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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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24 18:18 조회4,531회 댓글0건본문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는 이유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는 이유
2007년 10월 05일(금요철야)
본문 / 사도행전 13:22-23
본문 22절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무엘상 16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이 다윗의 외모를 보시고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중심은 어떤 것일까요?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믿음을 보시고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임신한 여인과 뱃속에 아기를 연결하는 탯줄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생명줄과 같은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꼭 붙잡으세요. 절대 놓지 마세요. 또 믿음은 하나님께 붙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떨어지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떨어지지 마세요.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있는 것처럼, 붙어있어야 합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죽습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꼭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무로부터 수분도 공급받고, 영양분도 공급받아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떨어지면 안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붙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어있으면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믿음보다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으로 천국 시민이 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9:23). 그리고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7:20).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믿음만은 건강해야 됩니다. 믿음만은 좋아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을 왜 기뻐하실까요?
첫째,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세상만 바라보고 삽니다. 그들의 눈에는 세상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만 보고 삽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은 육안으로 세상만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삽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점입니다.
세상의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며 판단하고, 세상만 추구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늘의 나는 새를 바라보고 살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새를 만드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을 보고 삽니다. 보는 눈이 다릅니다. 믿음의 사람은 새를 보면서 새를 만드신 하나님, 새를 기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삽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길에서 믿음의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밤낮 광야만 봅니다. 광야만 보고 사니 한심합니다. 광야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은 화가 나고, 짜증이 납니다. 그래서 밤낮 원망불평합니다. 차라리 다시 노예생활을 해도 좋으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만 바라보며 사니까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광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광야에서 다 멸망했습니다. 오직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만 보고 떨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7절에 보면, 골리앗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했으니 297cm가 조금 넘습니다.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습니다. 학자들이 놋 투구의 무게를 재어보니 56kg이었다고 합니다. 포대자루 같은 큰 옷을 입고, 큰 광주리와 같은 놋 투구를 쓰고, 허리에는 길이가 150cm가 넘는 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고함소리는 아마 골짜기에 그냥 쩌렁쩌렁 울렸을 것입니다.
이런 골리앗 앞에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7장 32절에 보면, 목동 다윗은 사울 왕에게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삼상 17:34~36, 37).
사람들은 세상만 바라보고, 골리앗만 보고 있는데, 다윗은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믿음의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가 이것입니다. 다윗의 말을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사무엘상 17장 45~47절에 보면, 다윗이 골리앗에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이런 다윗을 보시고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머릿속에 항상 하나님이 들어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세상의 것만 보는데,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은 잔인하고 살기등등한 골리앗에게 눈길을 빼앗겼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눈에는 골리앗은 사자나 곰 한 마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보니 막대기를 들고 온 어린아이였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은 다윗에게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다윗의 눈에 골리앗의 이마가 보였습니다. 다른 곳은 갑옷과 투구로 방어했는데, 아무런 방어가 되어있지 않은 골리앗의 이마가 다윗의 눈에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머니에서 돌을 하나 꺼내어 가지고 물매에 올려놓고, 물매로 돌을 던졌습니다. 돌이 날아가 골리앗의 이마에 박혀버렸습니다. 그러자 골리앗이 기절했는지, 앞으로 고꾸라져버렸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밟고 서서 골리앗의 칼을 꺼내어 그것으로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승리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 골리앗과 같은 큰 문제가 우리에게 찾아올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문제만 보고 문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잠을 자지 못하고 괴로워합니다. 이러다가 어떤 사람은 병들기도 합니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다가 절망에 빠져 병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마치 골리앗만 보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문제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문제를 전화위복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요셉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요셉의 일생을 보면, 요셉에게 일어난 사건 하나하나가 그에게 축복이었습니다. 형들에게 미움 받은 것도 축복이고, 노예로 팔린 것도 축복이고, 보디발의 집에서 오해 받아 누명쓰고 감옥에 간 것도 축복이고, 지나고 보니까 하나하나가 고통과 절망이 아니라, 축복이었습니다.
요셉의 모든 고난을 축복으로 바꿔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집에 있는데도 자녀들이 여러분을 알아주지도 않고 말도 한 마디 하지 않고, 상대하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좋아해보세요. 얼마나 괘씸합니까.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주장하고 계시는데,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은 하나님을 제쳐놓고, 세상만 보고, 문제만 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믿음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믿음의 사람은 문제를 보지 않고, 문제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문제를 축복으로 바꾸실 것을 믿고, 믿음의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늘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는 두 번째 이유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축복하시고, 순종의 사람을 사랑하시고, 순종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모든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을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세요. 그러면 복이 임하게 됩니다. 복이 찾아오게 됩니다. 복이 우리를 따라오게 됩니다.
그래서 들어와도 복 받고, 나가도 복 받게 됩니다. 들에 가도 복 받고, 성읍에 가도 복 받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 받고, 자손들까지 복 받고, 떡 반죽까지 복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복이 우리를 따라다니게 하십니다.
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얼마나 순종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말씀대로 사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것은 아무 쓸 데가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 2:17, 26). 실제로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 사람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입니까? 우리는 왜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지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생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가르쳐주시고 지시하시는 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오른쪽으로 가라 하시면 오른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라 하시면 서쪽으로 가고, 머물라 하시면 머물고, 떠나라 하시면 떠나고, 무조건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느냐가 나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사라와 의논했다면, 사라는 기절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구와 의논하지도 않고, 다음날 새벽에 아들을 데리고, 나무를 짊어지고, 횃불을 들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축복을 받는 비결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축복을 달라고 하지 마세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세요. 실천하세요. 그러면 복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지는 않고, 복을 달라고 구하면, 복이 놀라서 도망가 버립니다.
창세기 26장 1~5절에 보면,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게 된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에게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너한테 지시하는 곳에 가서 거주해라. 그리하면 내가 그 땅을 다 너와 너의 자손에게 다 주겠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고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고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해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이삭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6장 6절에 보면,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애굽으로 가지 않고, 그랄 지방에 살았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 창세기 26장 12~13절에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 흉년이 와도 흉년 든 세상을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흉년이 들었다고 해서 다 거지가 되고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삭은 흉년 든 그 해에 100배의 복을 받았습니다. 거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흉년이 들었다고 해서 다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흉년 들어 망할 사람은 망합니다. 그러나 흉년이 든 해에 오히려 돈을 벌 사람, 돈을 더 많이 벌 사람이 생깁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그랄 지방에 거하며 흉년 든 그 해에 농사를 지었는데, 하나님이 축복하시니까 얼마나 잘 되는지, 100배나 거둬가지고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밤낮 신문만 들여다보고, 경기가 좋아지느냐 나빠지느냐를 살핍니다. 믿음 없는 세상 사람들은 신문 기사만 읽고 얼굴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축복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본문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다윗이 쓰임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자손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의미합니다. 구주 되시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중에서 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자기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가리킵니다.
나라가 세워지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 국토가 있어야 합니다. 땅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남의 나라에서 종 살이 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세우겠습니까. 그러므로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국민이 있어야 합니다.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없는데 무슨 나라가 되겠습니까.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세워집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국민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이미 예정하시고, 하나님이 다 택해놓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습니다. 그 숫자가 정확하게 계획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들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은 다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천국 시민이 됩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누가 전도하든지 반드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스스로 교회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라도 교회에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심지어는 꿈을 꾸고서라도 교회에 나옵니다.
튀니지에서 사역하는 이동원 선교사의 간증에 의하면, 튀니지는 회교국가여서 전도가 잘되지 않아 어느 해에는 선교사들이 전국을 다니며 땅 밟기를 한다고 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눈 뜨고 걸어 다니는 것 같은데, 속으로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생겨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땅 밟기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60명이 선교사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찾아온 사람들이 다 사회적으로 굉장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학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하여 고급 공무원 등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선교사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왔는지 물어보니 주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꿈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며, 예수 믿기로 결심했다고, 목숨을 걸고 예수 믿을 테니 성경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 한꺼번에 60여 명의 크리스천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우리가 전도하면 반드시 구원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가고 있는데 국민, 즉 하나님의 백성의 수를 다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예정되어 있으니 그 사람들로 채우면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한다는 것,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일을 하는 사람은 백배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는 것이 더 귀합니까.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면류관 상을 받는 것이 더 귀합니까.
하나님 앞에 가서 면류관 상을 받으면, 면류관 쓰고 영원히 살게 됩니다. 세상에서 잘 산 것, 세상에서, 백배의 복을 받고 잘 사는 것은 잠시 동안 누리다가 세상을 떠나면 끝납니다.
그러니까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산 사람이 현세에 백배의 복을 받는 것보다 더 귀한 복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서 주를 위해 살 때, 주를 위해서 사니까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서 사업이 잘되고 복 받는 것도 좋지만,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것을 더 기뻐해야 합니다. 받을 상이 비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세의 복도 받아야 하지만, 정말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복보다 더 귀한 복,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복을 오히려 더 사모하고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잘 먹으려고 하지 마세요. 먹는 것에 많이 신경쓰지 마세요. 세상에서 잘 먹어봤자 잠깐입니다.
비싼 옷을 입으려고 하지 마세요. 선교하려면,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남을 구제하고 나눠야 하는데, 나를 위해서 많이 쓰면 구제하고 나눌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많이 투자하지 마세요. 하늘나라에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상급을 위해서, 영원히 누리는 상을 생각해야 합니다.
현세에서 잘 살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과 핍박이 와서 낙심하거나 섭섭해 하지 마세요. 오히려 장차 받을 영광의 면류관을 생각하며 주를 위해 받는 고난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데 관심을 갖기보다 이 세상에서 축복 받는 것이 관심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세상으로만 향할 때에는 솔로몬의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산다 해도 솔로몬만큼 잘 살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출세한다 해도 솔로몬만큼 출세하겠습니까.
솔로몬은 세계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1천 명의 여자와 함께 살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살도록 하셨습니다. 가장 행복하고 살고, 가장 경건한 자손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어리석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누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눈이 보이는 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했습니다(전 1:2).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지만, 결국에는 괴로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우리에게 이렇게 해답을 줬으니까 세상의 헛된 일에 시간과 정욕과 돈을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관심을 쏟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삽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삽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전심전력하며 삽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보는 것이 다릅니다. 세상을 보지 않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만 보지 마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기도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참 감사한데,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자신만 생각하며 시끄럽게 기도해서 다른 사람의 기도를 방해하면 안 됩니다.
기도는 은혜로워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소리만 들어도 옆에 있던 사람이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시끄럽게 기도하면, 옆에서 열심히 기도하던 사람의 기도마저 끊어져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의 불을 끄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방언을 하더라도 희한한 방언을 해서 옆에서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방언은 하나님과 나만의 교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방언하는 자신도 그 의미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소리 지르며 기도하려면, 독방에 들어가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도 기도해야 하지만, 합심하여 같은 목표를 가지고,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보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의 기도 때문에 부산의 귀신들이 속상해하고, 여러분의 기도 때문에 부산에 있는 귀신들이 결박당하고, 무당들의 굿이 되지 않고, 점쟁이들의 점괘가 풀리지 않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다가 암이 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다가 당뇨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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