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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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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25 12:10 조회3,4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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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2007년 11월 02일(금요철야)

본문 / 갈라디아서 6:6~10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법칙과 세상의 법칙이 있습니다. 세상의 법칙은 사람들이 세운 법칙입니다. 그래서 변합니다. 사람에 따라 법칙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본문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보면,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법칙입니다. 인간이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것은 영원불변합니다.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것은 이 말씀대로 금방 이뤄지지만, 어떤 것은 이루어지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걸리지만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본문 9절에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을 행했으면 선한 결과가 나타나야 하는데, 선을 행했는데도 결과가 나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선을 행했으면 선한 결과가 나타나야 되는데, 결과가 그렇지 않으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끝까지 선을 행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그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면 선을 심었으니 선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거두기 위해 좋은 것을 심어야 합니다. 이것이 축복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을 심어야 좋은 것을 거둡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축복받으면서 살려면, 좋은 것을 심어야 합니다. 좋은 것을 심어야 좋은 것을 거두면서 복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7장 15~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나무에 비유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평소에 무엇을 심으며 사느냐, 평소에 사람이 심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심는 대로 열매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무엇을 심고 사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면, 그 사람은 착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도 중요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 언제나 좋은 말을 골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선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친절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친절을 베풀어 주면, 상대방이 얼마나 기분이 좋고 얼마나 힘이 나겠습니까. 그것은 돈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친절한 말을 하고, 유익한 말을 하고, 돕는 말,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하고, 칭찬해주고 격려하므로 용기를 갖게 하고, 낙심된 사람을 일으켜주는 것도 좋은 것을 심는 것입니다.

 

1982년에 제가 미국에 공부하러 갈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에는 비자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여권도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당회 허락을 받은 후, 월요일에 여권을 신청하러 서울에 갔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에 여권을 받았습니다. 목요일에 준비해서 금요일에 미국 비자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목사님들에게는 비자를 받지 못했는데, 저는 비자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부리나케 비행기 표를 사서 미국에 갔습니다.

미국에 갔더니 토요일이었습니다. 주일 날,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주일 날 밤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미시시피 잭슨 시티에 있는 리폼드신학교에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월요일 아침 8시였습니다.

택시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니 오전 9시였습니다. 짐을 질질 끌고 다니며 “어디서 공부하나, 어디가 교무실인가” 살펴보다가 강의실을 찾았습니다. 공부하는 곳에 거기 밖에 없어서 짐을 질질 끌고 강의실에 들어가니 다 저를 쳐다봤습니다.

첫 시간이니까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한국의 부산에서 공부하러 왔다고 제 소개를 했습니다. 나는 정필도 목사이고, 한국의 부산에 있는 수영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교회에서 안식년을 1년 갖게 해서 공부하러 왔다고 제 소개를 했습니다. 다들 박수를 치며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게 수업 끝나고 교수연구실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교수들이 한 학생씩 불러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공부하러 가면, 이전에 유학 공부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어 준비하고 얘기를 듣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도 얘기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온 한국인 목사님들이 있었는데, 얌체같이 하나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니 놓치는 것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전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섭섭하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어려움 당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 되는지 몰라요. 부산에 와있는 외국인들, 새터민들에게 어려움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도와주지 않고 살기 쉬운데,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런 분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주고, 그들을 격려해주고 칭찬해주고, 그들에게 선한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19장 17절에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는 이유는 제일 축복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하늘의 이자는 5%, 10%가 아닙니다. 백 배, 천 배의 축복을 받습니다.

가난한 사람,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에게 꾸어주고,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의 선행에 대해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잠언 11장 24~25절에 보면,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물질 때문에 걱정하거나 물질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일이 없이 살아가기 원한다면, 이 말씀대로 사세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 말씀을 믿고 무조건 실천하세요. 액수와 분량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자꾸 흩어 구제하면 내 것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더 가난해질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흩어 구제하면, 오히려 자꾸 부해집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아끼지 않지만, 남에게는 과도히 아낀다면, 오히려 가난해집니다. 아무리 아껴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마치 독이 깨어져서 물이 새는 것처럼, 하나도 남지 않고 자꾸 자꾸 흘러나갑니다. 그래서 아끼기는 아끼지만, 오히려 점점 더 가난해집니다.

 

잠언 11장 25절에 보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급한 사람부터 도우세요. 가족들 중에, 친척들 중에, 이웃 중에, 교구와 사랑방 안에, 가까운 사람들 중에 급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부터 도와주기 시작하세요. 조금씩이라도 도와주세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하나님을 시험해보세요.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지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고,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선한 것을 심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심는 것입니다. 엄청난 축복이 되어 돌아옵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은 좋은 것을 심는 것입니다. 사랑은 한 마디로 말해서 ‘주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7~18절에 보면,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으로만 사랑하면 안 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에 대한 실천이 있어야 하는데, 진실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대로 살기가 어렵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 앞에서 책망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색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면, 어떤 때에는 기도하기가 무섭게 응답 되고, 어떤 때에는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지고, 어떤 때에는 말만 해도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무엇을 구하든지 받습니다. 이것은 진행형입니다. 한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항상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죽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질의 궁핍함을 당하시는 분들이 말씀대로 실천하면, 가난에서 벗어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꾸어줄 일이 많고, 언제든지 꾸어주면서 살 수 있습니다. 항상 나눠줄 것이 있고, 대접할 여유가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저는 ‘목사는 호주머니가 두둑해야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줄 수 있고,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복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교회를 위해 목사의 주머니는 항상 두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의 주머니가 비면, 교회가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제 주머니에는 항상 돈이 있습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사례비를 줄 때, 아내에게 줍니다. 그런데 한 번은 사례비를 받은 지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내가 제게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제 주머니가 두둑하다는 것을 아내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목사는 호주머니가 두둑해야 해. 목사의 주머니가 비면, 교회가 가난해져. 내 주머니 탐내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아무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제게 책망하셨습니다. “네 주머니가 네 것이냐? 내 것이지. 네 지갑이 네 것이냐? 내 것이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불렀습니다.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니래. 주님의 것이래. 내 지갑도 내 것이 아니래. 주님 것이래. 그러니까 당신이 필요하면 나에게 물어보지도 말고 언제든지 꺼내가. 왜? 내 것이 아니니까. 언제든지 가지고 가”라고 말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는 아내와 쇼핑하러 가면, 아내가 사는 것은 아내가 돈을 내고, 내 물건을 살 때에는 내가 돈을 지불했습니다. 내 것, 네 것을 철저하게 구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 이후에는 내 것, 네 것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내 것이 없어졌습니다.

 

평소에 저는 다 포기하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제 주머니는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제 지갑만큼은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날 이후로 그것도 제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제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살기 시작한 후로는 이야기하기만 해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생각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중얼거리기만 해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제 속을 꿰뚫어보고 계시니까, 제 생각을 아시고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시니까, 주님께서 제가 무엇을 원하는가 보시고, 제가 말하기만 해도, 생각하기만 해도, 중얼거리기만 해도 “여기 있다.”라고 갖다 주시는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착한 일을 하되 믿음의 형제들, 신앙생활을 함께 하는 형제들에게 하라는 것입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우리가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예수님에게 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라고 칭찬하셨습니다(마 25:35~36).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5:40).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되, 함께 신앙생활 하는 믿음의 가정들에 대해서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착한 일을 하되, 특히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과 좋은 일을 함께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6절에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의 종에게 한 것은 예수님에게 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4절에 보면,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많이 맞으며 고생했습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어떤 때에는 돌에 맞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죽은 줄 알고 사람들이 버리고 갔는데,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다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몸이 작고, 시력이 좋지 않아 옆에 데리고 있는 사람에게 불러주어 글을 쓰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있는 종인데, 시력도 좋지 않고, 몸이 약했습니다. 간질병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매를 많이 맞아 간질 증세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 약한 성도들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사도가 왜 이렇게 형편없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종이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종이라면, 강하고 멋져야 하는데, 사도 바울은 비실비실하고 형편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육체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탄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앞에 세 번씩이나 기도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고쳐주지 않으셨습니다. 받은 은혜가 매우 많아서 교만할까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를 그냥 두셨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도 바울에게 고약한 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줘야 할 하나님의 종이 자기가 병들어 있고, 자기가 허약하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면, 교인들에게 얼마나 시험이 되겠습니까.

그래도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이 “이것을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다”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은 매우 훌륭합니다.

갈라디아교회의 사도 바울이 심방을 하면 하나님의 천사가 오는 것처럼, 예수님의 오시는 것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종들을 대할 때, 예수님을 대접하듯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이 복을 받은 이유는 사울 왕이 악하고, 못된 짓을 해도 다윗은 사울이 기름 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사울에게 잘 대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이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종들에게 함부로 하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으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옮겨야 되는데,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멸시하고, 예수님으로 대접할 줄 모릅니다. 주님이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되는 일이 없고, 자꾸 빚만 늘어나고.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을 때, ‘왜 내가 이렇게 무너지고, 왜 이렇게 천해지고 자꾸 빈궁해지는가?’라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어떻게 대접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형제에게 한 것이 다 주님에게 한 것과 같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주의 종에게 하는 것이 다 주님에게 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형편없이 대접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대하든지 예수님을 대하듯이 해야 합니다. 특히 주의 종을 대할 때에 예수님을 대하듯이 해야 합니다.

이 말씀대로 행해보세요. 대접 받으신 예수님이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데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착한 것을 심으면, 착한 것을 거두게 됩니다. 좋은 일을 하시면, 그에 대한 축복이 반드시 있습니다.

야곱에게 열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첫째 아들이 르우벤입니다. 둘째 아들은 시므온, 셋째 아들은 레위, 넷째 아들은 유다입니다.

창세기 49장 3~4절에 보면,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방종하고 무절제함을 보여줍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히위족속 하몰의 아들 추장 세겜이 디나를 강간했다 그 족속 전체 남자들을 다 할례 받게 해서 사흘쯤 지났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차고 가서 남자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자들과 아이들, 재산을 빼앗아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할 때, 그는 요셉을 살렸습니다. 창세기 37장 26절에 보면,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다는 요셉을 위기에서 구해주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보면,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다는 넷째 아들이지만 장자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다가 장자의 축복을 받은 이유는 선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위기에서 살려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선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선한 것을 심어서 두고두고 축복을 받게 되는 비결입니다.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것을 심는 자가 되셔서 좋은 것을 거두시기를 축원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에 보면,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두 주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 하나는 육체, 두 주인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두 주인 중에 누구를 주인으로 삼고, 누구를 위해 사느냐, 누구를 위해 심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23절에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위하여 심으면, 성령을 따라 살면,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사는 자를 기뻐하시고, 거룩하게 사는 자를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사는 자와 함께하시고, 거룩한 자를 크게 들어 쓰십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살려면, 우리도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거룩하게 살려면, 평소 마음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 중심에 계시기 때문에, 깨끗하고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마음을 품고,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눈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 마음을 더럽게도 하고, 악하게도 하고, 음란하게도 하고, 거짓되게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눈 관리 잘해야 합니다. 나로 하여금 죄 짓게 만드는 것을 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입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말이 사람을 더럽게 하고, 사람을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입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평소에 좋은 말만 골라서 해야 합니다. 은혜 되는 말을 골라서 해야 합니다.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하게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의 교훈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으며 말씀의 은혜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기도생활에 성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귀를 이기는 비결입니다 기도 생활에 성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죄와 싸워 이기는 비결, 은혜 속에 사는 비결, 거룩하게 사는 비결은 기도생활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려면,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사랑의 사람을 축복하시고, 크게 쓰십니다. 사랑만큼 큰 그릇이 됩니다. 사랑만큼 크게 쓰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베푸는 자에게 큰일을 맡기시고, 많은 일을 맡기십니다. 아주 귀하게 쓰십니다.

 

우리는 항상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주변에 원수가 많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선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미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되, 미운 마음이 없어지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려고 애쓰면, 성령이 기뻐하십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려고 애쓰고,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사랑 중에 최고의 사랑은 영혼 구원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보다 더 급하고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최고의 사랑인 영혼 구원을 위해서 시간과 힘과 돈을 사용한다면, 여러분은 가장 가치 있게 사는 사람입니다.

반면 가장 나쁜 것은 육체를 위해 심는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됩니다(갈 6:8). 솔로몬처럼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면서 살면, 썩어질 것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의 쾌락, 육체의 영광, 세상의 명예를 추구하지 마시고,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이라도 구원할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사랑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향한 최고의 사랑은 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시간을 드리고, 힘을 쏟고, 물질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해 살 때,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좋은 것을 심읍시다. 성령을 위해 심읍시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잘 박힌 못과 같이 마음에 새겨질 뿐만 아니라 실천에 옮기셔서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날마다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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