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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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09:40 조회3,205회 댓글0건본문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2009년 11월 13일(금요철야)
본문 / 고린도전서 11:23~32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중보자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 죄인입니다. 죄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중보자가 되려면 두 가지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신성과 인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죄가 없어야 합니다. 죄 있는 인간은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천사도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천사는 사람이 아니므로 인성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인간도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 공자, 맹자, 마호메트 그 누구도 될 수 없습니다. 신성이 없고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시되 사람의 몸을 입고 오게 하셔서 신성과 인성을 가지게 하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타락한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아담의 씨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요셉과 약혼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실 것을 예수님께서 오시기 7백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을 통해 오실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죽이면 될 줄 알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사흘 만에 부활하게 하셔서 그저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 것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에 잉태되실 것을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사람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그러므로 주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려면, 그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죽어야 합니다. 죽을 수 있는 몸을 입고 오셔야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저와 여러분을 대신하여 죽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사람은 다름 아닌 타락한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의 제자 중 타락한 가룟 유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가리켜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하필이면 예수님을 죽이는 데 쓰임 받았으니 세상에 이런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이런 죄를 범했다 해도 회개하면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데, 이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멸망했기 때문에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한 것만 못한 사람입니다.
잠언 16장 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한 날에 악한 사람이 악한 짓을 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악한 역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팔아먹는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적당한 사람이므로 악한 자를 악한 날에 적당히 쓰셨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우리 중에는 이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소원합니다. 사탄의 심부름꾼이 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영광 받으시는 일, 좋은 일에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를 화평하게 하고 교회를 부흥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일을 행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에게 소원을 집어넣어주셔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십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는 일에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것을 잊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 구원 받는 언약입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거룩하게 살려고 해도, 번번이 실수합니다. 알게 모르게 죄를 범합니다.
행위로 구원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만이 메시아이심을 믿으면 구원 받는 언약입니다. 예수님만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심을 믿으면 구원 받는 언약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구원받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구원받는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6절에 보면,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찬식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복음,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았고 구원 받았다는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는 모든 저주를 속량 받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믿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이 땅에 불행한 일, 복잡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에게 허물이 많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십자가 앞에서 해결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십자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6절에 보면,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성찬식을 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 식사할 것입니다.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살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성찬예식에 참여할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8절에 보면,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 앞에 더러운지 깨끗한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어떠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의 마음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저울질하십니다. 우리가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십니다.
원수 마귀의 속성인 악하고 불의하고 거짓된 마음은 조금이라도 용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악한 마음, 불의한 마음, 거짓된 마음을 가지면, 그때부터 사탄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더 악해지고, 불의한 짓을 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상태로 성찬식에 참여하지 않도록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죄와 허물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회개 없이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회개 없는 믿음은 구원 받는 믿음이 아닙니다. 회개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회개 없는 믿음으로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회개 없는 믿음은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 없는 믿음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세례 요한에게 많은 사람이 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세례를 받으려고 왔습니다.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 3:7~10)고 외쳤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좀처럼 회개하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바로 이기적인 마음과 행동입니다.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하고 손해 볼 줄을 모르고 양보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이런 행동 때문에 전도의 문이 닫힙니다. 1년에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대부분이 바로 이기적인 마음 때문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자기밖에 모르면, 정이 뚝 떨어집니다.
최고의 전도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도를 제일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대접하며 전도하는 것입니다. 먹여놓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가 잘 됩니다.
그저 덮어놓고 기회만 있으면 대접하고 기회만 생기면 좋은 것을 자꾸 주면 됩니다. 이것이 사랑을 심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하기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신의 목숨까지도 주셨습니다.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전도법은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손해보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것을 회개하고 팍팍 주면서 사는 것입니다. 일부러 손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 문을 열어놓으면 전도가 잘됩니다.
제가 공군 군목으로 복무할 때의 일입니다. 밤마다 커피를 끓여 다니며 전도했습니다. 보초서는 장병에게 커피 한잔 따라주고 과자 한 봉지 주고 이야기하다보면 다 먹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내가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해도 되느냐”라고 하고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제가 기도한 장병 중에 스님의 아들도 있었습니다. 기도해주겠다고 했을 때, 거절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먹은 것이 있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교회 가자는 것도 아니고 기도해주겠다고 하니 모두 허락했습니다.
그러면 손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이 아들이 군대에 와서 밤낮 고생하는데 눈동자 같이 지켜주세요. 이 아들이 예수님을 믿어 가문이 예수 믿는 가문이 되게 해주세요. 이 아들이 성공해서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축복기도를 해주면 대부분 울었습니다. 서러워서 우는지, 고마워서 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 보면 교회에 나와 있습니다. 먹여놓고 전도하니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릅니다.
친척들, 가난한 어른들을 전도하는 방법은 자꾸 갖다 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예수 믿으라고 말하지 말고, 용돈을 몇 번 드려보세요. 다 끌려옵니다. 해보십시오.
마태복음 10장 5~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보내시며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모두가 적신으로 태어났습니다. 가지고 온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를 거저 내어주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목숨을 내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거저 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대로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행함과 진실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가족도 구원 받게 하지 못합니다. 너무 이기적이어서 자기 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꼴을 보고 누가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그래서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면, 가족은 물론이요 친척과 친구들도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자기를 살펴야합니다. 이기적인 마음과 행동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 없는 마음과 행동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야 성숙한 믿음과 인격의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주의 몸을 분별하고 먹고 마셔야 합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9절에 보면,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떡과 잔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와 땀과 눈물을 쏟으시고 죽으신 주님의 몸이라는 사실을 알고 떡과 잔을 먹고 마셔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두 손과 두 발에 못을 박히시고, 창에 가슴을 찔리신 주님의 몸을 생각하면서 떡과 잔을 먹고 마셔야 합니다.
이사야 53장 5~6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찔리심으로 우리의 허물을 해결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상하심으로 우리의 죄악을 해결해주셨고, 예수님께서 대신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21절에 보면,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하므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오게 하기 위해 본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드렸습니까.
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
1.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2.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 같은 세상에 만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3. 죄 중에 빠져서 영 죽을 인생을 구하여 주려고 나 피를 흘렸다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4. 한없는 용서와 참사랑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값없이 주었다 이것이 귀중하건만 너 무엇 주느냐 이것이 귀중하건만 너 무엇 주느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생각한다면 눈물 없이 떡과 잔을 받아먹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는 자기를 살피지 않고 주의 몸을 분별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약한 자와 병든 자도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성찬을 더럽히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단계적으로 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몸이 약해집니다. 몸이 약해질 때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깨닫지 못하면 그 다음에는 병들어 드러눕게 하십니다. 병들어 드러누웠을 때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영원히 잠자게 하십니다. 생명을 거두어 가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 데려가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사랑하시므로 고생하게 하지 않으시고 고난 속에서 지옥의 고통을 맛보지 않고 빨리 천국 가도록 데려가는 분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빨리 죽는 것이 축복입니다. 더 살아서 못 볼 것을 보고 고통을 당하니 그것을 피하게 하십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와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여로보함은 악한 사람이므로 여로보함에게 속한 모든 사람 즉 모든 친척과 그와 한 패거리인 사람들까지 죽었을 때 묻어주는 사람들도 없어서 개들이 물어뜯어 먹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는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 하나 보시고 험한 꼴을 보지 않도록 편안할 때에 죽게 하셨습니다. 아주 편안하게 천국에 가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담스러우셔서 거두어 가시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빛과 소금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에 그 사람을 살려두면 하나님께서 부담스러우셔서 일찍 거두어 가신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서 세상에서는 악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이런 사람도 회개하면 되는데, 회개하지 않으니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빨리 떠나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방주를 만들 때 노아의 여덟 식구만 붙어서 그 어마어마한 방주를 지었을까요? 아니면 목수들을 사서 일을 시켰을까요? 아마 많은 사람에게 품삯을 주어가며 일을 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아가 얼마나 열심히 전도했을까요? 이 방주를 왜 짓는지 열심히 설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여덟 식구 이외에는 한 사람도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귀가 아프도록 들어도 회개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끝까지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만든다고 그렇게 수고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불행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찬식에 참여하는 사람은
첫째,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그냥 살 수 없다고 새로운 결심을 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결심한 대로 살 수 있도록 나를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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