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성도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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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8 16:06 조회3,393회 댓글0건본문
행복한 성도가 되려면
행복한 성도가 되려면
2002년 12월 27일(금요철야)
본문 / 사도행전 8:1~8
본문에 보면, 사마리아 성에 있는 성도들과 사마리아 교회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을 때입니다. 그리고 증인으로 선 사울은 많은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죽였을 때에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있었던 때입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해버리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옥에 갇혀 있었고, 사도 외에는 모든 사람이 다 흩어져 교회에 사람이 없었을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 성의 성도들에게는 큰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나 근심, 슬픔과 낙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어려운 때였지만 큰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교회가 핍박을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흩어진 사람들이 숨어 지내고 두려움에 떨며 지낸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빌립 대사는 사마리아 성에 가서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그런데 말씀만 전하는 게 아니라, 큰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붙었던 귀신이 소리치며 나가고 중풍병자, 앉은뱅이, 나병환자들이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나 큰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기쁨은 세상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세상일로 인하여 생겨난 기쁨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기쁨입니다. 신령한 기쁨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참 놀라운 기쁨입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얼굴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죽는 가운데서도 얼굴은 천사와 같이 빛이 났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성도의 모습인지 모릅니다.
아무리 핍박이 와도 기쁨이 충만하고, 돌에 맞아 죽어도 기쁨이 충만하고, 감옥에 들어가도 기쁨이 충만하고, 어떤 환경에 있어도 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행복한 성도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주님과 복음을 만난 체험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만난 체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다.
복음을 만난 체험이 있는 사람,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있는 사람, 거듭나는 체험이 있는 사람, 성령의 체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기쁨이 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에 큰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단이라고 생각하고 다 없애버리려는 마음으로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 앞에 얼마나 죄송하고 얼마나 송구스러웠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야! 정말 부활하셨구나! 정말 부활이 있구나!’라고 확신했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은 루디아도 얼마나 기쁘고 즐거워했는지, 자기 집에 사도 바울을 들어오라고 해서 온 가족이 세례 받고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복음을 듣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됐을 때에 감격과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복음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이 세상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기쁨을 느끼고 사람이 변하여 간증하게 됩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있는지 모릅니다.
교회에 나온 지 오래 되었어도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확신이 없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기쁨이 없습니다. 평안함이 없습니다. 항상 근심이 떠나지 않고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래 다녀서 직분을 맡게 되면 의무감에서 일을 하지, 기쁨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난 체험이 없는 사람, 복음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생명이 없고 힘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평생 교회 나와도 변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복음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새사람을 만듭니다. 새 생명을 소유하게 만듭니다.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새로워집니다. 새 힘이 솟아납니다.
사울을 바울 되게 한 능력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깡패 김익두를 부흥사 김익두 목사로 만든 능력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백부장은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이 생긴 순간,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담력이 어디서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을 만나는 순간, 복음의 확신을 가지는 순간, 이렇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복음의 능력은 대단합니다. 교회생활을 수십 년 해도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고 즐거움이 없어서 억지로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쓸데 없습니다. 변화도, 기쁨도 없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불쌍하고 초라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행복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지금은 건강해도 뇌의 실핏줄 하나만 터지면 뇌출혈로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건강하다고 큰소리쳤는데,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가보니 온몸에 암이 퍼져 2주 만에 죽었습니다. 화장하고 남은 것은 한줌의 흙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큰소리 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건강하다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게다가 마음도 약합니다.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이 더 많고,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지만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모르고 삽니다.
야고보서 4장 13~14절에 보면,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안개는 굉장한 것 같지만, 햇빛이 비치면 언제 사라졌는지 사라지고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안개와 같습니다.
뭔가 보이는 것 같은데 금방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살아 있는 줄 알았는데 금방 죽어 없어지는 인간은 안개와 똑같습니다.
여러분, 사업계획을 세우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똑똑하고 완벽하고 준비를 잘 해도 아무것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생명줄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은혜의 줄입니다. 그 줄이 끊어지면 모든 것이 끊어집니다. 은혜가 끝나면 생명줄이 끊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감옥에 넣고 교회를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죄인을 멸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을 뿐 아니라 사도까지 되게 하셨으니 이것이 보통 은혜입니까.
저와 여러분도 과거에 지은 죄를 생각하면 벌써 죽었어야 하는데, 이 시간까지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집사, 장로, 교사, 찬양대원 등의 교회 일꾼이 되는 것은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자기가 잘나서 남보다 더 충성하고 더 수고한 것이 아니고, 다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간증이 저와 여러분의 간증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얼마나 충성하고 수고를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보면,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고난 받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고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는 전도해서 택한 백성이 예수님을 믿게 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고, 교회를 돌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많은 어려움과 핍박과 수고가 있는데, 사도 바울은 그 고난을 기쁨으로 자기 몸에 채운다고 고백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0~21절에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달게 받습니까?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니면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은혜 받은 자에게 행복과 축복과 좋은 일만 아니라, 주님을 위해 고난도 받게 하려 함입니다.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위해 고난을 이기는 자가 되고 고난 속에서도 충성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고난이 없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히려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큰 은혜를 주십니다. 고난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알게 되고, 큰 믿음을 갖게 되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고난은 사람을 만듭니다. 여자들이 임신해서 열 달 동안 뱃속에 아기를 갖고 있다가 해산할 때는 죽을지 살지 모르는 고통을 겪으며 자녀를 낳습니다. 한 사람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엄청난 고난을 감내합니다.
마찬가지로 고난을 통해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고난을 통해 신자가 만들어집니다. 일꾼이 만들어집니다.
고난이 없을 때에는 복음에 관심도 없고, 복음을 받아들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큰 고난 속에 있을 때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복음이 들립니다.
그래서 고난 속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믿음을 갖게 되고 신자가 되고 새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이라는 것이 괴로운 것 같지만,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고난 속에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면 원망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고난이 모두 큰 고통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끌어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에 두 주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광야 길로 인도하셔서 40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광야를 ‘고난의 대학’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왜 광야대학을 지나게 하시는 줄 아십니까? 고난의 대학을 거쳐야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광야에서는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살 길이 없습니다. 물도 없고, 전갈과 불뱀이 있습니다. 사람 살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잠시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세상만 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고 신뢰하고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광야 길을 잘 통과하면 큰 일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위대한 인물로 만드실 때에 미디안 광야에서 살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120년의 일생 중 80년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모세라는 큰 인물이 편하게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도 편하게 기르시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자랄 때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고난의 대학을 거쳐 성왕이 되게 하시고 큰 일꾼 되게 하시고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 총리가 되었지만, 그를 모함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자 굴에도 다녀오는 등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인물은 고난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큰 일꾼이 되려면 빈털터리가 되어 봐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는 것이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재산 바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또 사선을 넘어본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기에 하루하루 살아갈 때 날마다 절감하면서 살아갑니다. 사선을 넘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로 인해 평생을 축복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기뻐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야곱은 이름 그대로 참으로 야비하고 잔꾀나 부리는 믿을 수 없는 부끄러운 사람이었으나, 고난을 통해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겼다는 의미의 ‘이스라엘’, 승리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은 누가 괴롭혀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그를 위해 중보기도 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해집니다.
앞으로 이 세상은 더욱 고난 많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이 세상에서 편안하게 잘 살리라는 기대를 갖지 마세요. 편안하면 오히려 큰일 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범죄하는 것을 보면 무섭습니다. 철없는 어린 아이들이 고난의 맛을 모르니까 얼마나 깊은 죄에 빠져 있는지 말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예 어렸을 때부터 성령 충만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핍박을 당하게 되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핍박을 받습니다.
우리는 고난이 많은 세상에서 사는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면 아무리 고난이 많아도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셋째,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이 행복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돈 벌고 잘살고 출세하고 꿈을 이루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전 10:31)”는 말씀대로,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갖든지 무슨 공부를 하든지 어떻게 살든지 삶의 목표를 분명히 정해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교사로 일하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이 학교에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살꼬?’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면, 항상 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사하여 돈 벌어 선교사를 보내고 시골에 교회 세우고 주의 종을 후원하는 등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라는 목적을 가지고 살면 행복한 성도가 됩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성도들이 행복한 성도가 되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삶을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을 절대로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함께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신 동안 천국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 즉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혼자 두시지 않으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하시지만, 특별히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절대로 홀로 두시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보십시오. 그것은 주님과 복음을 위서 사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함께하시는 증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여주십니다. 아침에 기도했는데 오전 10시쯤 이뤄지기도 하고, 부부끼리 얘기했는데 금방 이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체험을 하면서 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환난과 핍박과 고난이 있어도 하늘과 땅을 주장하시는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가 나타날 때에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기만 해도 이뤄지는 것을 보고 잘 생각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좋은 생각, 믿음의 생각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에 제가 다니던 교회의 장로님 댁의 예쁜 누나가 시집갔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는 ‘나도 저렇게 토실토실한 장로님의 딸과 결혼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결혼하고 보니 토실토실한 장로님의 딸이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제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대개 10가지 정도 썼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누구에게 말한 것도 아닌데, 하나씩 다 들어왔습니다.
그 목록에 마태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적어놓았습니다.
여러분도 믿음으로 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하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홀로 두시지 않으시고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며 확신을 갖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백 배의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잘 살려고 애쓰고 욕심 부리지 마세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그냥 안겨 주십니다. 복음을 위해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바치고 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백 배의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행복한 성도가 되려면
첫째,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고난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핍박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두려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한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수영로교회의 개척 초기에 얼마나 시험과 고난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결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면 불을 받고 주의 음성을 듣고 큰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다음날 보면 어려운 고난과 시험이 인사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부흥되고 부흥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큰 고난이 오면 오히려 반갑습니다. 더 큰 부흥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세요. 축복하는 마음을 갖고, 불쌍한 마음을 갖고 기도하세요.
둘째, 항상 찬양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힘차게 찬양하면 원수마귀가 물러갑니다. 원수 마귀는 찬양을 싫어합니다.
셋째, 믿음의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이뤄진다는 것을 믿고 “모든 고난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줄 믿습니다. 전화위복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될 줄 믿습니다.”라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말대로 됩니다.
넷째, 주님과 복음을 위해 순교할 각오로 더욱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을 위해 살면,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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