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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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8 09:50 조회5,648회 댓글0건본문
축복하며 살자
축복하며 살자
2005년 02월 27일(주일예배)
본문 / 로마서 12:14~21
어느 집사님에게 아들이 한 명 있었습니다.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심성도 착하여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튼튼하게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이 아이를 몹시 시기 질투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들을 너무 미워한 나머지, 어느 날 사소한 시비 끝에 주먹을 휘둘러, 아이의 눈에 상처를 입히고 말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으나, 불행하게도 눈을 심하게 다쳐 한쪽 눈을 실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 아이의 질투가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사태를 불러왔습니다. 이 집사님은 아들의 눈을 볼 때마다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누구나 이런 일을 당하고 보면, 당장 그 아이의 부모에게 찾아가 큰소리치고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입니다.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아이를 붙잡아 그 아이의 눈이 멀도록 똑같이 보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악한 인간은 살려둘 필요가 없다고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크고 작은 시비가 그칠 날이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사건의 시시비비에 대한 보상법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22~25절에 보면,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독한 법을 정하신 것은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남의 눈을 다치게 하여 실명하게 했다면 아무리 내 눈이 멀쩡해도 똑같이 빼어내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라는 이 원리는 남에게 함부로 손해를 입히고 상처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자신이 준 상처나 손해보다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나 손해를 절대로 입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마태복음 5장 38~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대로 살아야 하나, 과연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특별히 44절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하신 말씀 앞에서 멈칫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박해하고 때리고 해를 주고 망하게 하고 못살게 구는 악한 자, 원수일지라도 사랑하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본문 14절에서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축복해도 ‘축복받을 만한 사람’이나 ‘축복하고 싶은 사람’을 축복합니다.
특별히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축복을 많이 합니다. 설날이면 부모들은 자녀의 세배를 받으며 축복하며 덕담을 들려줍니다. “무병 건강해라.”,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라.”, “좋은 직장에 들어가라.”, “올해는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라.”, “크게 성공하기를 바란다.”라고 마음껏 축복합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항상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부모의 축복을 받고 자라난 자녀가 축복을 받습니다.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열두 명의 아들을 향해 한 명 한 명 구체적으로 축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자손들이 하나같이 야곱이 빌어준 축복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부지간에도 축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부부처럼 서로 잘 아는 사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서로 단점을 보지 말고, 장점만 보시고, 칭찬하고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성공할거야” “어디를 가나 존경 받을거야”라고 칭찬하고 축복해주는 말을 하며 살다 보면 서로 축복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은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했습니다. 대개 가족 간에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나, 이름 모르는 남에게 신체의 일부를 떼어준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또 어느 집사님의 따님은 시각장애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어 결혼했습니다. 자신은 교사로 근무하면서 남편을 박사로 만들어 오늘날 교수가 되게 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보면 가능한 한 모든 복을 다 빌어주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사람,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내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만 축복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라고 말씀했습니다(로 12:14).
예수님께서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44).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도 자신을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을 위해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 23:34).
왜 예수님께서는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원수를 처음부터 사랑하면 더 좋고, 도저히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지 않더라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셔서 우리 자신이 은혜 받게 됩니다. 그 사람이 미워지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게 되고 용서할 마음마저 생깁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축복할 수 있게 되며. 결국 원수를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나 공연히 미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간증하기를,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 몇몇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퍼뜨렸다고 합니다. 대체로 신앙도 인격도 형편없고 성질도 변덕스럽고 못된 짓만 하는, 그야말로 복 받을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 저주받을 짓만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저 못된 것들 망하고 말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너는 왜 사람을 판단만 하고 정죄하느냐. 그들을 축복할 수 없겠니.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해줄 수 없겠니”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 집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다 보니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고,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들을 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그들을 위해 기도한 것뿐인데, 이상하게도 자기를 비난하고 못되게 굴던 그 사람들이 점차 변하여 자신을 좋아하기 시작하고, 칭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러분에게 손해를 주고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누구든지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미워하는 마음, 즉 증오심은 독약과 같습니다. 따라서 내 마음속에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꽉 차있으면 이는 마치 마음속에 독약이 가득 찬 것과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독약 때문에 자신에게 해가 되고, 믿음이 죽습니다.
남을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마음이 답답하고 마음이 지옥이 됩니다. 살맛도 안 나고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이와 반대로 용서해주고 저들을 축복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믿음이 살아나며, 인격이 온전해지고, 마음이 천국으로 바뀝니다.
원수라도 축복하며 사는 사람은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에 보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축복만 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복을 받게 됩니다.
남을 축복하며 사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3. 합당하지 않은 사람에게 빈 복은 자신에게 되돌아와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에게 복을 빌면, 그 복이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되어 결국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10장 11~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무조건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복을 받을 합당한 집이면 우리가 빈 복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복을 빌어도 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집이면, 그 복이 내게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받고 싶은 복을 복 받을 짓을 하지 않는 집을 향해 집중적으로 빌게 되면 몽땅 내게로 되돌아오게 되므로 얼마나 수지맞는 일입니까.
여러분, 남에게 함부로 욕하거나 저주하지 마세요. 자신에게 되돌아올지 누가 압니까. 남에게 악담하는 사람을 보면, 나중에 반드시 불행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에게나 축복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남에게 복을 빌면 빌수록 자신이 더 많은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잘 될거야!” “당신은 아주 훌륭해.”라고 축복해보세요. 누구를 만나든지 사랑받게 되어 있습니다.
5. 축복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세상이 밝은 세상, 좋은 세상,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본문 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악을 악으로, 원수를 원수로 갚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1.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악을 행하고 못된 짓을 하고 함부로 욕을 하고 부당한 짓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다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억울해도 절대로 악을 악으로 갚을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악을 악으로 갚으면 이 세상이 더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세상이 더욱 악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원수를 갚으려고 날뛰면, 겁이 나서 이 세상에 어떻게 살겠습니까. 아마 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9~20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날씨가 몹시 추운 날 원수가 숯이 없다며 자기 집으로 숯불을 얻으러 왔습니다. 대개 유대인 여자들은 난로를 머리에 이고 와서 숯불을 얻어간다고 합니다. 아무리 미운 원수라도 그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며 숯불을 달라 하면 주고, 평화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악에게 지지 말고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하지 말고 악을 이기고 사랑으로 악을 이겨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는 마땅히 저주받을 자이지만, 그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승리가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랑이 생명이며, 축복이며,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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