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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판단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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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7 22:14 조회3,3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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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판단하지 맙시다

 

남을 판단하지 맙시다

2006년 12월 01일(금요철야)

본문 / 로마서 3:1~2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은 밝은 세상을 만드는 것,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사명입니다. 살기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착하고 의롭고 정직한 세상입니다. 빛의 열매가 나타나는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입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한다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진국이 되고 기름이 나오는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은 아닙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도시인 뉴욕은 100층 넘는 빌딩들이 있고 자유의 여신상 등이 보이는 등 참 멋집니다.

1979년 제가 뉴욕에 갔을 때, 제가 제일 놀란 것은 멋지게 봤던 뉴욕이 얼마나 지저분한지, 한국의 서울, 부산보다 더 지저분했습니다. 그리고 뉴욕에 가난한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백인들은 뉴욕에서 1~2시간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폭력, 마약 등 죄악이 가득하여 아파트 값도 뉴욕에서 멀수록 비쌌습니다. 세계적으로 첨단을 걷는다는 도시, 죄악이 가득한 곳이어서 불 심판이 임하면 제일 먼저 임할 것 같았습니다.

세계의 돈이 다 모이고 예술가가 모여도 그런 것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뉴욕을 부러워할 것이 없이 부산이 제일 좋은 곳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려면, 경제, 물질 문제만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잘 사는 사람은 잘 살아도 얼마나 사회가 부패했습니까! 청소년이 얼마나 타락하기 쉽습니까! 지구상에 우리나라처럼 아파트마다 위성방송이 들어오는 곳은 없습니다. 지도자들은 국민을 다 타락하게 하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미국도 특별히 돈을 줘야 위성파를 볼 수 있어서 웬만한 집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일본 역시 돈을 넣어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수출이 11위 정도 하는 대단한 나라인데도 더 잘 살려고 하는데 우리나라가 물질이 없어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나라 국민이 어떤 국민이 되느냐입니다. 어떤 국민이 되느냐에 따라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도 있고, 지옥 같은 나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밝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죄를 정죄하는 것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고, 의를 심으면 의를 거두고, 불의를 심으면 불의를 거두고, 정직을 심으면 정직을 거두고,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두고, 증오를 심으면 증오를 거두고, 남을 비판하면 비판받게 되고, 남을 정죄하면 정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 원리를 명심해야 합니다.

 

로마서 2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2장 3절에 보면,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남을 판단하다 보면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이 세상의 누가 남을 판단할 자격이 있고 남을 정죄할 자격이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죄와 허물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조상도 허물이 많았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믿음이 부족했겠지만, 아내를 아내라고 하지 않고 누이라고 하여 아내를 두 번이나 빼앗길 뻔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도, 사라가 여종 하갈을 주니 아브라함은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남의 아내를 빼앗아 임신하게 하고, 그 사람의 남편은 죽이는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죄악 중 극악한 것은 다 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때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때리는 등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튼 죄와 허물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죄와 허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런 죄인이 어떻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합니까.

 

그런데 마치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마치 죄가 없는 의인인 것처럼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이거나 교만하여 영안이 어두워진 사람입니다.

사람은 교만해지면 영안이 어두워집니다. 그러면 자신의 죄와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 이 세상이 서로 욕하고 판단합니까?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자신의 분수를 생각하십시오. 자신은 어떻든지 남을 흉보고 욕하고 판단하여 세상이 골치 아픕니다. 내가 저 사람을 판단하면, 그 사람 역시 나를 판단합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미움을 받습니다. 잠언 16장 5절에 보면,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다면 겸손해야 합니다.

 

잠언 6장 16~1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의 눈을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미워하시지만 세상에서도 싫어합니다.

 

우리는 남보다 신앙생활 잘 할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남보다 많이 기도할 때, 헌금 많이 하고, 전도 많이 하고 더 헌신할 때, 남보다 공부를 잘하고 부자가 됐을 때,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해야 합니다.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가난하게 하셔서 지렁이 밟듯이 계속 밟으셨습니다. 그래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밟으셨으니 이만하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면 저같이 교만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렇게 교만한 줄 아시고, 저를 짓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교만의 뿌리가 남아있어서 사람을 볼 때에 판단합니다. 사람들을 볼 때, 점수를 매깁니다. 얼마나 교만한지 모릅니다.

내가 사람을 보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과 같습니까? 제가 목회자들을 볼 때에도 평가합니다. ‘고생 꽤나 하겠다’라고 판단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미우셨겠습니까.

저는 그냥 사람을 보는 대로 판단한 것뿐인데, 그것은 교만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게 책망하셨습니다. 제가 사람을 판단하기만 하고, 그들을 위해 울어주지 않고, 사람들을 품지도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던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사랑이 없는 교만한 인간인 것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잠언 11장 2절에 보면,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보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욕을 먹습니다. 교만한 순간, 나를 욕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내가 욕을 먹는다고 생각된다면, 내가 교만한가 생각해보십시오. 교만이 있으면 욕이 따라옵니다.

 

잠언 13장 10절에 보면,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4장 3절에 보면,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5장 25절에 보면,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6장 18절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9장 23절에 보면,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려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한 자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첫째, 책망과 충고를 잘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언 15장 10~12절에 보면,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망하고 죽는 길로 가는지 모릅니다. 누가 충고해주는 것을 잘 듣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칭찬해주는 사람만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면 화가 나고 기분 나빠지만, 잘 참고 받아주는 것은 보약 중 보약이요, 축복 중 축복입니다.

 

어느 목사님을 헐뜯는 사람들이 목사님의 여러 가지 죄를 폭로하며 목사님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반항하지도 않았고, 그 사람들과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나는 그것보다 더 큰 죄인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목사님과는 싸울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의롭기에 그렇게 훌륭한 목사님을 비난하고 욕합니까.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악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목사님께서 어려움을 조금도 눈을 껌벅이지 않고 이기시는 것을 보고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자가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3장 15~17절에 보면,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그가 어둠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으로 말미암아 은밀한 곳에서 울 것이며 여호와의 양 떼가 사로잡힘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은 사람을 완악하게 합니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살 줄 알고, 하나님이 없어도 살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아는 사람은

첫째, 겸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아니면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감사합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압니다.

 

병들었다가 나으면 감사합니다. 그런데 병들었다가 나은 것이 감사합니까, 병들지 드는 것이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평소에 감사하십시오. 병에 걸려 수술하면서 아팠다가 죽지 않은 것을 감사하겠습니까? 아예 병들지 않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응답받은 것도 많지만, 기도하지 않고도 건강하고 밥 잘 먹고 소화하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약을 먹으며 ‘건강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하는 것보다 약 먹지 않고도 건강한 것을 감사하십시오. 손가락이 여섯 개가 아닌 것을 감사하십시오. 감사할 것이 정말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몸이 건강하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주일에 다섯 번씩 설교하는 것이 힘든지 저에게 사인이 옵니다.

그러면 저는 준비합니다. 언제 주님께서 오실지 모르고, 제가 언제 천국에 갈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준비합니다. 가슴이 아플 때, ‘앗, 사인을 주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욕심이 없어집니다.

 

자신의 건강을 믿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우리가 두 눈으로 보는 것, 귀가 들리는 것 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와 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자신이 제일 죄인이라고 생각해서 남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보통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 3:8)”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은혜 받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영안이 밝아져서 자신의 약함을 깨닫습니다. 은혜 받으면 겸손해집니다. 그런 사람들은 함부로 입을 열지 않습니다.

 

잠언 15장 33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2장 4절에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9장 23절에 보면,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잠언 11장 2절에 보면,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지혜로워집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으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너 없으면 못 사는 줄 알아’라고 생각하면 가정이 깨어집니다. 집에서는 겸손해야 남편의 사랑을 받습니다.

겸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어디를 가든 사랑을 받습니다. 그렇게 하면 남자가 목숨 걸고 사랑해줄 것입니다.

 

이사야 57장 15절에 보면,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죄가 많고 허물이 많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통회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과거는 문제가 아닙니다.

 

둘째, 항상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면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보면,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눈으로 사람을 봅니다. 악하고 불의하고 거짓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 앞에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 지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긍휼을 더 원하십니다. 죄인끼리 싸우며 제사를 지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긍휼을 베푸는 사람 되기를 원하십니다.

 

누가복음 6장 35~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비판하면 비판받고, 정죄하면 정죄를 받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에게 선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비한 것처럼 우리도 자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만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실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과 그의 후손에게 큰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었는데, 친아들처럼 여기며 늘 한자리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다윗이 큰 죄를 범한 적이 있음에도 존경받고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모습은 곧 주님의 모습입니다.

자신을 늘 죽이려고 따라다니던 원수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다윗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원수가 죽었을 때에는 통곡하며 장사를 크게 지내주었고 자손들에게 선대했습니다.

 

사무엘하 22장 26절에 보면,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8편 25절에 보면,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비를 베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자비하신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마시고, 원수라도 사랑하고 선대하며 자비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자비를 베푸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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