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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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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8 13:52 조회3,3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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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

2010년 12월 10일(금요철야)

본문 / 로마서 4:16~22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사람들마다 각자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솔로몬처럼 큰 복을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윗이 가장 큰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록펠러가 가장 큰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주신 것을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은 아브라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최고의 복,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우리가 받을 수 있기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복을 받았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까요?

첫째, 아브라함은 모범적이고 모델이 될 만한 믿음의 복을 받았습니다.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은 믿음의 복입니다. 무엇이 가장 귀한 복인가를 모르는 것이 문제이지, 우리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신 후, 인간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인간에게 먼저 복을 주신 후에 인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아야 하는데, 복 중에 가장 귀한 복은 믿음의 복입니다. 다른 복을 다 받았다고 해도 믿음의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모든 복을 받은 것 같은데, 믿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천국 시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실 때, 우리가 사람을 보는 것과 다른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연세가 많은 사람을 어린 사람보다 크게 봅니다. 가난한 사람보다 부유한 사람을 크게 보고, 지위가 낮은 사람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크게 보고, 학식이 없는 사람보다 학식이 많은 사람을 크게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에 그런 것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가장 큰 사람을 가장 크게 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기에 믿음이 큰 사람이 가장 존귀하고, 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이새에게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다윗은 여덟째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다윗은 가장 작은 자이고, 아직 어린 아이였습니다. 사무엘의 눈에는 다윗이 어리게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윗이 가장 큰 자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다윗을 가리켜 ‘이새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믿음이 가장 큰 자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가장 큰 자로, 영적 장자로 보셨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큰 사람은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큰 사람을 가장 크게 보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의 복은 복 중에 가장 큰 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가장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복이 가장 큰 복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에 보면,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보배 중에 최고의 보배가 믿음인 줄 믿습니다. 세상에 있는 다이아몬드나 금보다도 믿음이 보배 중의 보배라는 것을 확실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4장 16~17절에 보면,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모든 믿는 사람들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닮은 성도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으니, 얼마나 큰 복을 받았습니까. 이것은 보통 복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려고 택하신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은 다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 자체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사신우상을 섬겼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다른 신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2:1~3).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자기가 빌고, 정성을 다하고, 공을 쌓아서 신을 만나려고 하고,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인간이 신을 찾으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죽는 것이 세상 종교입니다. 그래서 매우 불행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말씀을 보면, 세상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에게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에게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붙잡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41:9). 내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를 택하셨습니다.

내가 남보다 의로워서, 내가 남보다 잘나서, 내가 똑똑해서, 내가 특별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나 같은 죄인에게 찾아와주시고, 나를 만나주시고,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셨는가’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나오고, 기쁘고 감사합니다.

 

제 경우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 우상숭배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마다 절을 하고, 절에 가서도 절을 하고, 길을 가다가 나무 앞에서도 절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따라 했습니다. 똑같은 죄인이었고, 하나님을 모르고, 사신우상을 섬겼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강원도 인제에서 살던 아이가 전학 와서 제 짝꿍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예수님을 믿는 친구였습니다. 서로 공부를 가르쳐주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어느 날, 이 친구가 제게 교회 가자고 하며 제게 전도했습니다. 교회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라 그런지, 하나님의 때가 된 까닭인지 교회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왜 전도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전도했을 때에 거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가 교회 가자고 말하기만 하면, 따라 갈 마음이 있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열심히 전도하다 보면, 그런 사람이 걸려들게 되어있습니다. 얼마나 수지맞는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반드시 예수님을 믿게 되는데, 그 사람이 나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내가 상을 받게 됩니다. 얼마나 수지맞는 일입니까.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게 되어있는데, 나로부터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어 내가 상을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수지맞는 일입니까.

 

강원도에서 전학 온 친구가 제 옆에 앉아 제게 전도하여 제가 예수님을 잘 믿다가 이렇게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수영로교회의 성도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모두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하셨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셨고, 여러분을 찾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불러주셨습니다.

 

저는 참 부족한 사람입니다. 매우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제게 용기를 주고, 확신을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금식기도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제게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주님이 제게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목사가 되려면, 강도사 고시를 치러야 하는데, 강도사 고시를 치르기 전에 청계산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산꼭대기에 앉아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평신도로 복음을 전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꼭 목사가 되어야 합니까. 말씀해주세요. 주님이 제게 목사가 되라고 말씀하시면 제가 목사가 될 것이고, 목사가 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목사가 되지 않겠습니다. 주님, 제게 말씀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목요일에 주님이 제게 목사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확신이 생기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강도사 고시에 합격하고, 목사 고시에 합격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목회하는 가운데, 주님이 저와 함께하시는 것을 날마다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앞서 행하시고,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시고, 채우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이 택하신 백성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저를 불러주시고 세워주신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다 보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딸이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면, 매우 행복합니다. 나는 죄가 많고, 허물이 많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을 때의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순종하는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말씀대로 따라가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믿음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순종할 때 산 믿음이 됩니다. 순종이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순종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만큼 축복 받는 그릇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물질의 복도 받아야 하고, 이 세상의 복을 받아서 아브라함처럼 창대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 받을 그릇이 되어야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릇만큼 우리에게 채워주십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복까지 다 받으려면, 우리의 믿음이 행함 있는 믿음, 순종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축복 받을 그릇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적당히 믿고, 순종하지 않고, 말씀 따라 살지 않고, 제멋대로 살면서도 복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여러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머릿속에 들어오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복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 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순종하면, 복이 따라옵니다. 성경 말씀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따라가면, 모든 복이 임하고, 모든 복을 받게 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신 28:1~14).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복을 받게 됩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복 받을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안심하고 그 사람에게 복을 부어주십니다.

그런데 복 받을 그릇이 준비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복을 주셔도 타락하게 되고, 엉뚱한 짓이나 하고, 교만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2장 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생활과 기도생활을 했음을 의미합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기도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평생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중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예배를 빠지지 않고 열심히 드리고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은혜를 받고, 반드시 믿음의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절대 예배에 빠지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간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린다.”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심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를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저와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항상 함께 다녔습니다. 같이 교회에 가서 엎드려 기도하고, 같이 철야기도도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이 친구는 서울대학교 법대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엄마가 고등학교 3년 동안은 교회에 가지 말라고 했다며 아예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서 저를 만나더라도 교회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교회에서 집사였습니다. 아들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는지, 아들에게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들은 어머니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우상숭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망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저주를 받으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꿈에라도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시간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주의 전에 나와서 예배하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아십니까.

그 시간은 은혜 받는 시간이고,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시간이고, 영혼이 잘 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되면, 다른 복은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중단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시험을 치기 전에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험지를 받으면 멍해졌습니다. 그래서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그 전보다 더 잘했는데도, 시험지만 받으면, 이상하게도 멍해졌습니다. 그래서 또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교회에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학원에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험지만 받으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가리셨습니다. 서울대학교가 우상이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친구가 서울대학교에 간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막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허송세월하고 나서 그 친구는 믿음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자존심이 꺾이고 부끄러워서 교회에 나오지 못합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술을 아주 좋아하고, 세상 친구를 좋아해서 밤낮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일이 되어 교회에 오면, 그 사람의 몸에서 술 냄새가 났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교회에 오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오면 되냐?”라고 야단쳤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교회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 안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주일저녁예배나 수요일 저녁예배가 끝날 무렵, 사람들이 다 돌아갈 즈음에 교회에 몰래 들어와 교회 2층에 올라가서 엎드려있었습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의 일인데, 하루는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그 사람이 교회로 들어와 숨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도둑인 줄 알았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교회에 숨어 있다가 교회의 물건을 훔쳐가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도둑을 잡을 생각으로 뒤따라가보니 우리 동네에 사시는 아저씨였습니다.

제가 아저씨께 “아저씨, 예배가 끝났는데, 왜 이제 교회에 오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하나님 앞에 인사하러 왔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배는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인사드리러 교회에 온 것입니다.

늘 그렇게 해왔는데, 그 날은 제게 잡힌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그 아저씨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 이 아저씨는 술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도하러 교회에 갔는데, 이 아저씨가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아저씨께 “아저씨,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제게 “내 아버지의 집을 어떻게 그냥 지나갈 수 있겠냐. 하나님께 인사하고 가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저씨는 교회 앞을 지날 때마다 그냥 지나가지 못하셨습니다.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변화되었습니다.

그 후로 아저씨는 신앙생활을 얼마나 착실히 하시는지, 집사님이 되고, 안수집사님이 되고, 장로님이 되셨습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그 말씀처럼 아주 훌륭한 장로님이 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살 길이 열립니다. 은혜 받을 길이 열립니다. 회복됩니다.

 

예배와 기도를 소홀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솔로몬처럼 됩니다. 솔로몬은 처음에는 믿음이 좋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하니 믿음을 다 잃어버리고, 나중에는 쓸데없는 짓만 하다가 우상숭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타락한 과정을 생각해보세요. 솔로몬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전도서에 보면, 솔로몬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했습니다(전 1:2). 자신이 아주 허무하게 살았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후회하는 인생이 되었습니까? 예배와 기도를 소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중에 타락한 사람이 많은 것은 그들이 예배와 기도를 소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삶,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배와 기도가 끊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은혜 받게 되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장막을 치는 것이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굉장한 부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소돔 고모라 땅에 들어간 롯처럼 성을 짓고, 종들을 부리며 얼마든지 잘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항상 장막을 치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은 하나님이 계신 곳에 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항상 그 나라를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마음을 두고, 마치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재물을 쌓아두고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늘에 있는 영원한 장막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셔도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천국을 바라보고, 우리가 영원히 살 그 나라를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믿음의 태도가 다릅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떠나라고 말씀하시면, “예”라고 대답하고 순종했습니다. 동으로 가라고 하시든, 서쪽으로 가라고 하시든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대궐 같은 집을 지어놨다면, 그렇게 순종하기가 쉽겠습니까. 순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실 때, 무조건 순종했던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 세상에 집을 짓고 살겠습니까. 그냥 장막을 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독특합니까. 우리의 믿음과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순종하겠습니다.”라는 자세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습니다. 이런 생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창세기 12장 8절에 보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입에서는 항상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항상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항상 기억하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경건 생활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았을 때, 어떻게 이길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하나님이 그 자리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라고 말하며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항상 하나님의 이름, 주님의 이름이 불리는 것은 경건한 삶을 의미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창세기 4장 25~26절에 보면,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것은 경건한 신앙이 회복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삽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삽니까? 하루하루 사는 가운데 얼마나 “주님, 도와주셔야 합니다. 인도해주셔야 합니다.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기도합니까?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내 옆에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을 찾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아브라함과 같은 삶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로마서 4장 18~2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대단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100%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90세의 할머니가 어떻게 아기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경수가 끊어진 지 오래되어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그대로 된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형편을 보면, 100% 불가능해보이고, 소망이 없어도,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지시고, 반드시 이루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응답을 받고, 주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믿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저울질해보시기 위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인데도 절망 가운데 빠지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우리가 끝까지 의심하지 않고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보시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도 큰 복인데,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으니, 이것은 보통 복이 아닙니다.

이사야 41장 8절에 보면,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까? 요한복음 15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면 주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과 친구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인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종에게 일일이 말하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명령할 뿐입니다. 주인은 종과 의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친구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친구와는 의논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창세기 18장 16~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에 사람들이 소돔을 향해 갔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천사와 함께 나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친구로 대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러 가신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그곳에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소돔 성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아모스 3장 7절에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행하실 일을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들을 통해 다 예언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친구같이 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첫째,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성을 위해 기도한 것처럼, 조카 롯을 위해 기도한 것처럼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둘째, 이 비밀을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안 됩니다.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자손을 이어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것도 큰 복입니다. 엘리의 가정처럼 자손이 한날에 죽고, 대가 끊어지는 것은 저주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것은 저주입니다. 자자손손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자손이 이어지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자손을 이어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 다니엘처럼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믿음의 사람들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자손을 이어가고 있습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4~5절에 보면, 교회의 감독과 장로의 자격으로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해서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살게 해야 교회의 감독과 장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들의 가정에 신앙의 대가 끊어지는 것을 볼 때, 마음이 가장 아픕니다. 목회자의 경우에도 자녀들이 타락하여 술 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장로님들 중에도 자녀가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불신자와 결혼하여 얼마 가지 못해 이혼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장로가 된 사람이 자식들을 신앙도 없이 내버려두어 신앙의 대가 끊어지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분들의 공통점은 교회에 잘 나오는 청년들을 우습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하는데, 믿음은 아예 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아도 학벌 좋고, 직장 좋고, 재산이 많은 것을 보고 자녀들을 결혼시킵니다. 그러니 그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온전하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신앙의 대가 끊어집니다. 이 사람은 장로가 되었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자손을 이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자손을 이어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얼마나 귀한 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저와 여러분과 같은 이방인들에게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속량해주시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해,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하신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십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오셔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구원 받은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믿음의 자손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손들 중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멸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5~6절에 보면,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손들을 다 기뻐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셔서 멸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7~9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이방인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장 높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조상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들에게까지 흘러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아브라함처럼 되고, 아브라함처럼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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