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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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19 12:33 조회3,528회 댓글0건본문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2017년 04월 16일(주일예배)
본문 / 고린도전서 15:1~8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많이 받으시고 죽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세 번 이상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내용의 말씀이 마태복음 16장 21절, 17장 22절, 20장 18절에 반복해서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많이 소문났던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27장 62~66절에 보면,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들은 ‘무덤을 막아버리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도 그 안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덤을 막아버린다고 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장사되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무덤 밖으로 나오시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것입니다.
그 밤에 천사가 내려와 무덤의 돌을 굴리는 것도 보았을 것이요, 빛나는 광채 속에서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것도 보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1~15절에 보면,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대제사장들의 말에 속아 잘못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철저히 섬겼던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모를 정도이니 대제사장들이 철저하게 거짓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부정하는 사람이 많아도, 이들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진실은 다 드러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바로 승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것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것을 믿지 않으래야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보면,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한두 사람이 본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도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사람들이 확실하게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기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만나주시는 유대인들이 있어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대단합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는 것을 보면, 주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가까운 줄 믿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신 분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주님께서는 살아계십니다.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 두 가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복음을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해도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와 저주를 모두 속량 받았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아내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갖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일로 말미암아 죄를 짓게 되었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3장 14~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먼저 뱀에게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며 뱀을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며 저주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7~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며 저주하셨습니다.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도 저주요 비극이지만,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살게 된 것은 죽음보다 더 큰 비극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가서 살지 못하고, 불 못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저주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은 더욱 타락하여,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인간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믿음도 없고 성령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습니다. 그래서 평생 마귀의 종 노릇 하다가 지옥 불 못에 들어갑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 세상의 낙은 잠시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낙을 누리며 살다가 죽으면,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당하며 살게 됩니다. 이보다 더 한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에게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죄가 해결되면, 저주도 해결됩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와 저주를 모두 속량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기 전에 이미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저주를 모두 속량 받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 없이 살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 됩니다. 성령 없이 살던 삶을 청산하고 성령을 모시고 살게 됩니다.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때문에 항상 기뻐했습니다. 주 안에서 죽은 자들도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죽어도, 예수님을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를 살리십니다. 그러므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에 보면,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에 우리의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썩지 않는 몸,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병들거나 상한 몸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53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한 사람만 영광스러운 몸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우리는 썩어질 몸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변화된 몸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죽지 않는 몸, 병들지 않는 몸, 늙지 않는 몸으로 변화되어서 주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후, 40일간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활동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들어가실 때에 문을 열어달라고 문을 두드리시지 않으셨습니다. 문이 잠겨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문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구름을 타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어떤 몸일까요? 예수님의 몸은 늙거나 병들거나 약한 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은 영생하는 몸, 완전한 몸,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7절에 보면,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는 것을 ‘첫째 부활’, ‘생명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살아남아있는 성도들은 신령한 몸, 썩지 않는 몸, 영생하는 몸,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하고, 주님을 모시고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때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24절에 보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활의 순서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 중에 죽은 성도들이 먼저 부활합니다.
여기서 ‘마지막’은 심판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이때 부활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고 영원히 불 못에 들어갑니다. 불신자, 세상 사람들이 이때 부활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믿음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처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두 부류로 나뉩니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과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 등은 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겉모습은 모두 똑같습니다. 그런데 기름을 준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다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다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과 믿음이 아직 없는 사람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한 사람이라면, 목회자 중에서도 훌륭한 목회자일 것입니다. 귀신을 많이 쫓아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이라면, 사람들의 눈에는 굉장히 훌륭한 목회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도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는 말씀을 들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마태복음 24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준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맞이할 것을 평소에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 어떻게 될까요? 마태복음 24장 40~5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의 삶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교회 다니면 다 구원 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직분자가 되면 다 구원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직분자가 되면 구원 받는다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목회자가 되면 구원 받는다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평소의 삶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외식(外飾)하면서 살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인데, 평소에는 날마다 술집을 드나드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21장 34~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회자들도 명심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주의 일 속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다릅니다.
겉보기에는 주의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제대로 기도생활을 하지 않으면 병들어버립니다. 심령이 고갈됩니다. 깨어 기도하는 생활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과 함께 기도생활을 하며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은혜 받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자기 자신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의 삶과 성령으로 거듭난 후의 삶이 다르다는 것을 자신이 압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든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해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주님, 오시옵소서. 주님, 오시옵소서.”라고 늘 깨어 기도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마음에 깊이 새기고,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게 하여주옵소서. 주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주님을 환영할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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