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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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6 10:19 조회3,391회 댓글0건본문
성령의 열매
성령의 열매
2004년 06월 25일(금요철야)
본문 / 갈라디아서 5:16~24
사람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이 세상에서 살 때, 우리가 가지고 온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온 것입니다.
욥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욥 1:21).
사무엘상 2장 6~7절에 보면, 한나는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며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주장하신다는 것입니다.
역대상 29장에 보면, 다윗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대상 29:14).
이 사실을 믿고 깨닫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면서 살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지 않으셨으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고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이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성경을 볼 때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고 섬기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가장 귀한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 중에 하나가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성령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성령님께서 계시므로 가르쳐주시고,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6장 7~8,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한꺼번에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옛 사람이 남아있습니다. 점점 새 사람이 됩니다.
구원받는 것은 믿는 순간 이루어지지만,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점점 새 사람으로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옛 사람, 즉 예수님을 믿기 전의 타락한 속성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매일 전쟁합니다.
실제로 은혜로운 환경에서는 믿음 생활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는 환경에서는 옛 사람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새 사람은 성령을 좇아 살려고 하며 옛 사람은 육체를 좇아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견제하고 싸웁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가 많은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면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욕을 완전히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 육체의 소욕에 끌려가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탄식했습니다(롬 7:24).
사도 바울도 자신이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한 고민한 적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갑자기 새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옛날로 돌아가려는 속성이 남아있어서 탄식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육신에 끌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탄식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다면, 저와 여러분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에서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렇게 될 때 육체와 함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되고, 성령을 따라 살게 되고, 열매를 맺으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을 생각할 때, 어떤 기적이나 역사, 표적을 상상합니다. 그런데 그런 표적은 일어나도 좋고, 일어나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각 사람에 따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사탄도 성령이 임하는 것처럼 쇼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역사할 때도 희한한 일이 생기고, 방언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미혹의 영을 받아서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인도하실 때, 확실한 그 증거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열매를 보는 것입니다. 표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열매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자신의 몸에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경험은 없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시면 감동을 받아 큰 기쁨 속에서 눈물이 나고 행복하고 무척 좋습니다. 그런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점일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온 몸이 뜨거워질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척하고 말을 많이 하지만, 열매가 아니면 그 사람은 성령 받은 사람이 아니라 미혹의 영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성령의 열매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할수록 9가지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에 나오는 열매는 사랑과 희락, 그리고 화평, 모든 어려움도 잘 참는 인내, 자비를 베풀고,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다며 기뻐하는데, 절제하지 못합니다. 기쁨은 있지만 절제가 없는 것은 조금 기다려봐야 합니다.
우리 교회 개척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집사님이 저를 데리고 어느 집에 갔는데, 남편이 군에서 대령으로 복무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의 얼굴이 아주 까맸습니다. 이유를 물으니까 몇 달 동안 잠을 못 잤다고 합니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굿도 해보고 절에 가서 별 짓을 다 해봐도 소용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를 통해 저를 데리고 와서 기도해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집에 들어가서 보니 벽에 부적이 잔뜩 붙어있었습니다. 제가 부적을 떼고 기도했습니다.
그 날 밤부터 그분이 깊이 잘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쁨이 충만해서 저를 만나기만 하면 아주 싱글벙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신앙생활하시는 것을 보니 조금 이상했습니다. 새벽기도에 신도 신지 않고 그냥 달려오기도 하고, 절제하지 못하셨습니다. 알고 보니까 제대로 영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잠을 자게 되서 좋았던 것이지, 성령의 기쁨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가 있는데, 그 중 첫째가 사랑의 열매입니다. 성령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특별히 사랑의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의 변화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을수록 사랑이 많아지고 주님의 형상을 닮게 됩니다.
사랑처럼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사랑이 담긴 그 마음, 얼굴, 눈, 입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사는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부인은 시집 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농사지으며 아주 고생하면서도 아주 잘 참고 견뎠습니다.
그 비결은 남편이 아주 무뚝뚝하고 재미가 없지만, 밤에 잘 때 부인의 손을 꽉 잡고 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를 아끼는 마음을 표현할 때 부인은 녹아버렸습니다.
말도 사랑이 담긴 말을 하고, 생각을 해도 사랑이 가득한 생각을 하고, 편지를 써도 사랑이 담긴 편지를 쓰고, 노래를 불러도 사랑이 넘치는 노래를 부르며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라면, 이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이 어떻게 해야 아름다워집니까? 사랑이 많을수록 아름다워질 줄 믿습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교회 건물이 아름답다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해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기쁨과 화평과 평화, 화해, 회복, 행복이 있습니다. 증오가 있는 곳에는 저주, 피 흘림, 불행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사역하시는 박은혜 전도사님은 아버지가 무당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딸만 낳아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 살 때 어머니랑 생이별을 하고, 계모와 함께 교회에 갔다가 친어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친어머니가 교회에 오는 것을 보고 아주 반가웠는데, 계모는 친어머니를 좋아하지 않으니깐 교회에 나오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전도사님께서 두 분을 화해시켰습니다. “천국에서 다 같이 살 사람인데, 여기서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천국에서 같이 살겠습니까!”라며 화해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 안에서, 사랑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말하지 못할 과거가 있다고 해도, 사랑이 있으면 받아들여집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것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34). 여기서 예수님께 사랑하라는 말씀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사랑의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에로스 사랑은 남녀간의 성적인 사랑입니다. 이것은 동물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필레오 사랑은 친구간의 우정을 말합니다. 이것은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스톨게 사랑은 자신의 자식, 형제, 혈육 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이기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그러나 아가페 사랑은 신적인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뜻합니다.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큰 특징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원수라도 죄인이라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가장 순수하고 거룩하고 힘이 있고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돕고 섬기며 베푸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아가페의 사랑을 얼마나 가지냐에 따라 세상과 가정과 모든 것이 바뀌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가장 감동받는 것 중 하나가 봉사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렸을 때부터 봉사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제가 새벽예배를 가려고 5시에 교회에서 온다고 하는데, 호텔에서 자다가 일어나서 밖에 나가니 백인 할아버지가 차를 가지고 와서 공항에 가겠냐고 물으셨습니다. 직원인지 물어보니까 호텔과 계약을 맺어서 봉사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힘이 있을 때 그렇게 계속할 것이라는 것을 보면서 제가 참 감동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철저하게 봉사정신으로 도와주는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아주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의 학생은 공부는 잘 하지만 하버드 대학에 가려고 해도, 봉사한 것이 없으므로 낙방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세가 많아도,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은 큰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 사회의 문제는 사랑이 메마른 것입니다.
‘문제아’라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사랑에 메말라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사인인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풀라는 기회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랑은 세상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초기에 성전을 지을 때 어느 분을 사찰 겸 건축 현장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착해서 밤에 도둑이 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건축공사 중에 땅을 파면 지하수가 나오니까 펌프로 물을 뽑아내는데, 도둑이 펌프를 훔쳤습니다. 이것을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 다음 날 형사가 도둑을 잡아서 교회에 데리고 왔습니다. 사찰님이 그제서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도둑이 불쌍해서 그냥 용서해주라고 하니까, 도둑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는 도둑이 오지 않았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면, 사랑이 없어집니다. 사랑이 있는 것은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고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면 행복해집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색깔 안경에 따라 세상의 색이 달라 보이듯이, 사랑의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므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결혼한 후에 “연애할 때에는 자매가 너무 예뻤는데, 결혼하고 나니 못생겼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결혼 후에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못생겨도 사랑의 눈으로 보면, 예쁘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넘치면 마음에 천국이 넘칩니다.
천국은 오직 사랑으로만 충만한 곳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천국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려면, 성령 충만을 받아서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 세상이 행복해지려면, 모두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율법을 요약하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주 여호와를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들,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은 사람들만이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려면, 이 세상을 복음화해야 하고,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기억하시고, 항상 기도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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