다윗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정직을 기뻐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평생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습니다(왕상 15:5).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와의 사건을 제외하고, 다윗은 평생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정직을 기뻐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에게 축복하십니다. 신명기 6장 1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 즉 선하고 착하고 좋은 일을 행하면, 복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욥기 8장 5~7절에 보면,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에게 축복하십니다.
시편 84편 11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고 주실 것입니다.
시편 112편 2~4절에 보면,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정직한 사람의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부와 재물이 그 집에 있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의 후손은 부요해지고, 재물이 많아지고, 그 의가 영원히 있게 됩니다. 때로는 정직한 자에게도 어려움이 오지만, 흑암 중에도 빛이 일어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잠언 2장 7절에 보면,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정직한 만큼 지혜롭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바보처럼 보이지만, 정직한 만큼 그 사람에게 지혜가 더해집니다. 그래서 정직한 사람은 참 지혜로운 사람이라 인정받게 됩니다.
잠언 2장 21~22절에 보면,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간사한 자는 교묘하게 남을 속이는 사람을 의미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런 인간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남을 속여 놓고 그 땅에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을 속이는 나쁜 사람들을 그 땅에서 살 수 없게 하십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은 그 땅에서 대대손손 부요와 재물을 누리며 잘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함을 기뻐하시고, 거짓은 미워하십니다. 전도서 7장 29절에 보면,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정직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꾸 꾀를 쓰게 되었습니다. 꾀를 많이 쓰는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됩니다.
그러므로 머리가 비상한 사람을 가까이하지 마세요. 좋은 일에 지혜를 사용하면 좋을 텐데, 머리가 비상하다 보니까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갑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나쁜 짓을 아주 많이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조금 둔한 것이 좋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잘 사는 줄 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자기 꾀에 넘어가서 고생을 많이 합니다.
우직한 사람이 오히려 잘 삽니다. 어리석어 보이지만, 마음이 바르고 곧고 정직한 사람은 꾸준히 잘 삽니다.
그런데 꾀가 많은 사람은 한때는 잘 살지 모르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한때 잘 사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수명을 단축시켜버립니다. 좋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미가 7장 2절에 보면,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이 타락하고 악해지니, 인간들 중에 정직한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레미나 17장 9절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의 마음보다 더 악하고 더 부패하고 더 거짓된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강아지가 거짓말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소가 거짓말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인간들이 거짓말하지, 사람 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만물은 정직합니다. 인간들이 부패하고, 인간들이 거짓되고, 인간들이 고약하고, 인간들이 문제입니다. 만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오히려 인간들 때문에 만물이 고통을 당하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만물을 괴롭힙니다. 잘 살겠다고 자연을 파헤치고, 짐승들을 죽이며, 만물을 괴롭힙니다.
로마서 3장 10~18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13절에 보면 ‘그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무덤을 열어둔다면, 얼마나 냄새나고 더럽습니까. 입만 열면 더러운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입에서 무서운 독이 나와서 마치 무덤을 열어놓은 것 같습니다.
10절에 보면, 이 세상에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이 타락했고 부패했다는 의미입니다.
거짓은 사탄의 속성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가 거짓의 아비이고, 모든 거짓된 것들은 마귀로부터, 사탄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하나님이시고,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우리 가운데 거짓의 속성이 남아 있다는 것은 타락의 속성, 마귀의 속성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했지만, 거짓됨이 아직 남아있는 것은 우리가 마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말을 잘합니다. 거짓증인들은 사람을 죽입니다.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부인 이세벨은 거짓 증인 두 사람을 세워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래서 생사람을 잡아 돌로 때려죽였습니다. 여기서 거짓을 통해 얼마나 악을 행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생사람을 도둑으로 만들고, 생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어 생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 일이 이 세상에 아주 많습니다. 마귀가 아니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짓된 것을 아주 미워하십니다.
거짓된 삶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거짓된 삶이 어리석은 이유는
첫째, 하나님은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삶은 어리석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는데, 사람들은 자기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은 모르겠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모르십니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을 꿰뚫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 지옥에 갈 인간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우리가 어떻게 거짓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다 드러나는데, 하나님을 속이는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간은 아무도 모르게 여리고 성에 쳐들어가서 외투, 금, 은, 보화를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도 써먹지 못하고, 자신과 온 가족이 돌에 맞아 죽어 돌 무더기를 이루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있겠습니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나병환자 나아만이 나병을 고침 받고 돌아갈 때에 나아만에게 달려가 엘리사가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외투를 달라 했다고 거짓말했습니다. 그로 인해 게하시에게 나병이 생겼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 충만한 예루살렘교회에서 속임수를 썼습니다. 전 재산을 바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재산의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베드로는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라고 말하며 그들을 책망했습니다(행 5:3). 우리가 성령을 어떻게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성령을 속이려고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둘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려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거짓된 삶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둘째, 세상에는 비밀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비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 제사장들은 군병들에게 돈을 주며 거짓말하게 했습니다. 제자들이 몰래 시체를 훔쳐갔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주고 거짓말하게 한 것 자체가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비밀이 없습니다. 다 드러나게 됩니다.
군병들이 당장 집에 가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여보, 지난 밤에 혼났어. 천사들이 와서 무덤 문을 열고.…”라고 자기의 눈으로 본 것을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데 이것을 비밀로 하래. 그리고 나한테 돈을 이렇게 줬어.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말하라 했어. 당신만 알아. 알았지? 말하면 안 돼.”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군병의 부인은 친정어머니께 “엄마, 엄마만 알아둬.”라고 이야기하고, 친한 친구에게도 “너만 알아둬. 절대 말하면 안 돼.”라고 말하면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거짓은 다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속여 보려고 합니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지, 당장은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을 보면, 거짓말을 참 잘합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 드러나는데, 사실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이 거짓말하는 것을 다 촬영하여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어떻게 거짓말했고,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어떻게 거짓말했고, 선거할 때 어떻게 거짓말했다고 보여준다면, 그것은 거짓말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거짓말을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거짓은 정직보다 더 큰 고통을 가지고 옵니다. 우리가 솔직하면, 정직하면, 자신의 허물과 자신의 비밀에 대해 정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제일 작은 고통입니다. 거짓으로 속이다가 나중에 가서 드러날 때는 엄청난 수치와 엄청난 고통이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야 합니다.
자꾸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장차 받을 심판과 고난을 몇 배로 불려 쌓아놓고 사는 사람입니다. 나중에 엄청난 비극이 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정직하면 나은데, 정직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나중에 큰 비극이 옵니다.
딸 한 명을 자식으로 둔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죽었는지 이혼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여자는 오로지 그 딸 하나에만 관심을 가지고, 정성껏 공부시키고, 과외 공부도 시키고, 건강관리도 잘 해주며, 딸을 금이야 옥이야 잘 키웠습니다.
그 딸이 공부를 잘 해서 의과대학에 가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의과대학 다닐 때에 연애를 하고 결혼해서 부부가 의사였습니다. 딸 하나를 정말 잘 키웠습니다.
그런데 딸의 어머니에 대한 과거는 완전히 비밀로 했기 때문에,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비밀로 했을 것입니다.
딸이 결혼하여 1년 후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을 때에 신랑과 친정어머니가 가서 봤습니다. 아들을 낳았는데, 새까만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딸은 기절했습니다.
사실 딸의 아버지는 흑인병사였습니다. 그런데 딸은 엄마를 닮았습니다. 누가 그런 과거를 이야기하기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니 감쪽같이 속인 것입니다.
셋째, 스스로 속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모든 것이 헛수고하는 것이 됩니다. 속여서 무엇인가 유익을 얻으려고 했는데, 자기가 자기에게 속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짓된 속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 자신의 마음을 믿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생각을 믿을 수 있습니까? 믿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마 26:31)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5)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베드로의 마음에는 그런 마음으로 꽉 차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 내가 죽으면 죽었지,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라고 굳게 결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상황을 당하니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나중에는 저주까지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믿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매우 약합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습니다. 자기 결심이 아무리 강하고, 자기 심지가 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인간의 마음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큰소리치지 말아야 합니다. 차라리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도와주시면 제가 주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생명 걸고 주님을 따르게 될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과신하고, 자기 자신은 틀림없이 지킬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낫습니다.
인간은 전능자가 아닙니다. 인간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연약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과신하면 안 됩니다.
베드로가 주님 앞에서 큰소리친 것은 일종의 교만입니다. 우리는 항상 정직과 겸손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우 어리석어서 스스로 속이는 행동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에게 속는 사람입니다. 그런 어리석은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속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첫째,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응답 받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좀처럼 기도생활하지 않습니다. 기도생활하지 않으면서도 잘 되는 줄 압니다. 기도생활하지 않으면서도 신앙생활 잘 할 수 있고,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은혜 가운데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응답 받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 스스로 속이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기도생활하지 않으면, 은혜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기도생활하지 않는 목사님은 은혜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장로님, 권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생활하지 않으면 절대 은혜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기도생활하지 않으면, 믿음으로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고, 세상과 죄악을 이길 수 없고, 마귀의 종노릇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입니다.
깨어 기도생활을 해야 은혜 충만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고,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고, 마귀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대적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생활하지 않으면서 응답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 자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말씀대로 살지 않고도 성공한다면, 그 사람은 성공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망할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잠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더 비참한 실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축복의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은 저주받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복을 받습니다.
신명기 28장 15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모든 저주를 받게 된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주가 따라다닙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말씀하신 대로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거짓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이루시는 분이지, 말씀에 어긋나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진실함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말씀하신 것에 대해 무책임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주 철저한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계약을 맺어도 얼마든지 취소해버리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그러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책임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 자체가 자기가 자기에게 속는 생각입니다.
기브온 사람들과 여호수아가 언약을 맺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속임수를 썼습니다. 그들은 낡은 신을 신고, 곰팡이가 난 빵을 가져와서 “우리는 먼 지방에서 왔다”라고 거짓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그들의 말을 믿고, 절대로 기브온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상대편이 속임수를 써서 언약을 맺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진실하고 정직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한번 약속하면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을 천대하거나 죽이면 안 됩니다.
그런데 사울 왕과 그의 가족들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들을 죽였다고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고, 언약을 맺은 지 오래되었으니 괜찮은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끝까지 지키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민족과 민족 간의 언약이기 때문에, 사울과 상관없는 다윗 시대에 3년 동안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책임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축복 받은 하나님의 종인데, 흉년이 왔습니다.
사무엘하 21장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왜 3년씩이나 기근이 옵니까? 저의 죄가 뭔지 가르쳐주세요.”라고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과 그의 집안 사람들이 기브온 사람을 죽인 일이 있었는데, 민족과 민족 사이의 언약을 깨뜨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기브온 사람은 “사울에게 속한 사람을 잡아 나무에 매달아 죽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비가 내렸습니다. 3년 동안 오지 않던 비가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철저히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축복받고 싶으면 말씀대로 사세요.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요행을 바라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살면 축복받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저주받는다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증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요행을 바라거나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요, 스스로를 속고 속이는 행동입니다.
민수기 14장 22~23절에 보면,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보았는데,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합니까.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셋째,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고,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둡니다. 성경에 보면, 악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행한 악에 대해 악을 거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요압 장군은 이스라엘에 공헌한 장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을 얼마나 잘 하는지, 요압은 전쟁에서 진 적이 별로 없습니다. 다윗이 죽을 뻔했을 때에도 요압이 다윗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속에 악함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아브넬 장군을 받아주니까 요압 장군은 칼을 몰래 숨기고 있다가 인사하는 척하며 요압 장군을 안고 찔러버렸습니다.
그런 짓을 한 번만 해도 큰 죄악인데, 열왕기상 2장에 보면, 다윗이 아마사도 받아들이니까 요압은 아마사도 죽여 버렸습니다.
열왕기상 2장 5~6절에 보면,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평화의 때에 의로운 사람을 죽였으니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요압을 죽였습니다. 의로운 사람을 죽였지만, 수십 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잘 지났으니 그냥 넘어갈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 심었기 때문에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아합 왕은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는 악독한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 21:19). 악을 심었으니 악을 거두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우리가 악한 짓을 하면서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몰라도, 악한 짓을 하면 악을 거두고, 선을 심으면 선을 심은 것이 반드시 돌아옵니다. 1년 후, 10년 후, 아니면 수십 년 후에라도 반드시 돌아옵니다.
넷째,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자기는 사랑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받으려면 먼저 사랑을 심어야 합니다.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대접해야 합니다. 우리가 친절을 받으려면, 먼저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대해 욕을 많이 합니다. “아이고, 이 세상 사람들은 사랑도 없고, 인정도 없고, 대접할 줄도 모르고, 친절하지도 못하고, 어쩌면 그 모양이지!”라고 말하며 세상을 욕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자기가 그런 사람입니다.
욕하는 사람은 자기가 못된 사람이기 때문에 욕합니다.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으니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고, 내가 대접하지 않으니까 내게 대접하는 사람이 없고, 내가 친절을 베풀 줄 모르니까 아무도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생 사랑을 받고 싶으면, 평생 사랑해주세요. 그냥 자꾸 사랑해주면, 때가 되면 사랑이 돌아옵니다. 몇 배의 열매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면, 잘 대접하세요. 상상하지도 못 했는데, 대접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저는 우리나라 구석구석까지 집회를 인도하러 다닙니다. 그래서 가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를 누비며 집회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회를 인도하러 간 교회의 태도, 그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의 태도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교회를 방문한 사람이 우리의 태도를 보고 어떤 느낌을 가질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나에게 찾아온 사람들을 절대로 그냥 보내지 말자. 할 수 있다면 식사 대접하고, 식사 대접을 못할 상황이면, 봉투에 몇 푼이라도 넣어서 차비로 드리자.’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언제라도 우리 교회를 방문하는 손님을 대접하려면, 제 주머니는 항상 두둑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결심하고, 결심한 대로 실천하다 보니, 외부에 집회하러 나가면, 저를 대접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있습니다. 집회를 다녀보면, 저를 대접하겠다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가 거두려면, 우리는 심어야 합니다. 심어놓으면 여러분의 세대에는 물론이요, 여러분의 자손들도 그 복을 누립니다. 반드시 누리게 됩니다.
다섯째, 교회에 잘 나오지 않으면서 은혜 가운데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마귀가 주는 속임수입니다.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올라가시면서 교회를 세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보혜사 성령님이 각 사람 안에 계십니다.
성령 받은 사람 두세 명이 모이면 주님이 그들과 항상 함께 계시기 때문에,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형성됩니다. 두 사람이 모여도 교회이고, 세 사람이 모여도 교회이고, 가정에서 예배드려도 일종의 가정교회가 됩니다. 두 사람이든 세 사람이든 모여서 교회가 됩니다. 이것이 교회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기도하고, 혼자 예배드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숯불을 떼어놓으면, 빨리 불이 꺼집니다. 숯을 두 개라도 받쳐 놓으면, 그 사이에 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와서 불이 살아납니다. 숯을 세 개를 받쳐놓으면 더 좋고, 다섯 개를 받쳐놓으면 더 좋고, 숯을 열 개 정도 쌓아놓으면 더 좋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집에서도 교회가 되어야 라고, 공장에서도 교회가 되어야 되고, 교회에 나오면 더욱 교회가 돼야 합니다.
언제나 모여야 합니다. 같이 찬양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예배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고, 간증하고, 자기가 QT해서 은혜 받은 것을 나누면서 교회가 교회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에 자주 나와야 은혜를 받고 건강한 신자가 됩니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교회에 나오면서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여섯째, 욕심을 따라 살면서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따라 살면서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죄를 범하게 되고, 죄를 범하게 되면 사망에 이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욕심을 따라 살다 보면, 반드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를 자꾸 범하다 보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솔로몬은 욕심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속에 일어나는 욕심을 따라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입고 싶은 대로 다 입고, 가지고 싶은 대로 다 가지고, 해보고 싶은 대로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1천 명의 여자를 데리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욕심을 따라 살다 보면, 하나님을 저버리게 됩니다. 욕심의 노예가 되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깁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모하고, 하나님보다 더 요구하고 더 욕심을 내는 등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곧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타락하게 되어있습니다.
욕심을 따라 살면 반드시 타락하게 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무엇이든지 지나치게 많으면, 자신이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해를 받게 됩니다.
신명기 17장 16~17절에 보면,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왕들이 많이 가지면 안 되는 세 가지 중 하나가 말입니다. 애굽에는 말이 없기 때문에 애굽에서 말을 가져옵니다. 그러니까 말을 많이 가지려면, 애굽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애굽에 가지 말아야 하는데, 말을 가지기 위해 애굽에 자꾸 가다 보면, 애굽과 친해지고 점점 타락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가나안을 떠나지 말라,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애굽은 타락한 세상이므로 애굽으로 내려가면 안 됩니다. 지옥으로 내려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가지 말라. 애굽 왕을 의지하지 말라. 애굽 군대를 의지하지 말라고 성경 곳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을 의지하면, 이스라엘과 애굽을 함께 다 멸망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을 많이 두면, 말을 관리하는 사람도 애굽에서 데려와야 합니다. 애굽과 가까이 있다 보면 타락하니까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들은 아내를 많이 두면 안 됩니다. 아내가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솔로몬의 많은 아내들이 솔로몬을 미혹하게 해서 결국 솔로몬을 우상숭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망하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아담 때부터 여자의 말을 잘 듣도록 되어 있습니다. 남자를 죽이는 것도 여자이고, 남자를 살리는 것도 여자입니다. 여자들은 죄도 많고, 은혜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 남자가 한 여자도 이기기 힘듭니다. 아담이 하와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천 명의 여자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솔로몬이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천 명의 여자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천 명의 여자가 떠들면, 솔로몬의 말이 들리겠습니까. 게다가 여자들은 목소리가 큽니다. 천 명의 여자가 달려드는데, 솔로몬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솔로몬은 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가 우상숭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책망하셔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나라가 북쪽 이스라엘, 남쪽 유다로 나뉘었습니다. 솔로몬은 유다 지파 하나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윗과 다윗의 등불을 꺼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망하게 하지 않으시고, 유다 지파 하나라도 솔로몬에게 붙여주셨습니다.
욕심이 많으면 타락하게 되어있습니다. 욕심을 따라 살면, 누구나 타락합니다. 무엇이든지 많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것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돈이 많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돈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왕은 금, 은을 많이 가지면 안 됩니다. 보화나 재물을 많이 가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것이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절제하면서 살 때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절제를 잘 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많이 먹을 수 있지만 적당히 먹고, 많이 가질 수 있지만 적당히 가지고, 많이 볼 수 있지만 적당히 보며 언제나 절제를 잘 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절제하지 않으면 복이 되지 않고 화가 됩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따라 살면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일곱째, 음란한 영화나 음란한 책을 보면서도 자신은 범죄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음란한 것을 잘 봅니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범죄하지 않고 신앙을 지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음란한 영화나 음란한 책을 보는 순간, 음란의 영이 역사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그런데 거룩한 몸 안에 음란의 영이 들어와서 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면, 자꾸 음란한 마음이 생깁니다. 음란의 영이 역사합니다.
그러고도 범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성령에게 오물을 마구 붓는데, 그게 범죄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철저히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여덟째, 여자와 단 둘이 있으면서도 자기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자기를 과신할 때 이런 어리석음에 빠집니다. 자기 자신을 시험하는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을 시험하는 이런 행동을 하면, 반드시 시험 들게 됩니다.
위대한 믿음의 조상 요셉도 보디발의 아내와 둘이 있으면 범죄하게 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뛰쳐나갔습니다.
사람은 이상합니다. 죄지을 분위기가 되고, 죄지을 장소가 되면, 반드시 죄를 짓습니다. 시간이 가면,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죄지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와 환경과 기회로부터 빨리 나와야 합니다.
청년들 가운데 그런 형편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세요. “하나님 아버지, 제 힘으로는 이런 환경에서 제가 신앙생활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죄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로운 환경으로 바꿔주세요. 제 환경을 좀 바꿔 주세요. 저를 좀 건져주세요.”라고 기도하시고, 결단하세요. 그리고 죄지을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빨리 나오셔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절대로 과신하지 마세요.
그래서 우리가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것, 좋은 교회에서 사는 것, 은혜로운 교회에서 사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죄지을 수밖에 없는 직장, 환경에 그냥 있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죄짓게 됩니다. 죄지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으면서도 “나는 죄짓지 않을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아홉째, 술집에 들어가도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술집에 가면 술을 마시게 되어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이 자기를 과신하게 만드는데, 자기를 과신하면 안 됩니다.
“나는 친구들이랑 술집에 가도 절대로 술 마시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시험에 들게 됩니다. 노름하는 데 가도 나는 노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은 반드시 노름하게 됩니다. 자기를 과신하지 마세요.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열째,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십일조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로 만들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열한째, 회개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 빨리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회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죄지은 사람이 금방 회개하는 줄 아십니까? 회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성령이 역사하기까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회개하는 것이 쉬운 줄 아십니까? 죄짓고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이 무슨 회개입니까.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마음의 변화도 없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죄를 범해도 회개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 자체가 회개한 사람의 생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자의 생각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내일도 내가 살아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속는 생각입니다. 절대로 올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제가 집회를 인도하러 갔던, 미국 L.A.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에 주일마다 헌금 계수하는 장로님, 집사님들 중에 한 분이 헌금을 계수하면서 도적질해도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몇 년 동안 계속 도적질하고 회개했습니다. 그것을 위장하기 위해 두 내외가 새벽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앞자리에 나와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모범적으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몇 년 동안 헌금을 계속 훔쳐갔습니다. 그것도 기술이 늘어 기막히게 돈을 빼갔습니다. 그러니까 교인은 많은데, 항상 헌금이 적어서 교회 살림을 꾸리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훔친 헌금으로 아주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꼬리가 길면 밟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짓을 하게 해서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헌금을 훔친 것이 들통 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양심이 화인 맞았습니다.
쉽게 회개할 수 있는 줄 아십니까? 몇 년 동안 그 짓을 했는데, 쉽게 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 분이 회개했다는 소식을 아직도 듣지 못했습니다.
정말 불행한 사람입니다. 독한 사람이 있으면 교회에서 그 사람을 고발하여 완전히 매장시켜야 하는데, 교회에서 그렇게 하지 않고, 다만 가지고 간 것 내놔라고 했더니, 집에 쌓아 놓았던 몇 십 만원만 가지고 오고, 다 갚지도 않았습니다.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술을 먹고, 그 다음에는 술이 술을 먹고, 그 다음에는 술이 나를 잡아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도적질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도적질이 도적질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미 여러 번 했는데, 내가 하지 않는다고 도둑놈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계속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도둑질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열둘째, 꼭 한 번만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한 번으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시작하면, 문을 열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한 번만 하겠다’라고 생각할 때에는 힘들게 시작했지만, 두 번째는 훨씬 쉽고, 세 번째는 훨씬 더 쉽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예 습관이 됩니다.
술도 “한 잔만”하고 한 잔만 마셨더니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석 잔 되고, 그 다음에는 술독에 빠져 죽습니다. 담배도 처음에 ‘한 번 피울까 말까’라고 생각할 때는 굉장히 고민해요. 그런데 한 번 피우고 나니까 두 번째 유혹이 올 때는 아주 쉽게 담배를 피웁니다. 세 번째는 더 쉬워집니다. 그러므로 처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도둑질도 한 번만, 노름도 한 번만, 음란죄도 한 번만, 거짓말도 한 번만 하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시작을 의미합니다. 문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러므로 스스로 속으면 안 됩니다.
열셋째, 믿음의 조상들도 그랬으니 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도 하갈이라는 첩을 얻었고, 다윗은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기도 하고, 아내가가 몇 명이나 되었고, 야곱은 네 명의 아내를 통해 열두 명의 아들을 낳았고, 솔로몬은 1천 명의 여자를 데리고 살았으니까 ‘나야 뭐 한 명 더 두면 어때? 믿음의 조상들도 그랬는데, 하나님께서 봐주시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보세요. 그 잘못 때문에 그들에게 얼마나 큰 비극이 있었는지, 자자손손 얼마나 고통당하는지 잘 보세요.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낳은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쫓겨났기 때문에 그 속에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후손인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원수로 싸웁니다. 끝까지 괴롭힐 것입니다. 다 아브라함의 자식인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송하겠습니까. 다윗에게 부인이 많고 그로부터 나온 자식이 많아서 비극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십니까. 야곱의 집안은 또 어떠했습니까.
열넷째, 노력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다섯째, 고생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여섯째,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일곱째, 남을 속여서라도 큰돈을 벌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들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고,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들은 사탄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받아들이다 보면 마음이 타락하고, 병들어서 패역한 인간이 됩니다. 마음이 병든 인간이 됩니다.
잠언 3장 32~33절에 보면,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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