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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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8 21:37 조회3,503회 댓글0건본문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
2007년 06월 29일(금요철야)
본문 / 사도행전 11:19~26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보혜사 성령이 늘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실 뿐만 아니라,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부해지고, 가난해지는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일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매우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만유보다도 크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신 사람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고, 그들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자가 없습니다. 그들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 만물보다도 크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책임지십니다.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를 끝까지 책임지려고 해도 능력이 없어서 책임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한번 붙잡으시면,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자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2~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넘겨주어서 이제 죽음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순교자로 택한 몇몇 사람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사람이 아니라면, 머리카락 하나도 손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핍박을 받거나 환난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허락하시니까 내개 환난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이 사건은 굉장히 큰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11장 19절에 보면,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고, 핍박이 일어나니까 사람들이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에 보면,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몇 사람들 외에는 다 흩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큰 환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신데, 왜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큰 환난을 당하도록 허락하셨을까요? 큰 환난과 핍박이 오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크게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언제나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 밖에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감당하지 못하는 시험을 당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예루살렘교회는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큰 환난과 시험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시험이 와도 내가 능히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요셉이 17살에 얼마나 큰 시험을 당했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요셉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요셉의 믿음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성경을 보면, 요셉은 어려운 시험을 다 감당하고, 하나님이 높이 쓰셔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다니엘이 당한 시험도 다니엘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는 그 시험, 얼마나 큰 환난이고, 큰 시험입니까. 그러나 다니엘은 눈도 깜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멋지게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런데 시험 중에 가장 부끄러운 시험이 있습니다. 내 욕심 때문에 당하게 되는 시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욕심 때문에, 욕심으로부터 생겨난 시험입니다.
야고보서 1장 13~15절에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이 자꾸 시험에 들게 되고, 죄를 범하게 되는 원인, 그 뿌리는 자기의 욕심에 있습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가 자라서 죽음을 가져옵니다. 그 뿌리가 욕심에 있습니다.
다윗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 궁전 지붕에서 바람을 쐬다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큰 시험에 들게 됩니다. 음욕이 생기게 되니 그것이 이제 시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보좌관들이 그 여자가 우리아 장군의 아내라고 얘기해주는데도 불구하고, 그 여자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다윗이 왜 시험에 들게 되었는가 하면, 음란한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욕심 때문에 시험에 들게 되고, 시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요셉의은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시간이 있으면, 눈웃음을 치고 달려들었지만, 전혀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단호하게 물리쳤습니다.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욕심이 없고, 음욕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시험이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거기에 있습니다. 마음속에 욕심이 있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그때부터 이제는 이중장부를 할까 말까 갈등하고, 싸게 사놓고도 비싸게 파는 등 하여튼 별짓을 다 합니다. 그러니까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그렇게 하지 않는데, 돈에 대한 욕심을 갖는 순간부터 문제가 터집니다.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명예에 대한 욕심을 가지는 그 날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그때부터 시험에 들기 시작하는데, 정신없습니다. 욕심이라는 것이 우리를 시험에 빠지게 만즙니다.
오래 전의 얘기입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초기의 일입니다. 아내와 제가 시내에 나갔다가 택시를 타고 들어오려 하는데,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같은 방향으로 오는 사람과 합승을 했습니다.
같이 타고 있던 손님이 먼저 내린 후 우리 집을 향해 출발하려 하는데, 제 옆에 보니 종이가방에 돈뭉치가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제 평생에 그렇게 많은 돈을 처음 봤습니다. 그때 돈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별별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내릴 때 살짝 들고 내리면 됩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 돈뭉치를 보자마자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먼저 내린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돈이 무슨 돈인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시험에 들 수도 있고, 들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시험이 될 수도 있고, 시험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보면, 웬만한 사람 같으면, 얼마나 먹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에게는 그것이 전혀 시험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상 앞에 절하고 제사 지낸 음식이란 것을 아는 다니엘은 그것을 먹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것에 끌리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뜻을 정하고 먹지 아니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욕심이 없으니까 전혀 시험이 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큰 환난이 왔을 때에도 그 일로 시험에 든 성도와 시험에 들지 않은 성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시험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시험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환난이 일어났을 때, ‘예수 믿을까 말까’하고 고민하면서 큰 시험에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예루살렘 교회에 큰 환란을 당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기 위해서 입니다.
교회가 평안하고 은혜로울 때에는 누가 알곡 신자인지, 가라지 신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누가 알곡인지, 누가 쭉정이인지 알 수 없습니다. 교회에 기쁨이 충만하고, 교회가 평안하고, 은혜로울 때에는 다 은혜 충만한 것 같아 보입니다. 다 알곡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환난이 오면, 그 사람이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금방 드러납니다. 논에서 거두어온 곡식을 마당에 벌여놓고 타작을 하면, 그 전까지는 다 똑같은 곡식인 줄 알았는데, 내리치는 순간에 알곡은 알곡으로 나타나고, 쭉정이는 쭉정이로 탁 나타납니다. 두드리는 순간에 자기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큰 환난과 시험을 이기는 알곡 신자가 되려면, 평소에 준비를 잘해야 됩니다. 순교할 수 있는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가난하게 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잘 먹는 것, 잘 입는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자 되려는 생각, 출세하려는 생각,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사도 바울처럼 배설물과 같이 여기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시기와 분쟁하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남이 잘되면 박수 쳐주고 칭찬해주고 절대 시기하지 않아애 합니다. 그리고 분쟁할 일이 생겨도 그저 용서하고, 그저 받아주고, 화해하고 화평하게 해서 절대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 무장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행하지 않는 믿음을 평소에 항상 훈련해야 합니다. 사람을 따라가지 마세요.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세요.
언제나 우리의 신앙의 표준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을 사랑하고, 오직 주님을 위해서 목숨까지라도 바치고자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면, 어떤 환난과 시험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알곡 신자가 될 줄 믿습니다.
둘째, 교회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해주기 직전까지는 모든 성도들의 신앙이 아주 대단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화형을 당하고, 사자의 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서운 환란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땅굴 속에 숨어서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이때의 성도들은 로마제국이 아무리 핍박해도 환난과 시험을 능히 이길 수 있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순교할 것을 각오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환난과 핍박 속에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은 정결한 신앙, 깨끗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오래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것도 없고, 시집 장가가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환난과 핍박, 그리고 무서운 환경 속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정결한 처녀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사라진 후, 황제가 앞장서서 교회에 갔습니다. 그러니까 국민들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어중이떠중이 다 교회에 왔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알곡과 함께 쭉정이가 많아졌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거듭나지도 않았고, 누가 신앙고백을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성경도 모릅니다. 임금님이 교회에 가니까 다 따라가는 것입니다. 신하들 다 따라갑니다.
그러니까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한 것 같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 때부터 교회가 세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 안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혼탁해졌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교회에 알곡 신자와 함께 쭉정이 신자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직분자 중에도 교회 밖에 나가면, 술을 마시기도 하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붙잡히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아무나 예수님을 믿을 수 있고, 환난도 없고,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알곡 신자만 있는 게 아니라, 쭉정이 신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핍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국교회는 다릅니다. 공산당의 지시를 따르는 삼자교회는 감시만 받는 정도이지만, 지하교회와 가정교회에서는 붙잡히면 감옥에 가서 고문을 당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 중에 한 분도 붙잡혀 가서 며칠 동안 감옥에 들어가 고문을 당하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한국에 나와서 수술을 받고 선교지로 돌아갔습니다.
무서운 핍박 속에도 신앙을 지키는 가정교회에는 쭉정이 신자가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신앙이 뜨겁고, 성도들의 신앙이 정결합니다.
세상에서 별 짓 다 하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고생하러 가정교회에 가겠습니까. 제멋대로 사는 사람은 가정교회에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겠다고 지하교회까지 간 성도들은 환난과 핍박 속에서 그만큼 정결한 성도가 됩니다. 그런 사람이 모이는 교회는 그만큼 거룩한 교회가 되는 줄 믿습니다.
셋째, 성도들로 하여금 목숨 걸고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데반의 일이 있기 전에는 예루살렘교회만 부흥됐습니다. 그래서 모두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교회가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는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성도가 수십만 명으로 늘어나는데, 예루살렘에만 있습니다.
사실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되면, 당장 생활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알지도 못하는 외국에서 생활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자녀교육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생
한 의사 부부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파키스탄에 가서 선교하다가 잠시 한국에 귀국하여 저와 만났습니다. 선교보고서를 읽어보니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의사니까 한국에서 얼마나 잘 살 수 있습니까. 그런데 선교지로 나갔습니다. 그분의 아버지가 평소에 과묵하신 분이셔서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을 본 적이 없는데, 아들이 의사가 되어 고생스러운 선교지에 간다고 하니 아버지가 아들 앞에서 우시더랍니다.
스데반의 일이 있기 전에는 예루살렘교회에 얼마나 은혜가 넘치는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몰려와서 교회가 커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해야지, 자기들만 은혜 받고, 자기들끼리 모여 세월을 보내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흩으셨습니다. 흩어지면, 생활문제가 어렵고, 자녀교육이 어렵고, 바깥에 나가면 교회도 없으니 신앙생활이 어렵고, 그 외에도 어려움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까 흩어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파키스탄에 간 의사 선교사에게 자녀가 세 명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칩니다. 아이들을 보낼 곳이 없으니 부모가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만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까지 그렇게 희생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인데,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흩어질 용기가 없으니 예루살렘교회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큰 환난과 핍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을 잡아가고, 죽이는 일이 생기니까 사도들 외에는 다 흩어졌습니다.
이들이 은혜 받은 사람들이니까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유대인들에게만 전도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런 것을 전혀 구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전도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19~21절에 보면,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헬라인은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의 손이, 성령이 큰 손으로 그들과 함께 역사하셨습니다. 주님의 손이 역사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안디옥은 주전 300년경에 수리아의 왕 셀루쿠스의 의해 세워진 수리아의 수도입니다 그런데, 주전 64년에 로마의 폼페우스에 의해서 정복된 후, 로마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로마가 다스리면서부터 유대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옮겨와서 살게 되어 거기에는 회당도 세우고, 유대인들이 많이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 도시는 지중해 연안에 있습니다. 세계 선교의 매우 중요한 도시로서 이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를 보면 기독교인들이 핍박받는 곳이 있고, 핍박이 전혀 없는 지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핍박이 전혀 없는 곳에서 선교하는 분들은 몇몇 선교사를 제외하고는 느슨하게 선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런 핍박이 없으니까 오히려 선교하기 좋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비실비실합니다. 그냥 느슨하게 선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곳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눈빛이 다릅니다. 그래서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선교합니다.
제가 그분들 앞에서는 아무 말하지는 않지만, 제가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편한 곳에 가서 선교하는 사람들은 그냥 비실비실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냥 세월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주 위험한 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긴장하고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그냥 하루하루 정리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다릅니다.
우리 교회에서 러시아에 갔을 때, 고르바초프가 이제 그 개방했을 초기여서 참 위험했습니다. 뉴스에서 모스크바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 넓은 길 양쪽에 빌딩이 빽빽하게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러시아에 가서 그곳에 들어가 봤습니다. 아파트인데, 아래층에는 배설물이 가득 했습니다. 그런데 치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보니 벽이 나무로 되어있는데,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나무를 뜯어가서 엘리베이터 벽이 뜯겨있었습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전등불이 없어서 밤에는 캄캄한 속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사에게 전등이 얼마나 하는데, 하나 켜지 않냐고 물었더니 전등을 사다가 끼우자 마자 훔쳐간다고 합니다. 공산주의가 인간을 아주 완전히 망쳐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무신론자들이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람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인간을 동물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주 쉽게 결혼하고, 아주 쉽게 이혼합니다.
빵을 배급해주는데, 빵을 받으려고 수백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이야기하다가 눈이 맞으면 같이 산다고 합니다.
아파트에 방이 네 개 있는데, 한 방에는 이혼한 여자가 살고 있고, 남자는 다른 방에서 다른 여자와 같이 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윤리 도덕도 바닥이고, 물질도 바닥입니다.
우리는 올림픽 기간 동안 선수들의 숙소로 썼던 고급호텔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수도꼭지에서 시뻘건 물이 나와서 씻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고생을 하니까 한국 선교사들에게 돈이 있는 것을 알고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교파와 상관없이 전체가 하나 되어 얼마나 협력을 잘하는지…. 거기서 실내 체육관을 빌려 부활절 연합예배 인도하고 왔습니다.
환경이 어렵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선교사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파를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힘드니까 그곳에서 철수한 선교사들이 참 많습니다. 그곳을 떠나 미국에 가기도 하고, 선교하기를 포기한 것을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그레더 끝까지 목숨을 걸고 계속 선교하고 있는 분들은 정말 위대한 선교사들입니다. 정말 위대한 선교사들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며 꾸준히 자리를 지켜주시는 분들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 능력을 받은 종이고, 하나님께 충성한 종인데, 가는 곳곳마다 계속 핍박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고난을 허락하셨을까요? 거기에는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언제나 순교를 각오하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언제나 순교를 각오하고, ‘내가 오늘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한다.’라고 생각해보세요. 보통으로 기도할 것 같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런 속에서 편지를 썼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성령의 영감 속에서 쓴 서신들을 보면 내용이 기가 막힙니다. 평소에는 이런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라고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고 편지를 썼기 때문에 아주 기가 막힌 작품이 나온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욕심이 없습니다. 날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있기 때문에 기도를 해도 뜨겁게 기도하고, 전도를 해도 뜨겁게 전도하고, 무엇을 하든지 뜨겁게 하게 됩니다. 그래서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넷째. 대 부흥을 위해서입니다.
큰 환난의 때보다 평안할 때 전도하기 쉽고, 교회가 부흥되기 쉽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1982년도에 미국에 가서 공부할 때, 발표하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영어를 잘 못하니까 발표할 것을 미리 썼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발표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발표하겠습니까? 우리 교회 자랑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새벽예배를 몇 번 하고, 철야기도 하는 것, 1주일 중 언제 언제 모이는 등 우리 교회에 대해 자랑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수가 제게 “무슨 기도를 하기에 밤을 새며 기도하냐.”고 물었습니다. 자기는 분 기도하면 기도가 다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은 철야기도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 교회는 환경이 항상 위태한 가운데 수십 년을 보냈습니다. 김일성이 항상 남침하려고 도발했기 때문에 위기를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실 김일성 덕분에 한국 교회가 부흥된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터졌다 하면 철야기도 하고, 산기도 했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부흥된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기도원에 가면 성도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에 사람이 많으니까 산에 올라가 기도하면,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얼마나 우렁차게 들리는지….
저는 중학생 때에도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한밤중에 혼자 가서 기도하니까 ‘뱀이 나와 나를 물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얌전하게 기도해서는 뱀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몸부림치고 소리를 지르며 기도했습니다.
옛날에는 환경이 어렵고, 살아가기 어렵고, 북쪽에서 남침 할까봐, 휴전 상태니까 언제든지 전쟁은 일어날 수 있으니까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만 해도 새마을운동을 해서 나아졌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다 가난했습니다. 몇몇 부자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다 가난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교회로 오면 울면서 기도하고, 철야하며 기도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군사 독재정치 시대에는 억울함을 당한 사람이 많고, 고통 당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합니까? 이로 인해 한국 교회에 기도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철야기도 운동, 새벽기도 운동, 산기도 운동 등 기도 운동이 일어나면 은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사랑을 깨달으면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전도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주의 종이 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은혜 받은 종들이 많아지니까 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국 교회가 가장 많이 부흥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모택동이 교회를 다 없애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지하로 숨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가지 못하니 끼리끼리 모여서 예배드리고, 끼리끼리 성경말씀 나누고, 조용히 조용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다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식구들에게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모택동 시대가 끝나고, 교회가 개방되고 보니 이전보다 교인이 몇 배로 더 많아졌습니다. 환난 중에 오히려 교회가 부흥된 것입니다.
집회를 인도하러 갔다가 터키에서 온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선교 보고를 들었습니다. 터키에서 선교하다가 세 사람이 순교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독일 사람이고, 두 사람은 터키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특수 훈련을 받은 회교도 고등학생들이 마치 예수 믿으려고 하는 것처럼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고등학생이 교회에 왔으니 교회에서 얼마나 환영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중에 한 아이가 권총을 내밀면서 꼼짝 못하게 하고, 세 사람을 다 의자에 묶었습니다. 코란에 보면, 회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돼지 잡듯이 죽여라 하는 구절이 있는데, 돼지 잡듯이 죽인 것입니다. 회교라는 종교는 없어져야 합니다.
터키 목사님의 부인이 국립방송국에 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사건이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보는 방송에서 목사 사모가 어린 학생들이 아무것도 몰라서, 기독교에 대해 몰라서 그런 짓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들을 용서하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국민들이 다 그 방송을 봤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핍박과 환난이 있었던 후에 많은 터키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 달리 생각해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숨어서 믿던 터키 크리스천들이 다 길거리에 나와서 우리도 죽여 달라고 행진을 했습니다.
유럽에 모든 매스컴에도 다 보도되었는데, 순교한 목사님의 사모님 한 사람의 역할이 엄청난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순교자의 피를 통해 교회가 생겨나고 교회가 살아나고 부흥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순교자들의 피가 흘려진 땅이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이렇게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교회가 이렇게 환난과 핍박을 당하도록 허락하신 목적은 대부흥을 위해서입니다. 환난과 핍박이 일어나면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은 신자들은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고 담대히 전도하기 때문에 환란이 심할수록 기적이 많이 일어납니다. 목숨 걸고 기도하기 때문에 기적이 많이 일어납니다. 하나님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큰 환난을 당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시지 않으십니다.
왜 그 시험이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욕심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보세요. 만약 욕심 때문에 환난이 왔고, 시험이 왔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환난이 오고 시험이 왔을 때에 회개하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자기의 괴로운 것만 내세우고, 그것만 가지고 호소하지 마세요.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욕심의 눈이 어두운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끊어버리지 못한 욕심이 무엇인지,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부르짖어 보세요. 그렇게 기도해보세요. 주의 음성을 듣습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환난의 원인이 욕심 때문이 아니라면, 환난은 오히려 많은 축복을 가져오고, 많은 유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환난을 통해 나 자신이 알곡 신자라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게 됩니다. 환난을 통해 더욱 거룩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대 부흥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예수님 재림 직전에 없었던, 가장 큰 환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담대하세요. 성령 충만함으로 무장하세요.
완악해서 돌아오지 않던 사람들도 마지막 큰 환난 때는 다 돌아옵니다. 택함 받은 백성은 다 돌아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하나님 앞에 돌아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창세 전에 택함 받은 사람 중에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100% 다 예수 믿고, 100% 다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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