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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13장

믿음 안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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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5-06 15:41 조회2,5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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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안에 있는가

 

믿음 안에 있는가

2021년 02월 07일(주일예배)

본문 / 고린도후서 13:5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믿음 안에 있는가’,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가’라고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확증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원 받은 사람인가 아닌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구원 받았는가 구원 받지 못했는가를 알지 못하면서 평생 교회 생활을 한들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우리가 죽은 후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확인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에 확인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믿음이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목회자였다고, 중직자였다고, 평생 교회 다녔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너를 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믿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가를 알지 못한 채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 받은 사람입니다.

 

구원 받으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다른 것은 잃어버려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목숨 바쳐 지켜야 합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 것은 은혜 중에서도 가장 큰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5절에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훌륭해서, 선하고 완전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9절에 보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행위가 옳아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받은 것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이지, 행위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해서 죄를 지어도 되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처럼 산다면, 행위가 완전하다면, 지옥에 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서, 행위가 완전해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완전하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죄인입니다. 다 죄를 범합니다. 마음으로, 행위로 죄를 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위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천국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장차 천국에 갈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천국의 시민답게 살아야 합니다. 장차 천국에 갈 사람이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과 똑같이 행동해서야 되겠습니까.

 

구원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징계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징계하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징계하시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사생자입니다(히 12:8).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신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온갖 나쁜 짓을 해도, 하나님께서 징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멸망합니다. 이런 사람은 징계가 필요 없습니다. 멸망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징계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회개하게 하시려고, 정신을 차리게 하시려고, 바르게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회개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가장 먼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4:17)”고 외쳤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지만, 우리가 천국에 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회개가 무엇입니까?

첫째, 죄에서 돌이켜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18장 21~23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방탕하게 살았다 해도, 거기서 돌이켜 말씀대로 바르게 살면, 이전에 범한 죄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도 기억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악인이라도 그 길에서 떠나 회개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8~32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아들은 못된 아들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둘째 아들이 과거에 잘못한 것을 묻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탕자의 아버지처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은 매우 큰 축복입니다. 회개하면 용서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회개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자신의 죄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의 양쪽에 행악자들이 못 박힌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악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회개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면 죄를 용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한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마치 죄를 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며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후,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지옥에 갈 사람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사두개인, 바리새인, 서기관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6절에 보면,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물 세례를 베풀 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 3:7~10)”라고 말하며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극소수이지만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이들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기로 작정된 사람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을 똑바로 알고 신앙고백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알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고 삽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증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인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어떻게 함께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 무엇이든 물어야 합니다. 항상 물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에 성령께서 말씀해주시는 것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항상 물어보며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해주시는 것을 체험해보세요. 의심하래야 의심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해주시는 것을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경험하면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시며 제게 “이 양 떼들을 버리고 네가 어디로 가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주시면, 저는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주셨습니다.

신학교에 간 후, 너무 실망해서 공부를 그만두려고 생각했습니다. 목회자가 되지 않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제게 겸손을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배당을 짓고 난 후, 입당하기 전에 제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환난이 닥치면, 우리 교회가 공격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제게 겸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성도들이 몰려오는데, 좋은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상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저절로 사람 되는 줄 아니, 사람으로 만들어야 사람 노릇을 한다. 계속 교육하고 훈련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교육하고 훈련할 수 있을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훌륭한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목회하며 기억에 남는 성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년 초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 후로는 제가 이렇게 저렇게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성도들이 다 알아서 움직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했을 뿐입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했을 경우에는 가만히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십니다.

 

저는 하나님께 책망도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저를 즉시 책망하셨습니다.

개척 초기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한 해에 두 배로 부흥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만한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설교를 잘 하는가보다. 내가 목회를 잘 하는가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간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에 교회가 텅 비어있었습니다. 어른은 반주자와 제 아내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몇 명이 앉아있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그 날부터 기도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씀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에도 집에 가지 않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니가 해? 내가 하지. 니가 해? 내가 하지. 니가 해? 내가 하지. 이 교회는 네가 세운 게 아니라 내가 세웠다. 네가 설교를 잘 하고 목회를 잘 해서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 백성을 모아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이 교회의 당회장이십니다. 저는 교육전도사의 마음으로 충성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빈 자리가 보이면 저는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심방해주세요. 누가 저 같은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오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주시지 않으면 우리 교회에 올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설교하다가 보면 자리가 꽉 찬 것이 보입니다. 그때 저는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못된 교인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람과 나 둘 중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 이 사람과 나 둘 중 한 사람이 교회를 떠나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밤새 기도했습니다.

새벽녘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네가 문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문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용서해주세요. 저는 제가 문제라는 것도 모르는 목사입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나는 너를 붙잡고 일하지, 그 사람을 붙잡고 일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로는 책망하는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저울질하십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것을 확신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이 커져 우리나라를 복음화하는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복을 주셨습니다.

 

좋은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복이 됩니다.

우리가 좋은 소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내 안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의 축복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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