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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10장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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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5-11 11:52 조회2,8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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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2021년 04월 18일(주일예배)

본문 / 고린도전서 10:31~33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한가, 사람이 얼마나 타락했는가, 사람의 죄가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 고난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죄가 많습니다. 로마서 3장 10~15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가 없는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무지몽매하고 악합니다. 입술로 죄를 많이 범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보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매우 훌륭한 사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보다 죄를 많이 범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악한 사람이요, 죄를 많이 범한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훌륭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영안이 밝아집니다. 영안이 밝아지면, 은혜 받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습니다.

영안이 밝아지면, 가장 먼저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습니다. 자신에게 죄와 허물이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영안이 밝아질수록 자신의 허물과 죄가 보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죄가 많은 사람이요 허물이 많은 사람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은 사람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교만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겸손해집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영안이 어두워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바르게 산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죄와 허물은 보지 못합니다. 그 대신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심판 주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사람을 비방하고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자신은 깨끗하고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아주 미워하십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보면,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비방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죄가 많고 고난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고생을 많이 합니다.

욥기 5장 7절에 보면,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고생의 문이 열립니다. 고난이 많은 세상에서 평생 고생하며 살아갑니다.

 

아기가 엄마의 몸에서 나올 때에 여간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웁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고생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고생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시편 34편 19절에 보면,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바르게 사는 의인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욥 1:8)”고 말씀하시며 욥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욥은 끔찍한 시험을 겪었습니다. 자녀를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재산을 모두 잃었습니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났습니다. 욥은 자신이 태어난 것을 원망할 만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살아도 죄만 지을 뿐이요. 고생만 할 뿐이요, 살아갈수록 더 힘들어지고 더 어려워질 것 같았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으면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즐겁게 살 텐데, 이 세상에서 오래 살려고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일찍 죽는 것이 오히려 복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자살할 수는 없습니다. 자살하지 않고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하다가 죽는 것은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배는 고픈데 죽지는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지만 죽지 않으셨습니다.

금식한 지 3일째 되던 날 밤, 반드시 죽겠다는 각오로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죽고 싶어도 자살해서는 안 됩니다. 금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이 가장 강력합니다.

급한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강력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은 목숨 걸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강한 기도는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 해도, 금식하며 기도하면 다 해결됩니다. 완전히 끝났다고, 소망이 없다고 생각될 때, 죽으려고 생각하지 말고, 금식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목숨 걸고 기도하세요.

 

저는 금식하며 기도한 것은 다 응답 받았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은혜 받은 것이 많습니다. 간증거리가 많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다 보면 기적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만납니다. 자신의 사명을 깨닫습니다.

 

이사야 48장 10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은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고난의 풀무 불 속에 집어넣었다고 표현할 만큼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난 속에서 목숨 걸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아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은 고난의 풀무 불 속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입니다. 고난의 풀무 불을 지나야 순금 같아집니다.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린 사람은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노예로 팔렸습니다. 당시 노예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태어난 지 3개월이 되었을 때, 나일 강에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생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였을 때, 20세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후, 사울은 다윗을 시기 질투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30세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까지 사울의 질투를 받아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하루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욥의 신앙고백입니다. 욥은 자신이 겪는 시험과 고난을 통해 자신이 순금처럼 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금과 같은 사람으로 만드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고난의 풀무 속에 집어넣으십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죽고 싶을 정도로 고난을 겪는다면 금식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보세요.

어려움을 당할 때, 목숨 걸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십니다. 믿음이 좋아집니다. 기적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여러분은 왜 삽니까. 무엇을 위해 삽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산다고 대답합니다.

먹고사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사람은 먹어야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먹고사는 것 때문에 근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태복음 6장 31~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일이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가 가난했을 때에는 먹고살기 어려워서 집집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굶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진지 잡수셨습니까?”라고 인사했습니다.

6ㆍ25한국전쟁으로 인해 서울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공장이 무너졌습니다. 막노동이라도 해야 먹고살 수 있을 텐데, 막노동할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자 어른들은 지게를 지고 역으로 나갔습니다. 역에서 짐을 날라주고 돈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어렸습니다. 무엇이든 먹어야 살 텐데, 집에는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들로 나가 메뚜기, 개구리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때 보양식을 많이 먹어 이렇게 건강합니다.

 

먹고사는 것이 해결된 사람은 좀 더 잘 살려고 합니다. 좋은 옷을 입으려고 합니다.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합니다. 좋은 집에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습니다. 자녀와 떡 반죽 그릇까지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신명기 6장 2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찮게 여기지 말고, 말씀이 복이 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9~10)”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말씀이 복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물었을 때, 행복을 위해 산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솔로몬을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이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부자였습니다.

 

전도서 2장 10~11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도서 2장 17절에 보면,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습니다. 금은보화를 쌓아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괴로움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사는 것을 미워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솔로몬은 60세에 죽었습니다. 솔로몬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솔로몬은 60세에 죽었습니다.

 

한 나라에서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 자살했습니다. 재벌이 자살했습니다.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영화배우가 자살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이 행복하게 보였지만, 정작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살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재벌이 아무 걱정하지 않고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재산이 많을수록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인기를 누리는 사람은 자신이 누리는 인기를 잃을까 걱정합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립니다. 그러다가 자살합니다. 행복은 돈과 명예, 권세, 인기와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첫째, 죄에서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은 것을 알고 확신하는 사람이 누리는 기쁨과 행복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죄가 모두 해결된 것과 구원 받은 것, 천국 백성이 된 것을 확신하면 춤을 추고 싶을 만큼 기쁩니다.

가장 큰 고난, 가장 큰 저주는 죄로부터 오는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를 모두 사함 받은 것을 알고 확신할 때, 고난과 저주가 모두 해결됩니다. 기쁘고 행복합니다.

 

둘째, 자원하여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5장 9~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합니다.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해집니다.

 

마태복음 5장 44~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뿐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 보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8절에 보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과도, 친구뿐만 아니라 원수와도 화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 때, 참으로 행복해집니다.

 

셋째, 기쁨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기쁨이 충만한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을 만난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기쁨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욥기 13장 22절에 보면,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욥기 13장 24절에 보면,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욥이 고통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욥기 37장까지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이것이 욥에게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욥기 38장부터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욥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기쁨을 누렸습니다. 욥의 고통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이민아 목사가 집회를 인도하는 곳에 아버지 이어령 교수가 갔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민아 목사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같이 춤추며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본 이어령 교수는 딸에게 “너는 제발 그렇게 하지 마라. 미친 사람처럼 그렇게 하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이민아 목사는 아버지 이어령 교수에게 “아버지, 이런 기쁨이 없다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기뻐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말씀해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 하나님과 문이 열려있는 사람,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하면서 박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늘 함께하며 하나님과 소통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고난이 있었지만, 사도 바울은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만 가져도 복을 받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살려는 마음만 가져도 복을 받습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31~33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이 세상을 복음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구제해야 합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사를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기도를 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시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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