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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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31 10:22 조회3,342회 댓글0건본문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라
2006년 02월 12일(주일예배)
본문 / 고린도후서 12:7~10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고,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완전한 사람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완전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완전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봅니다. 이런 사람은 어찌하든지 자신의 약점은 감추려 하고, 자신의 부족은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실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합니다. 어디서나 완전한 척 하려다 보니 자연히 불안하고 초조하여 마음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으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약점과 부족을 늘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지혜롭고 쓸모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인도의 선교사 윌리엄 캐리는 원래 구두수선공이었습니다. 대학교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잘하다가 선교사가 된 것이 아니라, 구두를 수선하는 일을 하다가 은혜를 받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전에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으로 인해 그를 업신여기고 악평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캐리는 모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향해 얼굴을 붉히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고 도리어 “예! 그런데 저는 구두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구두를 수선했을 뿐입니다.”라고 겸손히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통해 좋은 열매가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자기가 마치 완전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고 교만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통해서는 열매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들어 쓰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고 약점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약점이 없고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사용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영안이 어두워 자신의 부족을 모르고 잘난 척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물리치시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잠 16:5, 약 4:6, 벧전 5: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겸손이란 자신의 약점에 대하여 솔직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지혜롭다 생각하고 능력도 출중하고 문벌도 있고 모든 일에 자신만만한 사람을 쓰시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자기 자신은 부족하고 천하고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이런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누구인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보면,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바울이 보고 그에게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행 14:10)”고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걸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은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행 14:11)”라고 하며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행 14:15)”고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을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에 비유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자기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중 한 분은 건축 중인 교회를 둘러보다가 건축현장에서 그만 머리를 부딪쳐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 중의 한 분은 목회도 잘하고 무슨 운동이든 못하시는 것이 없는 다재다능한 분이셨습니다. 토요일마다 청년들과 축구하실 정도로 강건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축구경기 중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으시더니, 목 아래 부분이 마비되었습니다. 이날 이후 일어나지 못하시고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툭 치면 깨어지는 질그릇과 같이 약합니다.
헤롯 왕은 마치 자신이 신인 것처럼 행세하다가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아마 뇌염모기에 물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땅에서 천하를 호령하던 왕이었지만, 하찮은 벌레에게 물려죽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할 줄 믿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사도 바울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육체의 가시는 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또 고치기 못하는 나쁜 성격이나 습관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육신에 장애가 있거나, 만성적인 병이 있거나, 몸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학자는 사도 바울에게 간질이 있었다고 하고, 시력이 쇠퇴하여 편지도 대필해야 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점이 있는 사람, 부족한 사람을 들어 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1967년 이스라엘의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 여사는 자서전에서 “내 얼굴이 못난 것이 다행입니다. 나는 못났기 때문에 기도했고, 못났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나의 약함은 이 나라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실망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골다 메이어는 수상의 자리에 있는 12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백혈병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며 직분을 잘 감당했습니다.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소아마비 증세로 다리를 절고 고생했지만,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은퇴하는 날까지 미국 대통령직을 역사상 네 번이나 지낸 위대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들어 쓰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고린도후서 12장 8~10절에 보면,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사도 바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하나님께 절대주권이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십니다.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육체의 가시가 고통만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의 가시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유익은
첫째,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믿음이 강해집니다. 육체의 가시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위골되어 도망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하여금 전심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육체의 가시로 인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더 크게 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를 자만하지 않게 하고, 항상 겸손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본문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 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체의 가시 때문에 겸손한 자가 되었다면, 육체의 가시가 오히려 큰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셋째,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서나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힘만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앞서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행해주시면 안심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앞서 나아가지 않습니다.
넷째, 다른 사람과의 교제를 활발하게 만들어줍니다.
육체의 가시가 있는 사람들은 서로 돕고 의지하는 가운데 서로를 중요하게 여기고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따라서 서로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한 존재가 되기 때문에 강하게 결합합니다..
우리의 강점은 경쟁을 불러일으키지만 우리의 약점은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약점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약점 때문에 더 사랑받게 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악한 사람 외에는 약한 것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 아기는 얼마나 연약합니까. 천진난만한 어린 아기를 보면, 즐겁고 귀엽고 사랑스러워 돌봐주려고 합니다. 훌륭한 신앙과 인격을 가진 사람들은 약자에 대해 애정을 갖고 항상 도우려고 합니다.
한국 여자가 주한 미군 병사와 결혼하여 미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서툴고 길도 모르다 보니 남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자연히 겸손한 마음으로 남편을 귀하게 여기고 조금만 잘해주어도 크게 기뻐하고 행복해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 여인은 직장생활을 하며 자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둘 사이에 기쁨과 보람이 사라졌고, 결국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 여인에게 지혜가 있었다면, 남편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살았더라면, 행복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편 앞에서 언제나 알아도 모른 척, 할 수 있어도 못하는 척하며 “여보!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당신 없이는 못 살아요.”라고 애교스럽게 말하는 여자는 일생을 편하게 삽니다.
다섯째, 약점을 극복한 사람은 약점을 가진 다른 사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고 치유할 수 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하나님의 거인들은 모두 약한 사람들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모세의 약점은 그의 성질이었습니다. 그는 불의를 참지 못하여 애굽 사람을 죽였습니다. 화가 나서 말로 명하라 한 반석을 지팡이로 쳤으며, 우상 숭배하는 백성들을 보고 화가 나서 십계명이 기록된 판을 깨뜨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불같은 성격을 가진 모세를 ‘지구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기드온의 약점은 낮은 자존감과 뿌리 깊은 불안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큰 용사로 바꾸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약점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내를 두 번이나 동생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는 자의 조상’으로 바꾸셨습니다.
충동적이고 의지가 약한 베드로는 ‘반석’이 되었고,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7장 19절에 보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3절에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었던 바울을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하시고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를 들어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자를 들어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연약한 자를 높이 들어 쓰셔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의 가장 본질적인 자질은 완벽함이 아니라 신뢰성에 있습니다. 신뢰성이 있어야 사람들이 따릅니다.
우리도 늘 완벽하기를 바라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을 크게 들어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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