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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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31 10:40 조회3,399회 댓글0건본문
삶의 목적
삶의 목적
2006년 04월 02일(주일예배)
본문 / 고린도전서 10:31~33
사람은 누구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표를 이루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 목표를 얼마나 이루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느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올바른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더구나 자신의 삶의 목적을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잘못된 삶의 목적을 가졌거나, 삶의 목적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 헤밍웨이는 “인생에는 목적이 없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물을 필요조차 없다”라고 극단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는 끝내 자살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한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모르거나 아무런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대개 하나님을 모르거나 하나님을 안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모르고 삽니다.
우리가 올바른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항상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자신에게 질문해야 하는 것은
첫째, 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중심으로 삶을 이루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이나 가족, 스포츠나 취미, 그리고 돈과 재미를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삶의 중심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우리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결단코 우리를 붙잡아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중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미국의 록펠러는 33세였을 때, 인생에서 100만 불의 이익을 얻는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43세에는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를 소유했고, 53세에는 억만 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알로피셔(alopecia)라는 탈모증에 걸렸습니다. 이 병은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몸이 마르는, 흔하지 않는 병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의사로부터 결정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1년을 견딜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 선언을 들은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 당시, 사업이 잘되어 하루에 100만 불을 벌었지만, 그는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며 인생을 괴롭게 보내야 했습니다. 순간 그는 ‘이 많은 재산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밤새 괴로워하다가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 되신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그는 뉴욕에 리버사이드교회를 비롯하여 수많은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바쳤고, 록펠러재단을 만들어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료사업에 쏟아 부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인생의 초점을 바꾸었습니다. 돈을 중심으로 살았던 과거와 달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의사들은 그가 거의 55세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록펠러는 9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계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삽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시간을 내고 물질을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삶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C.C.C.의 창립자인 빌 브라이트는 C.C.C.의 활동을 통해 1억 5천만 명 이상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한 사람입니다. 한 번은 릭 워렌 목사님이 그에게 “빌, 하나님께서 왜 당신을 사용하시고 당신의 삶에 그렇게 많은 복을 주셨을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그는 “나는 젊었을 때에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나는 직접 계약서를 쓰고 밑에 ‘바로 이날부터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다’라고 서명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완전히 드렸습니다.
둘째, 나는 어떤 성품을 가지고 사는가.
우리가 어떤 성품을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얼마나 큰 일을 많이 하고 있느냐’에 있지 않고, ‘우리가 어떤 성품을 가지고 사는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학위를 가지고 있느냐,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느냐, 재산이 얼마나 많으냐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5~7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이루는 데는 평생이 걸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담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 나는 어떤 사람을 섬기는 데 기여할 것인가.
이 세상에는 할 일이 많습니다. 청소년, 장애인, 가난한 사람, 환자, 고아, 양로원의 노인, 정신지체인 등등 이들을 위해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사람의 필요를 다 충족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부터 찾아야 합니다. 일단 누구를 돕고 싶은지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을 생각하고 평생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황해도에 사셨던 이찬영 장로님은 큰 부자였습니다. 이분은 1년 농사를 지으면, 농작물의 십일조를 따로 창고에 넣어두고, 교회 살림이며 학교를 도와주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집안에 잔칫날이 있으면, 잔치에 앞서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큰 잔치에는 황해도 전역에 있는 거지들을 모두 초청하여 후하게 대접했습니다. 그것이 소문나 황해도뿐만 아니라 평안도, 함경도 거지들까지 몰려왔습니다. 이들을 실컷 먹이고 음식을 손에 들려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장로님은 자녀들에게 “가난한 장사꾼의 물건은 절대로 깎지 말라”고 당부할 만큼 선한 분이었습니다.
넷째, 나는 주님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하고 있고 주님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가.
우리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과연 나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고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나를 통해 구원받는 영혼이 생겨나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섯째, 나는 교회생활에 성공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수시로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교회생활에 성공해야 참 성공자가 됩니다.
돈이나 명예를 얻었다 해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드리는 교회생활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실패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교회생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는 장차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될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모여서 천국생활을 훈련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사랑이 예수님 사랑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천국과 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사탄의 목표는 교회를 지옥같이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디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목적에 맞추어 살아가야 합니다.
가난을 미덕으로 삼던 프레몽트르 수도원의 재정이 마침내 바닥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수도원의 뾰족탑이 무너져 내리고 창문들은 깨어져 나갔지만, 그런 것을 손볼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더욱이 깨어져버린 종마저도 다시 살 형편이 되지 못해, 신부님들은 나무로 딱따기를 쳐서 기도시간을 알리곤 했습니다.
마침 그 수도원에는 고셰라는 수사가 있었는데, 그가 하는 일은 고작 젖소 두 마리를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가난에 찌든 수도원의 재정 상태를가슴 아프게 생각하던 고셰 수사는 수도원장의 허가 하에, 젖소 돌보던 일을 중단하고 ‘불로장생주’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어릴 때 자기를 키워 준 양부모가 불고장생주의 전문가였기에, 그때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을 기억하며 불로장생주를 빚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고셰 수사가 빚은 불로장생주는 프랑스 전역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프레몽트르 수도원은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수도원의 건물은 웅장하게 고쳐졌습니다.
모든 것이 고셰 수사 덕분이었기에 고셰 수사는 신부님의 서품을 받았습니다. 수도원은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신부님들이 모두 모여 경건하게 저녁 미사를 드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뛰어들어 괴성을 지르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고셰 수사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불로장생주가 잘 빚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매일 그 술을 시음해보다가, 그만 알콜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경건하게 미사를 드리던 다른 신부님들은 술주정하는 고셰 수사를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치면서 그를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수도원 원장은 고셰 수사에게 앞으로는 성당 출입을 삼가고 주조장에서 불로장생주만 빚으면서 거기에서 혼자 기도할 것을 엄히 명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수도원장의 엄한 명령을 따라야만 했던 그의 영혼과 육체는 주조장 안에서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테가 쓴 〈고셰 신부의 불로장생주〉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교회가 돈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4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제 갓 안수를 받은 젊은 목사가 어느 교회에 부임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신임 목사를 환영하는 만찬회가 열렸는데, 어느 부인이 젊은 목회자에게 다가가더니 “어떻게 목사님께서 7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 힘든 일을 맡으실 생각을 하시게 됐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젊은 목사는 “제가 이 도시에 온 것은 7백 명의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단 한 분만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온 것입니다. 그분이 기뻐하시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저절로 잘 될 줄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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