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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을 허락하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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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24 18:10 조회3,1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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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을 허락하신 이유

 

환난을 허락하신 이유

2007년 09월 21일(금요철야)

본문 / 사도행전 14:19~22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는 이 세상에 환난이나 고난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하신 선악과를 먹은 후에 고난이 왔습니다. 아담에게는 먹고 살기 위한 고생, 하와에게는 해산의 고통이 와서 죽을 고생을 하며,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먹고 살기 위해 고생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 고생하고, 키운다고 고생하다 늙고 병들어 죽어가게 되니까 고난의 시작은 죽음의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게 됐으므로 어떻게 보면 고난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수긍이 되지 않습니다. 그가 죄를 범한 것도 아니고,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도 아니고, 오직 복음을 위해 산다고 애썼는데, 그가 가는 곳마다 핍박자들이 있어서 매를 맞기도 하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는 등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한 것을 보면, 우리가 쉽게 수긍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공중의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사도 바울에게 고난을 받게 하셨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말씀만 전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생기고, 교회가 생기게 하는 사람에게는 병도 없고, 천년 정도 살게 하면서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왜 이런 사람에게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 보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도 바울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 사도 바울을 사랑하셨을 텐데, 왜 이렇게 굶주리고 헐벗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도 바울 뿐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고난을 주십니다. 어떤 때에는 물질의 고난, 어떤 사람에게는 질병의 고난, 악한 자로 인해, 재난으로 인해 받는 등, 얼마나 고난이 많은지 모릅니다.

욥기 5장 7절에 보면,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인간은 고생하려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6~38절에 보면,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얼마나 고난을 많이 당했는지 여기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환난과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첫째,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평소에는 누가 알곡이며 가라지인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아무런 환난과 핍박이 없을 때에는 모두 알곡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다가 환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면, 낙심해서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북한에 남은 사람들 중에 순교자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의 앞잡이를 하며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30여 년 간 다스릴 때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하지 않으면 죽이고, 감옥에 넣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신앙을 지킨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습니까. 믿음이 너무 약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고 사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환난과 핍박이 오면, 환난과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주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오면, 믿음을 저버릴 사람들은 바로 평안할 때에 돈 몇 푼으로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주일 성수를 하지 못하고, 돈의 노예로 십일조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며, 직장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환난과 핍박이 오면 분명히 교회를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환난 핍박 시에 배신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또 기분에 따라 교회에 나왔다 말았다 하는 성도들도 환난 핍박 시에 배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을 믿는 척만 하는 사람들, 다 배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명예에 눈이 어두워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한 적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환난 핍박이 오면, 교회를 떠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환난이 오면 확실하게 구분됩니다. 마치 타작마당에 벼이삭을 두고 내리쳐서 껍데기가 벗겨지고, 알곡은 알곡으로, 쭉정이는 쭉정이로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평안할 때에는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사업이 잘되고 건강하고 예수 믿는 데 아무 고통도 방해도 없는 때에는 열심히 믿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현상 유지하면 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편안할 때에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큰 환난이 오면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낙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쭉정이입니다. 그러나 큰 환난이 왔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하는 사람은 큰 은혜를 받습니다. 이럴 때 목숨 걸고 기도하면,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기도 하며, 기적을 체험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환난을 통해 사도행전 성도들의 믿음같이 강해집니다.

 

여러분 중에는 병으로 고생하다가 하나님 앞에 목숨 걸고 기도하여 암이 없어지거나 병이 낫는 기적을 체험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 너무 고통 중에, 절망 중에 죽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주님의 음성을 들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때에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기도해서 은혜, 능력을 받고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어 쓰신 분은 편안하게 산 사람이 아니라, 모두 큰 환난을 통해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셔서 그들을 들어 쓰셨습니다.

요셉 역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곱게 자란 것이 아니라, 애굽에 팔려가고 감옥에 들어가는 등 온갖 고생을 합니다. 그 많은 고통, 환난 속에서 연단을 받으며 그가 큰 믿음의 사람이 되고 크게 쓰인 것입니다.

모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애굽에서 40년 산 후에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양치기로 4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광야의 어려운 고난을 통해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그를 하나님이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다윗 역시 곱게 자라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다윗은 늘 하나님을 기도하며 찬양하며 큰 은혜를 받으면서 믿음으로 자라서 그 고난 중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다니엘 역시, 어렸을 때 포로로 잡혀가 어려움을 당하지만,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늘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그를 높이 들어 쓰십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불순물이 많은 금을 용광로에 넣어 걸러 100% 정금만 빠지게 하여 좋은 금이 되게 하는 것처럼, 불 속에서 녹아져서 불순물이 없어지고, 정금이 되듯,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귀한 정금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십니다.그러므로 환난 날에 기도하십시오. 고난이 왔을 때 기도하십시오.

 

저는 어렸을 때 고난이 있으면, 그 날은 철야기도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깜깜한 교회 지하실에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그 시간 중에 많은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추운 겨울에 옷도 별로 입지 못하고, 지하실에서 밤새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누군가가 따뜻한 담요로 제 뒤를 감싸주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괴롭고 걱정되어서 밤에 자지도 않고 추위에 떨며 기도하는 나를 하나님이 담요로 싸듯이 감싸주시는데,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습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시면 큰 믿음의 사람이 되며 반드시 쓰임 받습니다. 시편 50편 15절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르짖으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이 건져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꾼으로 만드십니다.

 

셋째, 우리에게 환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상 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의를 위해 박해를 받거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욕먹고 박해를 받거나 고통을 받으면 복이 있는 줄 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상이 크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받는 상은 고작 한 때 받는 상이지만, 천국에서 받는 상은 영원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칭찬이나 세상에서 영광을 받아야 하는데, 왜 핍박 받게 하십니까? 하늘에서의 상급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하지 마십시오.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우상숭배하지 않고,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순교한 사람들은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고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잠시 고통을 당하지만, 천국에서는 천년동안 왕 노릇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르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하다가 고난이 오면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실 상이 있음을 믿고 소망을 가지고 승리하십시오.

 

넷째, 순교자의 수를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 9~11절에 보면,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서 영광을 누릴 사람들이 순교자들입니다. 그런데 순교자의 수는 예정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능해서 순교 당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이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셨습니다. 스데반이 죽을 때 하나님이 보좌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고, 그의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 줄 믿습니다. 영화 <쿼바디스>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자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할 때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찬양을 하며 주님을 곧 만날 것을 생각하며 순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실 때 얼마나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셨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순교도 각오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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