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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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7 22:42 조회4,840회 댓글0건본문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
2007년 01월 12일(금요철야)
본문 / 로마서 8:12~18
로마서 8장 5절에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와 영을 따르는 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보면,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밤낮 육신의 일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을 따르는 자는 항상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이 두 가지 세력이 있어서 육신을 따를 때도 있고, 영을 따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납니다.
로마서 8장 6절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신을 따라 살며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밤낮 썩어질 죄악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결국에는 죽습니다. 망합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 영을 따라 살며 항상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생명과 평안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2~13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데, 육신과 싸워서 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대로 살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만 육의 세력을 죽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기도를 많이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도해야 하는 기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기도는 “주여, 나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육신을 따라 살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육신을 따라가지 않게 해주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가장 시급한 기도요,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서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영혼이 잘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면 다른 축복은 그냥 따라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7~11).
우리에게 제일 좋은 보배는 성령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다른 복은 그냥 따라오게 됩니다.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이 세상에 왜 문제가 생깁니까? 세상을 이기지 못하니까, 마귀를 이기지 못하니까, 자신의 육신을 이기지 못하니까, 악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니까, 자꾸 쓰러지고 넘어지고 죄 짓고, 밤낮 저주 받을 짓이나 하다 보니까 모든 것이 다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으로써 내 몸의 행실을 죽이면 육신에게 지지 않고, 육신을 이기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혈기의 사람이고, 육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길을 가다가도 누가 더 크냐, 누가 어른이냐, 누가 첫째냐 하는 것 때문에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듣고 분히 여겼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이 육의 사람처럼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제자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며 숨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을 때, 그 순간부터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에 소망이 없습니다. 쓰러질 것이 뻔합니다. 죄 지을 것이 뻔합니다.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한다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가 어려움을 많이 당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목회자들이 교회를 개척해도 옛날처럼 교회가 부흥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제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교회마다 성도가 1만 명이 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가 완전히 복음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신자가 신자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별 수 없습니다.
세상에 나가면 죄악의 바람이 태풍처럼 불어오는데, 넘어가지 않을 자가 있겠습니까.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되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4).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에는 다른 것을 할 생각을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기다리는 것이 우선순위의 첫째입니다. 우리의 어떤 기도제목보다 시급한 것이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보혜사’는 영어로 helper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나를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시시한 사람이 나의 돕는 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성령이기 때문에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십니다.
우리가 진리가 아닌 곳으로 가면 다 망합니다. 이단으로 넘어갈 수도 있고,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우리를 언제나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십니다. 가장 바른 길로, 생명의 길로,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보혜사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육신을 따라 살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됩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의미입니다.
로마서 8장 15~16절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을 증거해주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믿게 되었습니까?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도록 우리에게 예수님을 증거해주는 일을 보혜사 성령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것을 믿게 되고, 예수님이 누군지 알게 되고,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의 배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한 번 더 태어나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어머니의 배 속에서 태어난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한 번 더 태어나야 되는데,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이 있습니다.
자기가 보기에도 자기가 확실히 예수님을 믿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확실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크고 작은 것은 둘째 문제이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둘째, 회개가 있습니다. 회개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 참 죄송합니다. 오늘도 제가 농땡이를 쳤네요.”라고 하나님 앞에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거듭난 자가 아니면, 이런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증거인지 모릅니다.
얼마나 세게 회개하느냐는 둘째 문제이고, 그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거듭난 자라는 증거입니다.
셋째, 변화가 있습니다.
확실한 변화가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다릅니다. 얼마나 변화되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거듭난 사람에게는 확실히 변화가 있습니다.
누구보다 자신이 압니다. 옛날의 습관이 남아있고, 육의 세력이 남아있지만, 확실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거듭나는 것은 믿는 순간에 이루어지지만, 주님의 모습으로 거룩하게 성화되는 것은 점진적으로 됩니다. 아이가 한 순간에 어른이 됩니까? 적어도 20~30년이 지나야 어른이 됩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 후에 서서히 성숙하는데, 성숙할수록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세 가지 증거, 즉 믿음을 가지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 이것 모두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유대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다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엄청난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에 보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의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40절에 보면,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라고 설교했습니다.
이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제자가 되었는데, 무려 3천 명이나 되었습니다(행 2:41). 이들은 모두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45절에 보면, 이들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보통 사랑이 아닙니다.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변화입니다. 보통 은혜를 받아서 이렇게 변화되겠습니까. 굉장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6~47절에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거듭나면,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다 믿습니다. 그것이 믿어집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믿어집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믿어집니까? 그것이 믿어지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믿어집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16~17).
이것은 기적입니다. 부모를 통해서, 스승을 통해서,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그의 안에 믿음을 주셔서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 모릅니다.
거듭난 자들에게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회개의 운동은 언제나 부흥운동을 동반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고 회개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기 때문에 회개운동이 일어나는 만큼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가 부흥되기를 원하면,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회개운동은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회개 운동이 일어나면, 부흥이 따라오게 됩니다.
1907년에 평양에서 대부흥운동이 있었습니다. 1907년 1월 2일부터 10일간 평양의 장대현교회에서 남자 성경공부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목사님이 없어서 선교사님들이 강사였는데, 윌리엄 헌트, 그래함 리, 찰스, 베네셀, 윌리엄 블레어, 윌리엄 스웰론 등의 선교사들이 성경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평양 인근 지역에서 온 약 9백 명의 남자들이 성경공부에 참석했는데, 평양에 사는 신자들까지 합류해서 전체 수가 1천 5백여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길선주 목사님은 목사가 되기 전, 장로님이었는데, 길선주 장로님은 집사반을 맡아 성경공부를 지도했습니다. 그때 최정민이라는 분이 성경공부하다가 통화자복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특별히 평양부흥집회에서 일어났습니다. 1907년 1월 6일, 평신도들을 위한 부흥사경회가 열렸는데, 아침에는 성경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전도집회로 모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한국인 목사는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레엄 리 선교사가 집회를 인도했는데, 남자들이 장대현교회에서 모이는 동안,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은 학교에서 모여서 집회를 했다고 합니다. 부흥사경회 저녁집회의 설교자는 길선주 장로님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회 8일째 되는 주일 저녁 부흥회 시간에 사도행전의 오순절에 일어난 역사와 비슷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길선주 장로님이 자기 죄를 고백함으로써 회개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길선주 장로님의 친구가 죽으면서 장로님에게 부탁하고 죽었습니다. 자신의 많은 재산을 아내가 지킬 수 없으니까 자신의 재산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선주 장로님이 친구와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 날 저녁집회를 인도하던 길선주 장로님이 갑자기 “나는 아간입니다. 하나님은 나 때문에 축복할 수 없습니다. 1년 전에 제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게 자신의 재산을 잘 관리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제가 그 재산 중에서 얼마를 빼돌렸습니다. 오늘 제가 그것을 갚겠습니다.”라고 자기의 죄를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간음죄를 범한 사람도 회개하고, 강도 두목도 회개하고, 여기저기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때부터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서 1년 동안 기독교가 엄청나게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한국 교회 안에서부터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민족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회개하는데, 강하게 깊이 회개할수록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철저히 회개할수록 성령의 선물을 더 받게 됩니다. 그릇이 깨끗해질수록 성령이 더 역사하십니다. 그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졌을 때,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에 보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일으켰을 때, 사람들이 그들에게 몰려왔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그들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행 3:13~16).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담대하게 전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면, 부산을 완전히 휘젓고 다니게 됩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서 부산이 예수 믿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도시가 되게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나는데, 아홉 가지 열매가 나타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삶에서 열매로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마음속에서 솟아오르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리고 화평하게 되고, 오래 참게 되고, 자비하게 되고, 삶에서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게 됩니다(갈 5:13). 어디서 그렇게 사랑이 많아지는지.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서로 대접하고 나누어주고 섬기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에게 권능을 주셔서 마귀와 싸워 이기게 해주십니다. 죄와 싸워 이기게 해주십니다. 육의 세력과 이기게 해주십니다. 세상과 싸워 이기게 해주십니다. 환난과 시험을 이기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거룩한 자가 되어서 경건한 삶을 살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양자가 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법적인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상속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준비해놓으신, 하늘의 영광, 천국의 영광을 우리가 다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이 크긴 하지만, 장차 받을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데도 고난을 당하게 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가 고난당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해서 세상을 배설물 같이 여기고,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이 전도하러 다닐 때, 왜 옥에 갇히게 하시고, 수없이 맞게 하시고,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게 하시고, 세 번 태장으로 맞게 하시고, 헐벗고 굶주리게 하셨을까요?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해서. 장차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들도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많이 당하고, 순교했는데, 이 고난이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종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알고 있었던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장차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지. 이 세상에서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 되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6~28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탄식하시며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시는지, 이 시간에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당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29~30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영광을 받게 해주시기 위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11절에 보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은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성령의 은사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능력을 얼마나 소유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과 성령께 얼마나 헌신되었느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능력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농땡이치거나 헌신되지 않았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쓰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능력을 받을까 능력이 나에게서 나타날까를 바라기 이전에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헌신할 수 있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무조건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아갈 수 있는 종이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헌신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귀히 쓰시는 그릇으로 빚으실 줄 믿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세상의 풍습을 따라가지 말고, 세상의 인간들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산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사용해주실 줄 믿습니다.
내 몸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 나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내 몸을 주님께 드립니다.”라고 헌신하고,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그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간다면, 성령께서 필요에 따라서 은사를 부어주시고, 귀하게 써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해주시면, 우리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불가능이 없습니다. 내가 성령에게 사로잡혀서 성령의 도구가 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1907년 평양대부흥의 역사를 다시 일으키는 주역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부산과 이 나라를 구원 받게 하고, 복음화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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