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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2 15:25 조회4,9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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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2003년 12월 05일(금요철야)

본문/ 로마서 8:12~18

 

고난은 괴로운 것입니다. 고난을 좋아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고난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물질로 인한 고난입니다.

이것은 너무 가난하거나 먹을 것이 없는 고난입니다.

 

둘째, 육신의 고난입니다.

이것은 병이 있다거나 상처가 있는 등의 고난을 말합니다. 놀라운 것은 갈수록 이상한 병이 많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어떤 병은 치료약이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병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인해 육신의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큰 고난이 있는데, 이것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고난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에게 30년 넘게 식민통치를 당할 때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일본에 있는 한국 사람들 중에도 고난을 많이 당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연세 많으신 분들은 이를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타락하면, 가장 악독한 사단이 됩니다. 소련 사람들은 스탈린 때문에, 유대인들은 히틀러 때문에, 북한의 백성들은 김정일, 김일성 때문에 얼마나 많이 고통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산 속에서 길을 가다가 시꺼먼 것이 나타났을 때에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입니다. 악한 인간을 만나면 그것만큼 처참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들 때문에 고통 당하는 분이 여러분 중에도 많을 것입니다.

 

성경은 고난의 원인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당한 고난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절에 보면,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한 인간을 만나서 고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억울한 고난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습니다. 다니엘은 악한 인간들 때문에 사자 굴에 들어갔습니다.

 

남의 실수로 인해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상대가 술을 마시고 운전해서 큰 사고가 나는 것, 태풍이나 홍수에 집이 휩쓸려가고 농사지은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 이에 속합니다. 그리고 전쟁의 결과로 부당하게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부당한 고난은 매우 많습니다.

 

둘째, 죗값으로 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고난은 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고난입니다. 지옥의 고난은 영원히 풀려나지 않고 계속되며 소망이 없는 고난입니다. 울부짖으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에게 지옥의 고통만 아니라면 고난은 다 유익합니다. 바르게 살지 않고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오히려 축복입니다. 죄를 범하면 고통이 크다는 것을 알고 죄를 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 생각하면, 죄짓는 인간들에게는 고통이 많은 것이 오히려 좋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셔서 그 죄만큼 고통을 당하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죄에 비해 고통은 가볍게 하십니다.

 

그리고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고난이 축복인 이유는 고난이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많이 범해서 하나님의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들은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셋째, 선한 일을 위해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7절에 보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할 때에만 고난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의를 행할 때에도 고난이 옵니다. 대표적인 예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고난입니다.

가정에서 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고난을 당합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을 당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하지 않으려고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역시 풀무불에 들어간다고 해도 절대 우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북한과 같은 공산 국가에서는 예수님을 믿으면 죽거나 수용소에 갑니다.

 

또 다른 고난으로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 때에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도 바울은 매를 맞고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주님과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중동 같은 곳에서도 예수님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고난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고난은 오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2~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손댈 수 없습니다. 내가 고난을 당한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뜻과 목적이 있어서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순교자를 만들기 위해 섭리하시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고난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예수 믿기 때문에 고난 당하시는 분들, 하나님께서 왜 허락하셨는지 설교 중에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어떤 고난이라도 그것이 고난이나 손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믿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알고 사랑하고 있는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자에게 믿음을 가지게 하고 믿음이 온전해지도록 고난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오는 모든 고난은 믿음의 시련입니다. 믿음을 깨우치고 자라게 하고 온전하게 만들려는 시련입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시련은 모두 믿음의 시련입니다. 시련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정금과 같은 믿음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쁨이 충만해집나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작은 것을 보시고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 14:31)”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알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확신을 가집니다. 근심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평강을 가지고 삽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47)”고 외쳤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골리앗이 다윗보다 세 배나 컸지만, 다윗에게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알았고, 하나님을 100%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고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죽어도 좋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역시 뜨거운 풀무 불에 들어간다고 해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1장 3~4절에 보면,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의 시련을 자꾸 겪으면 인내심이 커집니다. 곱게 자란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 그것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군대는 아주 좋은 경험이 됩니다. 저는 6주 동안 일반 장교들과 같은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훈련을 받았습니다.

 

고난이 우리를 정말 강하게 합니다. 웬만한 고난은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줍니다. 그러면 나중에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어집니다.

야곱을 보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에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았습니다. 변하여 점점 온전해졌습니다.

다윗도 40세에 왕이 될 때까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난 속에서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도 17세에 노예가 되어 30세에 총리가 될 때까지 13년 동안 믿음의 시련을 많이 당했습니다. 모세는 80세가 될 때까지 믿음의 시련을 당하게 했습니다.

이들의 고난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나온 것입니다. 이 세상에 믿음의 시련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 같은 사람에게도 믿음의 시련을 허락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 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비한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영의 세계에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것이 사도 바울의 약한 부분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몸이 약했던 것 같고 가난했고 능욕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여러 힘든 병이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인 누가가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교만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바울에게 믿음의 시련을 주셨습니다.

 

하물며 저와 여러분에게 어찌 믿음의 시련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어떤 문제로 고난 받는지 모르지만 당연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끝까지 인내하고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참아야 합니다. 기도하며 참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왔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참아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강해지고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 너무 어려워 죽으려고 금식 기도하다가 죽으려고 했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처럼 믿어집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하면 웬만한 결론이 보입니다. 체험적인 믿음을 갖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영광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8장 16~18절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난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다가 받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 받아야 하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을 받으면, 주님께서 고난 받으신 것과 같은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이 큽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고난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전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도들과 같이 되겠습니까? 해결책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사도들도 나약했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후로 담대해지고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매를 맞아도 좋다고 여기는, 정금 같은 믿음이 되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해주시고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고난이 있고, 장차 받을 영광을 위해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지는 비결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뿐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게 되고 능력의 사람이 되고 늘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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