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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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2 12:30 조회4,850회 댓글0건본문
영적 전쟁
영적 전쟁
2003년 07월 18일(금요철야)
본문 / 로마서 8:8~11
어떤 종류의 전쟁이든지 전쟁에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이긴 자에게는 영광이 있고 축복이 있고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와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에는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겨야 할 전쟁은 영적 전쟁입니다. 에베소서 6장 10~13절에 보면,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원수 마귀를 친구처럼 착각하고, 원수 마귀와 손잡고 살면 안 됩니다. 원수 마귀가 우리 가운데 역사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를 망하게 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대적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보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첫째, 영적 전쟁은 영과 육의 싸움입니다.
로마서 8장 12~14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데,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느냐, 육신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이기고 지는 것이 판명납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영을 따라감으로 육신을 절제하고 통제하고 육신이 잘못되지 않도록 육신을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육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육신의 욕망에 끌려가는 사람은 영적 전쟁에서 패배합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있는 사람,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영과 육의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은 육신의 욕망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과 육의 싸움에서 이기는 길입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그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육의 사람이었습니다. 육체가 요구하는 대로 온갖 죄를 범하고 살았기 때문에 진노 받을 수밖에 없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우리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이깁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이 영이 거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승리합니다.
둘째, 영적 전쟁은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입니다.
이사야 65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을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비진리의 세계에서 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의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8장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진리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진리에 속한 자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보면,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진리를 믿지 않고 진리가 되신 예수님과 진리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데, 세상 사람들은 진리를 믿지 않음으로 구원 받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진리를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불의를 좋아하고 불의를 좇아갑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일 3:10)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요 16:13). 그리고 마귀를 가리켜 ‘미혹의 영’이라고 했습니다(요일 4:6). 세상 사람들은 마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진리를 믿을 수 없습니다. 미혹의 영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영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해서 모두 성령인 줄 알고 좋아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과 일치되게 영의 역사가 일어나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진리와 맞지 않고 진리가 되는 성경 말씀과 맞지 않으면 그것은 미혹의 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성경을 열심히 배우고 진리가 뭔지 똑바로 알고 무장해서 영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 진리의 말씀, 성경 말씀에 비추어봐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2천 년 전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했다는 것을 성경 말씀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아주 늙었을 때에 요한일서를 기록했는데, 당시 미혹의 영을 받은 선지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선지자라고 해도 기적이 일어나도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과 비추어 보아 틀린 소리를 하면 아무리 능력 있는 목사나 선교사가 이야기해도 그 안에 있는 영이 진리의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미혹의 영이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리를 똑바로 알고 진리를 똑바로 믿고 진리로 무장해야 항상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셋째, 영적 전쟁은 거룩과 세속의 싸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의 풍속이 세속입니다.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을 때에는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 행했습니다.
죽은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가지만, 산 물고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까지 찾아가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서, 폭포조차도 거슬러 뛰어올라 기어코 자기 태어난 곳으로 가서 알을 낳고 죽어버립니다.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이 아무리 강하게 흘러도 떠내려가지 않고 반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 물고기와 죽은 물고기의 차이점이 이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죽은 자는 그것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 좋다면 자기도 좋다고 하고, 세상 사람들이 한 잔하면 자기도 한 잔하고, 세상 사람들이 음란한 짓하면 자기도 합니다. 아무런 거부감 없이 세상 풍속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세상 풍속을 따르지 않고 거룩하게 삽니다.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구별되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생활은 거룩하게 사는 것인데,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세상 풍속을 따라가지 않고 구별되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왕따가 되고 비방을 듣고 어려움을 당해도 세상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진리를 따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구별되게 사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구습, 이 세상 풍속을 따라 살았던 옛날의 습관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새사람은 거룩하고 구별되게 삽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에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구든지 거룩을 잃어버리면 멸망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안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하게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려면 멸망의 길로 가게 되는 타락한 세상 풍속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 풍속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 풍속은 미신과 음란 두 가지입니다. 오늘날 미신이 얼마나 많은지, 점쟁이들 광고가 대대적으로 나옵니다. 오늘날의 문화는 완전히 미신적이고 귀신을 섬기는 우상문화입니다.
오늘날 세상 풍속은 음란합니다. 말세에 기독교인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음란입니다. 음란한 마귀가 우리를 음란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편리하게 사용하는 무기는 우리의 눈입니다. 우리의 눈을 도구로 사용해서 음란의 영이 역사합니다.
음란의 영에게 사로잡힌 사람이 만든 음란한 영화를 보면 그것을 보는 동안 우리 마음속에 음란의 영이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영화를 아예 보지 않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리고 선택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본래 마귀에게 속한 자니까 음란의 영이 역사해도 별 상관없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우리 안에 거룩한 성령이 계시고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는 거룩한 성도입니다.
성도들이 음란의 영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얼마나 화나시겠습니까.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괴로우시겠습니까.
이렇게 음란의 영이 역사하는데 계속해서 음란한 영화들을 보면 마음속에 음란의 영이 아예 집을 짓고 들어와 버립니다. 결국 음란의 영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완전히 음란의 영에 노예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거룩을 지키느냐 세상 풍속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영적 전쟁에서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거룩하게 살아감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 풍속을 따라가지 말고 언제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넷째, 영적 전쟁은 사랑과 증오의 싸움입니다.
사랑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곳에는 생명이 충만하고 모든 것이 살아있습니다. 사랑 안에는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
사랑만 있다면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환난이 와도,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와도 사랑만 있다면 그곳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 안에는 행복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만큼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증오에는 이런 것들이 없습니다. 증오가 가득한 곳에는 생명이 없고 평강이 없고 소망이 없고 행복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있다가도 증오심을 품는 순간에 없어져버립니다.
20세기에 가장 큰 전쟁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의 사상 전쟁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지만, 공산주의는 개인보다 전체의 의견을 따르게 합니다. 공산주의는 개인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박탈해버립니다.
민주주의는 유신론자도 있고 무신론자도 있는데, 공산주의는 무신론입니다. 하나님은 없고 죽으면 끝이고 천국도 지옥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안에만 잘 살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내세가 없다면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올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내세가 없다면 바르게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살다가 빨리 죽어버리지, 고달픈 세상에서 왜 오래 삽니까. 그저 내일 먹고 죽으리니 실컷 먹다가 죽으리라 할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다 좋은 것은 아닌데 그래도 민주주의가 나은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때문에 민주주의가 망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라 불법주의이고 거짓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래도 이 나라가 망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고 소망이 있는 것은 은혜 받은 성도들 때문입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이 나라가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덕분에 민주주의에서는 함께 복을 받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존중합니다. 인간은 자유가 있을 때에 인간이 되는 것이지 자유가 없을 때는 인간이 아닙니다.
저는 자유를 굉장히 존중하고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역자들을 통제하지 않습니다. 같은 일도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고, 보는 눈도 다 다른데, 그런 것을 왜 통제합니까. 저보다 백배 나은 사람도 있는데 저한테만 맞추다가 모두 바보 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므로 통제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존중하고 사람의 인권을 존중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독재합니다. 그래서 독재자만 배불리고 온 백성은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비극을 맛보게 됩니다.
공산주의의 가장 큰 비극은 사람을 사랑이 없고 증오심이 가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계의 공산화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런 수단이나 방법을 동원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폭력을 사용하고, 살인하고, 마약을 통해서라도 목적을 이루면 되고, 화학전 세균전을 벌이고, 가정을 파괴하고, 그래서 공산주의 목적에 어긋나면 부모도 고발하도록 하고 감독하게 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악을 동원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악령이 됩니다.
그러니까 공산주의는 내버려둬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악령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어버리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북한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농사가 잘 되지 않고, 툭하면 홍수가 납니다. 하나님이 저주했는데 인간이 돕는다고 됩니까. 그래서 오늘날 굶어 죽는 북한 동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느 해에는 3백만 명이나 죽었고, 북한 어린아이들은 80% 이상이 영양실조에 걸려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위해, 잘못된 공산주의 지도자들 때문에 고생하는 영혼들을 생각하며 울부짖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 공산주의는 빨리 망해야 합니다. 빨리 망하지 않면 안 됩니다.
20세기에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것을 전 세계가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유일하게 북한만 남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머지않아서 망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된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독재자와 독재정권입니다. 이들이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가 독재자가 되고 독재정권을 세워 유대인을 6백만 명을 죽이는 짐승도 못할 일을 했습니다. 완전히 악신으로 충만할 때에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스탈린은 교회를 없애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얼마나 많이 죽이고 얼마나 기독교를 핍박했는지 모릅니다. 이라크의 후세인은 독재자 노릇을 하면서 자기 적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후세인에게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은 후세인이 몰락하니까 너무 기뻐하고 좋아했습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에 짐승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바로 그것이 독재자, 독재정권을 가리킵니다. 이 땅 위에는 짐승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독재자, 짐승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도구가 됩니다.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다 보니까 악해지고 증오심으로 가득하게 되고 자기 자신의 마음도 지옥이 되고 세상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재자, 독재정권이 나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행복한 세상은 오직 사랑으로 만들어집니다. 행복한 가정은 오직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사랑이 뭐기에 사랑만 있으면 행복한 가정이 되고 세상이 될까요?
첫째, 참사랑은 희생적입니다. 이기적이지 않고 이타적입니다.
남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서 남에게 베풀어주고 도와주고, 대접해주고 나누어주고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왜 사랑이 행복하게 해 주는가 하면, 사랑은 그 사람을 위해 내가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서로서로 희생하면서 살면 아름다운 세상이 됩니다.
부부가 아침식사를 하는데 각자의 밥을 열심히 먹으면서 재미있게 이야기해도 행복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밥을 퍼서 아내에게 먹여주고, 아내는 밥을 퍼서 남편에게 먹여주면 더 행복합니다.
이상하게 똑같은 밥을 먹는데도 ‘내 것은 내가 먹지’하고 먹으면, 기쁨도 소망도 행복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상대에게 더 먹으라고 자꾸 주고 저쪽에서도 더 먹으라고 하면 얼마나 더 기분 좋고 재미있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둘째, 참사랑은 선행적입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내가 먼저 대접하고 내가 먼저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었고 원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노 받아야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주시는 사랑을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아가페, 참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려면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됩니다. 좋은 사람이든지 아니든지 내가 먼저 인사해야 하고, 내가 먼저 잘 해드려야 합니다. 누군가가 시작해야 그 뒤를 따라 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 아닙니까.
조건을 따지면 안 됩니다. 누구에게나 도와주고 누구에게나 잘해주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아가페 사랑이 그래서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소망이 일어나고 평강과 행복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십니다. 축복하십니다.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잘못을 따지고 항상 내가 옳다고 하고 자기 주장을 펴서 승리의 쾌감을 얻으려는 사람은 절대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옳고 그른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행복이 이루어지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지, 옳고 그른 것만 따지고 사랑이 없으면 싸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쪽 사람이 볼 때는 자기가 옳고, 저쪽 사람이 볼 때는 또 자기가 옳기 때문에 서로 옳다 보니까 싸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네들이 옳다는 것만 주장하고 싸우다보면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랑은 없어집니다.
사랑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이 없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에베소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리니까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하시겠다고 했습니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마귀의 교회이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고 언제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랑이 있어야 생명이 있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면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유 여하를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람이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이 내 마음에 사랑이 있으면 사랑의 영, 성령께서 함께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사랑의 마음을 갖지 않고 사랑을 베풀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사랑만 따집니다. 자기는 사랑이 없으면서 목사님이 장로님이 사랑이 없다는 둥 떠드는데 이것은 아주 고약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내 안에 사랑이 있으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내가 먼저 사랑으로 무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전쟁의 승리는
첫째, 육신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을 따라가지 말고 영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육신대로 살지 않고 육신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둘째, 진리를 믿고 진리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영적전쟁은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입니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진리를 바로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래서 승리합니다.
셋째, 구습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은 거룩과 세속과의 싸움입니다. 거룩을 붙잡으면 승리합니다. 세속을 따라가면 망합니다.
넷째, 증오심을 갖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은 사랑과 증오와의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이깁니다. 사랑을 가진 자가 이깁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이깁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자가 이깁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으로 무장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육신대로 살지 않고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진리를 믿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게 되면 구습을 따라 옛사람을 벗어버리게 되고 거룩하게 사는 새사람이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행합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 승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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