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함 받은 자가 받는 복(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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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4-21 10:21 조회2,642회 댓글0건본문
택함 받은 자가 받는 복(24)
택함 받은 자가 받는 복 24
2020년 11월 29일(주일예배)
본문 / 로마서 11:29
저는 어렸을 때에 가난했습니다. 오늘은 먹을 것이 있어도, 내일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되면, 먹을 것이 있었습니다. 또 다음 날을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이런 일을 여러 번 체험했으면, 걱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날마다 걱정했습니다. 현실이 막막했기 때문에 항상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걱정하며 살았던 것이 매우 후회스럽습니다.
없어도 막막해도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셨다는 것을 믿고 무조건 감사하고 살지 못한 것이 매우 후회스럽습니다. 근심하며 살았던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일생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계획과 목표를 조금 더 크게 세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어렸을 때에 생각한 것이기 때문에 크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목표와 계획을 크게 세웠습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계획과 목표를 조금 더 크게 세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제가 계획하지 못해서 많이 놓쳤기 때문입니다.
목표와 계획을 크게 세운 사람은 자신이 목표한 것, 자신이 세운 계획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이 준비합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주어지면, 기회를 붙잡습니다.
돌이켜보면 더 좋은 길, 더 큰 길이 있었는데,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기회를 놓쳤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목표와 계획을 조금 더 크게 세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옥에 갈 사람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증인으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하나님께서 왜 택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똑바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지 못한 채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본문 로마서 11장 29절에 보면,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람을 부르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구원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믿음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축복이 되게 하십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브라함의 자손의 이름이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3절에 보면,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통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마태복음 1장 5절에 보면,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라합은 기생입니다. 룻은 모압 여인입니다. 이방 여인입니다.
마태복음 1장 6절에 보면,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를 통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제자들로 하여금 보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붙잡혀갈 때에 다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5)”라고 큰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예수님을 저주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만히 보세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어부가 많았습니다. 잘난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한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그들을 제자 삼으셔서 3년 동안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그들을 훈련하셨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 없는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죄를 얼마나 많이 범했습니까. 얼마나 부끄럽게 살았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도 아시고, 현재도 아시고, 미래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인간인지 우리를 택하시기 전부터,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족한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해서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 것이라 생각하셔서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변함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밤낮 변덕을 부립니다. 천사처럼 되었다가도 마귀처럼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우리를 택하신 것은 변함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사람을 매우 사랑하십니다. 이사야 43장 4절에 보면,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하는 그 사람이 보배롭게 보입니다. 존귀하게 보입니다. 허물이 많고 부족한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는 보배로 보입니다.
우리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특별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들보다 잘 나서 구원 받은 것도 아닙니다. 남들보다 잘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행실이 남들보다 훌륭해서, 바르게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비방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보면,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는 일생의 목표를 정해놓고 살았습니다. 저는 순교자가 되겠다는 각오로 신학교에 갔습니다. 순교할 것을 각오할 수 없다면, 신학교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목회자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순교할 것을 각오하고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가니 한심했습니다.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신학 공부를 그만두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제게 하나님께서는 겸손을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지은 후, 입당을 앞두고 있을 때입니다. 새 성전에 입당할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기쁘고 좋습니까.
그런데 저는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산에서 가장 큰 교회로 부흥할 텐데,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부산에서는 저를 가장 먼저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목회자가 붙잡혀 죽는다면, 제가 가장 먼저 붙잡혀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 성전에 입당해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만 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제게 “너는 겸손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교만하다는 것을 제가 몰랐기 때문에 교만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보면 평가했습니다.
‘저 사람은 목사인데 왜 저 모양인가.’, ‘저 사람은 장로인데 왜 저런가.’라고 사람을 평가했습니다. 겉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사람을 평가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교만한 태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주 잘못된 모습입니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성전에 나와서 혼자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성전에 나와서 혼자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너는 왜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느냐, 왜 정죄하느냐, 그들을 불쌍히 여겨줄 수 없겠니, 그들을 위해 울어줄 수 없겠니,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 수 없겠니, 그들을 안아줄 수 없겠니, 그들을 사랑해줄 수 없겠니. 그들을 축복해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시며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의 약점이 보이고, 잘못된 것이 보이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그 사람을 위해 울어주고 기도해주고, 그 사람을 안아주고 사랑해주고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상대방을 좋지 않게 생각하면, 그 생각이 얼굴에 드러납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거부감이 생깁니다. 상대방을 대적하게 됩니다. 이것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 저는 두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안아주듯이 기도했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을 축복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그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가까이했습니다.
사람들은 교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한국 사람은 교만합니다. 비판을 잘 합니다. 남을 욕하고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라가 지옥같이 됩니다.
판단하거나 비방하기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만 가져도 상대방이 압니다. 그래서 관계가 좋아집니다. 친구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큰 죄악에 빠졌다 할지라도,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대속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잘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이 잘 되지 않고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습니다.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보면,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려움이 많을 때에는 흔들리기 쉽습니다. 어려움이 많다 할지라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굳게 붙잡으세요. 믿음으로 선포하세요.
본문 로마서 11장 29절에 보면,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증인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1장 9~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증인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100%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가운데 최고의 복은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 세상의 복은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기만 해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의 마음 판에 새겨지게 하시고, 이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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