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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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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6 09:52 조회3,3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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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념하라

 

나를 기념하라

2004년 04월 09일(금요철야)

본문 / 고린도전서 11:23~32

 

성찬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예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살이 찢기신 것을 기념하는 예식이 성찬식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살이에 쫓기다 보면, 십자가의 은혜를 곧잘 잊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의 은혜를 잊지 말고 살아가라고 예식을 정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파에서는 십자가의 잊지 않기 위해 주일마다 성찬식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두 손과 발은 못에 박혔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인해 예수님께서 찔림을 당하시고 징계를 당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살라고 세워주신 예식이 주님의 성찬식입니다.

 

성찬식은 무엇보다도 거룩하고 엄숙하게 참석해야 합니다. 특히 성찬식에는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구원의 감격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는 주님의 떡과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살피지 않고 그냥 참석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찬식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그냥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과 같다고 본문은 말합니다(고전 11:29).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고린도교회에는 약한 자, 병든 자, 잠자는 자, 곧 세상을 떠난 자도 많이 생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성찬식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에게는 은혜가 되고, 기적이 일어나도록 마음먹어야 합니다.

 

첫째, 우리가 받아먹는 떡과 잔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떡은 예수님의 살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몸을 의미합니다. 두 손과 발에 못 박히셨던 몸, 머리에 가시관을 쓰셔서 피를 쏟으셨던 몸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잔은 예수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땀과 눈물뿐 아니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유월절에는 1년 된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지만, 시작이 어떠했습니까? 애굽을 떠날 때에 하나님께서 장자를 치는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때 양을 잡아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은 그 재앙이 넘어갔습니다. 장자를 쳐서 죽이는 천사가 피를 보면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유월절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의 양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장차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과 구원 받는, 어린 양의 피와 같음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떡과 잔을 받을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먹고 마셔야 합니다.

 

둘째,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떡과 잔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주님의 고통은 모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볼 때에 감격도 없고 눈물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고난 중에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만큼 심한 고통도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⑴ 예수님께서는 전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과거, 현재 그리고 영원한 미래까지 아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십자가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아는 것이 병이요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적이 없어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하면 그 때부터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전에도 고통을 아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고통이 몇 배로 컸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생각하지 않으시고 다른 일에 골몰하셨을 때에는 괜찮으셨겠지만, 그 날이 가까워 올수록 힘드셨을 것입니다.

 

⑵ 예수님께서는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의 좌우 편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는 밑바닥 인생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소에도 멸시를 당하고 죄를 많이 범했으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누구도 예수님의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빌라도도 제사장도 예수님의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죄인들에게 맞으시고 조롱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⑶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아도 그 아픔이 무척 큽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산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여러분은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옥은 죄 값으로 영원히 고생하는 곳입니다. 지옥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잠도 죽음도 안식도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막 15:34)”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죽었어야 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랑을 잊고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금요일 오전 9시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여섯 시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 날 제자들과 마가의 다락방에서 만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 이 예식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는 평소 음식을 먹듯이 성찬식을 거행하다 보니 많이 먹는 사람도 있고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고린도교회의 사람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을 살피고 떡과 잔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떡과 잔을 받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음을 믿는가’, ‘이제라도 모든 죄를 예수님 앞에 용서받기를 원하는가’, ‘아직 끊어버리지 못한 죄가 있는가’ 스스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참 회개는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회개한 증거가 있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있고, 죄에 대한 아픔과 미움이 있고, 뉘우침이 있습니다. 범죄한 자신을 생각할 때 미워집니다.

이때 성령의 은혜가 생깁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말하는 것이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예수님과 최후의 만찬에 참석했던 가룟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을 몰라도, 예수님을 알고 계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1~25절에 보면,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1~27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순간이 주님께 회개할 수 있었던 기회였는데, 회개하지 않았더니 그 속에 사탄이 들어갔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사단이 들어가 더 완악해지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 13:27)”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가룟 유다가 받아먹은 떡과 잔이 무슨 의미가 있었습니까!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비참한 종말을 고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밤 떡과 잔을 받아먹을 때에 내가 어떤 상태인지 살피고 떡과 잔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 진실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입었고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마음 없이 어떻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말로 찬양으로 글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새로운 결심을 하면서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해짐을 전하기로 결심하며 받으십시오.

 

다섯째, 우리를 붙잡아주시기를 구하면서 받으십시오.

우리는 약해서 알면서도 죄를 범하고,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죄를 범합니다. 그러므로 도와달라고 붙잡아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떡과 잔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죄악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게 사는 자를 축복하시는데, 우리는 거룩하게 살지 못합다. 그래서 많은 복을 놓칩니다.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풍족한 복을 받게 하시려고 하는데, 우리의 죄가 그것을 가로막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 비결은 성령의 충만함밖에는 없습니다.

성령은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환난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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