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지않은 면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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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25 12:01 조회3,327회 댓글0건본문
썩지 않는 면류관
썩지 않는 면류관
2007년 10월 12일(금요철야)
본문 / 고린도전서 9:24~27
모든 사람들은 향방은 다르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달음질,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을 떠나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경주를 하되 우승해서 상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자세가 다릅니다. ‘내가 이번에 꼭 우승해야지. 내가 1등 해야지. 내가 상을 받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세가 다릅니다. 준비하는 자세도 다르고, 마음의 생각도 다릅니다. 마음가짐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준비합니다.
경주에서 우승할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삶이 다릅니다. 밤을 새며 술을 마시고 아무렇게나 살다가 어떻게 경주에서 1등 할 수 있겠습니까. 경주에서 우승하려면, 몸가짐과 마음가짐, 생활 자체가 다릅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것을 들으면, ‘참 잘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하루에 10~12시간 피아노를 칩니다. 피아노에서 손을 떼는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는데, 또 치고 또 치고 또 쳐서 눈을 감고도 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합니다. 그렇게 노력하고 애써서 그렇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챔피언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이 굉장합니다만, 알고 보면 그들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챔피언이 되기 위해 얼마나 연습하고, 얼마나 땀 흘리는지 아십니까? 훌륭한 축구선수,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세계적인 골프 선수가 되기 위해, 권투 선수가 되고, 챔피언이 되기 위해 평소에 그들이 훈련하고 땀 흘리면서 고생합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먹지 않습니다. 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보지 않습니다. 절제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포기하고,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합니다. 모든 욕심을 다 절제합니다.
인생의 경주에서 우승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욕심입니다. 내 안에 있는 욕심, 자기 속에 있는 욕심이 방해합니다. 우리의 몸은 욕심덩어리입니다.
로마서 8장 4~8절에 보면,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13절에 보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신은 욕심 덩어리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대로 살면 안 됩니다. 육신의 요구대로 다 들어주면 결국에는 죽게 되고, 망하게 되고,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합니다. 쓸데없는 일을 하고 돌아다닙니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정욕과 돈을 낭비합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것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짐을 많이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비결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승리하려면,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죄를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런 짐을 지고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먹고 싶은 욕심 때문에, 선악과를 먹고 싶은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불행해졌습니다.
모든 인류의 고통, 모든 인류의 불행의 시작은 선악과를 따먹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따먹으므로 자손들에게 고통을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돌아보면 안 되는데, 롯의 아내는 세상에 대한 욕심 때문에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대한 애착 때문에, 집에 두고 온 것들을 아까워하는 마음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돌아보는 순간,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돌아보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려서 그렇게 망한 것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아말렉과 거기에 모든 짐승들까지도 생명 있는 것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멸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말씀을 저버려서 버림을 받고, 결국에는 악신에게 사로잡혀 고생하다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도 자기 욕심을 따라 살다 보니 타락하지 않으래야 타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육신의 욕심과 욕망에 따라 살다 보면, 타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로몬보다 지혜가 많고 굉장한 사람이라도 욕심대로 살면 반드시 죽게 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며 제자 노릇을 했지만, 그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돈 몇 푼에 눈이 어두워져서, 돈에 깨끗하지 못한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해서 결국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자신은 자살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재물에 대한 욕심, 재산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재물을 다 바친다고 해놓고 반만 바치고 거짓말하다가 둘 다 죽고 말았습니다.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망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마태복음 7장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어도 주님의 뜻대로 하지 않았다면, 쓸데없는 짓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짓 선지자들이 많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다면, 아무 쓸 데없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다면 아무 쓸데없습니다. “주여, 주여” 부른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마태복음 7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보다 더한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 앞에 섰는데, 예수님께서 “너는 나와 상관없다.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기막힌 일이 있겠습니까. 아 말은 ‘너는 나와 상관없다’는 의미입니다.
요한일서 3장 4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의 일을 행한다고 하면서도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양심을 저버리고,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불법을 행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은 아무리 선지자 노릇을 했고, 귀신을 쫓아냈고, 많은 권능을 행했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면, 적어도 수만 명, 수십만 명이 모이는 역시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목회를 했다면, 분명 대 교회가 되어서 수만 명, 수십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역사를 일으킨 사람을 향해 예수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야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신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첫째,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행하든지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하지,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많이 행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6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100% 거룩하게 살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거룩하게 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제가 1979년에 미국에 처음 갔고, 1982년에 안식년으로 미국에 가서 1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그 때 미국의 기독교방송에서 유명한 목사님들이 설교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우리 교회만큼 큰 교회가 있고, 우리 교회보다 몇 배 더 큰 교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목사님들이 설교했습니다. 저는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냥 보기만 해도 은혜로웠습니다. 설교하는 모습만 봐도 은혜로웠습니다.
어떤 분은 마치 연극배우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아주 감동적으로 설교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그 목사님의 설교가 TV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까 그 유명한 목사님이 창녀 집에 다니면서 창녀와 관계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갑자기 탈선하고, 이들의 탈선이 갑자기 드러난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거룩하게 살지 않고 있다가 결국 들통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의 삶이 중요합니다. 평소에 마음관리를 잘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마음관리를 어떻게 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시간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보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여기서 ‘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주님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가지도 못합니다. 지옥으로 직행합니다.
우리가 완전히 거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거룩함을 따라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려고 발버둥쳐야 합니다. 거룩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화평함을 따라가야 합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과만 친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자기 편에 서지 않으면, 원수가 되어버리고, 상대하지 않고 살면 안 됩니다.
거짓 선지자나 이단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통적인 교회와 교제가 없습니다. 화평하지 않습니다.
부산에도 이단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만 진리이고, 자기만 최고이고, 자기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외치고, 모든 교회를 무시해버립니다. 마치 자기만 구원받고, 자기만 진리이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고, 교인들도 그렇게 만들어버립니다. 마치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백성들에게 TV도 보지 못하게 하고, 남한의 방송을 듣지 못하게 하고, 자기들이 고정시켜놓은 선전용 방송만 듣게 해서 바보로 만드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단들에게는 화평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죄인이라고 해도 우리도 죄인이니까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누구와도 원수 지지 마세요. 담쌓고 살지 마세요.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보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단에게는 기존 전통적 교회와의 교제가 없습니다. 그들은 교제를 일체 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끊고 삽니다.
이단은 기존 교회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예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구원 받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둘째,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도 사탄의 역사를 따라 얼마든지 큰 권능을 행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8~12절에 보면,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가 나타나면, 사탄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을 나타내고 표적을 나타내고 거짓 기적도 행하고 불의의 속임수를 씁니다.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미혹의 영이 역사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거짓 것을 믿고 이단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 길은 망하는 길인데도 그 길을 따라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주어진 결과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이단들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진리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들은 진리가 없고,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으니까 구원이 없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없거나 열매가 좋지 않습니다. 열심은 있는 것 같은데, 집안도 다 깨어져서 망하고, 사업도 망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사이비 종파로 드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증거가 되고, 이단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마태복음 24장 23~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번쩍하면 서편까지 번쩍 해서 지구를 몇 바퀴 도는 것처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지구 땅덩어리에서 어디에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다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어디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 이단입니다. 그리스도가 왔다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다 이단입니다. 그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준다고 해서 미혹 당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 할지라도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불법을 따라 행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아예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표적을 따라가지 마세요.
성령의 역사로 표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사탄의 역사를 따라서도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사탄도 표적을 행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무조건 표적을 따라갔다가는 미혹 당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보면, 두 가지 승리자의 관이 나옵니다. 하나는 썩을 승리자의 관이고, 하나는 썩지 아니할 관입니다.
썩을 면류관은 이 세상에서 누릴 영광, 이 세상에서 누릴 명예를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누릴 영광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금방 얼마 있으면 썩어버립니다. 사람이 죽으면 금방 썩어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받는 영광은 잠시 뿐입니다.
세상에서 권력을 가지게 되고 권세를 누리게 되고, 많은 재산과 재물을 가지고, 명예를 가지고 감투를 쓰게 되는 등의 세상의 영광은 다 잠시 누리는 것입니다. 썩을 면류관입니다.
이것의 특징은 잠시 후에는 모든 사람이 잊어버리게 됩니다. 한때 유명했지만 금방 잊어버립니다. 세상의 인기, 세상의 명예, 세상의 권세는 잠시 뿐입니다.
또 역사가 바뀌면 충신이 역적으로 몰리듯, 부끄러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상 받았던 것이 부끄러운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받았던 감투, 지위, 영광 때문에 평생 후손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썩어질 면류관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썩은 면류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첫째, 무엇을 하든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합니다.
구제를 해도 은밀하게 하지 않습니다, 마치 굉장한 일을 행하는 것처럼 치장합니다. 다른 종교들 중에 그렇게 하는 종교가 많습니다. 기자들에게 돈을 많이 줘서 보도를 잘하게 만들고 아주 치장합니다. 세상에서 영광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금식을 해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고, 기도를 해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려고 하고,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사람들이게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히 위선자가 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러했습니다.
둘째, 내세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현세만 생각합니다. 장차 받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셋째, 회개가 없습니다.
회개가 없는 사람은 구원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회개가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의 우편에 있던 강도도 회개하니까 주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43).
주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4:17). 회개 없이는 천국이 없습니다.
썩을 면류관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회개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할 듯하다가도 또 똑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마치 사울 왕 같습니다. 마음이 아주 강퍅합니다. 입으로는 여호와를 부르지만, 자신의 잘못을 울며 고백하지만,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반복하다가 죽습니다.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자살해버렸습니다. 에서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6~17절에 보면,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나 회개할 수 있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죄에 깊이 빠지다 보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죄악에 깊이 빠지면,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5~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들어서 알면서도 죄에 깊이 빠져있다 보니까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다가 죽거나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냥 멸망하고 맙니다.
죄악에 빠진 사람에게는 사고가 일어나야 합니다. 사고가 일어나서 병석에 눕게 되거나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그래야 생각할 기회도 있고, 회개할 기회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병들어 눕게 되는 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병들어 눕게 되면, 병석에 있는 동안 과거도 생각해보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는지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게 되면, 이 사람은 회개해서 구원 받을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르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고가 크게 나고, 병드는 것이 오히려 축복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썩을 면류관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받을 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서 받을 상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의로운 일, 좋은 일을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상을 다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상을 다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서는 받을 상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상을 다 받아서 하나님 앞에 가서는 받을 상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19~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보물을 이 세상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땅에 보물이 많으면 이 세상에서 모든 상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그룹의 창업주 정주영 씨의 경우에는 수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니까 세상에서 얼마나 영광을 누렸습니까. 그분은 소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않았는데, 명예박사 학위를 주고,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돈이 많으니까 세상에서 받을 상을 다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가서는 받을 상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5절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아브라함이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상을 다 받았습니다. 입고 싶은 것 다 입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리며 세상에서 받을 상을 다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상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썩을 면류관을 좋아하지 마세요. 썩을 면류관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천국에 가서 받을 상이 없습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서 썩지 않는 면류관을 받으려면, 이 세상에서 썩을 면류관을 받으려고 버둥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다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복음 6장 38~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백성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잃어버리지 않고, 반드시 그들을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 중에 마지막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날,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교회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동참하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일에 동참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우리의 시간과 정력을 다 바쳐야 하겠습니다. 이 외의 다른 일에 시간과 정력과 돈을 사용하는 것은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모든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 보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롬 7:19).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하게 되는 자신의 육신에 죄성이 남아있어서,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자꾸 죄를 범하게 되는 타락의 근성이 자기 속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했습니다(롬 7:24).
제가 설교한다고 해서 제가 그렇게 사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해결책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다가 불을 받기도 하고, 기도하다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만,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생각하지 마세요.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소 성령과 더불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과 더불어 사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생각하든지 성령과 함께 생각하세요. 내가 생각하는 것을 성령께서 기뻐하실지, 성령이 주신 생각인지, 마귀가 주는 생각인지를 생각하세요.
성령의 생각을 따라가기 위해 항상 성령을 생각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고, ‘아버지, 제 생각이 바르게 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 가르쳐주세요. 성령께서 도와주세요. 제 마음의 생각을 주장해주세요.’라고 기도하세요. 이 사람이 성령과 더불어 사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보던지 성령과 함께 보세요. 무슨 일을 하던지 성령과 함께하세요. “성령이여, 도와주세요. 성령과 함께 일하기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세요. 말할 때에도 성령을 생각하면서 성령의 도움을 구하면서 말 한 마디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생각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말하고, 언제나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감동 속에서 언제나 말하려고 하는 사람은 성령과 함께 사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성령을 떼어놓지 마세요. 무엇을 하든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이 함께하시기를 구하고, 기도할 때에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기도하세요.
저는 특별히 피곤할 때에는 평소보다 더 기도합니다. 저는 서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서있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모세도 서서 기도했습니다.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기도하기도 하지만, 피곤하면 저는 서서 기도합니다. 서서 기도하니까 정신이 맑아지고, 짧은 시간에 많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언제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주신다는 성령께서 피곤한 저를 붙잡아주시고, 기도하는 나를 도와주시고 함께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성령과 더불어 기도하는 것. 성령과 함께 생각하고, 뭘 봐도 성령을 생각하며 성령의 뜻을 따라 보려고 하고, 무엇을 하든 성령과 함께 하려고 하고, 항상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고, 성령과 함께하다 보면, 그 사람은 완전히 성령의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새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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