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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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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1 18:26 조회3,4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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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거는 사람들

 

목숨을 거는 사람들

2003년 05월 30일(금요철야)

본문 / 사도행전 20:22-25

 

이 세상에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큰일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목숨을 걸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목숨을 걸 때, 자기가 평소에 가졌던 힘보다 엄청난 기적적인 힘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목숨을 거는 사람이 큰일을 하고, 이런 사람들이 역사적인 인물들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많은 신자와 제자들이 생기고, 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과 교회를 위해 목숨을 걸고 충성했기 때문에 세계를 복음화하는 일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건다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큰일을 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역자들도 목숨 걸고 목회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그저 평범하게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절대로 들어 쓰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을 통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적당히 평범하게 믿는 사람들은 마귀에게 시험 당하고, 유혹에 빠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 정신으로 목회를 하면 평생 목회해도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목회할 때,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께서 들어 쓰십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은 왜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걸지 않을까요?

첫째, 확신이 없기 때문에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가슴까지 들어오지 않고, 뜨거움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구원받았다. 나는 천국에 간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셨다. 주님께서 날 위해 죽어주셨다.”라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머리로는 알지만 확신이 없으니까 목숨을 걸지 않고, 아무 일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된다고 말씀하셨으니 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열심이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볼 때는 자격도 없고, 엉성하게 보이는데,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든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집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전파됩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완전히 전파된 순간, 주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완전히 전파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 복음을 듣고, 마지막 한 사람까지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7~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들, 예수님에게 보내주신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 올 것이고, 예수님께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 구원받게 하신다는 이 말씀을 저는 그대로 믿습니다.

 

이사야 11장 9절에 보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스바냐 3장 9절에 보면,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스가랴 2장 10~11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스가랴 8장 22절에 보면,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스가랴 14장 16~20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얼마나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까. 반드시 이 세상의 많은 나라들이 하나님에게 돌아오고 온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기쁨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확신이 있는 사람은 담력이 있습니다. 믿음은 담력과 정비례합니다. 기도를 해도, 말씀을 전해도, 전도를 해도 담력을 가지고 있으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호수아 1장 3~6절에 보면,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불가능이 없고, 죽고 사는 것과 흥하고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 없이 신실하십니다. 이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강하고 담대할 줄 믿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 정복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다니엘은 나이가 어렸지만,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라고 결심하고, 왕이 주는 것을 먹지 않았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바벨론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담대하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목숨을 걸 수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확신, 전지전능하심에 대한 확신, 말씀에 대한 확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확신, 구원하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고난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동시켜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시고, 험한 세상에 믿음으로 살다가 천국에 가도록 책임지십니다.

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그들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택하신 백성을 위해 성령을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시고 시작하시고 완성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막 16:15).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열심히 전하면, 우리의 신앙에 유익합니다. 신앙이 건강해지고, 빨리 자라고, 열매가 생기고, 기쁨이 생기고, 믿음의 체험이 생기고, 은혜 받은 간증거리가 생깁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0절 이하에 보면, 지혜로운 건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믿음의 집을 짓는데, 자기의 믿음만큼 믿음의 열매가 나타나 어떤 사람은 금은보화로 집을 멋지게 짓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적당히 믿으니까 ‘비만 새지 않으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초가집을 짓습니다. 공적을 불로 시험할 때, 나무나 풀로 지은 집은 다 타버리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사람은 신앙생활 하는 척 했지만, 주님 앞에 내놓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거는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금과 보물로 집을 짓는 사람과 같아서 불이 지나가도 끄떡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사는 자에게는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많이 맞기도 하고, 굶주리기도 하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강도의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행전 읽을 때, 주의 종들이 고난 당하는 장면을 보면 정말 속상합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데 영광을 누리게 하시지, 왜 헐벗고 굶주리고 매를 맞게 하실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많은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 당한 고난만큼 영광이 있는데, 이는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롬 8:18).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상 받을 기회를 주시기 위해 상 받을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8장 16~18절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천국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천국에서 살 것입니다. 영광과 축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받은 고난을 기뻐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보면,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많은 고난을 받을수록 장차 받을 영광이 어마어마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난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5~8절에 보면,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고난 받기를 권면하면서 목숨을 바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며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고난을 당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면류관을 받게 하시기 위해 주시는 고난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게 되는 고난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면류관을 받게 하기 위해서 허락하신 고난입니다.

가난하고 몸이 아파 힘들게 예배드리는 분들도 그것을 슬퍼하거나 신세타령하지 마십시오. 예배를 위해 고난을 받았다면, 이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장차 면류관이 되는 줄 아시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고난에는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경건하게 살려는 자에게 환난이 있고 핍박이 있지만, 고난을 무릅쓰고 경건하게 살면, 얼마나 큰 면류관을 받겠습니까. 영광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믿음의 크기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크기와 정비례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삽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바칩니다.

 

죄인 여자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찾아와 머리에 2백 데나리온 되는 향료를 부어 드렸습니다. 노동자가 200일을 일해야 살 수 있는 비싼 것이었지만, 아낌없이 부어 드렸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위해 금은보화를 바치고 평생 성전 지을 준비를 하다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윗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위해 최고의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은 마음,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건축이 중단되었던 큰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는데 마귀가 얼마나 역사하는지, 제가 설교하려고 하면, 기침이 나와서 어렵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교인들이 은혜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느 성도가 15억 원을 하나님 앞에 헌금했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위해 면류관을 예비해놓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주님을 그만큼 사랑했으니까 그랬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이단 신도들은 교주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회교도들은 알라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일본 사람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이분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목숨을 바쳐도 상급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목숨을 겁니다. 그 당시에는 굉장한 것 같은데, 지나고 나면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에게는 구원이 있습니다. 영광이 있습니다.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왜 주님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습니까? 확신이 없기 때문에, 고난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왜 확신이 생기지 않고, 두려워하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이유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귀한 말씀을 다 들었고, 눈으로 봐서 머리로는 다 압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 도망하고, 숨어서 벌벌 떨었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담대하게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 제자들은 얼마나 강하고 담대해졌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쓰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부산이 복음화되고, 이 민족이 복음화되고, 땅 끝까지 선교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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